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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
기억 저편에 있는 너.
작가 : 청아휘
작품등록일 : 2016.9.20

그 때에 관한 생각의 일부라도 절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주인공 오혜연.
그러나 그게 쉽게 되질 않았다.
친한 친구의 강압(?)에 못이겨 동창모임에 나간 혜연은 잊고 살았던 그 날의 일을
기억하고 만다...

 
그 때, 있었던 일.....(2)
작성일 : 16-11-04 11:27     조회 : 440     추천 : 0     분량 : 4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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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그 때, 있었던 일.....(2)

 

 

 

 누군가의 손에 어깨를 잡힌 걸 알고 그녀는 신으려던 신발을 손에 들고 반사적으로 남자를 후려친 후 맨발로 그곳을 도망쳤다.

 

 혜연인 어떻게 대문을 열고 튀어나왔는지 기억조차 없었다. 골목길을 죽어라 달렸다. 동시에 그녀에게 신발로 얻어맞는 남자 역시 미친개처럼 그녀를 쫓아왔다.

 

 짧은 골목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몇 천 미터나 되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렸다고 했어도 그녀 역시 술을 마신 상태였기에 발이 꼬여 휘청거렸다. 혜연인 넘어지지 않으려 바둥거렸지만 뒤 쫓아 오는 남자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말았다.

 

 혜연은 겁에 질려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거칠게 반항을 했다. 주먹을 뻗었고 발길질을 했지만 상대는 성인과 다름없는 덩치 좋은 고등학생이었다.

 

 반항이 더 화를 불렀다. 남자는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른 손을 들더니 냅다 혜연의 뺨을 후려갈겼다. 강도가 어찌나 센지 얼굴 전체가 깨지는 통증이 일어났다.

 

 “ 씨 발 ㄴ*, 조용히 안 해?”

 

 낮고 소름끼치는 목소리였다. 혜연이 두려움을 애써 감추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를 갈았다.

 

 “ 나쁜 새끼. 너 가만 안 놔둬. 죽여 버릴 거야.”

 

 뺨을 맞아 얼굴전체가 부었지만 발음은 정확했다. 남자가 손을 또 들며 협박을 했다.

 

 “ 그전에 내 손에 너 죽어. 까불지 말고 곱게 따라와”

 

 그깟 협박에 무너질 혜연이 아니었다. 그녀가 남자에게 잡힌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더 크게 빈 골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 도와주세요! 사람 살려요!”

 

 남자의 협박에도 혜연은 아랑곳 하지 않고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목청껏 부르짖다보면 누군가 한 명은 고개를 내밀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혜연이 소리 지르며 도와달라고 외치자 그녀의 뺨에 거칠고 두려운 손길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그건 폭력이었다.

 

 남자는 이미 이성을 잃었다. 거칠게 반항하며 소리까지 지르는 혜연을 곱게 데리고 갈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그의 손바닥에 힘이 더해졌다.

 

 혜연은 겁에 질리다 못해 경기를 일으킬 정도의 두려움이 그녀를 휘어 감았다. 곧 죽을 것 같았다. 무서움과 두려움...

 

 남자는 소리 지르지 말고 순순히 따라오라며 주저앉아있는 혜연일 일으켜 세웠다.

 

 “ 오혜연! 너, 거기서 뭐하는 거야?”

 

 아주 또렷하고 분명한 목소리였다. 귀가 활짝 열렸다. 세상 속 온갖 소음이 순식간에 죽었다. 그녀의 귀에 들리는 건 ‘오혜연’이라 불리는 이름뿐이었다.

 

 남자에게 팔을 잡혀 몇 걸음 걷던 혜연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잡힌 팔을 미친 듯 뿌리치며 살려달라고 또 다시 외치기 시작했다.

 

 “ 도와주세요!”

 

 “ 오혜연. 너 오혜연 맞아?”

 

 남자는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를 향해 혜연이 계속 소리를 지르자 황급히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걷던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뒤로 뺐다.

