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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알타이르 관측 일기
작가 : 작도
작품등록일 : 2022.2.26

소외된 것들이 모여드는 웜홀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주 비행사였던 물리학자와 견우성, 알타이르로 떠난 연인의 이야기.

 
알타이르 관측 일기 - 22
작성일 : 22-02-26 19:04     조회 : 157     추천 : 0     분량 : 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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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우주로 떠나가기 전, 청명은 인과율이라는 용어를 들어 외로운 구원자의 모순을 반박한 적이 있다. 인과율은 미래와 과거에서 관찰한 양자 데이터가 일치하는 비율이다. 만약 어떤 계의 인과율이 특정 값을 넘어서기만 한다면 세계는 일부 양자의 불일치를 극복하고 하나의 시공간으로 붕괴한다. 몇 번의 실험을 진행해도 인과율 붕괴는 수순대로 일어났다. 수백, 수천의 입자와 전파가 붕괴하고 수렴하는 것을 청명의 눈으로 직접 관찰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외로운 구원자는 흐리게 번져가는 구름 따위가 된다. 좁다란 육지를 딛고 서서 다투고 껴안는 수많은 별빛의 방전. 우주를 가로지르는 무수한 입자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저의 생각을 곱씹던 청명이 마침내 어딘가에 닿고서 퍼뜩 고개를 들었다. 관찰, 그리고 우연. 흐리게 번져가는 외로운 구원자. 그렇다면 외로운 구원자가 단지 하나여야 할 이유는 없다. 양자 요동을 비롯해 모든 외로운 구원자는 관찰로 인해 사라진다. 그러나 관찰은 상대적이므로 이 우주 어딘가에는 반드시 그가 남긴 요동이 존재할 것이다. 존재를 인식하는 것만으로 바뀌어가는 예민한 세계에 외로운 구원자의 자취가 흩어진다.

  “네.”

  외로운 구원자는 존재하지 않으면서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런 상황에서 계 자체를 관찰하는 것에는 어떤 의미도 남지 않는다. 모두가 제각기 다른 시간과 인과를 가지고 개별의 삶을 살아가며, 그 각각의 세계에는 외로운 구원자의 숨결이 남을 테니까. 이 순간 우리가 공유하는 세상은 서로가 지닌 우주의 평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제각기 외로운 구원자이자 서로의 시간일지도 몰랐다.

  “… 그렇다고 해서 네가 없어야 할 이유는 없어.”

  청명은 성태의 말허리를 자르며 당혹감이 번진 낯으로 성태를 바라보았다. 왜 성태는 자신만을 제외하고서 모두를 정의했던 걸까, 성태는 모든 물리학적 추론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외로운’ 구원자가 되려고 한 건지. 성태의 이론대로라면 우리는 서로의 시간과 사건에 얽혀 있어야 한다. 청명은 성태가 전개해온 사고를 그대로 뒤따랐을 뿐이었다. 청명이 외로운 구원자의 모순에 도달한 것은 그때였다. 성태는 여태껏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감춰 온 것이다. 그것은 외로운 구원자의 우주가 단지 성태가 자초하고자 했던 고립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일까.

  나만 없었다면, 나 하나만 없었더라면. 홀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강박, 스스로를 격리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두려움, 사랑했던 것들을 마침내 구원할 수 있다는 병적인 믿음까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변하지 않는 세계로부터 도망쳐 자신을 내려놓아야만 숨쉴 수 있는 아이들은 아마도 이 순간 그렇게 말할 것이다.

  “이제 다시는 비겁해지지 않으려고요….”

  첨예하게, 유예하고도 예견해왔던 모든 일들이 마침내 순차적으로 흘러간다. 나는 형을 이해하기 위해 떠날 거야. 나는 너를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떠난 거야. 형은 내가 형을 간파할까 겁냈겠지. 나를 이해하는 건 도피에 불과해. 성태야, 우리는 필요에 의한 사랑을 했어. 멈추었던 호흡. 형, 그래도 나는 형을 사랑해요. 형을 이해할 거고요. 그건 언제나 진심이었어.

  외따로 떨어진 캐리어. 어느 곳에서도 피할 수 없었던 노을이 기나긴 일몰을 견뎌내고 천천히 가라앉았다. 청명은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찾아 우주로 도망치기보다 빛조차 벗어나지 못할 더욱 거대한 중력 속으로 들어서기로 했다. 성태의 마음속에서 구르는 시간은 반드시 끝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장소에도 묶이지 못하고 미아로 남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청명은 성태에게 받았던 성운의 전화번호를 한 자리씩 속삭여본 다음, 윤형 교수와 그의 아들, 발레리 노비코바, 아나스타샤, 그러니까 나스쨔 노비코바, 조르주 르노, 달리아 마리 마이어, 벤 브라운, 그리고 고수현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언젠가 사랑하려 했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였던 모든 이름을 회상한다.

  “… 나도 사랑해.”

