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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알타이르 관측 일기
작가 : 작도
작품등록일 : 2022.2.26

소외된 것들이 모여드는 웜홀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주 비행사였던 물리학자와 견우성, 알타이르로 떠난 연인의 이야기.

 
알타이르 관측 일기 - 6
작성일 : 22-02-26 18:15     조회 : 163     추천 : 0     분량 : 5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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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체, 그중에서도 블랙홀을 가지고 수식을 늘어놓는 것이 윤 교수의 장기이자 주된 전공이다. 윤 교수는 겉보기에도 그렇지만 역시 달변가에 사람이 좋아서 저를 부르는 자리는 모두 나가 수학과 물리학의 아름다운 교집합에 대해 설파하곤 했다. 수학과를 다니던 정인이 학부 삼 학년에 돌연히 늦바람이 난 것도 우연찮게 윤 교수의 물리학 세미나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인은 딱 이틀간 진로에 대해 스스로 고민한 후 담당 교수에게 상담을 신청했다. 정인의 담당 교수는 꼬장꼬장한 성격으로 유명한 수학과의 노교수였다. 오피스에는 꽤 명성 높은 분재가 발 디딜 곳조차 하나 없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서 수학과 학생들은 우스개로 분재 하나보다 제 몸값이 싸다는 얘길 하고 다녔다. 정인이 까치발을 세워 분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자마자 교수는 대뜸 율무차 두 잔을 타오라고 정인에게 시켰다. 정인은 율무차 한 컵을 타 교수의 앞에 놓았고 그러기 무섭게 교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정인이 들었던 호통은 다음과 같다.

  “우리 학과에서 4점대를 받는 녀석이 몇이나 된다고! 학교 연구실에 들어와 순수수학을 하든지, 아니면 어디 연봉 좋은 펀드회사나 보험회사에 들어가 돈이라도 쏠쏠히 벌어라. 갑자기 웬 천체물리학 대학원이냐? 굶어 죽는다, 인석아.”

  노교수는 이듬해 노환도 아닌 교통사고로 명을 달리했다. 그토록 아끼던 분재들도 대학원생들이 나서서 어디론가 치워버렸다고 들었다. 정인은 그의 비뚤비뚤한 치열과 뺨에 핀 검버섯, 그리고 늘 찌푸린 채였던 비관적인 이마를 차례대로 떠올렸다. 자신의 다음해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사람의 삶인데 하물며 남의 앞날은 오죽할까. 확률 놀음이나 하며 남의 목숨 값으로 먹고 살라는 노교수의 조언은 오히려 그래서 설득력이 있었지만, 모든 인생이 때깔 좋게 다듬어진다면 사람은 먼지 쌓인 좁다란 오피스에서 비집고 자라던 분재와 다를 게 없다. 정인은 노교수가 떠나자마자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명패 없는 오피스를 들여다보았다가 돌아서버렸다.

  정인은 5년을 꼬박 채워 학부를 다녔다. 물리학과 과목을 몇 개 골라 수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한 해 남짓이었다. 졸업학기의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 정인은 윤 교수에게 메일을 넣었다. 학부 졸업을 마친 후에야 윤 교수에게서 회신이 돌아왔다. 월말이나 다음 달 초쯤에 얼굴을 보자는 것이다. 정인은 그해 겨울이 유난히 추웠지만 함박눈은 소복하니 자주 내렸다는 것을 두고두고 기억했다. 보랏빛으로 어슴푸레한 구름이 밤하늘에 커튼처럼 내려앉을 떄면 꼭 눈이 뚝뚝 떨어지곤 했다. 윤 교수의 연구실에 면접을 보러 가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적으로 폭설이 온 날, 그날은 수요일이었고 두꺼운 패딩을 입은 여자 기자가 인천의 비행기편이 모두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정인은 별 것도 아닌 소식이 대서특필된다는 생각을 하며 무심히 머리를 말렸다. 기숙사 바깥으로 나오면 입김을 분 듯 불투명한 대기 사이로 설경이 언뜻 보였다. 덜 마른 머리가 눈발과 함께 나부꼈다.

  그날 면접을 본 것은 정인을 포함해 세 명이었다. 지원한 사람은 조금 더 많았지만 윤 교수의 입맛에 딱 맞게 사람을 추려보니 고작 세 명이 남았다고 했다. 윤 교수는 면접 도중 한 명을 다른 랩으로 보내주었다. 들어보니 이미 반도체를 개발하는 연구실과 컨택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올 인재는 알아서 랩을 찾아온다는 것이 윤 교수의 지론이었고 그래서 그는 굳이 다른 연구실에 가겠다는 학생을 눌러 앉히려 하지 않았다. 더 떨어트릴 사람도 없거니와 윤 교수는 저를 찾아온 두 학생이 모두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밤을 새워 외워왔던 논문 몇 부가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휘발됐다. 3월에 학기가 시작될 때 바로 이 연구실에 오면 된다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정인은 아직 긴장이 채 가시지도 않아 떨떠름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어물거렸다.

