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판타지/SF
알타이르 관측 일기
작가 : 작도
작품등록일 : 2022.2.26

소외된 것들이 모여드는 웜홀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주 비행사였던 물리학자와 견우성, 알타이르로 떠난 연인의 이야기.

 
알타이르 관측 일기 - 12
작성일 : 22-02-26 18:37     조회 : 146     추천 : 0     분량 : 459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청명이 담배를 피우고 자리에 돌아오자 앞접시에 고기가 수북했다. 정인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카운터에 놓인 탈취제를 뿌리고 정인의 곁에 앉은 청명이 윤 교수를 향해 핀잔을 놨다. 물론 그와 별개로 빨간 앞치마를 단단히 동여맨 모습이 윤 교수에게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사육하세요?”

  “얘는 고기를 많이 먹어야 돼. 평소에 엄청 비실비실했다더라고.”

  “그럼 저는요.”

  “우주에선 삼겹살 못 먹잖냐.”

  그렇긴 하지. 청명은 젓가락을 놀려 고기 세 점을 입에 넣고 수긍했다. 윤 교수의 술잔부터 셋의 술잔을 차례로 채운 정인이 빈 소주병을 옆 테이블로 치웠다. 정인은 윤 교수가 술이며 고기를 더 시키려는 것을 손으로 막고 곤란하게 웃었다. 그 틈을 타 청명은 소주를 입에서 데굴데굴 굴리면서 윤 교수의 가위와 집게를 뺏어다 제 곁에 놓았다. 손으로 할 일이 사라진 윤 교수가 입맛을 다시며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폈다.

  “제자들 고기 구워주는 낙을 다 뺏고….”

  “다른 제자들한텐 이렇게 안 하시면서 뭘.”

  청명은 식탁에 팔을 괴고 미심쩍은 얼굴로 응수했다. 윤 교수가 순간 울컥했는지 스스로 가슴을 두들겼다. 연설하는 정치인 마냥 양 손을 앞으로 펼치고 흔들어 보인 윤 교수는 청명과 정인에게 호소하듯 이렇게 말했다.

  “둘 다 얼굴 잠깐 내비치곤 곧장 갈 거 아니냐, 그게 아쉬워서 그러지!”

  윤 교수는 술잔을 싹 비우고 청명을 콕 집어 다시 말했다.

  “특히 너 말이다, 지구 들어온 지 한참이면서 아파트에서 나올 생각도 않고. 그러더니 다시 우주를 갈 작정이다?”

  “진짜 자식 보내는 마냥 구박하시네요. 우주로 나간단 이야기는 아직 안 했어요, 프로젝트가 있다고만 했지.”

  “또 나가요?”

  “우주로 나간단 건 안 말했대도.”

  짠. 청명과 정인이 짧게 건배했다. 정인은 술을 마시지 않고 사이다를 한 모금 마셨다. 윤 교수가 수북하게 쌓아놓은 고기 산은 어느덧 반으로 줄었다. 종업원이 불판을 유심히 보더니 숯을 빼도 되느냐 물었지만 윤 교수가 딱 잘라 안 된다고 선수를 쳤다. 청명은 정인의 기대감 어린 눈빛을 부담스레 피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 알타이르에 갈까 해서요.”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정인의 놀라다 못해 경악 어린 얼굴이었다. 정인은 음료수 잔을 든 채로 뻣뻣하게 굳어선 입을 어물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방금 들은 것이 진담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얼굴이기도 했다. 청명은 뒤늦게나마 정인을 위해 한 마디를 덧붙여주었다.

  “견우성요.”

  “아뇨, 아는데. 엄청 멀지 않아요?”

  “올해 노벨상 탄 거 봤잖아요.”

  “소문은 대충 들었지만, 그걸 진짜 가네….”

  다음으로 청명이 살핀 것은 윤 교수의 표정이었다. 윤 교수는 가물가물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못마땅한 듯 입을 쭉 내민 윤 교수의 얼굴에 팔자주름이 깊게 잡혔다. 청명이 윤 교수에게 변명하듯 들고 왔던 스크랩을 내밀었다. 우주의 수학적 형태와 구조에 관한 추론.

  “확인해보려고요. 언제까지 추론만 할 수는 없잖아요.”

  “안 가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다.”

  “가는 데도 이유가 있어요.”

  청명은 짤막하게 대답한 다음 파일철에 스크랩을 다시 챙겨 넣었다. 윤 교수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심란한 표정으로 젓가락만 휘적거릴 뿐이었다. 그런 윤 교수의 눈빛을 못 본 척 피한 청명이 윤 교수의 술잔을 반 정도 채워주었다. 정인이 눈치껏 종업원을 불렀다. 소주 두 병이랑…. 물냉면요.

