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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당신의 밤을 가질 때
작가 : sat0523
작품등록일 : 2022.1.18

구미호와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희귀 혼혈인 해나는 능력이 발현되지 않아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중 납치당한 실험실 안에서
불완전한 구미호로 강제 각성을 겪으며 제어할 수 없는 폭주에 시달리게 된다.

마녀를 사랑한 죄로 루만으로부터 추방당한 왕자,
유진을 유일하게 받아 준 한국에서의 첫날 밤.

유진은 자신의 방에 침입한 해나를 제압하지만 폭주로 인한
페로몬에 노출되고 그녀와의 밤을 보내게 되는데.

 
13 왕자의 여자
작성일 : 22-02-26 22:53     조회 : 184     추천 : 0     분량 : 4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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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대기신호에 걸린 지호가 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추어 섰다. 전면을 주시하고 있던 두 눈을 잠시 풀고 네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수정하기 위해 주소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어딘지 압니다. 근처에 가본 적 있거든요. 그래요. 곧 도착 예정입니다."

 

 

 

 

 통화가 끊기고 기분전환 겸 틀어놓았던 노래가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제법 신이나는 곡이었으나 지금 지호의 귀에 노랫말이 들어올리가 없었다. 꽉 막혀버린 가슴이 답답해 창문을 열어놓아도 목만 칼칼해지는 미세먼지만이 지호를 반겼다.

 

 

 

 

 "빌어먹을 미세먼지들."

 

 

 

 

 신경질적으로 핸들을 내려쳐 보아도 달라질리 없는 도로사정이었다. 사정없이 눌러대는 주위의 클랙슨 소리에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노랫소리에 잔뜩 헝클어져버린 머릿속의 계획들까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었다. 어이없는 마음에 한번 피식 웃고만 지호의 머리속에 유진과 함께 있던 해나의 모습이 떠오르고 만다.

 

 

 

 

 사실 꽉 막혀있는 도로의 사정보다도, 거지같은 운전매너보다도 견딜 수 없는 건 정해나의 부재였다. 단순히 사라져버린 것도 아닌 인간들의 손아귀에, 그것도 인간들의 편에 선 뱀파이어의 곁에 언제 폭주할 지 모를 그녀가 함께 있다는 건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해나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정해나 잘못되면 가만있지 않을거야.'

 

 

 

 

 

 연구소를 빠져나오기 전 들었던 해윤의 말이 떠오르자 지호는 가물어버린 웃음을 바닥까지 긁어모아 건조하게 터뜨리곤 거칠게 핸들을 꺾었다. 정해나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미쳐 날 뛸 해윤보다도 더 걱정스러운 건 자신이었다. 그녀가 없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녀를 만난 후로는.

 

 

 

 

 

 "오셨습니까."

 

 

 

 

 

 차에서 내리는 지호의 앞에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맞이한 것은 철현이었다. 고맙게도 버닝테일의 눈과 귀가 되어주고 있는 그는 인간임에도 인간이 아닌 지호와 다른 이들을 만날 적에도 겁먹지 않는 대담함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오직 돈으로 엮인 비즈니스적인 관계일지라도 계속해서 신뢰를 안겨주고 있는 자로 동족보다도 큰 도움이 되곤했다.

 

 

 

 

 

 "굳이 나와 계십니까."

 

 "팀장님께서 오시는데 마중나와야지요."

 

 "눈에 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차에서 내린 지호가 주변을 경계하며 철현을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한번 더 숙여보인 철현이 먼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고 지호가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한다.

 

 

 

 

 

 번화가 뒷골목에 위치한 작은 빌딩 앞. 고층으로 오르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철현이 잊고있었던 무언가가 떠오른 듯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꺼내든 것을 지호의 앞에 내밀어 보였다.

 

 

 

 

 

 "뭡니까?"

 

 "팀장님께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혼자 계실 때 보십시오."

 

 

 

 

 

 능글거리는 미소를 띤 채 말하는 그가 내민 것은 USB메모리였다.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지만 받아든 지호가 어느새 도착해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천천히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액정화면이 5층을 가리키고 낡은 출입문이 열리자 철현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제 애들이 이틀 밤낮 눈도 못붙이고 찾아낸 겁니다."

