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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붉은실의 끝맺음
작가 : allzero
작품등록일 : 2022.2.23

1930년, 경성. 나라도 마음도 자유롭지 못하던 그 날의 어디선가 만나 아무도 모르게 붉은 실로 얽힌 이들의 이야기.

 
#20. 차라리 몰랐으면 한 비밀
작성일 : 22-02-28 01:03     조회 : 190     추천 : 0     분량 : 1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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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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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영은 그동안 해월관 에서 몇 번 연진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경성에 가야겠다 마음먹은 그 날, 영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연진의 행방이였다. 아직 경성에 있을 연진을 생각하며 자신이 이곳에 있는 한 언젠 가는 마주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조직원들을 만나고 해월관을 열면서 신분이 노출되면 안됐던 영은 손님 접대 같은 해월관 영업의 외 적인 부분은 담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영도 혹시나 연진이 해월관에 오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매일같이 해월관에 오는 손님들의 신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연진을 만나서 어떻게 할 생각은 아니였다. 복수를 할 마음도, 이제 와서 왜 그랬냐고 따질 생각도 없었지만.......그렇지만.... 지금의 영도 자신이 왜 연진의 걸음을 기다리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냥 어떻게 살고 있는 지가 궁금해서, 자신들을 버리고 조직을 배신하고 얼마나 잘 살고 있는 지가 궁금해서. 단지 그런 것 뿐이라고......영은 작은 핑계를 대가면서 연진을 기다렸다. 그러던 와중 정말 해월관 안에서 연진을 마주치게 됐었고 멀리 서 나마 봤던 옛 친구의 얼굴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었다. 자신들을 배신하고 조직을 등지고 얻은 삶이 마냥 순탄하지 만은 않게 해 달라고 바랜 적은 있었지만 막상 연진의 그런 표정을 보니 영은 오히려 짜증이 치밀었다. 바보같이 그렇게 다 버리고 갔으면 행복 하게 라도 살고 있어야 자신이, 승준이 억울하지 나 않지. 그래야 마음 편히 욕도 하고 원망도 할 수 있는데....해월관에 올 때마다 연진의 표정은 꼭 소중한 걸 어딘가에 놓고 온 듯 했다. 원망, 그 다음에는 합리화, 그 다음에는 그리움.....결국 영은 몇 달 만에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영은 그때의 연진과 승준이 정말 사무치게 그리웠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때의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사소한 장난과 웃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건 눈을 뜨고 나면 없어지는 한순간의 기억들이였다. 숨겨 놓은 그 기억들에 대한 미련들이 하나, 둘 마음을 비집고 나오려 던 찰나 연진을 마주친 것이였다.

 고연진: 역시...너는 여기서 나 본 적, 있었구나.

 영이 해월관의 사장이였다면 자신을 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해월관이 문을 연 지 벌써 3년 째였다. 그 사이에 몇 번이고 오고 가고 했었지만, 연진은 한 번도 영을 본 적이 없었다. 작정하고 피하지 않는 이상 말이 안되는 일이였다. 우연치 않게 연진을 마주친 영은 그대로 굳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연진: 근데 왜 여태 아무 짓도 안 했어?! 승준이 때문에 경성에 온거 아니야? 나한테 복수 할려고?! 내가 네 앞에 나타나 줬잖아. 그럼 무슨 말이라도 해!! 원망이라도 하라고!

 갑자기 나타난 연진의 모습에 영은 아직도 놀란 기색이 여전했다. 연진은 영의 행동이 이해가 안됐다. 분명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텐데 우리들의 사이가 틀어진 건 분명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텐데.....자신한테 복수하기 위해 경성에 온 게 맞을텐데 왜..........지금 자신을 보며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영은 이미 오래전에 연진을 봤으면서도 죽이기는커녕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다. 죽일 수 있는 기회 같은 거는 분명 얼마든지 있었을텐데.....연진은 차라리 영이 자신을 원망하고 있기를 바랬다. 자신을 증오하고 비열한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기를 바랬다. 그래야.....자신이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니까.....그래야 승준이한테 덜 미안하니까....

 허 영: 맞아. 너 때문에 왔어, 승준이 때문에 왔어....!! 그냥 잊고 살기에는 너무 미안해서....아무것도 안하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났던 것처럼 너도 승준이도 다 잊고 살기에는.....!!!