 

 혜연이 조금 자유로워진 팔을 들어 입을 막고 있는 남자의 손을 잡아 뜯으며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다.

 

 “ 나, 혜연이 맞아요. 도와주세요!”

 

 혜연이는 자신을 부르는 남자가 누군지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남자는 아닌 것 같았다. 상대가 또래인줄 알았는지 혜연일 부르는 남자를 향해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혜연인 누구든지 상관없었다. 잡혀있는 손아귀에서만 벗어나면 그만이었다. 다시 소리를 질렀다. 도와달라고.....

 

 그녀의 눈에 불꽃이 팡 또 터지며 뺨에 뜨거움이 달라붙었다. 남자가 그녀의 뺨을 또 후려친 것이다. 혜연이 거의 기절하듯 땅바닥에 펄썩 쓰러졌다.

 

 퍼억~

 

 다다다다 골목을 달려오는 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거친 파열음이 날카롭게 어둠을 갈랐다.

 

 퍽, 퍼억...

 

 혜연의 손목이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자꾸 감기는 두 눈을 억지로 뜬 그녀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입을 벌렸다.

 

 방금 전까지 혜연을 잡고 윽박지르던 거친 남자는 없었다. 그가 내지르는 주먹은 공중에서 붕붕 떠다닐 뿐, 닿는 곳은 없었다.

 

 “ 너 이 새끼 뭐야? 너 누구야? 어느 학교야?”

 

 혜연을 부르던 남자가, 혜연의 뺨을 후려치던 남자의 멱살을 움켜잡고 얼굴에 주먹을 뻗으며 물었다.

 

 때리는 남자의 키가 컸다. 맞는 남자도 결코 작은 키가 아니었는데도 힘으로 밀리는 것 같았다.

 

 혜연이 엉금엉금 기다시피하며 키 큰 남자의 바지자락을 잡고 그 뒤로 몸을 웅크렸다.

 

 남자는 그 뒤로도 몇 번 주먹세례를 받고서야 그 자리를 벗어 날 수가 있었다. 가면서도 뒤를 연신 힐끔거리며 침을 뱉었다.

 

 혜연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 남자가 분명 ‘오혜연’이라고 이름을 불렀기에 누군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누구지? 궁금함이 채 가시기 전에 무겁고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를 내리쳤다.

 

 “ 오혜연! 행실 똑 바로 하고 다녀!”

 

 쭈뼛거리고 서 있는 혜연을 쳐다보는 눈은 차갑기가 어름 짱 같았다.

 

 “ 어디서 무슨 짓을 하다 나온 거야? 너 옷 꼬라지가 이게 뭐야?”

 

 행실? 무슨 짓?

 

 구해줘 고맙다는 생각 대신에 ‘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어.’ 어처구니없는 욕이 먼저 튀어나올 것 같았다.

 

 “ 똑 바로 서봐. 똑 바로 걸을 수 있어?”

 

 걱정하는 건지 질책하는 건지 헷갈렸다. 남자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혜연의 몸을 바로 세우며 일갈을 했다.

 

 “ 정신 똑 바로 차리고 집으로 곧장 가. 너 지금 형편없어. 엉망이라고.....”

 

 어이없어 황당해 하는 혜연을 한 번 힐끗거리더니 잡고 있는 손을 뗐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녀 앞에서 멀어져 갔다.

 

 혜연은 뭐에 홀린 것 같았다.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군데 날 아는 거야? 저 사람 누구야?

 

 분명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커다란 키. 안경 넘어 보이는 차가운 눈빛. 재수 없는 말투.

 

 혜연은 방금 전에 당했던 폭력보다, 자신을 구해주고 자존심을 박박 긁고 사라진 남자가 누군지 더 궁금했다.

 

 집에 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분함과 억울함에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왔고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누구 길래.... 날 얼마나 안다고 그런 소릴 했지?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펑펑. 수돗물 나오듯 쏟아져 내렸다.