 

 

 

 

 지호가 도착하기 전 조치를 취한 탓에 텅 비어버린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고 시선이 가는 테이블 위의 자료들을 빠르게 훑어본다. 자리로 옮겨가 파일을 집어드는 지호에게 철현이 찻잔을 내밀었다.

 

 

 

 

 "그것보다 영상을 먼저 보시는게 낫지 않으시겠습니까?"

 

 "아."

 

 

 

 

 그에게는 두가지의 의뢰를 한터였다. 하나는 절대적으로 급한 해나의 행방을 찾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방인의 실체에 대해 낱낱히 파헤치는 것이었다.

 

 

 

 

 

 파일 옆에 놓여있던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기자 들것에 실려나가는 의식없는 해나와 왕자의 영상이 실행되었다. 그리고 잠시동안의 암전 후로 어느 창문의 커튼 사이로 얼굴을 비치고 있는 해나의 모습이 이어졌다. 아주 잠깐동안이었지만 해나임을 확인하는데에는 충분했다.

 

 

 

 

 "30분전에 구한 따끈따끈한 영상이죠. 우명대학교 인제캠퍼스 내 우명재단 연구소입니다."

 

 "우명재단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들키지않고 드론으로 촬영하느라 진땀뺐습니다. 정말."

 

 

 

 

 무어라 계속 떠들어대는 철현이었지만 지호의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있는 해나로인해 지호는 정말 반복되는 환장의 연속에서 더이상 실소조차 터져나오질 않았다. 왕자와 함께 이동되어 구해내기 쉽지 않은 곳일거란 예상은 했지만 우명재단이라면 현직 대통령인 박태진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선언한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 산하 재단이었다. 그말은 즉 대통령의 손아귀에 그녀가 들어가 있다는 말이었다.

 

 

 

 

 "30분 전이라고 했나요?"

 

 "네.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팀장님 안색이..."

 

 

 

 

 

 30분이라면 아직 그녀의 숨이 붙어 있을까. 단순히 인간들만이라면 폭주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아니 폭주가 일어날지라도 그녀가 살아돌아올 확률은 상당한 편일 것이다. 단한번도

 제대로 된 훈련을 받아본적 없지만 그녀와 해윤은 일반적인 뱀파이어가 아니므로...

 

 

 

 

 

 하지만 이방인 그자와 함께라면 예측불가한 그의 행보로 인해 도무지 만약이란 경우의 수들을 감히 그려볼 수조차 없다.

 

 

 

 

 

 "출입루트는 어떻게 되죠? 거기까지는 파악이 된 상태인가요?"

 

 "이미 인력을 보내놓은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팀장님 측은 이미 타격이 상당하실테니 이번엔 저희 쪽에서 움직이는 것이 나을거라 판단했습니다. 저희 쪽 애들도 만만치 않다는 건 알고 계시죠?"

 

 "순식간에 구미호들을 찢어 죽인 자입니다."

 

 "그땐 아마도 그의 선제공격을 받을거라 예상하지 못했으니 방심도 했을 것이고 또... 아시잖습니까? 우리 애들은 치밀하게 접근한다는 걸요. 이번엔 저희가 나섭니다. 팀장님은 그 자료나 보시면서 한숨 돌리고 계시죠."

 

 

 

 

 

 

 -

 

 

 

 

 

 

 "뭘 그렇게 살피는거야? 창문으로 도망이라도 치려고?"

 

  "언제까지고 여기 있을 순 없어요. 당신 언제까지 여기 있을 셈이예요?"

 

 "듣기론 버닝테일과의 대립이 소강상태라는 것 같던데 서두를 필요 없지 않을까?"

 

 "천하태평하시군요. 왕자님. 난 왕자님 같은 팔자가 못되서 얼른 돌아가야만 하거든요?"

 

 

 

 

 

 창가로 다가와 유진이 내미는 유리컵을 받아든 해나가 부딪치며 짤랑이는 얼음들 사이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얼마만에 섭취하는 카페인인지 피곤이 말끔하게 씻겨나가는 것만 같았다. 비어버린 컵을 벙쪄있는 유진의 손 위로 다시 올려놓은 그녀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생이 한참 찾고 있을거예요. 나 구미호인거 잊지 않았죠? 피붙이 혈육도 마찬가지예요. 어쩌면 지금쯤 날 찾지못해서 사고라도 일으켰을지 모른다구요."

 

 "그랬다면 이미 그들이 내게 도움을 요청했겠지. 동생은 잘 기다리고 있을거야."

