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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알타이르 관측 일기
작가 : 작도
작품등록일 : 2022.2.26

소외된 것들이 모여드는 웜홀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주 비행사였던 물리학자와 견우성, 알타이르로 떠난 연인의 이야기.

 
알타이르 관측 일기 - 24 (完)
작성일 : 22-02-26 19:12     조회 : 167     추천 : 0     분량 : 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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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하는 허리까지 길게 내려온 머리를 틀어 올리기 무섭게 우주 아이스크림을 입에 털어 넣었다. 머리 위의 전등은 네 개 중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고장 난 지 오래였다. 망가진 기기들에 적응하는 일은 우주 식량의 끔찍한 맛에 적응하는 것만큼이나 빨랐다. 곧 밀폐되어 있던 문이 열리고 애런과 성태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들어오기 무섭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발전도 안 돼, 불도 나가….”

  “산소라도 나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먹을 게 있는 건 또 어떻고. 아이스크림 먹었네?”

  “토마토 죽만 먹고 살기도 좀 그렇잖아. 먹을래요?”

  “됐어.”

  성태는 습기가 가득한 헬멧을 벗은 다음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앞쪽에 보이는 화면으로 지난 통신 기록이 나왔다. 1021일 이전, 아마 지구 기준으로는 또 다를 것이다. 혹은 웜홀을 통과하면서 날짜가 바뀌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 코르부스 호 내에서만 따지자면 마지막 통신으로부터 약 삼 년의 시간이 흘렀다.

  “통신은 못 고칠까?”

  “전력 자체가 망가지고 있어서. 알타이르 근처에서 얼음 조각들에 부딪힌 게 영 뼈아프더라. 현재로서는 신호 증폭이 불가능해서 초단거리 통신이 고작일 거야. 증폭 패널도 소용없었지?”

  “전혀.”

  “난 다시 동면실로 가야겠네.”

  쓴웃음을 지어 보인 성태가 이만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벽을 짚었다. 비록 동면하지 않고 머무른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지만 성태는 이곳에서 벌써 수년을 보냈다. 비행은 눈을 감고 뜰 때마다 꾸준히 망가지는 기계들과 자신의 흔적 없이 치워지고 흘러가는 모든 것들을 관조하는 일이었다. 충분히 각오하고 온 곳이었지만 동료가 아닌 사람들의 얼굴이 점차 흐려지는 것만은 겁이 났다. 성태는 그럴 때마다 동면에 들기 전과 깨어난 후 확인하는 매뉴얼 비디오를 돌려보며 청명의 얼굴을 끝없이 되새김질했다.

  보고 싶다는 것은 거짓말일까, 진심일까. 청명은 성태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될 때의 암호로서 그리움을 일컬었지만 성태는 그 감정이 마냥 관계의 끝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물론 성태는 청명 역시도 저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예컨대 우리는 우리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실험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쨌든 청명을 만나기 위해 그를 사랑하지 않을 것인지, 혹은 사랑하기 위해 그를 만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순전히 성태에게 달려 있었다.

  형이 여기로 오다가 얼음이 내리는 유성우를 마주치면 어쩌지. 우주에서는 작은 돌멩이조차 수천 킬로미터의 속도로 날아다녀서 자칫하면 그 속에서 죽어버리고 말 텐데. 그렇게 흘러간 형을 우주의 거대한 파도 속에 놓치고 나면 나는 무엇을 구원하고자 버텨야 하지. 나는 이 머나먼 땅에서 누구에게로 도망쳐야 하지. 점점이 늘어지는 생각과 전파 잡음. 아, 형이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좋겠다. 그래도 한 번은 이해해줬으면 해. 이 세상에는 그 속에 내가 없기 때문에 차마 견딜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는구나.

  성태는 뿌옇게 흐려진 단열 창문을 문질러 닦고 바깥으로 선명히 빛나는 항성의 구름 둘레를 지켜보았다. 궁수자리 너머 은하수를 응시하면 검붉게 타오르는 늙은 별들의 자취가 번졌다.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다. 죽어가는 사람과 같이 하나씩 느려지고 차가워지는 거대한 기계, 코르부스 호 속에서 무의식으로 침잠할 다섯 명의 비행사. 이대로 자는 듯이 알타이르 프로젝트가 끝날 것이다. 우리은하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죽어가는 별들의 무덤에서.

  “여기는 코락스, 여기는 코락스…. 코르부스 호는 응답….”

  선내에 연결되어 있던 공개 통신 장치로 목소리가 섞여들어 온 것은 그때였다.

  성태는 장갑을 벗어 눈에 보이는 대로 근처 창문의 유리를 모두 문질러 닦고서야 가까스로 선실 근처 창 너머로 이방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코르부스 호의 조종실과 저장실만 떼어다 만든 것처럼 작은 왕복선이 바깥으로 보였다. 목의 동맥으로 심장이 옮겨간 마냥 묵직한 박동이 전해져 왔다. 기기실에 있던 인하와 애런 역시 어쩔 줄을 모르는 얼굴로 성태를 내다보았다. 모두는 급작스러운 희망에 오히려 뒤척이고 있는 것 같았다.

  “도킹…. 통신이 이루어지면, … 락스, 도킹 후 선원들의 귀환 임무를….”

