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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알타이르 관측 일기
작가 : 작도
작품등록일 : 2022.2.26

소외된 것들이 모여드는 웜홀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주 비행사였던 물리학자와 견우성, 알타이르로 떠난 연인의 이야기.

 
알타이르 관측 일기 - 13
작성일 : 22-02-26 18:38     조회 : 349     추천 : 0     분량 : 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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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명은 결국 알타이르에 가기로 했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연구원은 비뚤어진 앞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상의 모든 과학계가 청명의 선택을 기뻐할 거라며 들뜬 눈치였다. 듣기로는 대부분의 한국 비행사들이 프로젝트를 고사하는 바람에 애꿎은 연구원만 윗선에서 제법 들들 볶였다는 것 같았다. 아직도 웃음기가 입가에 만연한 연구원은 곧 나사와 항우연에서 메일을 보낼 테니 일정을 잘 확인해 미국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청명은 듣는 둥 마는 둥 막대사탕을 입에서 굴리며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위로 치떴다. 그런 청명의 앞으로 내밀어진 것은 비밀 유지 서약서와 정식 프로포절이었다. 연구원의 기대감 섞인 눈빛 앞에서 청명은 망설일 것 없이 볼펜을 들어 서명했다.

  청명은 그길로 아파트로 돌아가기 위해 호숫가를 걷고, 오르막길을 걸었다. 청명의 일인용 아파트는 정인이 지내는 학교의 게스트 숙소와 거리가 가까웠다. 거의 한 동 차이나 마찬가지였다. 청명은 정인의 모습을 볼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재촉했지만 정인은 어김없이 청명을 발견해내고 베란다에서든 길거리에서든 손을 머리 위에서 마구 흔들어댔다. 청명이 정식으로 알타이르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그날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정인은 카메라를 목에 걸고 하얗게 마른 나무들을 찍고 있었다. 노란 잔디 사이를 헤쳐 겨우 카메라에 눈을 대고 있는 정인이 청명을 확인할 여유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완전히 정인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전 정인은 시린 눈을 감았다 도로 뜨며 허리를 폈고, 동시에 청명은 속수무책으로 정인과 똑바로 마주봐야만 했다.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정인은 인사말과 함께 직접 찍은 나무며 호수를 청명에게 보여주었다. 잘 찍었네요, 하는 형식적인 답변을 내고서 청명이 잠깐 뜸을 들였다. 정인과 마주치는 것을 꺼린 이유의 팔 할은 저번 술자리에서의 대화 때문이었다.

  “결국 가게 됐어요. 방금 정식 절차도 밟았고.”

  알타이르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자 정인의 얼굴이 급격하게 난감해졌다. 그러나 정인은 곧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샐긋 입술을 말아 올렸다. 카메라를 끄자 셔터 닫히는 소리가 차르르 하고 났다. 무릎까지 오는 패딩을 입고 있어서 추울 리는 없었지만 정인은 머쓱하게 제 팔을 몇 번 쓸어 올렸다.

  “괜한 말을 한 것 같아서 죄송해요.”

  “아뇨, 덕분에 마음 굳혔습니다.”

  “그런 거면 청명 씨보다 윤 교수님한테 되게 죄송해지는데….”

  농담 삼아 던진 말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웃음기 없이 서로를 마주할 뿐이었다. 까슬까슬한 목으로 괜히 헛기침이 나왔다. 청명은 눈을 내리깔고 얕은 숨을 뱉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들고 온 종이의 한 귀퉁이를 찢어 볼펜을 끄적거렸다. 정인은 적잖이 당황했는지 목에 건 카메라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청명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전혀 감을 못 잡는 얼굴이었다. 이윽고 청명이 좁은 종이에 우겨 쓴 메모를 내밀었다.

  “메일 주소 달라면서요.”

  “아.”

  정인은 얼빠진 소리를 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메일 할게요. 네. 조금 어색한 기색으로 정인이 대답하자 청명이 당부하듯 덧붙였다.

  “그러니까 윤 교수님은 그쪽이 챙겨 줘요. 나보다야 낫겠죠.”

  자가당착을 해결하기보다 고착하는 길을 택하는 것은 훨씬 간단하고 쉬웠다. 청명은 이 모든 상황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단단히 꼬였다고 믿었다. 청명이 살아온 매 순간은 불행을 수긍하는 단계였다. 변하지 않아야 하나 남은 마음이라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구태여 망가진 것들을 고치려 애쓰기보단 그만 잊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성태와의 관계를 보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낸 후에도 알타이르로 갈 결심을 굽히지 않은 이유는 지구에서의 모든 실수를 잊기 위함이었다. 혹은 지구로부터 잊혀지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짐을 정리하고 비행기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모두 꿈결처럼 지나가버렸다. 이제는 돌아올 곳이 없었기 때문에 옷가지를 넉넉히 챙길 필요가 없었다. 자칫하면 십 년이 넘을지도 모르는 여정을 앞둔 청명에게 열네 시간의 비행은 별 대수도 아니었다. 미국으로 떠나는 날, 청명은 공항에 앉아 눅눅한 감자튀김과 햄버거를 먹고 시간에 맞춰 게이트로 향했다.