 다짜고짜 쏘아 대는 연진의 멱살을 잡으며 영이 소리쳤다.

 허 영: 그러고 싶지가 않은데...흑흑....한 순간, 한 순간도 빠지지...크흑 않고....다....기억하고 싶은데......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계속 났다. 눈에 힘을 줘도 눈물이 차다 못해 넘쳐서 흘렀다. 아이처럼 끅끅 거리며 말도 제대로 못하고 우는 영의 모습을 보자 연진은 마음이 약해졌다.

 고연진: 영아......난 다 잊었어...너도 승준이도 그때 우리도. 난 다 잊었어. 그러니까 너도 빨리 마음 정리해. 나한테 복수할지 아니면 옛날 일 다 잊고 새로 살지.

 연진의 차가운 말에 영은 상처 받은 듯 눈이 휘어지면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연진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서서히 연진에게서 멀어지는 영.

 고연진: 하람이 내 아들이야.

 영은 연진의 말에 아까와는 달리 정말 놀란 듯 눈을 크게 떠 보였다. 연진 에게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영도 몰랐다. 20여년 전, 갑자기 달라진 연진의 태도에 세 사람은 자주 부딪혔었다. 그때는 그저 연진이 변덕을 부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연진: 아까 하람이 옆에 앉아 있었던....그 아이, 걔가 승준이 딸이지....! 신아.....

 말을 하는 연진도 그걸 듣고 있는 영도 마음이 미어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승준을 대신해 지켜주고 싶은 아이가 신아였다. 조직을 배신하면서까지 지켜주고 싶은 아이가 하람이였다. 그런 아이들이 자신들 때문에 궁지에 몰리고 있다.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최후의 수를 들킨 기분이였다.

 허 영: 신아 건들이지마.....!!! 승준이가 마지막으로 나한테 부탁한 애야. 신아 까지 건들면 넌 진짜 사람도 아닌 거야.

 연진의 입에서 신아의 이름이 나오자 영은 다시 연진의 멱살을 잡으며 벽으로 밀어 붙였다.

 고연진: 영아....난 절대로 하람이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해.....근데 너도 알잖아....신아랑 계속 같이 있으면 우리 때 일이 반복 될 거야.....어쩌면 이미 시작 됐을 수도 있어....

 연진의 말이 맞았다. 아직은 서로에게 얽힌 사건들을 모르니까 그럴 수 있다지만 연진과 승준, 영의 이야기를 다 듣고도 그 아이들이 친구로 남을 수 있을까....

 고연진: 하람이....다시는 해월관에 오지 않게 해주라. 넌 승준이랑 한 약속 지켜. 난 하연이랑 한 약속 지켜야 하니까.

 허 영: 하......하연이.......?그럼 너 정말......!!

 이유 없이 친구한테 버림 받았었다. 며칠을 몇 주를 몇 달을 그렇게 몇 년을 머리를 싸매고 생각을 해봐도 갑자기 그럴 이유가 없었는데....! 그냥 싫증이 난 거였다고 자신들과 함께한 약속들은 다 거짓말이였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원망하고 미워했었다. 헤어지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들에게 까지 하람의 존재를 말 못하고 비밀로 하고 있었다. 그 옛날 자신들을 떠난 이유가 정말 하람 때문이였다면 정말 그런 거라면.... 난 연진이를 용서해 줄 수 있을까....? 그래도 되는 걸까...승준아...?

 고연진: 하람이는 알지도 못하는 옛날 일이야. 우리 일에 애들까지 엮이게 하지 마. 난 한 번 도 그때 한 선택 후회한 적 없어. 그렇게라도 내 새끼를 지켰으니까.

 연진이 체념한 듯 쏘아 대는 모든 말들이 영의 머릿속을 울렸다.

 고연진: 오늘은 그냥 갈게. 하람이 좀 내일 집으로 보내줘.....

 연진이 영을 뒤로 하고 먼저 고개를 돌렸다. 20년을 원망하고 증오했던 친구에게도 이유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자신들에게 까지 말 못하고 혼자 모든 걸 삼켜야 했던 친구의 지난 날들에 가슴이 미어졌다. 어떡해야 하는 걸까.....이해하고 싶지 않은데....계속해서 이해가 된다.