  “맡길 연구 있으면 다 넘기세요. 웜홀 넘어갈 때 데이터 측정할 거예요.”

  “… 공간 곡률이랑 중력장은 좀 알아 와라.”

  “어차피 시키실 거면 왜 여태 구박만 하셨어요.”

  정인은 물냉면이 나오자 속이 깊은 그릇 하나에 동치미 국물을 덜어 윤 교수 앞으로 내밀었다. 윤 교수는 목이 어지간히 타는 듯 연거푸 물이며 동치미 국물을 들이켰다. 국물을 다 덜어주고 나니 정인의 물냉면에 더 이상 물은 없었다. 정인이 청명에게 얼떨떨한 시선을 보내더니 이만 멋쩍게 미소 지었다. 정인은 곧이어 윤 교수가 듣지 못하도록 살짝 몸을 돌리더니 청명에게 숨죽여 소곤소곤 물었다.

  “알타이르 가는 거 말이에요. 러시아, 미국, 일본, 한국, 너나할 것 없이 다 간다면서요? 안 그래도 미국에 있을 때 제트추진연구소에 있는 후배한테서 테라포밍이다 뭐다 하는 그럴 듯한 계획들은 들었거든요. … 근데 그게 가능은 할까요?”

  “동면한대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고통스럽진 않을 거라던데요. 몸이 엿가락처럼 좀 늘어나긴 할까.”

  데면데면한 낯을 하고서 술잔을 손가락으로 슬쩍 민 정인은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한참 무릎을 위아래로 떨며 할 말을 다듬는 눈치였다. 청명은 그런 정인을 굳이 재촉하지 않고 그저 술잔만 돌릴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약을 먹으려면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거였나? 막상 술을 까놓고 보니 뒤늦게 후회가 막심했다. 담배도 피우지 말았어야 했던 것 같다. 청명의 낯빛이 조금 창백해졌다. 몸 관리를 하겠답시고 종일 술 담배 대신 사탕만 물었던 몇 년 전의 자신을 떠올리면 꼭 성태가 함께 끄집어져 나왔다. 그러면 먼지가 뽀얗게 쌓였던 창틀과, 굳이 고집을 부려 바꿨던 하얀 이불, 흩날리던 눈발 따위까지….

  “내가 남겨진 사람이라면 그 별을 떠올리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요. 이유를 막론하고, 몇 년의 시간과 수 광년의 공간을 맞바꾸며 대의니, 위대한 족적이니 하는 건 너무…. 그렇지만 남겨진 사람들이 그곳에 가지 않는다면 그건 테라포밍이 아니잖아요.”

  정인은 윤 교수를 흘끗 눈으로 살폈다가 다시 목소리를 죽였다.

  “… 말이 거창해졌는데, 그냥, 남겨진 사람들은 알타이르를 미워하게 될 것 같다고요. 그런데도 알타이르에 가야할까 싶어요.”

  알타이르에 가려는 이유. 정곡을 찔린 듯 가슴께가 저렸다. 청명은 팔짱을 끼고 몸을 앞으로 숙이며 정인과 높이를 대강 맞추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목소리가 갈라질 것 같아 마른침이나마 삼켰다.

  “되찾기 위해서 가는 거예요.”

  “뭘요?”

  “그런 일이 있어요. 더 길게 설명해야 합니까?”

  날선 대답에 정인이 입술을 꼭 다물어버리며 고개를 비틀었다. 정인은 한참이나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생각하더니 깍듯하게 윤 교수의 술잔을 채워주고 아예 청명 쪽으로 몸을 돌렸다.

  “별 건 아니었어요. 윤 교수님이 생각보다 많이 우울하신 것 같아서. 그다지 고민해본 적 없죠?”

  “없죠.”

  “주제 넘는 이야긴데요, … 너무 그러지는 마세요.”

