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로맨스
붉은실의 끝맺음
작가 : allzero
작품등록일 : 2022.2.23

1930년, 경성. 나라도 마음도 자유롭지 못하던 그 날의 어디선가 만나 아무도 모르게 붉은 실로 얽힌 이들의 이야기.

 
#8. 희망과 바램 그 사이
작성일 : 22-02-26 01:45     조회 : 191     추천 : 0     분량 : 5271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거사 당일, 밖은 이미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이 됐지만 해월관 앞에는 값비싼 자동차들로 환하고 분주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고위 관리들과 금융계 인사들이 차에서 내리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온 일군들은 물 밀듯 쏟아져 걸어왔다. 신분이 노출되면 안되는 영을 대신해 무성과 기생들이 밖으로 나와 손님들을 맞이했다.

 김무성: 来てくださって光栄です。 「委員長、どうぞ中にお入りください」。

  -찾아 주셔서, 영광입니다. 위원장 님.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무성의 깍듯한 태도에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무성의 안내에 맞게 해월관 안으로 들어가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일본인 설립 위원장이다. 무성의 뒤에 있던 기생들도 하나둘 자신의 짝을 찾듯 관리들과 인사들의 팔짱을 끼며 안으로 안내했다. 한편 여자 탈의실 안에서는 신아가 기모노를 입기 위해 고군분투 중, 이였다.

 조영민: 야 적당히 입고 빨리 나와! 다들 들어갔다고.

 살아 생전 여자 옷 한 벌을 입어본 적이 없는 신아가 기모노라고 입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류신아: 아 거의 다 입었어. 기다려봐.

 탈의실 밖에서 빨리 나오라고 신경질적으로 닦달하는 영민 에게 지지 않고 비슷한 어투로 반박해주는 신아. 함께한 세월이 오래되면 말투도 닮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둘은 확실한 친구였다.

 류신아: 야 이거 오른쪽이 위야? 왼쪽이 위야??

 조영민: 왼쪽!! 이 모자란 덜떨어지야. 왼쪽!!!

 류신아: 입어본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말투나 성격이 저렇게 까지 닮을 수가 있을까, 놀라울 지경이였다. 서로가 한마디도 지지 않고 급한 상황에서도 싸움을 이어가는 모습에 되려 또래 친구 같은 풋풋함이 느껴졌다.

 조영민: 그럼, 난 입어봐서 알겠냐?

 류신아: 그러게, 넌 어떻게 아냐.

 신아가 옷을 다 갈아입고 탈의실 커튼을 치고 나오자 바득바득 이를 갈며 답답해 하던 영민이 순간 얼굴을 붉혔다. 예뻤다. 평소 남장을 하고 있었어도 신아의 미모는 가려지지 않았었다. 오죽하면, 남장을 하고 다녔어도 매일 같이 남자들에게 둘러싸이고, 신아가 남자인 걸 깨닫고 나서는 믿을 수 없다는 생각보다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였을까. 늘 모자 안에 숨겼던 긴 머리는 장신구들로 깔끔하게 묶었고 서툴지만 옅은 화장도 잘 어울렸다. 신아가 작정하고 꾸미면 이렇게 까지 되는구나, 지금 자신 앞에 서 있는 신아의 모습에 온몸으로 놀라며 눈이 커진 영민의 모습이다.

 류신아: 술은 누가 가지고 있어?

 조영민: ..........재희 형님.

 담담한 신아의 물음에 되려 당황 한 듯한 영민이 빠르게 말을 끝내고 등을 돌려 지하 창고로 내려갔다. 아무도 없는 창고 벽에 기대 놀란 가슴을 만져 보지만 아직도 영민의 심장은 아까의 신아를 기억하고 있는 듯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한편, 주방에서는 영민이 가져온 약을 술에 넣고 술이 담긴 병을 신나 게 돌리고 있는 재희가 있었다. 분명히 웃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그건 웃고 있다기보다는 누군 가를 골탕 먹일 생각에 신나 하는 사악한 미소였다. 그런 재희 곁으로 신아가 다가갔다.

 류신아: 재희 형님.

 송재희: 아 깜짝아. 어?