 다음날

 송재희: 어때요?

 서희석: 어제 무리해서 드신 것 같다고 속이 좀 안 좋으시대. 누워서 쉬신다고 하니까 방해하지 말아 드리자.

 영은 어젯밤 연진을 만나고 이런저런 생각들로 밤을 지새웠다. 아직 연진 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얘기도 너무 많은데......연진과의 관계를 어디서 부터 바로 잡아야 할 지를 모르겠다. 서로를 오해하고 지낸 지 자그마치 20년이였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였기에 오해의 시작 점을 찾아 기억을 해매고 다니는 것 부터가 쉬운 일은 아니였다. 아침부터 단지 속이 좀 안좋다는 핑계로 방문 밖으로 한발자국도 나오지 않는 영을 보며 조직원들 모두가 걱정에 찬 눈빛으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희석이 대표로 들어가 영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오며 그다지 심각한 건 아니라는 말에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몸에 힘을 빼는 조직원들이다.

 김무성: 문 열어야 하니까 이제 각자 위치로 돌아가자. 하람이도 이제 집으로 들어가고.

 사실 오늘 새벽 영은 무성의 방을 찾았었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하람이를 집으로 돌려 보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무성도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어쩐지 영의 분위기에 눌려 쉽사리 물어보지는 못했다.

 서희석: 그래. 일단 하람이는 집에 들어가서 어른들이랑 잘 얘기하고 그때 다시 와서 얘기하자. 너희들도 이제 자리로 돌아가고.

 박중현: 그래 하람아. 더 늦기 전에 얼른 들어가. 그게 좋겠다.

 하람이 조직원들을 보며 이내 얕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하람: 네....잘 다녀 올게요.

 조영민: 같이 가자. 데려다 줄게.

 고하람: 내가 애냐? 집에도 혼자 못 가게. 괜찮아. 너 일해야지.

 조영민: 아직 시간 좀 남았는데.....

 어제 저녁, 말은 그렇게 했어도 집안 어른들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지 하람도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영민은 그런 하람이 걱정됐지만 딱 잘라 얘기하는 하람 에게 톨아져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하람: 그럼 형님들! 저 다녀 오겠습니다.

 서희석: 잘 다녀와~

 송재희: 다음에 올 때는 맛있는 술 잔뜩 만들어줄게 하람아!!

 조직원들 모두가 하람 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배웅을 해주었다. 영 또한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2층 창문 난간에서 하람이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람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어젯밤 연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연진 에게 복수를 할지, 다 잊고 새롭게 살지. 자신은 상관 없다지만 신아는 이 사실을 다 알고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차라리 신아가 복수를 꿈꾸고 경성에 가자는 말을 했을 때 끝까지 반대를 할걸 그랬다. 연진을 다시 만나지 않고 신아도 하람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였으니까....

 허 영: 하....

 영이 책상 위에 있는 액자를 들어 보이며 한숨을 쉬었다. 액자 안에는 청년 시절의 영과 승준이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만약 지금 승준이 영의 옆에 있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상황이 조금은 나아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영의 그렇게 또 한명의 옛 친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한편, 본가에 도착한 하람을 민수가 허겁지겁 나와 호들갑을 떨며 맞았다.

 민수: 하 도련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도대체 어디 계시다 이제 오시는 거예요.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데....!!어제, 그저께 어디서 주무셨어요?!

 고하람: 그냥 친구네에서 잠깐? 아잇 미안해 너한테는 말 할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상황이 이

  렇게 돼서....나 때문에 눈칫밥 많이 먹었지...?

 민수: 아니요. 별로.

 고하람: 진짜?!

 민수: 네. 집안 분위기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어요. 어르신이 도련님 이제 포기 하신 거 아닐까요?

 고하람: 하..제발 좀 그러셨으면 좋겠다.

 집에 오자마자 티격태격하며 말장난을 하는 민수와 하람의 모습이다. 민수와 장난을 치다가 이내 시선이 연진이 있는 방으로 쏠리는 하람을 보며 민수도 진지하게 말했다.

 민수: 어서 들어가 보세요. 도련님 갑자기 사라지시고 걱정 많이 하셨어요.

