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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알타이르 관측 일기
작가 : 작도
작품등록일 : 2022.2.26

소외된 것들이 모여드는 웜홀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주 비행사였던 물리학자와 견우성, 알타이르로 떠난 연인의 이야기.

 
알타이르 관측 일기 - 21
작성일 : 22-02-26 19:01     조회 : 156     추천 : 0     분량 : 4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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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매미가 목 놓아 우는 여름의 날선 한가운데. 청명은 다시 재작년 팔월을 회상한다.

  왕복 6차선의 외곽 순환 도로를 타고 둘레 반 바퀴를 돌아 북서쪽으로 들어가면 재개발이 속속 확정되고 있는 낡은 아파트와 박자에 맞춰 나부끼는 플랜카드가 보였다. 그토록 음울하고 습하던 여름은 다시 말라붙어 후끈한 입김만 뱉고 있었다. 택시 안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는 장마가 끝난 지 며칠도 되지 않았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선명하게 갠 하늘 너머로 몇 마디 별빛이 신호처럼 날리던 기억도 났다. 열네 시간의 비행 동안 줄곧 잠들지 못하던 청명은 그 밤을 보고서야 겨우 눈을 감았었다.

  코르부스 호가 출항한 지 어언 2년, 청명은 통신이 끊어지지 않는 동안에는 관측과 시공간 계산을 맡아 처리했고, 이후에는 상주 인원에게 프로젝트를 전부 이양하는 인수인계를 거쳤다. 인수인계라고 해 봐야 이전에 부여되어 있던 모든 데이터베이스 권한을 넘기고 보안 규정을 점검하는 일뿐이었지만, 지난 몇 해간 몸담아온 업무로부터 완전히 떠나 새로운 장소에 정착해야 한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섭섭한 충격임에 틀림없었다. 청명 역시도 비슷한 감정을 품고서 종이 더미에 불을 붙였다. 그것은 한없이 위로 치솟는 유려한 불길 아래 타들어가는 모든 것들을 잊어가는 과정이었다. 석양빛으로 져가는 모든 두려움까지도….

  청명이 입국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배웅하기 위해 나온 달리아는 옅게 주름살이 패인 손가락으로 청명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출국장 앞으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그 앞에서 두 사람은 잠시 멈추었다. 홍반이 드문드문 깔린 달리아의 얼굴에 따뜻한 웃음기가 감돌았다. 청명은 올 때보다 훨씬 부피가 커진 짐들을 떠안은 채로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프로젝트에 합류해줘서 고마웠어요.”

  “새삼스럽게 그러세요.”

  “한국에서 교수로 임용되었다면서요? 좋은 일들만 함께할 거예요. 당신이 관측한 미래가 그렇듯이.”

  달리아는 손을 모아 쥐고 한참 쓸어주다가 인자한 미소와 함께 포옹했다. 청명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굽혀 달리아와 높이를 맞추며 짐을 든 손이나마 겨우 움츠렸다. 몸을 도로 일으키자 어깨에 멘 배낭이 흘러내렸다. 마침 비행기 시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두 사람은 일제히 커다란 디지털시계로 눈을 돌렸다.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달리아는 여전히 웃는 낯을 하고서 청명의 명찰을 뒤집어 똑바로 보이도록 정돈해주었다.

  “출국 심사 빨리 끝내려면 이게 필수거든요.”

  나사 어드바이저라는 근사한 직함과 함께 청명의 사진이 인쇄된 명찰은 달리아의 말대로 꽤나 쓸 데가 많았다. 심사관들은 청명에게 아는 체를 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해대기 바빴다. 바로 곁의 라인에서는 영어가 서투른 여행객 한 명이 스페인어를 동원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심사대에 먼저 들어선 것은 옆 라인의 여행객이었지만 그 자리를 먼저 벗어난 것은 청명이었다. 순조롭게 출국 심사가 끝난 다음 청명은 라운지에 앉아 짐을 베고 엎드렸다. 금방 달리아와 나누었던 대화를 되짚으며 명찰의 끄트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면 부드럽게 마모된 플라스틱의 감촉과 그간 있었던 수많은 일들에 관한 기억이 차례로 떠올랐다. 예컨대 언쟁 이후로 자연히 미묘해진 성태와의 관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서로를 대면해야 했던 순간의 잠잠한 공기 따위가. 서로는 서로에게 할 말이 많았지만 구태여 먼저 꺼내려는 노력은 않았다. 암묵적인 합의가 깨진 것은 코르부스 호가 출항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성태는 그 밤에 청명의 방문을 두드리며 그런 물음을 던졌었다.