  성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는 과거로부터 새로 나타나야 한다. 돌아온다는 것은 밟아온 길을 거슬러 오는 것이지만, 과거로부터 등장하는 것은 지금의 자신을 갱신하는 데에 가깝다. 지금의 성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성태는 나타날 것이다. 미래에서 출발해 과거로 돌아와 무수한 파도와도 같이 자신의 전부를 뒤엎으며, 성태에 의해 청명이 그러했듯이. 청명은 서늘하게 번지는 성태의 온기를 온몸으로 움키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다음날은 출항 준비로 모두가 분주했다. 며칠 전까지는 기밀 문제로 두세 명의 엔지니어들만이 움직였지만 마지막 날에는 너나없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청명과 성태는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인파 사이에 붙박인 채 서로를 마주했다. 청명은 마지막으로 항로를 점검한 후에는 며칠간 통신실에서 지낼 작정이었다. 그런가 하면 비행사들은 관제 센터에 남는 인원과 달리 당장 발사대로 이동해야 했다. 노트북이나 연구 자료 따위가 한가득 쌓인 골판지 상자를 한 팔로 든 청명이 성태의 금빛 휘장을 손으로 쓸어 보았다. 마침 멀리서 성태를 찾는 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한동안 말없이 우주복의 미끈한 표면을 매만지던 청명이 이만 손을 거둔 것도 그때였다.

  “가야지.”

  “네.”

  건조한 대답이 오고간 후로도 서로는 섣불리 돌아서지 못했지만, 서두르자는 엔지니어들의 재촉에 성태가 먼저 떠밀리듯 무거운 발을 뗐다. 청명은 박스의 겉면에 손톱을 박아 넣고 괜히 부스럼을 내고 있었다. 걸음마다 고무가 바닥에 올라붙으며 쩍쩍대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멈추는 기색 없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소음에 먼저 조급해진 쪽은 청명이었다. 청명이 성태의 뒤통수에다 대고 서두를 읊었다. 성태는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돌려 청명을 바라보았다.

  “약속 하나만 하자.”

  “… 무슨 약속이요?”

  이번엔 청명을 찾는 달리아의 목소리가 복도를 타고 왕왕 울렸다. 청명은 무심결에 뒤편을 쳐다보았다가 이내 반쯤 몸을 돌린 채로 성태를 응시했다. 확신할 수 없는 미소가 성태의 입가에 번져 있었다.

  “날 더는 사랑하지 않을 때 연락해 줘. 보고 싶다고.”

  첫 단추를 잘못 꿴 옷치고는 겨울을 오래도록 지새웠다. 다시 만나는 그때에는 뒤틀린 곳 없이 꼭 맞는 가설을 준비할 수 있을까. 청명은 성태 역시 마음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성태의 인사말은 차마 끝내지 못한 애정의 잔상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서로의 우주라면, 그리고 당신의 존재 하나가 우리를 뒤바꿀 수 있다면 이미 홀로 아름다운 수십의 세계는 저 너머로 유실되어선 안 된다. 설령 성태가 자신을 담보로 한 불확정성에 걸려 허우적댄다 해도 청명만은 그런 성태를 그러모아야 했다. 청명보다도 더 커다란 암흑 속으로 질식해가는 성태를 구하고 싶었다. 스스로를 수단으로 써서라도.

  ‘나는 내 세상을 규명할 방정식을 풀고 있어요.’

  사이사이에 머무는 침묵이 유난히 길었다. 그러다가도 성태는 무언가 떠오른 게 있는지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는 물어왔었다.

  “… 그때가 되면 목소리로 말할까요, 아니면 빛으로 말할까요?”

  “모스부호만 아니면 좋겠는데. 너 그거 모르잖아.”

  뻣뻣한 우주복을 입고서도 허리를 뒤로 젖히며 웃음을 터트린 성태는 어쩐지 담담한 투로 대답했다.

  “시간은 넉넉하니까 어디 고민해볼게요. 근데 형이 조금은 헤맸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헤매는 중일지 몰라.

  고단한 미소가 지나친 자리에 청명의 숨소리만이 남았다. 그렇대도 우리에게 돌아갈 별이나 고향 따위가 존재하는지…. 수많은 의문이 남은 자리에 청명은 우뚝 서서 성태가 떠나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지러운 조명과 도시의 미지근한 열기가 뒤엉킨 하늘로 기억이 꿈결처럼 지나갔다. 청명은 텁텁한 입안을 혀로 쓸어내며 지금껏 지나온 풍경을 응시했다. 비로소 자신을 단단히 붙잡은 세계를 돌아보자 여름밤을 수놓은 비행기와 희미한 별빛이 총총 빛났다. 청명은 다시 넘어질 뻔한 성운의 팔을 잡아 끌며 강변을 하염없이 걸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세상은 그 누구도 쉽사리 잃지 않는다, 우습게도.

  장장 서른 해를 이어진 백야의 끝은 그런 것이었다.

 
작가의 말
 

 우리는 가끔 어떤 중대사가 지나간 후에야 그 의미를 깨닫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얼룩진 과거를 뒤바꾸는 시간 여행이 아닐까요. 닫혀 있는 우리의 우주 속에서도 시간 여행은 가능한 셈입니다. 혹자는 그것을 성숙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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