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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알타이르 관측 일기
작가 : 작도
작품등록일 : 2022.2.26

소외된 것들이 모여드는 웜홀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주 비행사였던 물리학자와 견우성, 알타이르로 떠난 연인의 이야기.

 
알타이르 관측 일기 - 19
작성일 : 22-02-26 18:57     조회 : 172     추천 : 0     분량 : 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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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또 다시 한 해하고 몇 달이 지나갔다. 그다지 크지 않은 청명의 연구실에는 한 손에 꼽을 만한 수의 대학원생이 들어왔다. 학부생들에게는 시공간 왜곡과 회의적 우주론이라는 주제부터가 커다란 장벽이었다. 그렇다고 취직할 자리가 마땅히 보이는 연구 분야도 아니고, 잘해 봐야 우주로 가지 못하면 꼼짝 없이 굶는다는 인식이 만연했다. 거기다 이 분야로 진입하려 하는 몇 안 되는 대학원생들은 이미 연차가 있는 윤 교수나 정인의 랩으로 들어간 후였다. 그러니 청명의 연구실로 할당된 학생들은 하나같이 고생을 사서 하는 부류가 고작이었다. 귀국하자마자 대학원생을 선발하는 작업에 착수했던 청명은 그 무렵 재미있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십 년 전만 해도 그렇게 인기가 없었던 윤 교수의 연구실에 지원자가 대거 몰렸다는 것이다. 대거 몰렸다는 표현은 윤 교수의 지나친 과장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윤 교수는 그 소식을 자랑하며 청명과 정인의 공이 크다는 언급을 잊지 않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인간이 번다고…. 청명은 떨떠름한 얼굴로 어느덧 미지근해진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셨다. 파티션 너머로 원생들이 화이트보드를 끌고 가는 소리가 털털털 맥없이 들려왔다.

  “어이구. 교수님 표정이 말이 아니네.”

  “꼭 이렇게 오후 시간에 맞춰 오더라.”

  “그래서 커피 사다 줬잖아. 싸가지 하고는.”

  “네. 잘 마실게요.”

  청명이 건성으로 커피 잔을 쥔 손을 들어보였다. 낮은 패브릭 소파에 파묻히듯 앉은 성운은 본인의 몫으로 가져온 빵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성운의 얇은 슬랙스 위로 빵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청명은 못마땅한 시선으로 클리너를 던져주었다. 대학원생 한 명이 슬리퍼를 끌며 뛰어왔다. 교수님, 한 교수님이 찾으세요. 그냥 들어오라고 해. 보나마나 노닥거리려는 거지. 네에.

  “굶다 왔어요?”

  “요즘 바빠서,”

  “바쁘다면서 이렇게 놀러올 시간은 있고?”

  “넌 성태한테도 말을 이렇게…. 했냐?”

  “아, 뭐.”

  성운은 반 넘게 먹어치운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다시 포장지에 싸서 내려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청명은 이내 안경을 벗더니 책상 정리에 열을 붙였다. 청명은 예전부터 디지털 작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차피 한 번에 풀릴 방정식은 세상에 없으니 기왕이면 지우기도 좋고 쓰기도 좋은 종이에다 문제를 적는 게 편하다는 것이다. 덕분에 청명의 책상에는 언제나 버릴 것들이 넘쳐났다. 청명은 어질러진 종이와 샤프, 지우개 따위를 가지런히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성운은 퉁명스레 손만 놀리는 청명의 모습을 한동안 응시했다.

  “사람 보는 눈하고는….”

  때맞춰 정인이 연구실 복도로 걸어 들어왔다. 정인과 성운 역시 구면이었다. 파티션 너머로 성운의 기척을 알아차린 정인이 멀리서부터 반갑게 인사해왔다. 건배하듯 성운이 홀더에 꽂아 두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건넸다. 저게 한 교수 거였어? 턱을 괸 채 데면데면한 감상을 떠올리던 청명은 이내 시선만 굴려 정인과 눈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제 것도 있었네요.”

  “한 교수님 몫은 항상 있죠. 안 그래도 나가면서 들르려고 했는데.”

  “오늘도 점심 못 드시고 일하셨구나?”

  “없는 시간 쪼개서 찾아오는 거라서요. 그나저나 누구랑은 다르게 말이 참 따뜻해.”

  “이럴 거면 둘 다 나가.”

  “또 그러네!”

  정인은 청명의 이런 태도에 익숙해졌는지 빙그레 미소할 뿐이었다. 정인은 청명이 구석으로 치워둔 잡동사니를 마저 옮겨 갈색 폐지 박스에 던졌다. 자리로 돌아오면서는 에어컨 리모컨을 뽑아오더니 제멋대로 온도를 올려버렸다. 요즘 날씨가 그렇게 무더운 것도 아닌데 초여름부터 에어컨을 최저 온도로 맞춰서 켜는 게 말이 되냐는 말도 잊지 않았다. 들어오기 무섭게 에어컨을 켠 쪽은 성운이었지만 청명은 앞선 모든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정인에게 별 타박을 않았다. 성운만이 괜히 제 겉옷을 여몄다.

  “다들 저녁에 시간 어때요.”

  어느덧 오후 여섯 시를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청명은 짤막한 말을 던진 다음 제 셔츠의 주머니에 담뱃갑을 꽂아 넣으며 패브릭 소파의 팔걸이에 걸터앉았다. 성운이 정인의 손톱을 가리키며 잔소리를 쏟아내다 말고 청명을 바라보았다. 일순간 세 사람 사이에 정적이 감돌았다. 오히려 당황한 쪽은 청명이었다.

  “… 왜?”

  “너, 너! 뭐야, 갑자기!”