  재촉하듯 울려 퍼지는 음성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성태였다. 성태는 애런을 끌고 다급히 조종실로 향한 다음 항법 장치를 손으로 훑어보았다. 애런이 제때 맞추어 도킹 매뉴얼을 꺼내 재생했다. 프로젝트 초반에 녹화된 영상인지 도킹 매뉴얼에는 다른 연구원이 나왔다. 애런은 통신 장치를 한 대 손바닥으로 후려치더니 성호를 긋고 마이크를 댔다.

  “여기는 코르부스, 통신 상태가 좋지 않다. 그쪽에서 도킹 접근이 가능한가?”

  “… 는 코락스, 가능…. 자동 도킹…. 도킹 이후 권한 부여해주면 연결하겠….”

  문득 초단거리 통신만 가능하다던 인하의 푸념이 떠올랐다. 아까보다도 들리는 말들이 늘어난 것을 보면 비행선은 충분히 가까운 거리에 다가온 모양이었다. 성태는 식은땀이 흐르는 손을 목덜미에 문질러 닦다가 아까 벗어두었던 장갑을 꺼내 단단히 채웠다. 도킹 이후에는 연결부가 완전히 결합한 것을 확인하고 게이트를 열기만 하면 된다. 그러고 나면 저 너머의 사람들을, 그리고 다시 지구를 만날 수 있다.

  … 만약 저기에 형이 없다면 어쩌지?

  “―정신 차려!”

  선체를 뒤흔드는 진동이 조종실까지도 집어삼켰다. 애런은 통신에 꼬박꼬박 응답하면서도 성태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한동안 맥을 못 추던 성태가 겨우 버튼에 손을 올린 것은 모두 애런의 덕택이었다. 성태는 코락스 호에서 넘어오는 통신에 맞춰 수동으로 키를 눌렀다. 1차 도킹, 연결. 확인. 2차. 엔진 정지. 동력 완전 제거. 마침내 선내에 자리하던 음울한 소음이 완전히 꺼지자 성태는 마지막으로 도킹부의 밀폐를 해제하고 문을 개방했다. 당장 바깥으로 공기 새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것이 들렸다. 이제는 더 이상 다른 곳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하는 동면에 들었던 다른 동료들을 깨운 다음 동면실에서 나왔다. 그러자 애런이 인하를 쫓아 불빛이 이리저리 나가 어둑한 복도를 내다보았다. 애런과 인하는 서로 시선을 마주치더니 복도 저편에 새로 나타난 우주선의 벽면을 황망히 바라보았다. 애런은 밖으로 나서길 주저하는 성태의 팔을 끌고 천천히 벽을 짚으며 게이트의 앞에 다가섰다.

  한 시간 같은 일 분이 흐르고, 마침내 저 너머에 선 이들이 나올 채비를 마쳤는지 반대편 게이트를 열기 시작했다. 권한을 부여받으며 통신이 오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땀으로 푹 젖은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 넘기고 입안을 훑었지만 긴장은 잦아들지 않았다. 아까부터 성태의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은 단 하나였다. 저 너머에 형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형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나는, 성태는 덜덜 떨리는 이를 일부러 꽉 깨문 다음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는 한 번도 형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 그래도 돌아가고 싶었어, 내가 있어야 했던 자리로.

  ―내 세상의 한가운데, 형의 품속으로.

  눈을 감았다. 가능하다면 귀조차 닫고 싶었다. 성태가 기도하듯 뇌까린 음성 사이로 결코 오지 않길 바랐던 마지막 순간이 당도한다. 발 내딛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어느새 성큼 다가온 이방인들은 저마다의 호흡을 내쉬며 코르부스 호의 선원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성태는 미처 선장의 이름이 무엇인지 듣지 못했다. 곧 애런이 목멘 소리로 대답하며 선장과 악수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러나 성태의 신경은 온통 다른 데 쏠려 있었다. 언제나 익숙하게 맡아왔던 살 내음을 알아채고 나면 그리움과 두려움이 뒤엉킨 감정이 물밀듯이 가슴에서부터 올라왔다.

  마침 다음은 수석 비행사의 차례였다. 그리고 이제는 눈을 뜨고 직시해야만 했다. 무엇이 우리를 위한 미래였는지, 혹은 무엇이 우리를 위한 과거일 것인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지. 물론 청명과 성태는 다른 말이 없이도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있었다.

  “코락스 프로젝트의 수석 비행사, 예청명입니다.”

  청명의 인삿말을 들은 성태의 두 눈으로 파도가 치밀어 올랐다. 아까부터 머금었던 복잡한 상념보다는 훨씬 뜨겁고 원초적인 애정이 가슴을 씻어 내렸다. 어느덧 말끔해진 코르부스 호의 창문을 통해 적색거성의 새빨간 빛이 그늘처럼 깔렸다. 성태와 청명의 옆얼굴 역시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청명의 눈동자만은 한 치의 그림자 없이 선명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성태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물먹은 숨을 토해내며 어렵사리 손을 맞잡았다.

  우리는 다시금 같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어.

  나는 비로소 가득 차올랐구나….

 
작가의 말
 

 우주는 항상 같지 않습니다. 항상 맥동하고 숨쉬고 있어요. 그 속에서 나 역시도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찾는 과정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알타이르 관측 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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