  한국의 낮에 출발한 비행기는 미국의 낮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게이트를 나오자 명찰을 걸고 있는 직원들과 전에 만났던 연구원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을 나사의 선임 연구원으로 소개한 달리아와 벤이 청명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청명은 낯선 얼굴에 떨떠름한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인사를 받아주었다. 벤은 청명보다도 키가 컸다. 그렇지만 태가 나지 않을 만큼 비쩍 마르고 자세가 굽은 편이었다. 머리에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벌써부터 희끗희끗한 새치가 나 있었다. 클래식한 과학자의 전형이나 다름없는 외관이었다. 청명은 왼손을 내밀고서 잠시 머뭇거렸으나 벤 역시 자연스럽게 같은 손을 내밀었다. 두껍고 건조한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단단히 뱄다. 악수를 끝내기 무섭게 벤은 영국식 억양이 강한 영어로 말했다.

  “휴스턴으로 갑시다. 팀원들을 만나야죠.”

  휴스턴으로 향하는 동안에는 달리아가 청명의 곁에 앉았다. 아주 크지는 않은 버스에 오르자 탁 트인 미국의 고속도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제야 한국을 떠나온 것이 실감이 났다. 청명이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창밖을 쳐다보고 있자 달리아가 먼저 말을 붙였다. 달리아가 하는 말들 가운데서 새로울 건 없었지만 청명은 라디오를 듣듯 그녀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달리아는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열성적으로 쏟아내다 말고 문득 대부분의 팀원들이 한국 국적이거나 한국계 미국인이므로 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는 말을 꺼냈다. 청명은 잠깐 얼빠진 눈으로 달리아를 응시했다가 그 의중을 깨닫고 대답했다. 나 영어 할 줄 알아요. 러시아어도 할 줄 알고.

  소니 카터 센터에 들어선 이후 벤과 달리아는 팀원들을 데려오겠다며 청명을 강당에 앉혀두었다. 강당의 맨 앞에는 성조기와 프로젝터 따위가 정리되지 않은 채로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시선을 돌리자 강당 바깥으로 삼삼오오 무리지어 지나가는 훈련생들이 보였다. 전문적인 비행사 인력이 적은 국가의 경우 나사에서 훈련 시설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사람이 북적거리니 확실히 로스코스모스에 있던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왁자한 언어들을 뒤로 하고 청명은 제 캐리어와 가방을 무릎 앞에 놓았다.

  청명은 스페셜리스트 자격으로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사는 로스코스모스에서 받은 비행사 훈련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스페셜리스트인 청명과 몇 명을 제외하고, 지금 들어설 청명의 팀원들은 대부분 나사의 치열한 선발 과정을 통과해 이 자리에 선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청명은 함께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물렀던 발레리와 조르주의 얼굴을 곰곰이 생각했다가 앞좌석에 고개를 파묻었다. 이제는 지나간 얼굴들을 잊고 십 년간 함께할 새로운 동료를 만날 때였다.

  마침 강당 문이 열리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청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캐리어를 치우며 바깥으로 섰다.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는 달리아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는지 등 뒤로 익숙한 말소리가 오가는 것이 들렸다. 청명은 유심을 갈아 끼우지 않아 신호가 터지지 않는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만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렸다. 사람들의 발자국에 맞춰서 먼지 냄새가 옅게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열린 문을 타고 별안간 바람이 불어 왔다. 목을 고르듯 마른침을 삼킨 다음 청명이 그들을 응시했다. 맨 뒤에서 강당의 문을 붙잡고 선 달리아와 벤, 그리고 차례로 걸어온 사람들 중 가장 앞에 선 것은….

  “… 아.”

  청명의 눈이 당혹감으로 커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균형이 뒤틀렸지만 청명은 겨우 캐리어 손잡이를 붙잡고 버텼다. 청명의 머릿속으로 오만 의문이 떠오르는 와중에도 앞에 선 사람은 꿋꿋이 담담한 얼굴로 청명을 마주볼 뿐이었다. 현실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고개를 가로 저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첫째, 앞에 선 사람은 구면이었다. 둘째, 그 어떤 고뇌와 고찰이 앞섰다 하더라도 이제는 그 불안한 감정들을 뒤로 하고 그와 함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청명은 또 다시 누군가를 비극의 수렁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나 그 모든 생각이 스쳐가는 동안 남자는 생경한 감정들이 어지럽게 섞인 눈으로 부드럽게 청명을 향해 웃어 보일 뿐이었다. 점프 수트를 당연하다는 듯이 입고서 가슴에는 은빛 휘장을 매단 채 나타난, 청명이 익히 알고 있는 그 얼굴,

  “알타이르 프로젝트의…. 수석 비행사, 박성태입니다.”

 ―청명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작가의 말
 

 아직까지도 머나먼 과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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