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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시간의 편지
작가 : 일희삼
작품등록일 : 2022.2.14

받는 이, 받는 시간을 쓰면 과거든 미래든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전달되는 우표를 갖게 된 소영과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2부 - 제 11화. 다시 찾아온 악몽 (1)
작성일 : 22-02-27 00:01     조회 : 207     추천 : 0     분량 : 4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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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년 만이네.”

 

 그의 목소리를 듣자 소영은 겨울잠을 자고 있던 세포들이 순식간에 눈을 뜬 것 마냥 온 몸이 꿈틀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단 한 번도 그의 목소리를 잊어본 적이 없었다. 꿈에서 들려왔고, 종종 환청도 들었다. 비슷한 목소리가 들린다면 본능적으로 그쪽으로 고개가 돌아가기도 했다.

 

 다시는 그와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이랑 할 말 없어.”

 

 소영은 그렇게 얘기하곤 뒤를 돌았다. 다리가 경직돼 걷는 게 불편했지만 아랑곳 않았다.

 

 “나 한 번만 살려줘!”

 

 관희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지하주차장 안에서 몇 번이고 부딪쳐 되돌아왔다. 소영은 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에 안심하고 아파트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숨이 가빴다.

 

 소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관희는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홀로 지하주차장에 남아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끊임없이 방출했다.

 

 “한 번만 살려줘……”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웃음을 거둔 관희가 소영이 사라진 기둥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관희는 그렇게 그 자리에 몇 시간이고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소영은 갑자기 눈앞으로 날아드는 원형 물체에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다. 거실에선 오빠의 장난에 화를 참지 못한 지아가 그에게 작은 물렁공을 던졌는데 지혁이 그걸 피하면서 소영에게 날아든 것이었다.

 

 소영은 주체할 수 없이 뛰는 심장을 느꼈다. 동력을 잃고 굴러다니는 물렁공을 봐도 나아지지 않았다.

 

 “엄마, 미안해. 오빠가 장난 쳐서……”

 

 지아가 엄마에게 달려가 사과했다. 소영은 애써 괜찮은 척 하면서 지아에게 웃어보였다.

 

 “괜찮아. 놀라서 그래.”

 

 “그러니까. 얼른 옷 갈아입고 씻으라고 했잖아.”

 

 안방에서 석우가 소리쳤다. 아이들은 건성으로 “네~” 하고 대답하고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소영은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천천히 신발을 벗었다.

 

 순간 관희의 환청이 들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 . . . . .

 

 “500만원이고, 선임비로 300만원 먼저 입금해주시면 됩니다.”

 

 이튿날 저녁. 변호사사무실에서 나온 관희는 가슴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던 한숨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일주일 전 위태롭던 관희와 다인 사이는 결국 번개에 맞아 산산조각 난 느티나무처럼 갈라졌고 다인이 먼저 이혼소송을 걸어왔다. 어떻게든 이혼이라도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다인의 마음은 완전히 저 깊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아버린 듯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다인에게서 양육비라도 얻어내기 위해서라면 변호사 선임비가 꼭 필요했다.

 

 ‘잔액 : 867,000원’

 

 은행에 들려 통장정리를 해보았지만 없던 돈이 생길 리 없었다. 편의점에 들려 담배라도 살까 했지만 한 푼이라도 아까운 상황이었다.

 

 다인과 함께 만든 가족통장에선 이미 다인이 전액을 빼간 상태였다. 그녀를 믿었다. 믿을 수 있는 여자는 다인 딱 한 사람뿐이었다. 그녀를 믿었기에 수입을 전부 가족통장에 넣었다.

 

 공장에 구조조정이 있으면서 가장 먼저 대상이 된 건 다름 아닌 공정팀이었다. 17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검수하고 사람이 작업했던 것에 반해 지금은 공장 전체가 기계화가 되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열 사람 분의 일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빠른 손과 좋은 일머리를 갖고 있던 관희였지만 기계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반강제로 퇴직당한 후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이전만큼의 좋은 연봉을 기대할 순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 공장들이 로봇화되면서 20년 가까이 공정팀에서 일했던 관희는 설 곳이 없었다.

 

 “애는 어떻게 키우려고 그래?”

 

 그녀의 말이 맞았다. 관희의 외동딸은 벌써 내년이면 대학에 갔다. 학비는커녕 등록금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인이 종종 명품 가방이나 옷을 입는 걸 알고 있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저 관희가 한 푼이라도 더 아끼며 딸에게 용돈을 줄 뿐이었다.

 

 사실 부부의 100년은 더 된 위태로운 다리 같은 관계는 오래 전부터 지속됐다. 두 사람의 이별은 예정된 일이었다는 듯이 자연의 섭리처럼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나마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있을 수 있던 건 하나뿐인 외동딸 덕분이었다. 무너질 것만 같은 다리의 버팀목이 되는 건 ‘부모’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조차 소용없었다.

 

 핸드폰 연락처에는이전 공장 직원들의 번호나 몇몇 남은 고등학교 동창생들의 전화번호만 있을 뿐 그리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있지 않았다. 가나다순으로 정렬돼있는 이름을 천천히 슬라이드 해봤다.