 민수에 말이 이끌려 연진이 있는 방으로 몸을 옮기는 하람.

 고하람: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고연진: 네 짐은 민수한테 싸 놓으라고 했다. 할아버님께는 내가 말씀 드릴 테니 지금 당장 배에 탈 준비를 하거라.

 하람의 말을 단번에 끊는 연진의 가시 돋힌 말에 하람이 인상을 찌푸렸다.

 고하람: 싫습니다.

 하람이 단호한 말투에 놀란 기색이 역력한 연진이다.

 고하람: 아무리 할아버님 뜻이라고 해도 제가 원하지 않는 일을 원하는 척하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더 이상.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여기 있겠습니다. 집에서 내치셔도 상관없습니다. 차라리 그래 주세요.

 고연진: 뭐....?!

 고하람: 살면서 한 번이라도 제가 아버지께 어떤 부탁이라도 드린 적 있었습니까? 한 번이라도 어떤 걸 해보고 싶다, 말씀 드린 적 있었습니까? 아버진 한 번이라도 그걸 이상하다 여긴 적.....없으셨습니까...........?

 하람의 목소리가 떨렸다. 말을 하는 하람도 그걸 듣고 있는 연진도 가슴이 미어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연진은 하람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지난날을 돌아보게 됐다. 괜시리 옛날 일을 떠올리면 그 기억의 너머에는 꼭 승준과 영과 함께 보냈던 순간이 떠올랐기에 먹고 사는게 바빴다는 핑계로 어떤 기억도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결국 하람은 승준과 영의 기억에 묻혀 연진 에게 어떠한 기억으로도 남지 못했다. 그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둔하지 않았던 하람은 잘 알고 있었다. 겉만 번지르 했지만 하람은 한 번도 연진 에게 우선순위였던 적이 없었다.

 고하람: 아버지 탓 안 합니다. 누굴 탓하면서 낭비하고 싶은 인생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절 내쳐주세요. 내쳐주세요. 제발

 고연진: 해월관에 갈려고........

 하람의 말에 속이 쓰릴 정도로 마음이 아팠던 연진은 체념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차라이 자기를 내쳐 달라는 소리를 듣고도 멀쩡할 부모가 세상 천지에 있을까. 눈에 초점이 없었던 연진의 눈빛에 이내 또 한 번의 원망이 서렸다. 아들에게도 버림 받았다. 모든 걸 포기하고 내걸었던 자신의 아들에게도 결국 버림 받았다.

 고연진: 집안을 등지고 부모를 버리고 네가 살고 싶은 인생이 고작 그런 거였어?! 고작....!!!

 연진은 지난 날, 해월관 에서 봤던 하람의 미소를 떠올렸다. 모든 걸 다 주겠다는 데 아무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데 왜.....왜 고작 그런 인생을 살자고.....

 고연진: 해월관에 다시는 발걸음 하지 마라. 집안 뜻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그렇게 해. 그것 만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하지만 다시는 해월관에 가지도 말고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마라. 하람아. 멀어지고 경계해.

 고하람: 싫습니다.....

 고연진: 고하람!!!!!

 집안의 뜻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게 해주겠다는 연진의 마지막 호의도 거부하고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하람을 보며 참다 참다 연진이 고함을 질렀다.

 고하람: 원하지도 않는 삶, 바란 적도 없는 삶. 더 이상 탐 내고 싶지 않습니다. 달란 적도 없습니다. 억지로 쥐어주지 마세요. 저를 위한 다는 말도 이제 그만 하십시오. 아버지는 단 한순간도 저를 위해 사신 적 없습니다. 정말로 저를 위해주신다면 그냥 지금 절 놓아 주세

  요. 그거 한 번이면 전 됩니다.

 하람이를 위해 친구도 자신의 꿈도 청춘 받혀 약속한 맹새도 모든 걸 내팽겨쳤었다. 오직 그 아이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에서 사랑했던 사람들을 모두 제 손으로 끊어냈었는데 막상 하람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 된 거였을까....

 고하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버지.

 하람이 연진을 뒤로 하고 자리에서 일으키려 하자 연진이 다급하게 하람을 불러 세웠다.

 고연진: 하람아!!

