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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망각의 라그나로크
작가 : 오이먹는고슴도치
작품등록일 : 2022.2.27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을 잊어버린 한 소년, 과연 정해진 운명을 부수고 미래를 뒤바꿀 수 있을까...

 
3화
작성일 : 22-02-27 02:53     조회 : 193     추천 : 0     분량 : 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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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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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돌아왔어요."

 

 할머니와의 이별 이후 숲에서 빠져나온 델은 베릴 마을의 입구에 다다랐다.

 박살이 난 마을을 보니 과거의 감정들이 생생하게 그 모습을 수면 위로 드러낸다.

 

 "괜찮아! 심호흡 한 번 하고! 하늘 좀 올려다 보면...."

 

 괜찮을 리 없다.

 지난 수년간 괜찮았던 적 없었다.

 잠을 자다가도 수십번씩 깨어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여기엔 더 이상 마물따윈 없어.'

 

 '진정해, 제발 진정해줘.'

 

 '으아아아아아!!!'

 

 결국 제 풀에 지쳐 쓰러져야만 다시 잠에 들 수 있는. 그런 나날의 연속이었다.

 겉이 아닌 내면의 상처는 할머니마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고 나는 홀로 과거와의 싸움을 계속해야만 했다.

 

 "미안... 미안... 해요... 전부 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죄인처럼 가슴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내뱉는다.

 

 "도망쳐서 죄송해요... 혼자만 살아남아서 죄송해요... 흐윽... 흐으윽..."

 

 소년의 작은 흐느낌은 마을에 울려 퍼지지만.

 

 "저...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어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런 저라도 강해졌데요. 하하, 웃기죠? 제가 마을에서

 가장 덩치가 작았는데... 그래서.... 이제부터는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모두를 지켜낼 거예요. 더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지 않을 거예요. 제 동생 닐과 올리비아만은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러니까... 지켜봐 주세요. 제가 길을 잃지

 않도록, 제 힘이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도록. 염치 없지만 부디..."

 

 그의 진실한 마음만은 하늘 위로 떠오른다.

 마치 누군가가 그걸 듣고 싶어 일부로 끌어 올리듯이.

 

 "....이제 가봐야겠어요. 닐이, 동생이 기다릴 거예요."

 

 마을 사람들을 기리는 작은 비석 하나만이 그가 떠나간 자리에 우뚝 솟아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크르르륵...

 

 델의 흔적을 쫓아온 거대한 무언가가 부지런히 그 다리를 움직인다.

 

 

 

 "닐!"

 

 거대한 비행정의 출항 준비가 한참일 때.

 

 "여기까지는 왜 찾아온 거야."

 

 더는 감정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닐의 목소리는 여전히 올리비아의 마음에 날카롭게 박힌다.

 

 "정말로 떠날 생각인 거야?"

 

 "도와줄 거 아니면 상관하지 말라고 분명 알려줬을 텐데."

 

 순간 닐이 내뿜는 불길한 마나의 기세에 올리비아는 숨죽여야만 했다.

 마을이 사라진 이후 4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 동안 닐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외적인 변화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4년 동안 왕립 마법 학교 도서관의 모든 마도서를 해석해낸 유일한 학생이자

 증오에 완전히 사로잡힌 괴물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들 조차 닐을 완전히 통제해낼 수 없었으며 그를 퇴학시키려했지만 한달 전 스스로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 현재.

 그는 다른 대륙으로 향하는 비행정에 올라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행정 탑승권 가격은 귀족들에게도 꽤 나가는 가격일텐데. 한달 동안 대체 뭘 하고 다닌 거야?"

 

 "알 거 없잖아."

 

 그의 차가운 태도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올리비아 역시 울컥이는 감정을 더는 통제할 수 없었다.

 

 "너 정말!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전혀 나몰라라 하고 왜 애처럼 자기밖에 모르는 거야! 주변에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기나 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하고,주변에 너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는

 거야? 그리고 마법 기사단도, 선생님들도 마물들의 습격은 단순한 사고라고 하는데 왜 너 혼자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데!"

 

 처음으로 들어보는 올리비아 누나의 호통에도 닐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서울 정도로 차분히 그녀의 말을 듣고는 크게 한숨을 내뱉는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누구인데."

