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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알타이르 관측 일기
작가 : 작도
작품등록일 : 2022.2.26

소외된 것들이 모여드는 웜홀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주 비행사였던 물리학자와 견우성, 알타이르로 떠난 연인의 이야기.

 
알타이르 관측 일기 - 23
작성일 : 22-02-26 19:08     조회 : 169     추천 : 0     분량 : 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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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로 작열하는 오후를 노려보면 빛무리에 시야가 좁아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서 한참이고 창밖의 새 따위에 시간을 쏟던 청명에게 곧 정인이 찾아왔다. 정인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파일철 하나를 책상에 얹었다. 청명은 분철된 낱장의 보고서들을 대강 넘겨보다가도 정인의 시선에 고개를 들어야 했다.

  “왜?”

  “어디 갔었어? 정아가 너 찾더라.”

  “정아가…. 누구였지?”

  “학부 3학년, 네 연구실 인턴 말이야. 뭐 그거야 그렇다 치고.”

  정인이 조그만 트레이에 올라가 있는 머그컵을 꺼내자 달그락거리며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청명은 코드가 빠진 채 구석에 놓여 있던 커피포트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거 읽어 봐. 입매를 단단히 고정한 채 싱긋 미소한 정인은 물이 끓는 동안 인스턴트커피 한 봉을 들고 선반에 톡톡 두들기고 있었다.

  “‘프로젝트 코락스’, 관계자 외 열람 금지.”

  “이미 읽었으니 넌 관계자가 된 거지!”

  “갈 거야. 그만 구슬려도 돼.”

  부글부글 끓는 소리와 함께 커피포트 위로 김이 치솟았다. 딸깍, 하고 전원이 내려갔지만 정인은 곧바로 물을 따르지 않았다. 안경다리를 접어 케이스에 넣어둔 다음 청명이 정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인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제야 어렴풋이 드는 의문이 있었다.

  “…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몰랐던 것 같기도 하고. 제대로 알게 된 건 어제 아침에 윤 교수님한테 듣고 나서.”

  “하긴. 선후배니까.”

  여전히 다듬지 못한 손톱은 살을 파먹을 만큼 짧아진 채였지만 정인은 문제없이 인스턴트커피 포장을 뜯었다. 윤 교수는 언젠가부터 두 사람이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쓸 때마다 환경호르몬 타령을 하며 연신 구박을 쏟아내곤 했다. 너희는 오래 살아야지, 오래 살아서 두고두고 별도 봐야 하고. 청명이 윤 교수의 눈앞에서나마 플라스틱류를 끊은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지만 고집인지 뚝심인지 모를 것을 간직하는 정인만은 꿋꿋하게 인스턴트커피 막대로 종이컵 속 커피를 휘저었다.

  “성태 보면 안부 전해주고. 바쁠 때 이것저것 시키면 까먹을 테니까 미리 말해두는 거야.”

  “응.”

  “가다가 죽지 말고!”

  “참나….”

  청명은 잠시 손을 들어 보이더니 저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코락스 프로젝트의 실무자라고 밝힌 피터는 능숙한 한국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코르부스 호 내부에 식량이 얼마나 남았고, 기계 결함은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그렇다고 해서 비행사들이 다치거나 중태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귀환을 위해 추가 인원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는 것이다. 피터는 알타이르 프로젝트의 비행사들이 상황을 보고한 직후 빠른 시일 내에 코락스 프로젝트를 진행해야하기 때문에 숙련된 정예 비행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역시 잊지 않았다. 피터의 말이 워낙 빨랐기 때문에 청명은 그의 설명이 모두 끝난 후에서야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내 참가 여부는 안 물어보는 건가요? 피터는 잠시 아무 말이 없더니 멋쩍은 투로 대꾸했다. 그러게요.

  “언제 발사할 예정이에요?”

  “코르부스 호와 동일한 구조의 조종실을 갖추고 있는 왕복선을 준비해뒀습니다. 아직 경로가 정확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상부에서는 한 달 정도를…….”

  “한 달.”

  그렇게 갈 수가 없을 텐데…. 청명은 난감하다는 투로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청명의 불확실한 어미 뒤로 피터가 선뜻 웃으며 덧붙여 주었다.

  “알타이르 프로젝트의 궤도 계산에 참여했던 가장 유능한 과학자가 합류한다면야 충분히 가능할 일이지만요.”

  “… 내가 안 한다고 했으면 어쩌려고.”