 재희 또한 신아의 꾸민 모습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송재희: 이야~ 길에서 보면 몰라보겠다. 우리 신아, 이런 얼굴 낭비하고 사는 건 조국의 낭패인데.

 류신아: 전 어색해 죽겠는데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고.

 재희의 호들갑에도 옷이 영 불편한지 팔을 벌려 옷을 계속 매만지는 신아는 옷도 신발도 머리에 화장까지 모든 것이 불편하고 어색했다.

 송재희: 에이 아냐. 웬만한 1패 기생들 보다 우리 신아가 훨씬 나은데?

 장난스럽게 신아의 등을 가볍게 치며 말하는 재희의 칭찬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신아가 얕은 미소를 보였다.

 송재희: 아 술은 이거. 잘하자.

 재희 또한 미소를 보이며 신아에게 약이든 술병과 여러 과일들이 담긴 접시를 건넸다.

 류신아: 네.

 그 시각 룸에서는 파티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해월관 건물 전체는 서양식이지만 룸의 인테리어 만큼은 일본 식 풍습으로 되어있었다. 오늘처럼 일본 정부의 정치인들과 고위 관리들의 방문이 잦아 마련한 룸이였다. 룸 안에는 20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과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의 맨 끝 가운데 자리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설립 위원장이 앉아 있었고 그 주위로 금융계 인사들과 위원들이 술을 마시며 한 팔에는 기생들을 끼고 앉아 있었다.

 일본인 고위 관리 위원1: 時間は早いですね。 会社を設立して門を開いたのが昨日のようなのにもう20年が経ちましたね。

  - 시간 참 빠릅니다. 회사 설립하고 문 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나 흐르다니.

 일본인 고위 관리 위원2: これはすべて委員長が青春を捧げて国のことを心配しながら働いてくださったおかげではないでしょうか」

  - 이게 다 위원장 님이 청춘 바쳐 나라 걱정하시며 일해 주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고관순: 御尤もなお言葉です その長い歳月、私たちの信念を叶えて過ごすことができたのは,すべて委員長のおかげです。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 긴 세월 우리 신념 잘 이루고 지낼 수 있었던 건 다 위원장 님 덕분이죠.

 잘나가는 사업가들, 금융계 인사들과 일본 정부의 고위 관리들 사이에서 기가 죽어 눈치만 보고 있던 고관순이 헐레벌떡 호들갑을 떨려 말을 거들었다.

 설립 위원장: 誰かが聞いたら、他の方々は 遊んで食べたと思いますよ。

  - 하하. 누가 들으면 나머지 분들은 그동안 놀고먹으신 줄로만 알겠습니다.

 장난 식의 어조로 한 말이 였지만, 룸에 있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농담처럼 보이는 저 말은 몇몇 위원장들을 겨냥하며 뱉은 비난이 였다는 걸. 한순간에 룸 안의 공기를 무겁게 만든 위원장이 술잔을 들어 술을 마시려다 하람을 쳐다보며 이번에는 만형에게 말을 걸었다.

 설립 위원장: 本当に立派な孫をお持ちですね. まだ息子さんもあんなに元気なのに心強いで す。

  -참 훌륭한 손자를 두셨습니다. 아직 아드님도 저렇게 건장하신데, 얼마나 든든하실까.

 호의 같으나 절대 호의로 내뱉은 말이 아닌 이 말, 입으로는 훌륭하다고 말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미개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저 웃음. 하람은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이런 상류 사회의 파티는 절대로 친목 도모나 인맥을 쌓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권력자의 심심풀이 힘 자랑을 위한 자리였고 나머지들은 그 권력자의 눈밖에 나지 않도록 열심히 아양을 떨며 비위를 맞춰야 하는 일종의 재롱 잔치 같은 느낌이였다.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분들이 있다. 이 자리는 그 신분을 몸과 마음으로 각인 받는 곳일 뿐이다. 위원장의 말에 만형이 희미한 웃음을 보이며 대답을 하려 하자 하람이 끼어들며 막았다.