 

 돈을 빌려줄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의 이름에서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란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관희는 그렇게 생각하니 더더욱 사람들에게 연락할 수 없었다.

 

 나쁜 생각은 마치 뱀의 긴 몸통처럼 끝도 없이 꼬리를 무는 법이었다.

 

 무심코 열어본 인터넷 뉴스 기사에 명절을 앞두고 큰 금액을 기부했다는 성실그룹 모석우 회장의 헤드라인이 떠 있었다.

 

 ‘차소영.’

 

 관희는 그녀를 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관희에게 꽃가루 알레르기 같은 존재였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쾌한 손님.

 

 ‘어쩌면…… 내 딸을 위해서라면…… 도와주지 않을 수 없을 거야.’

 

 그 생각이 머릿속에 녹물처럼 스며들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한밤중 길거리에서 메아리가 울리도록 껄껄 웃었다. 예전에 봤던 뉴스기사에서 소영과 석우 사이에 아들과 딸이 있다는 걸 본 적 있었다.

 

 ‘아마 내 딸이랑 같은 학교를 다닌다지……’

 

 17년이란 시간동안 어쩌면 소영은 그 일을 완전히 잊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두 팔 벌려 옛 연인을 받아줄 수도 있었다. 시대가 많이 바뀌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잘난 남편에 비해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걸……’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관희에게 자존심 따위는 없었다. 그저 소중한 딸을 지켜야할 뿐이었다.

 

 . . . . . .

 

 관희가 17년 만에 나타나고 벌써 이틀이 지났지만 소영은 여전히 밖에 나가면 발걸음 소리에 뒤를 돌아보곤 했다. 도저히 앞을 보고 걸을 수가 없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관희의 발소리로 들렸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다 턱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소영은 앞을 볼 수 없었다. 소영의 은밀하고 어두운 과거만큼, 그녀의 뒤를 쫓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다.

 

 사실 그건 17년 동안 한 번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현서의 목소리로 들렸고 남자의 목소리는 관희의 외침으로 들렸다. 작은 소리에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눈보다 귀에 모든 신경이 쏠렸다.

 

 청각이 언제 이렇게 발달했는지 모를 정도로 세상의 모든 소리가 달팽이관을 사정없이 후벼 팠다.

 

 

 

 그러는 한편 그 우표가 과거를 바꿨다는 게 아득한 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현서에게서 보지 못했던, 지혁과 지아가 조금씩 커가는 모습이 소영의 마음을 따듯하게 어루만졌다.

 

 물론 두 아이에게서 종종 현서가 투영됐지만 어느새 그녀의 세상은 단란한 네 가족의 파스텔 같은 풍경으로 가득 찼다. 그녀의 캔버스 옆에는 항상 새 물감이 가득 차 있었고 소영은 그저 붓을 들어 조금씩 그림을 채워나가기만 하면 됐다.

 

 때로는 검정색과 진청색으로 어두운 부분을 표현한 반면, 시간이 지나면 이전의 그림을 전부 덮어버릴 수 있는 유화물감처럼 분홍, 노랑, 푸른 꽃밭을 천천히 그려나갔다. 비록 처음 칠했던 어두운 마음이 지워지지는 않았지만 만개한 꽃밭으로 그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

 

 ‘어쩌면 정말로 꿈이었을지도 몰라.’

 

 지금은 대기업의 총수인 잘난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건강한 아이가 소영의 삶을 꾸몄다.

 

 ‘내가 이런 행복을 느낄 자격이 있을까.’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현서를 찾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석우와 두 아이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소영은 전국을 수소문해 현서의 단서를 찾았다. 그러나 이미 한 번 보낸 편지가 돌아오지 않듯 사라져버린 과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12살의 지혁이 처음으로 운동회에서 달리기 1등을 해 상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모습을 보며, 11살의 지아가 바이올린 연주회에서 가장 많은 기립박수를 받는 모습을 보며.

 

 소영은 조용히 우표를 묻었던 산으로 올라가 그곳에 작은 무덤을 만들고 현서를 마음에서 놓아주었다.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손이 파르르 떨렸고 손톱 사이로 오래된 흙이 박히면서 피도 났다.

 

 ‘단 한 번의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린 현서는 얼마나 아팠을까.’

 

 소영은 그렇게 현서의 무덤 앞에서 몇 시간이고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나 소영에게 납득되지 않는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분명 관희와 소영이 연인이었던 과거는 소영만이 갖고 있다. 소영이 편지를 보낸 내용에 따르면 관희와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날 찾아온 거지?’

 

 관희와 다인이 연인인 이 세계에 와서 소영은 두 사람과 접촉이 전혀 없었다. 그와는 그저 같은 부서 직원일 뿐이었고 소영이 공장을 그만 둔 뒤에는 완전히 남으로 지냈다.

 

 소영은 알지 못했다. 소영이 편지를 보내고 뒤바뀐 2년. 그녀가 잃어버린 그 2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의 삶을 통째로 뒤바꿔버릴 진짜 공포는 바로 그 잃어버린 2년에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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