  윤 교수는 날이 험하니 눈이 멎기를 기다렸다가 나가도 좋다고 말했다. 그냥 나가기엔 아까보다도 날씨가 더 궂어진 것 같았다. 손바닥만 한 창문의 바깥으로 새하얀 사선이 낙서처럼 내려왔다. 정인이 어찌할 바 모르는 사이 윤 교수가 쟁반으로 믹스커피 세 잔을 날랐다. 낮은 유리 탁자 위에는 안경점에서나 볼 법한 사탕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바스켓이 있었다. 정인은 눈치껏 요구르트맛 사탕을 두세 알 챙겨 주머니에 넣고 어색하게 커피를 받아들었다. 윤 교수가 정인의 곁에 앉아있던 남자에게 별안간 말했다.

  “비행기도 못 뜨겠네.”

  남자가 종이컵을 받아들며 멋쩍게 웃어보이곤 윤 교수에게 시선을 옮겼다. 곁눈질로만 흘긋대던 남자의 얼굴이 이제야 옆선이나마 제대로 보였다. 남자는 정인이 생각한 것보다도 더 앳된 인상이었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부드럽게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보기 좋았다. 눈을 도로 내리깐 정인이 뽀얀 갈색 커피 위로 날숨을 후 불었다. 따뜻한 연기가 흩어졌다.

  “그러게요. 눈 온다는 말이 정말일 줄은 몰랐어요. 지난주에도 오더니.”

  “이 정도 기세면 모레는 되어야 그칠 것 같은데. 지낼 곳은 있다더냐?”

  “네? …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하루 이틀이야….”

  “너 자취한다며.”

  몸을 잔뜩 숙이고 커피를 홀짝거리던 정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윤 교수는 정인의 표정을 한 번 살폈다가 성태를 향해 비죽 미소 지었다. 윤 교수와 성태가 이미 구면이다 못해 제법 돈독한 사이라는 것은 성태를 처음 만난 정인조차 알아챌 수 있었다. 정인은 듣는 체 마는 체 눈길을 돌리면서도 두 사람의 의미 모를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어딘가 머쓱한 기분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문득 기숙사에서 나오기 직전 아이패드로 띄워둔 뉴스 채널에서 줄곧 떠들던 대설주의보가 떠올랐다. 성태는 웃고는 있지만 영 곤란한 낯이었다.

  “… 방이 좁아서 형이 불편해할 거예요.”

  “찬물 더운물 가릴 때니.”

  “아시잖아요, 원래 나서서 고생하는 사람이라서.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한국에 있으면 좋을 텐데.”

  “많이 아쉬운 눈치네.”

  “제가 뭘요. 형한테 좋은 거고, 뭐.”

  도란도란 나지막한 대화가 오고 갔다. 주어 없는 대화를 한참이나 엿듣던 정인은 뒤늦게나마 그 상황을 이해하길 포기해버리고 뒤로 기댔다. 그래도 면접이랍시고 챙겨 입고 온 정장 바지는 소재가 꽤 얇은 편이었다. 빨갛게 번지는 열선의 복사광을 지켜보다 다리를 엇갈리게 꼬았다. 날이 추운 만큼 저만 모르는 이야기가 오가는 순간도 썰렁했다. 이렇게 어색하고 멋쩍은 자리인 줄 알았더라면 아까 전 날씨가 험하다며 저를 눌러 앉히던 윤 교수의 말을 정중하게 사양할 걸 그랬다.

  주어 없는 말이 이어지다 뚝 멈췄다. 난데없는 정적에 정인이 윤 교수를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윤 교수는 뒤늦게야 정인이 난감해하던 기색을 알아차리고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때마침 복도에서 눈물이며 콧물을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정인은 그 음성을 멀리서나마 들으며 혹여나 제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새 나온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물론 그 소리의 주인은 당연히 정인의 내면이 아니었고, 그저 세미나 시간 동안 담당 교수에게 줄기차게 깨지고 온 석사 2년차일 뿐이었다.

  “일부러 빼놓고 얘기한 건 아니고요.”

  “알죠. 알죠, 그럼….”

  “내 정신 좀 봐라. 너 지금까지 제법 서운했겠다.”

  “네? 그렇게까지 막 신경 쓰진 않았어요.”