  아, 자꾸 여기저기 참견하고 다니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정인은 일부러 소리 내 호탕하게 웃으며 기지개를 켰다. 청명은 3년 전쯤에 윤 교수의 책상에서 발견했던 한 남자의 사진을 곰곰이 되짚었다. 랩 선배들은 그 사진에 관해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저 빙그레 미소하며 자리를 피하곤 했다. 역으로 그 침묵은 청명에게 단서였다. 생각해 보면 청명은 윤 교수가 자신에게 갖는 특별한 애착을 매 순간마다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사진 속 남자가 졸업가운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과 청명의 학위 수여식에 찾아온 손님이 윤 교수뿐이었다는 사실은 아예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의 원망과 설움― 청명이 윤 교수의 죽은 아들을 닮았다거나, 성태의 단 하나뿐인 종착점이라거나, 하는 단편적인 사실들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청명이 지금껏 외면하고자 했던 모든 감정이 그들의 과거이자 현재이고 미래였다는 점이었다. 보잘것없다고 믿었던 자신은 어느 누군가에게 세상이었고, 스스로를 내던지는 일은 그래서 연쇄적인 비극이었다. 청명은 스스로가 수현에게 당했던 학대를 주변의 타인에게 자행해왔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옆자리로 치워두었던 논문 몇 장을 보자 다시금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성태로부터 도망친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성태와 마주친 순간, 청명은 성태가 언젠가 망가진 자신을 버리고 떠날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예감을 떠올렸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것들을 붙잡으며 하루하루의 낙으로 삼는 일보단 영원히 잠잠할 우주에서 스스로를 가두는 선택이 나았다.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외로워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별 따위를 세고 싶었다. 남겨지기보단 차라리 떠나고 싶었으니까, 다시는 그 틈새로 누군가에게 버려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어떤 누군가를 틈새에 밀어 넣지는 말아야 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나도 언젠가는 형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괜찮으세요?”

  손이 허공을 맴돌았다가 겨우 테이블을 짚었다. 정인이 놀란 눈으로 청명의 팔을 붙잡아주었다. 청명은 버거운 호흡을 들이키며 고개를 느리게 가로 저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도망치듯 잰걸음을 옮겨 가게 옆 좁은 골목길에 기대듯 섰다. 골목길 사이로 울부짖는 듯 바람이 웅웅 울려왔다. 살이 에일 듯 날카로운 밤공기를 맞자 눈이 따끔거렸다. 청명은 겨우 핸드폰을 꺼내 들고 이미 오래 전부터 외우고 있었던 열한 자리의 번호를 눌렀다. 마지막으로 수화기 버튼을 누르려 했지만 액정에 어린 몇 방울의 물기에 버튼이 잘 눌리지 않았다.

  뻑뻑한 뺨을 일부러 문질러 닦은 후 고개를 들었다. 목이 메어왔지만 눈물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멍하니 올려다 본 보랏빛 하늘에선 그날처럼 다시 눈이 내려왔다. 미미하고 못난 눈발과 그 사이로 눈물처럼 엉겨 붙는 빗물. 미국의 낮에는 이런 하늘 따위 없겠지. 청명은 그제야 어떤 연락도 성태에게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핸드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청명에게는 그럴 자격조차 없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5 후기 - 배경 설정에 관하여 2022 / 2 / 26 161 0 3380   
24 알타이르 관측 일기 - 24 (完) 2022 / 2 / 26 168 0 4202   
23 알타이르 관측 일기 - 23 2022 / 2 / 26 166 0 5225   
22 알타이르 관측 일기 - 22 2022 / 2 / 26 157 0 3927   
21 알타이르 관측 일기 - 21 2022 / 2 / 26 156 0 4947   
20 알타이르 관측 일기 - 20 2022 / 2 / 26 161 0 3264   
19 알타이르 관측 일기 - 19 2022 / 2 / 26 172 0 4400   
18 알타이르 관측 일기 - 18 2022 / 2 / 26 168 0 5599   
17 알타이르 관측 일기 - 17 2022 / 2 / 26 159 0 6511   
16 알타이르 관측 일기 - 16 2022 / 2 / 26 160 0 3272   
15 알타이르 관측 일기 - 15 2022 / 2 / 26 172 0 5892   
14 알타이르 관측 일기 - 14 2022 / 2 / 26 155 0 6590   
13 알타이르 관측 일기 - 13 2022 / 2 / 26 349 0 4233   
12 알타이르 관측 일기 - 12 2022 / 2 / 26 147 0 4593   
11 알타이르 관측 일기 - 11 2022 / 2 / 26 167 0 4317   
10 알타이르 관측 일기 - 10 2022 / 2 / 26 164 0 6338   
9 알타이르 관측 일기 - 9 2022 / 2 / 26 176 0 6539   
8 알타이르 관측 일기 - 8 2022 / 2 / 26 158 0 6332   
7 알타이르 관측 일기 - 7 2022 / 2 / 26 155 0 7697   
6 알타이르 관측 일기 - 6 2022 / 2 / 26 164 0 5348   
5 알타이르 관측 일기 - 5 2022 / 2 / 26 180 0 8518   
4 알타이르 관측 일기 - 4 2022 / 2 / 26 166 0 5323   
3 알타이르 관측 일기 - 3 2022 / 2 / 26 171 0 7337   
2 알타이르 관측 일기 - 2 2022 / 2 / 26 170 0 5165   
1 알타이르 관측 일기 - 1 2022 / 2 / 26 266 0 5319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