  “… 형은 내가 정말로 돌아오지 않길 바라요?”

  떠나는 모든 이들의 방이 비워지고 매 순간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이 차가운 바스켓에 담길 때, 청명은 미지근한 이불 속에서 천장의 무늬를 세고 있었다. 당장 한 시간 전까지도 직접 자료를 불태운 탓에 손에서는 아직도 탄내가 났다. 사라지지 않는 성태의 기척을 알아차리고도 한참을 버티던 청명이 입을 연 것은 수초가 지난 후였다. 서늘한 손등으로 이마의 열기가 느리게 뻗쳐나갔다.

  “어.”

  “들어갈게요. 얘기 좀 해요.”

  청명은 멀뚱하니 손가락을 움켰다. 마디마디로 구름무늬가 가려졌다. 아주 조용한 방에서는 형광등 타들어가는 소리가 가장 거대한 소음이 된다. 청명은 허락도, 거절도 하지 않은 채로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침잠했다. 얕게 내뿜은 호흡은 이불 안에서 나른하게 굴러다녔다. 결국 기다리다 못한 성태가 문고리를 잡고 벌컥 돌렸다. 청명은 코까지 끌어올린 이불을 손으로 잡아 내리고 문을 흘겨보았다. 벌겋게 상기된 성태의 얼굴이 단번에 잡혔다.

  “화났어?”

  “조금.”

  새삼스럽게. 청명은 차렵이불을 걷어내고 오소소 털이 선 살갗을 매만졌다. 성태가 힘을 줘 문을 미는 것이 보였다. 평상시에는 급히 발로 걷어차도 사뿐히 닫히던 문이었는데, 오늘따라 바람을 잘못 탔는지는 몰라도 꽤 소리가 컸다. 성태는 평소처럼 위축되는 기색조차 없이 방에 들어섰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이만 바람이 멎었다. 한참동안 침대 끝에 걸쳐서 무슨 생각을 하던 청명은 성태가 완전히 방에 들어서기 무섭게 자세를 고치며 책상 앞으로 향했다. 청명은 책상의 노트북과 기록 파일을 오른편 구석에 밀어두고 모퉁이에 걸터앉았다. 손을 뻗으면 다 식은 커피 잔이 그대로 잡혔다.

  “…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돼? 난 출항 전날엔 잠도 안 오던데.”

  “형.”

  성태의 손등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복숭아씨처럼 뭉개지던 턱이 다시 움직여 말을 내뱉은 것은 그러고도 시간이 제법 지난 후였다. 청명은 줄곧 차가운 커피를 입에서 굴리며 미색 벽지를 훑을 뿐이었다.

  “…… 형이랑 바다 보러 가고 싶어요.”

  청명은 비스듬히 숙인 성태의 시선을 따라 책상 끄트머리를 바라보았다. 하얗게 껍데기가 올라온 입술이 자꾸만 벌어지다 말았다. 일부러 짧게 친 앞머리는 더 이상 눈썹조차 가리지 못했다. 청명은 조악하게 끼워 맞춘 엉성한 미소의 의미를 이미 알았다. 움츠러든 어깨와 가슴을 차례로 응시한 청명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쳐들었다.

  “본심이 뭐야?”

  “뭔 말을 못하겠다.”

  “귀신을 속여야지.”

  “… 미안해요.”

  성태는 드물게 초조한 기색으로 좁다란 방을 서성였다. 저에게 할 말이 있기보다 다른 속내가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청명이 말을 꺼내기 앞서 긴 숨을 들이켰다. 꼬았던 다리를 풀고 바닥을 제대로 디디자 성태가 지나갈 틈은 없었다. 두 사람이 대치하듯 침대와 책상 사이 틈에 멈춰 섰다.

  “그야 우리가, 다정하게 바다 보러 갈 사이는 아니잖아.”