  “프로젝트 참여가 무산된 이후에도 매뉴얼 작업 때문에 몇 날 며칠간 밤을 새던 비행사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달리아에게 들었어요. 몸은 괜찮아요?”

  “그럼 달리아한테 전해주세요, 덕분에 완전히 괜찮아졌다고.”

  “그러겠습니다. 아, 이번 프로젝트에서 당신은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전문 비행사 자격을 받을 겁니다.”

  “말은 고맙지만 전 나사 소속이 아닌데요.”

  “말하자면 복잡한데 상호 협약을 맺었어요. 로스코스모스에서 훈련 받은 비행사도 동일한 경력을 가진 걸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한 삼 년은 된 일인데 모르셨나 봐요. 하기야 공개적으로 비행사를 모집한 적이 거의 없었네요.”

  “우주라면 이골이 나 있었기도 했고요.”

  “뭐 어때요. 무슨 일이 있었든지 이번 프로젝트의 수석 비행사는 당신이니까요.”

  “잠깐만―”

  “교수님!”

  정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운영이 다급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수석 비행사라는 이름이 청명에게 가져오는 부드러운 두려움을 채 떨쳐내기도 전이었다. 아직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얼떨떨한 얼굴의 정아와 식은땀이 흐르는 듯 벌겋게 상기된 운영의 모습이 상반되어 보였다. 거의 벗겨지다시피 한 슬리퍼를 고쳐 신은 운영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종이를 몇 번 펄럭거렸다. 부연은 운영을 사수로 두고 있는 정아의 몫이었다.

  “어제 윤 교수님한테 받은 데이터로 시작한 시뮬레이션이 막 끝나서….”

  “얘들아. 지금은 예 교수님이 중요한 전화를 받고 계셨는데.”

  “선배가 꼭 지금 알려드려야 한다고 하셔서요, 죄송합니다.”

  정아가 허둥지둥하는 사이 운영이 비명을 내지르듯 탄성을 토해냈다. 시간, 시간이 흘러요. 외로운 구원자가 존재하고, 또….

  “회의적 우주론의 거시 우주는 고정되어 있지만 외로운 구원자 개별로 구성된 우주는 계속해서 양자적 변동을 일으켜요, 우주의 상호작용으로…. 그리고 저희가 관찰하는 우주는 거시 우주가 아니라 외로운 구원자의 우주가 만들어낸 네트워크예요! 계산한 가설에 모두 맞아요, 교수님!”

  운영의 의중을 알아차린 정인이 뒤늦게나마 경악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이 세계에 외로운 구원자의 우주는 존재한다. 만약 어떤 거대한 우주가 회의적이었다면 그것은 그 구원자의 양자 변동이 미미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의 파국을 알고 발버둥치는 미약한 존재의 숨결이 너무나도 조그마했기 때문에.

  그럼에도 홀로 존재하는 ‘외로운’ 구원자는 성립하지 않는다. 작은 것이라도 바뀌어가는 세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성태와 청명은 더 이상 서로의 사랑만으로 존재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는 하나하나의 우주였다. 고향도, 양수도, 심지어는 시간도 없이 서로를 향한 중력으로 유지되는 우주. 빛조차 벗어나지 못할 어두운 지평선을 디디고 마침내 시간조차 거슬러가는 강한 상호작용, 물리학자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고백한다.

  떨어트릴 뻔한 핸드폰을 겨우 움켜쥐고서 한동안 마른침만을 삼키던 청명이 중얼거렸다.

  “일주일 안에 휴스턴으로 가겠습니다. 끊어요.”

  윤 교수의 도움으로 대부분의 문제는 금방 해결되는 듯했다. 청명이 맡았던 과목들은 다른 교수들이 나서서 분반을 합치는 방식으로 처리하였다. 운영을 비롯해 청명이 데리고 있던 몇 안 되는 원생들은 모두 정인이 맡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청명이 수행하던 연구는 대부분 정인의 것과 겹치는 경우가 많았으니 판단이 어렵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앞서 대부분 진행되었던 운영의 논문 연구에는 청명의 이름이 정인의 이름보다도 더 먼저 실린다는 것 같았다.

  저마다의 사정이 어지럽게 뒤엉키는 공항에는 원생 몇몇과 정인, 윤 교수, 그리고 성운이 미리 도착해 있었다. 운영은 대학원생 대표로 나왔는지 플랜카드를 돌돌 말고 품에 안은 채였다. 원생들은 청명을 발견하기 무섭게 우왕좌왕 플랜카드를 펼쳐 들고 환하게 웃었다. 예청명 교수님의 무사귀환을 기원합니다. 청명은 그 비장한 문구를 보고서 그만 실소를 터트렸지만 운영을 비롯한 학생들은 여전히 아랑곳 않고서 목청을 높일 뿐이었다.