 연진의 불음에 다시 뒤를 돌아 연진과 눈을 마주치는 하람. 연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고 겁에 질려있었다.

 고연진: 영과 신아.....그 둘이 무슨 관계인지는 알고있냐....

 연진의 입에서 영과 신아 이름이 나온 순간 하람의 눈이 커졌다. 연진은 한 번도 둘을 마주친 적이 없을텐데 어떻게 그 둘을 알고 있는 거지....?

 한편 해월관은 여느 때와 똑같이 잔잔하고 평화로운 시간의 연속이였다. 보통 낮 보다는 밤에 사람이 더 많았기에 비교적 해가 있을 때는 여유로운 편이였다. 해균은 짐을 옮기고 희석은 약품을 정리하고 재희는 술잔 정리를 하고 있었다. 무성과 중현은 손님들 접대를 하며 조용하고 잔잔한 와중에도 모두가 각자의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동안에 유일하게 영민만 일에 집중을 못 하고 있었다. 2층에서 걸레로 청소를 하고 있었던 영민은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지 바닥만 보면서 청소를 하다 앞에 벽에 부딪힐뻔 한 걸 신아가 벽에 손을 갖다 대면서 벽이 아닌 신아의 손에 박치기를 했다.

 조영민: 아...!

 신아의 손에 부딪히면서 그제야 정신을 차린 영민이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면서 신아를 쳐다봤다.

 류신아: 뭐야, 뭔 생각을 하길래 벽에다 머리통을 일부러 박을 려고 걸어가고 있어?

 조영민: 어?아 그냥.....고마워.

 아침부터 계속 멍 때리며 일에도 집중을 못하는 모습이 뻔히 보이는 영민의 행동에 신아가 눈썹을 꿈툴거렸다.

 류신아: 왜. 하람이 때문에?

 신아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놀란 눈을 한 영민이 이내 한숨을 쉬고는 옆에 있는 벽에 기대면서 말했다.

 조영민: 하......응....그녀석... 잘하고 있을려나.

 류신아: 알아서 잘 하고 있겠지 뭐.

 조영민: 말은 그렇게 해도 걱정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류신아: 그랬어?

 신아가 시큰둥하게 대답을 했다.

 조영민: 혹시 막 반 강제로 배 태우고 그러시진 않겠지?!

 류신아: 뭐...말 안 통하면 그러실 수도 있겠지.

 하람의 걱정으로 내내 심각하게 말하는 영민과는 다르게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신아의 태도에 영민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 봤다.

 조영민: 넌 걱정도 안되냐?! 어떻게 그렇게 남 일처럼 얘기해!

 류신아: 왜, 넌 걱정돼? 그렇게 싸울 때는 언제고~!

 신아가 눈이 휘게 웃으며 영민을 놀리자 급하게 시선을 피하는 영민이다.

 조영민: 걱정은 무슨.....그냥........신경 쓰이니까 그런 거지....!

 류신아: 하람이가 옛날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다고. 이제야 그런 용기가 생긴 것 같다고, 아마 지금의 하람이라면 괜찮을 거야. 스스로 옳은 선택을 할 거고 우린 그 선택을 존중해주면 돼. 친구니까.

 차분한 목소리 때문이였을까, 하람을 굳게 믿고 있는 신아의 표정 때문이였을까. 영민은 신아의 말을 듣자 아침 내내 하람의 걱정으로 요동쳤던 마음속이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조영민: 그래...네 말이 맞네.

 영민이 편안한 웃음을 지어 보이자 신아도 그제서야 안심이 된 듯 얕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영민이 하람의 일로 아침부터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신아도 역시 마음이 편하지 만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영민 에게 이렇게 말로 꺼내고 나니 신아도 확신이 생겼던 것 같다. 하람을 믿어 보자는 그런 확신.

 류신아: 그럼 이제 정신 차리고 청소나 열심히 해라. 또 벽에 머리 박지 말고.