  성태가 지레 목을 움츠리곤 청명을 곁눈질했다. 그러나 청명이 성태를 일갈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아니었다. 부연을 덧붙일까 했지만 청명은 이내 입을 다물고 비스듬히 떨어진 그림자로 먼저 시선을 피해주었다. 저 너머에서는 출항을 앞둔 이들의 환호성이 벽에 부딪혀 멍멍하게 맴돌았다.

  그리고 성태가 어렵사리 폐로부터 꺼내었던 말은….

  정신을 차리면 예전에 살았던 동네로부터 멀지 않은 모텔촌이었다. 삼십대의 젊은 택시기사는 무거운 눈꺼풀을 문지르더니 트렁크를 열어 청명의 짐을 대신 빼주었다. 급한 대로 곁의 경사로에 짐을 놓았지만 캐리어는 밀려 내려가지 않았다. 청명은 택시의 후미등을 물끄러미 보다가 맑게 갠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메마른 공기를 한껏 들이마셔 가슴을 부풀리면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들이 천천히 삼투했다.

  오 분이 넘는 시간 동안 기억을 음미하던 청명이 가까스로 발을 뗐다. 향한 곳은 두 블럭 거리의 무인텔이었다. 사람과 마주칠 이유도, 여유도 없이 꼬깃꼬깃한 현금을 엄지로 펴 넣으면 좌우간 방문은 열렸다. 청명은 도착하기 무섭게 흰색 이불보 위로 쓰러지듯 몸을 내던졌다. 멀어지는 것들을 더 이상 대실하지 않고, 그저 눌러앉아 변하지 않는 세상 속에 머무르며. 다시, 지구의 정지 관찰자. 또 다시.

  “우리 형이 바다를 좋아해요. 언젠가 같이 가줬으면 좋겠어요.”

  성태는 자신이 오랫동안 형과 단둘이서 지내왔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여름이면 꼬박꼬박 형을 찾아가 함께 바다나 벽지에 다녀오곤 했다는 것이다. 형에게 받은 것들을 그런대로 돌려놓은 건 좋았지만요, 하며 운을 뗀 성태는 자신이 한동안 바다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갔다. 그러니 저를 대신해서 성운과 함께 가끔씩이나마 시간을 보내달라는 것이 성태의 부탁이었다. 성태는 청명을 찾아온 것은 그 일을 부탁하기 위한 목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말을 말미에 애써 덧붙였다. 물론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서로가 알고 있었다.

  “네 형이 날 반길까?”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나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에 관해 묻고 있는 거야.”

  “왜 그러지 않길 바라는 것처럼 말해요.”

  얕게 터트린 웃음 사이로 아, 하고 가느다란 탄식이 섞여들었다. 점차 지워지는 웃음기를 손바닥으로 덮어 가린 후 성태는 고개를 들었다. 해야만 한다, 혹은 하지 않아야만 한다, 따위의 당위에 집착하는 것은 필사적인 외면에 가깝다. 그러므로 청명은 성태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성태는 홀로 지구에 남을 형을 걱정하는 걸까, 아니면 나를 염려하는 걸까, 아니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달아날 자신을 그저 잊고 싶은 것일까. 그 당위는 누구를 위한 이기심일까…….

  “나는 형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아니면 네 형이?”

  “…… 아니, 그냥. 모두. 내가 거쳐 간 모든 사람들이.”

  ‘넌 네 처지도 모르는 주제에 늘 날 걱정하지. 네가 걱정해야 할 게 나일까, 아니면 너일까.’

  너만 없었어도, 너 하나만 없었더라면. 애정이란 한 움큼조차 없는 목소리, 수현의 음성을 회상한 청명이 느리게 입술을 움직였다. 우주의 시간은 언제나 동그랗게 돌아가고, 성태가 풀어야 할 방정식에는 그 어떤 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태가 주장했던 외로운 구원자는 존재해야만 한다. 그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외면하기 위한 당위일까. 그것은 청명이 물리학자로서 건네는 질의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세운 법칙에 관한 근본적인 의심이기도 했다.

  애초에 우리는 무엇을 잊고자 그 세계를 파헤치고 있는 거지?

  “너는 네가 없는 세상이 비로소 완벽해지길 바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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