 

 그 한 마디로 그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자신이라는 걸, 그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그동안 변해버린 닐에게 가려져 있었을 뿐 자신도 죽은 델을 잊지 못하는 처지에 학교 성적은 점점 떨어져 졸업도 하지

 못한 신세였다.

 

 "누나야말로 제대로 살아가지 그래? 더는 그 아까운 인생 나한테 쏟는 척 하지 말고."

 

 그 말을 끝으로 닐은 떠나갔지만 올리비아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날카롭기만 한 그의 말이었지만 그녀에게 꼭 필요한 말이기도 했기 때문에.

 

 "...나부터 제대로 살았어야 했는데."

 

 흐르는 눈물을 닦아낸 그녀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닐을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나 걸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비상! 비사앙! 모두들 일어나!"

 

 -댕! 댕! 댕!

 

 한편 왕국 외곽에 위치한 또다른 마을, 쿠니 마을에선 거대한 종이 쉬지 않고 움직이며 불길한 울림을 내뿜는다.

 

 "마물이다! 모두들 도망쳐!"

 

 -키에에에엑!!

 

 -크라아아아아!

 

 "무기! 창고에 무기가 있어!"

 

 주변이 크고 작은 산 으로 둘러쌓여 있는 쿠니 마을 속으로 30 가까이 되는 마물들이 순식간에 들이닥치고 사람들은 좁디 좁은

 길목에 막혀 제대로 도망도 치지 못하는 상황.

 사람들은 힘을 합쳐 각종 무기를 집어들고 자신들을 둘러싼 마물들에게 대항하려 했지만 그들은 훈련도 되지 않은 농사만

 짓던 평범한 사람들일 뿐.

 

 "이야아앗!"

 

 "이봐! 너무 떨어지면...!!"

 

 "으아아악! 사, 살려줘!"

 

 대열에서 벗어나는 순간 순식간에 달려드는 마물에게 하나둘 속수무책으로 찢겨져 나가기 일수였다.

 그렇게 자신들의 죽음이 머지 않았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은 순간.

 

 -펑!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마물의 머리가 터져버렸다.

 

 "뭐... 뭐지?!"

 

 영문도 모르는 채 머리가 터져 죽어버린 마물을 보며 사람과 마물 모두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가세하겠습니다!"

 

 산기슭에서 한 소년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뭐, 뭐야 저건?"

 

 "지원이 온 건가?"

 

 비탈길을 미끄러지듯 빠르게 내려오는 소년은 계속해서 마물들을 향해 돌을 던져댔다.

 

 -케헤엑!

 

 가끔 가다 돌에 맞은 녀석들은 주춤이며 뒤로 물러섰고 이에 사람들도 기세를 얻어 다함께 마물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앗! 비, 비켜주세요!"

 

 그러던 중에 벌써 비탈길을 달려 내려온 소년이 가까스로 사람들과의 충돌은 피했지만.

 

 "으아아아악!"

 

 그만 가속된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채 마물들을 향해 그대로 처박혀 버린다.

 

 "뭐, 뭐시여? 저거 괜찮은 거 맞어?"

 

 "이, 일단 돌겨어억!"

 

 다행히도 사람들은 소년이 용맹스럽게 마물들을 향해 먼저 돌겨한 것으로 오해했고 혼란에 서로 떨어진 마물들을

 하나씩 처리해나갔다.

 

 "아이고, 아파라..."

 

 엄청난 속도로 돌진한 델에게 처박힌 마물은 그대로 몸이 터져 죽어버렸지만 그 주위의 마물들이 그대로 델에게 달려드는

 위험한 상황 속.

 델은 머리보다 몸이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퍼억!

 

 힘이 가득 실린 목검에 맞은 마물의 머리는 그대로 터져버렸고.

 

 -키에에엑!!

 

 자신의 힘에 놀랄 겨를도 없이 또다른 마물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고 가까스로 방어에 성공했지만.

 

 -촤악!

 

 "크으윽!"

 

 마물들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그들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하나하나가 그에게 치명상으로 이어지기 바로 직전 폭발적인 힘으로 목검을 크게 휘둘렀고.

 

 "흐아아아!!"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마물들을 모두 쳐내며 틈을 만들었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델은 그들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침착, 침착하자.'

 

 할머니의 가르침대로 전투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며 천천히 상황을 살폈다.