 신아는 바지를 털고 일어나며 영민 에게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게 웃어주고는 지하 창고로 향했다. 아무리 남장을 하고 있어도 신아가 사람들한테 알려지는 게 마음에 걸렸던 영은 신아 에게 사람이 붐비는 저녁 시간에는 지하 창고로 내려와 총기들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라고 맡겼었다. 원래는 영과 같이하는 일이였지만 오늘은 영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신아 혼자 지하 창고로 내려왔다. 늘 영과 함께 오거나 거사 회의 때문에 조직원들과 다 같이 있을 때가 대부분이였는데 막상 이렇게 혼자 있으니까 오늘 따라 지하 창고가 괜시리 넓어 보였다. 조직원들이 거사 때 사용하는 총기와 나머지 무기들은 영이 사용하는 낡은 책상 아래에 숨겨진 비밀 통로에 있었다. 비밀 통로를 이용하면 해월관에 있는 정문과 뒷문을 통하지 않고도 밖으로 나갈 수 있었기에 고관순 때도 그렇고 다른 거사 때도 조직원들이 자주 애용하는 공간이였다. 신아는 비밀 통로로 들어가기 위해 영의 책상을 옆으로 힘을 주어서 밀다 힘 조절을 잘못해 책상 위에 있던 액자 하나가 떨어지며 유리 깨지는 소리가 지하 창고에 울려 퍼졌다.

 쨍그랑!!

 신아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한숨을 쉬며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유리 파편들을 손으로 대충 털어 내고 뒤집어 져 있는 사진을 들어 올렸다. 액자 안에 있는 사진은 영이 어릴 적 신아 에게도 한 번 보여준 적 있었고 해월관에 와서도 책상 위에 액자로 올려놔서 오고 가면서도 몇 번 본 적 있었던 승준과 영이 함께 찍은 사진이였다. 근데.....항상 액자에 껴져 있는 상태로 사진을 봐서 몰랐었는데 지금 보니 사진 왼쪽 부분이 접혀져 있었다. 영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승준의 사진이였기에 신아 역시 오랫동안 그 사진을 봐오면서도 사진이 접혀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었다. 신아가 의아해 하며 접혀져 있는 부분을 펼치자 그곳에는 연진이 있었다. 처음에는 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하람을 집에 데려다 주던 그날 밤, 대문 사이로 스치 듯 봤던 연진의 얼굴을 확실히 기억했다. 그 사람이 확실했다. 근데 왜 하람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인 승준과 영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거지....? 어린 시절 영에게 띄엄띄엄 들었던 승준의 죽음에는 분명 같은 조직이였던 친구의 배신 때문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신아가 그걸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이유는 영 때문이였다. 분명 그 친구를 원망하는 것 같으면서도 편을 드는 듯한 영의 말투에 신아는 어렴풋이 눈치 챌 수 있었다. 영은 그 친구를 어떻게서든 믿고 싶어하고 있다는 걸. 사는 동안 연진이 배신을 하지 않았다면 승준이 죽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원망한 적은 있었어도 그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단지 신아는 아버지였던 승준이 보고 싶어 하던 나라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일본인들에게 복수하는 게 유일한 목표였고 그걸 위해 경성에 왔었던 거다. 분명 그랬는데...... 사진 속 세 사람을 보며 알 수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때 영이 지하 창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영은 연진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 걸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 조직원들에게 괜한 걱정을 끼친 것도 미안했는데 총기 점검도 신아에게만 맞기 기에는 염치가 없어서 지하 창고로 내려온 것이였다. 문을 열자마자 액자에서 떨어져 펼쳐진 사진을 신아가 들고 있는 걸 보고 영의 심장이 마구 뛰었다. 어떤 말도 행동도 못하고 있는 영을 보며 신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영에게 사진을 보며주며 말했다.

 류신아: 이거 뭐예요....?? 여기 이 사람, 하람이 아버지잖아요. 왜 이 사람이 우리 아버지랑 수장이랑 같이 있는 거예요....? 설마..........조직을 배신하고 우리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는 그 친구가................하람이 아버지예요.....?

 이래서 하람이를 해월관에 오지 않게 해 달라는 거였구나....이래서 하람이와 신아를 떨어뜨려 놓을려는 거였구나.....어젯 밤 영은 연진의 말을 듣고 예상 못한 바는 아니였지만 신아의 질문을 듣자마자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우습게도 하람과 신아가 모르는 사이였다면......차라리 친구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자신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 아이가 덜 슬퍼했을까 였다. 차라리 그랬다면 우리 모두가 조금은 편했을까....하는 핑계였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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