  “교수님 제자 한 명이 오늘 외국으로 나가거든요. 물리학과. 제…. 선배기도 해서요.”

  솔직히 말해 랩 내 순혈주의에 대해 걱정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담당 교수가 겁을 주던 것도 다 그런 이유였다. 수학과 선배 누구가 화공과 랩에 가서 한 달 동안 밥을 혼자 먹었다느니 하는 뜬소문을 들을 때마다 조금씩 걸리던 것이 쌓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오지랖 넓은 두 사람에게 그런 마음을 내비치기라도 했다간 밤까지도 붙잡혀 이야기를 받아주고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아니, 전혀 신경 안 쓴다니까요? 제가 그리고, 그, 수학과를 나와서 역시 물리학과 사람들은 전혀 모르기도 하니까….”

  “아이고, 우리는 네가 수학과를 나왔는지 물리학과를 나왔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단다!”

  “교수님, 그 얘기가 아니에요!”

  눈치껏 눈이 그쳐주지 않는 바람에 설전은 삼십 분이나 더 이어졌다. 결국 오늘은 비행기가 못 뜨게 되었다는 그 제자의 전화가 걸려오고서야 대화가 일단락되었다. 제자이자 선배의 유학길에 관한 대화가 어째서 대학원 내 파벌 싸움으로 이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인은 아직도 목덜미에 선연한 진땀을 훔치며 긴 숨을 뱉어냈다. 교수는 스피커폰을 켜고 기대감 넘치는 눈으로 제자의 전화를 받았다. 커다랗고 지직거리는 음성이 울리기 무섭게 성태가 흠칫 눈꺼풀을 떨었다. 그 모습을 본 정인이 볼륨을 조금 줄여달라는 듯 손가락을 오므려 보였다. 뚝, 뚝. 계단 내려가듯 소리가 줄어들었다.

  여보세요. 정인은 성태가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았다.

  “―그건 그렇고, 신입생을 뽑으셨으면 이제 좀 보내주세요. 첫날도 아니고 면접날부터 그렇게 붙잡아두는 연구실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어요?”

  “눈이 그렇게 오는데 애들을 내보내면 어쩌자고. 야, 야. 됐고, 오늘 어디서 잘 작정이니?”

  “공항에서 밤 샐 겁니다. 눈 기껏해야 내일이면 멈출 거고, 비행기 뜨는 대로 타고 가려고요. 왜요, 근처 호텔 잡아주시려고요?”

  남자의 목소리 뒤로 비행기가 줄기차게 취소되고 있다는 공항의 안내 방송이 얹혀서 들려왔다. 아침부터 공항에 온 사람이 많았는지 주변이 꽤 왁자지껄했다. 급히 성태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일어섰다. 정인은 무릎을 모아 곁으로 치워주며 길을 텄다.

  “아니, 돈 없어. 그냥 성태가 혼자 산다니 거기서 좀 자는 게 어떠냐고 물어볼 셈이었지. 여차하면 우리 집에 와서 쉬다 가라고도 할 생각이었다.”

  “됐어요, 성태 자취방 좁으니까. 별로 좋아하지도 않을 거고…. 후자는 더더욱 싫네요.”

  “너희는 뭐 다 싫다고 안달이냐.”

  전화기 너머로 희미하게 웃음 터트리는 소리가 났다. 이어지는 승무원의 낭랑한 음성. 다시 알립니다. 모스크바 행 KL1920 항공편은 취소되었습니다. 문자를 통해 추가 항공편 및 환불 규정에 대해 안내 드리겠습니다.

  “성태는 어때요?”

  “늘상 같지.”

  남자는 짐을 끌고 일어서는 듯 잠시 말이 없었다. 곧 바람 소리와 우산 펴는 소리가 났다. 공항 앞에 즐비한 택시들이 호객하며 경적을 울려댔다. 소음이 커지자 남자의 목소리도 점차 흐려졌다. 정인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윤 교수에게 잠깐 눈짓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구실의 무거운 문을 어깨로 밀어 열자 마침 돌아온 성태가 엉거주춤 밀려났다. 정인은 성태의 두 뺨이 물기로 반들거리는 것을 보고서 세수를 하고 왔나보다, 하며 어림짐작했다.

  성태가 문을 잡아주는 동안 빠져나온 정인은 괜히 낯선 기분에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방사성 물질 위험 표시가 팻말처럼 붙은 복도의 끝과, 때때로 석면 가루가 묻어나올 듯 낡고 하얀 천장. 그리고 회색의 무거운 문을 짐처럼 지고 벽면에 기대 선 성태. 마침내 열린 문 사이로 남자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럼 됐어요. 건강하세요.”

 
작가의 말
 

 다시 예전으로, 성태의 시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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