 

 혜연은 아마도 태어나서 그만큼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없었다. 길가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다.

 

 울면서 겨우 택시를 타고 집에 갔지만 술 취하고 얼굴이 퉁퉁 부어 엉망으로 들어온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충격 받은 엄마의 비명과 분노한 아버지의 고함, 그리고 매였다.

 

 누구냐.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 그런 거야?

 

 온 식구들이 충격으로 누워있는 혜연을 잡고 물었다.

 

 엄마는 정미한테 전화를 하며 상황을 듣고자 했다.

 

 ‘ 혜연이가 집에서 잔다고 그냥 갔어요.’

 

 정미는 혜연이 미리 문자로 알려준 대로 앵무새가 되어야했다.

 

 혜연은 솔직하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여차하면 친구모두 졸업을 앞두고 경찰서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 뒤에 일어날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 뒤로 혜연은 일주일을 아팠다.

 

 온 몸에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파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당연히 학교도 결석을 해야 했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 그 날, 같이 있었던 아이들한테 전화며 문자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일들은 이미 계획된 일이었다는 걸 정미가 미안하다며 알려줬다.

 

 짐작대로 사촌오빠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한 동네에 같이 살아 오빠 동생하고 지내던 사이였고, 그 사람의 친구들이었다.

 

 그날 혜연을 따라 나와 폭행을 한 남자가 모임을 만든 거라고, 정미는 핑계 같지 않은 핑계를 댔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연찮게 정미와 같이 있는 혜연을 봤는데 자기 이상형이라고 소개시켜 달라고 하도 사정을 했단다.

 

 상놈의 새끼. 생각만 해도 혜연은 치가 떨렸다. 언젠가는 꼭 복수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성질 같아선 친 오빠인 정훈에게 말해 반 죽여 놓으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혜연은 그 뒤로 그 때 같이 있었던 아이들과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다.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 아이들의 얼굴만 봐도 그날 있었던 일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라 피차가 괴로웠다.

 

 특히 그들의 엉망진창인 모습을 봐야했던 혜연이 더 힘들었다.

 

 그렇게 해서 혜연인 유일한 친구들이었던 그녀들을 외면함으로써 졸업 때까지 줄곧 혼자 지내야 했다.

 

 졸업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중학교 생활은 혜연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 사람을 본 것이다.

 

 그것도 학교 복도에서 정말 우연히 마주쳤다. 혜연인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같은 학교 , 같은 학년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남자가 맞다 고 여겼을 땐 혜연은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구해줬던 남자가 바로 서윤채였다.

 

 윤채와 달리 혜연은 그와 1,2학년을 같은 반을 했다는 걸 기억하지 못했다. 그만큼 혜연은 다른 사람에게 무심했다.

 

 서로 몰랐을 때 백 번을 마주친다한들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지만 혜연이 겪는 문제는 달랐다.

 

 보여주지 못할 치부를 보여준 남자였다. 몰라도 될 그녀의 흑 역사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들여다 본 남자가 서윤채였다.

 

 혜연은 우연이라도 윤채와 마주치는 걸 꺼려했다. 죽어라 피했다. 화장실도 가급적 가지 않았고,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도 삼갔다.

 

 윤채는 학교에서도 혜연을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 않았다. 한 번씩 마주칠 때마다 어찌나 차가운지 금방이라도 서리가 내릴 것 같았다.

 

 혜연이 그의 시선에서 벗어 난 땐...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였다.

 

 그때의 해방감이란, 세상을 다 얻는 기분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그녀는 졸업을 했다. 지긋지긋한 중학 시절도 끝이 났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새 생활이 시작되면서

 

 혜연은 그 때 일을, 그 아이들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연스럽게 가슴에 묻을 수 있었다. 잊을 수는 없었다. 잊혀 지지가 않았기에 늘 그녀의 가슴 한 쪽이 시렸고 아팠다.

 

 이유는 하나.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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