  “예 교수…. 어디 아프지?”

  성운과 정인은 둘이 짜기라도 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주보더니 푸하하 폭소를 터트렸다. 그것도 모자라 서로 손뼉까지 치며 내일 분명 지구에 운석이 충돌할 거라는 둥 뜻 모를 말을 주고받는 것이다. 청명은 떫은 입맛을 다시다 말고 입술에 담배를 물었다. 그제야 실컷 웃었는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훔쳐낸 정인이 청명에게 질문했다.

  “아, 재밌어라…. 그래서 무려 우리를 데리고 뭘 하려고?”

  “난 오늘이 내 생일인가 했다니까.”

  “제 생일이 근처긴 해요.”

  “그럼 그것 때문인가?”

  “뭐라는 거야. 그냥 저녁 먹자고.”

  청명이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며 대꾸했다. 성운은 기다렸다는 듯 청명의 뒷덜미를 잡아 억지로 옆에 앉혀놓고 어깨동무를 했다. 그러자 여태 청명이 앉아 있던 팔걸이에는 정인이 옮겨 왔다. 정인은 그것도 모자라 청명의 머리를 통통 두들기기까지 했다. 얼결에 두 사람에게 포박되다시피 한 청명이 뒤늦게 가느다란 한숨을 토해냈다. 어깨며 머리로 전해지는 무게가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청명은 팔꿈치로 성운의 턱을 밀어내며 갖은 짜증을 부렸다.

  “견뎌. 이게 우정의 무게란 거다.”

  “우정의 무게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뭐 먹을지나 정해요.”

  성운과 한창 힘겨루기를 하던 청명의 앞으로 불쑥 핸드폰 화면이 나타났다. 이윽고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핸드폰 잠금이 풀렸다. 어차피 서로에게는 기밀이랄 것도 없다는 이유로 통화며 문자를 몇 통씩 빌려주고 빌려 쓴 것이 화근이었다. 청명의 핸드폰은 어느새 공공재 비슷한 것이 되어 있었다. 이제 이 정도로는 화가 나지도 않는다.

  “… 한정인. 내 핸드폰은 언제 가져갔는데.”

  “책상에 있던데. 나 폰 두고 왔는데 좀 봐주라, 맛집 알아봐줄게.”

  청명과 성운은 끝까지 버둥대며 턱이며 명치를 찍다가 겨우 잠잠해졌다. 바깥으로 까마귀며 백로 우는 소리가 났다. 잠시 동안 멍하니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성운이 자세를 고치는 척 능청스레 청명의 허벅지를 짓눌렀다. 청명이 한 마디를 하려 목을 가다듬었지만 정인의 말소리가 더욱 빨랐다. 정인은 두 사람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제 것 마냥 능숙하게 화면을 넘겨보였다. 대학가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선술집이나 초밥 가게에 가든지 아니면 우리 분수에 맞게 아담한 포차나 가자는 것이다. 포차는 당장 십 분만 걸어도 나오는 대학로에 즐비해 있었다. 교수씩이나 되어서 대학로에 앉아 소주를 마시긴 좀 그렇지 않냐는 청명의 반문에도 불구하고 정인과 성운은 이미 마음을 굳힌 후였다.

  정인이 연구실에 잠깐 들러 원생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는 동안 청명은 불만이 그득한 얼굴로 노을빛이 내려앉은 캠퍼스를 내려다보았다. 동편에서부터 밤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하나둘씩 켜지는 가로등 아래로 날벌레 찌르르 우는 소리가 시작되고 있었다. 금년은 장마가 오지 않아 불길 옆에 앉은 것 마냥 따가운 나날만이 이어졌다. 저녁이 되어도 채 식지 않은 열기에 어느 누구도 쉽사리 캠퍼스를 돌아다닐 생각을 않았다. 물기가 맺힌 창가에 검지로 선 몇 가닥을 그리면 창가에 성운의 얼굴이 비스듬히 비쳤다.

  “뭐 하냐?”

  “그냥요. 더워 보여서.”

  축축한 손가락 마디를 움켜쥐며 문지르자 때맞춰 정인이 나왔다. 청명은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성운과 정인을 지나쳐 먼저 걸음을 옮겼다. 포차에 갈 생각이었으니 주차장에는 일부러 들르지 않았다. 오래된 발코니 아래로 이어진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면 학교 서문은 금방이었다.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도란도란한 말소리는 끊길 생각이 없었다. 청명은 한참 걷다 말고 몸을 돌려 두 사람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가 이내 자신의 발밑으로 눈길을 돌렸다. 선명한 가로등 불빛 아래 멸렬하는 것들을 거치고 나면 문득 서늘해진 바람결이 느껴졌다.

  세 사람은 걸음을 맞춰 다시 가로등 아래서부터 출발했다. 길게 늘어진 플라타너스 길 너머로 강변과 연결되는 이차선 도로가 보였다. 길을 건너면 대학가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조그마한 정류장에는 터미널로 가는 버스 한 대와 시내로 향하는 버스 한 대가 왔다. 다행히 도착 예정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가 도착하기도 전에 차도에 서 있던 정인이 청명과 성운을 금방 불렀다. 종점과 가까운 정류장이었기 때문에 버스 자리가 대부분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정인과 성운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맨 뒷자리에 앉더니 청명을 향해 고개를 내뺐다. 가운데 자리는 청명을 위해 선심이라도 쓴 마냥 당당히 비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한동안 두 사람을 응시하던 청명은 버스가 출발한 후에야 카드를 찍을 수 있었다. 삑, 뒤늦게 인식된 카드 뒤로 그날따라 유난히 얼빠진 음성이 흘러나왔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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