 문제라면 대다수의 마물들이 자신에게 시선이 끌려 있다는 것이지만 다행히도 마을 사람들 쪽은 불을 이용해 마물들을

 몰아세웠고 몇몇 마물들은 도망을 치고 있었다.

 

 '집중하자. 나만 정신 차리면 돼.'

 

 쪽수라면 유리한 상황. 마을 사람들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다만.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열심히 훈련을 해 왔다지만 실전은 처음이니 당연히 자신이 없을 수밖에.

 긴장으로 떨려오는 몸, 엉거주춤한 자세, 불규칙한 호흡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더는 물러설 수 없다.

 

 "후우... 한번 해 보자!"

 

 더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를 듣고는 바로 산 하나를 타고 넘어온 것도 바로 자신이었다.

 전신에 힘을 주어 떨림을 멈추고, 천천히 자세를 고쳐잡은 후 호흡을 바로잡는다.

 

 '가자!'

 

 "흐아아아앗!"

 

 델은 자신을 향해 떼로 달려드는 마물들을 향해 끊임없이 목검을 휘둘렀고.

 

 "하아, 하아..."

 

 "이봐, 괜찮은 거 맞지?"

 

 손바닥이 터져나갈 듯 꽉 움켜진 목검이 온통 검은 피로 물들고 나서야 싸움이 끝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아... 네... 괜찮... 습니다..."

 

 팽팽한 긴장의 끈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은, 매 순간마다 생사가 오가는 혈투 속에서 살아남은 그는 이제서야

 체감할 수 있었다.

 

 '나... 정말로 강해졌구나...'

 

 "어어? 정신차려!"

 

 조금이라도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델은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한편....

 

 

 "이것 좀 보시죠. 오늘만 해도 죽을 예정이었던 백 몇 명의 사람들이 멀쩡히 살아있단 말입니다!"

 

 신들의 의회, 세르티움에서 명계의 사자가 두 눈에 불을 킨 채 열변을 토해내고 있었다.

 

 "분명 명부에도 확실히 이름이 적혀져 있었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살아나게 되었고 그 명을 이어가고 있으니 세계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나서서 무언가 조치를..."

 

 "거기까지."

 

 사자의 말을 듣던 한 신이 손을 들며 그를 제지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인간 나부랭이 몇 명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게 문제라는 거지?"

 

 "그, 그렇습니다."

 

 신들의 서열 중 3위, 악운과 절망의 신 호르티아의 물음에 사자는 잔뜩 움츠려들고 말았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 기세에 압사당할 것만 같았다.

 

 "하, 명계의 왕도 다 죽었군. 애초에 세계의 질서는 벌써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그게 무슨..."

 

 "명계는 아직도 모르고 있던 건가? 하긴, 땅속에만 처박혀 있느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거겠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시간을 관리하는 녀석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사자는 신들이 앉아 있는 원형의 탁자를 둘러보았고 금세 빈자리 하나를 발견해낼 수 있었다.

 

 "저기가 그러면 시간의 관리자 님의 자리입니까?"

 

 "아, 저긴 다른 놈 자리."

 

 "네?"

 

 "사라져 버린 녀석이 한명 또 있었지 참."

 

 "그게 누구..."

 

 "서열 1위, 천계의 신, 아르티프나스."

 

 하늘 아래 그를 대적할 자는 없으며 창조신의 가장 완벽한 걸작으로 칭송받는 자.

 천사들의 왕이자 수만년 전 명계를 땅 아래로 몰아낸 장본인은 지금.

 

 "이봐, 이게 정말 맞는 일인 거야?"

 

 "저야 잘 모르죠."

 

 "너이씨?"

 

 "정말 맞는 일인지는 한낱 관리자인 제가 알 턱이 있나요. 다만."

 

 "다만?"

 

 "중요한 걸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뿐입니다."

 

 "오호. 그게 쟤야?"

 

 "네. 곧 있으면 정신을 차릴 거 같은데..."

 

 "내가 좀 도와주지."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기는?"

 

 따갑게 눈가에 내리쬐는 햇빛에 델은 눈을 떴다.

 

 "어? 일어났다!"

 

 그리고 옆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한 꼬마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옆에는 한 여인이 잠들어 있었다.

 

 "어... 안녕?"

 

 "안녕!"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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