 

 "불행히도 제 주변에 그런 사람은 없어요. 얌전히 때를 기다리는 침착하고 차분한 그런 종자들이 아니라구요."

 

 

 

 

 

 

 연락은커녕 소재조차 파악이 안될테니 해윤뿐만이 아니라 그자까지도 나섰을 지 모르겠다. 돌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돌아간 뒤도 문제였다.

 

 

 

 

 

 

 요며칠간의 공백을 무슨수로 그들에게 안심할 수 있게 채워줘야할 지 막막함에 절로 한숨이 터져나온다.

 

 

 

 

 

 "내가 만나보는 건 어떨까?"

 

 "농담인가요? 루만식? 아재식?"

 

 "서운한걸."

 

 "남자는 나이들수록 옹졸해진다던데 맞나요?"

 

 "말을 말지... 아직은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어. 어찌됐든 편의를 봐주고 있는 건 그들이니까. 동생에게 연락할 방법이라도 찾아볼까?"

 

 

 

 

 

 그의 말에 고개를 가로 저으며 해나는 창가에 기대어 섰다.

 

 

 

 

 

 "인간들에게 도움을 청하려구요? 도청이라도 당하면 저나 해윤인 인간들에게 잡혀가 인질이 되든 또다시 연ㄱ..."

 

 "또다시 연 뭐? 무슨 말을 하다말아?"

 

 

 

 

 

 어디까지 그에게 속을 털어 놓으려는 건지 해나는 철렁내려앉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생까지 위험하게 할 순 없어요. 그들이 내게 씌운 살인미수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널 내 것이라고 말했으니 더이상 의도 모를 수작질은 하지 않겠지."

 

 "물건도 아니고 내 것이 뭐야. 진짜."

 

 "거슬렸나. 그럼 나와 밤을 보내는 사이라고 했으..."

 

 "됐구요. 오늘까지만 있어요. 내일부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지금 당장 가서 결판 짓고 오세요."

 

 

 

 

 

 유진의 등을 떠밀며 방문 앞까지 걸어간 해나가 새끼손가락을 그의 앞에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자 결판 짓고 올거라고 약속!"

 

 "이게 뭐 하는건데?"

 

 

 

 

 

 똑같이 들어 올린 손가락을 흔들어보이는 유진의 것을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만 해나가 자신의 손가락에 걸었다.

 

 

 

 

 

 "이렇게 하면 약속한거예요. 자 이제 얼른 다녀와요!"

 

 "알았어! 다녀온다구. 혼자 있을 수 있겠어?"

 

 "저도 다 큰 성인입니다. 만약 인간들이 또 끌고가면 당신 여자친구 인 척 잘해볼게요. 왕자의 여자라는데 뭐 자기들이 어쩔거야?"

 

 "당돌한 구석도 있었군. 다녀올게. 금방 돌아올테니 쉬고 있어."

 

 

 

 

 

 유진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가고 홀로 남은 해나는 텅빈 공간 안에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해윤에게 쏟아부을 핑계거리를 만들어낼 차례였다.

 

 

 

 

 

 "산짐승의 공격을 받는 것도 나쁘진 않아. 어차피 헤어진 곳에 산도 많았고 알게 뭐야."

 

 

 

 

 

 침대 맡에 앉아 다른 핑계거리가 없나 고심하던 해나의 귀가 쫑긋거렸다.

 

 

 

 

 

 "침입!..."

 

 

 

 

 

 누군가의 목소리가 곧 짧은 비명으로 바꼈다. 여럿의 발자국소리가 들려오고 매쾌한 가스연기도 느껴지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하고 방문을 향해 일어선 해나가 다시 창가를 향해 몸을 틀었다. 유진에게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겠지만 비명소리는 그가 지나쳐간 복도로부터 흘러들어왔으니 침입자들도 그 곳에 있으리라. 해나는 망설일 새 없이 창밖으로 몸을 날리려다말고 쭈뼛거리며 그 앞에 멈춰서고 말았다.

 

 

 

 

 

 

 "벌써...?"

 

 

 

 

 

 산산조각나며 유리조각들이 쏟아져 내리고 창밖에서 안으로 침입한 무리들에게선 매쾌한 가스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숨을 참으려해도 이미 폐부 깊숙한 곳까지 들이마셔진 가스에 해나는 반항조차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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