  “건강하게 돌아오세요!”

  청명은 몇 년 전 자신이 러시아와 미국으로 향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파이프라인을 타고 흐르듯 정해진 길을 오가는 사람 사이에 홀로 남았던 때와 단 하나의 생명줄을 붙잡고 우주에서 정신을 잃었던 순간을 차례로 읽어냈다. 세상을 향해 밀려드는 파도는 여전히 높고 거대하지만 청명은 비로소 무언가를 잃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스스로의 유실은 어쩌면 성태가 우주로 향한 그 순간부터 멈추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청명이 이름 붙인 이 세계는 더 이상 성태를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성태가 잃었던 수많은 존재를 무력하게 놓치지도 않을 것이다.

  “교수님, 논문 초안이에요. 비행기 시간에 맞춰드리고 싶어서 며칠 동안 한숨도 못 자고 썼어요. <인과율로 증명하는 네트워크 우주의 양자 변동 및 회의적 우주론의 재해석>이요.”

  “이름 참.”

  “이런 작명 좋아하시잖아요!”

  “그래. 한 교수한테 이것저것 다 뜯어내고 졸업해. 나중에 소식 있으면 연락하고.”

  “자, 자. 논문은 비행기 타서 읽고. 이제 타야 되는 거 아냐?”

  “청명이까지 다녀오면 내가 몇 살이냐?”

  “그때는 이미 정년을 넘기셨겠죠. 어쩐담. 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시장통이야? 나도 인사 좀 하자!”

  “커피 줘. 내 거 아냐?”

  “갈 때까지 싸가지하고는!”

  성운은 토라진 듯한 투로 웅얼거리며 팔을 활짝 벌렸다. 청명이 커피를 든 손을 머뭇거리자 윤 교수의 한탄을 받아주던 정인이 냉큼 잔을 받아들고 곁으로 비켜섰다. 얼렁뚱땅 찍은 기념사진을 자기네들끼리 돌려보며 소회를 털어놓던 대학원생들은 다시 카메라를 들더니 성운과 청명을 화면에 가득 담았다. 그제야 청명은 성운을 끌어안고서 느린 숨을 토해냈다.

  “연락할게.”

  성운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이 청명의 등을 아프게 도닥이기만 했다. 가슴을 타고 전해오는 심박과 체온이 유난히 뜨거웠다. 우주는 냉혈이기 때문에 그 속으로 떠나기 위해선 충분히 끓어야 한다. 하지만 청명은 그때와는 달리 보다 오래가고 미지근하게 이어지는 애정이 가슴에 자리할 것을 이미 안다. 공항의 소음과 카메라 플래시는 요동치는 박자에 맞추어 점차 관제 센터의 무전음으로 뒤바뀌어간다. 눈을 감고 비행기, 혹은 비행선이 점화하는 소리에 집중하면 마지막으로 킬킬거리는 목소리가 귓전에서 조용히 울렸다.

  “난 너희들 안 믿어, 인마. 몸 조심해.”

  지직, 직. 치지직.

  “여기는 휴스턴. 코락스 호 발사 30초 전, 모든 비행사들은 본인의 자리에서 대기하라. 선장과 수석 비행사는 항법 장치를 점검하고 발사를 대비하라. 발사 20초 전, 엔진 점화 상태를 점검하고 발사체 분리 장치의 연결을 확인하라. 10초 전, 9초 전, 8초 전….”

  “‘기다리고 있어, 나는 성태와 돌아올 거야’….”

  성운은 뜨거웠던 낮과 달리 서늘하게 흐려가는 밤하늘을 응시했다. 서편으로 넘어가는 알타이르와 희끄무레한 은하수 사이를 바라보면 어쩐지 두렵지 않았다. 카페 유리 너머로 보이는 별빛을 하염없이 헤아리다보면 어느새 정인이 다가와 있었다. 정인은 마감 시간에 맞춰 가게의 팻말을 돌려놓은 다음 담담히 한 마디를 덧붙여주었다. 방금 무사히 출발했대요.

 
작가의 말
 

 1편, 성태가 보냈던 웜홀 데이터로 만들어진 이론. 우주는 닫혀 있지도, 단 한 명의 희생에 의해 바뀌지도 않는 네트워크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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