 고하람: コハラムです。失礼ではなければ私が直接お酒を一杯差し上げても良いですか。

  - 고하람이라고 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술 한 잔 올려 드려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도 손자라고 제 할아버지가 공격 받는 게 싫었는지 만형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하람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연진과 만형이 놀랐다.

 설립 위원장: では、私が一杯もらって飲んでもいいですか。

  -그럼 제가 한 잔 받아 마셔도 되겠습니까?

 위원장은 하람의 말에 뜻밖이라는 듯 재밌다며 웃음을 보였다. 하람 또한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위원장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술병을 들었다. 조용하고 삭막했던 룸 안을 술잔에 따라지는 술 소리가 가득 매웠다. 경고인지 경솔인지, 하람이 따른 술은 술잔을 가득 채우고도 병에 있는 술이 동날 때까지 따라졌다. 술잔을 잘못 잡기라도 하면 바로 넘칠 것 같은 위태로운 술들이 룸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고하람:お酒を注ぐ時は、もとより相手のことを思う情と同じくらい注ぎなさいと教えてもらいました。委員長を思う制定がとても大きくて、小さくてもこのグラスでは足りないことを理解してください。

  -술을 따를 때는 본디 상대를 생각하는 정만큼 따르라 배웠습니다. 위원장 님을 생각하는 제 정이 너무 나도 커 작디작은 이 술잔으로는 다 드리기 부족한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람의 대범한 행동에 룸 안의 모든 사람들이 위원장의 눈치를 보며 숨소리 한 번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숨 막히는 정적을 깬 건 위원장의 호탕한 웃음소리였다.

 설립 위원장: 面白いね. コさんの家の中にこんなにおおらかな人がいたとは.

  -하하하. 재미있네, 재미있어. 고 씨 집안에 이렇게나 대범한 자가 있었다니.

 평소 제 아비와 할아버지 덕에 부족함 없이 편하게 만 자란 온실 속 화초라고 만 생각했는데 자신의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똑 부러지는 모습에 위원장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태도였다.

 설립 위원장: 孫がこんなに立派に大きくなるから胸がいっぱいでしょう。

  -손자가 이렇게 번듯하게 크니 뿌듯하시겠습니다.

 하람이 넘치게 따라준 술을 마시며 위원장이 만형 에게 한 말은 진심이였다.

 고하람:お酒が切れて手配を確認させる方法がありませんので、しばらくお待ちいただければ、私が下ってお持ちします。

  -술이 다 떨어져 제 정을 더 확인 시켜 드릴 방법이 없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제가 내려가 가져 오겠습니다.

 설립 위원장: 今日この子のおかげでまともに酔えますね。

  -하하 오늘 이 친구 덕에 제대로 취해 보겠네요.

  하람의 재치 있고 깍듯한 말투에 제법 하람을 마음에 들어 하는 위원장의 모습이다. 위원장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도 하나둘 눈치를 보며 웃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술을 가지러 나온 하람은 계단을 내려가다 이내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편하지도 않은 자리에서 술을 마셔서 그런가 속에서 자꾸 무언가 뜨겁게 들끓는 것 같았다.

 고하람: 토할 것 같아....

 계단에 웅크려 앉아 가슴을 몇 번 내리치며 괴로운 듯 심호흡을 하고는 왼쪽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힘없이 일어나 1층으로 내려 가는 하람. 1층에는 여관들도 손님들도 없이 텅 비어 있는 빈 테이블들과 의자들 뿐이였다. 여관들은 거사를 앞두고 영이 일찍 돌려보내 해월관 안에는 조직원들밖에 없었고 파티 때문에 다른 손님들은 받지 않았었다. 아무도 없는 1층 로비를 그 자리에서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다시 올라 갈려고 하는 하람의 발을 붙잡은 건 1층 로비 의자에 떨어져 있는 손수건이였다. 신아가 재희 에게 술을 받으러 간 그때 떨어뜨린 하람이 신아 에게 준 손수건이였다.

 고하람: 이게 왜....여기

 분명 자신의 손수건이 맞는데 왜 여기에 떨여져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하람의 표정에서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여기, 해월관에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달라는 바램.

 

 
작가의 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2 #23. 심리전 2022 / 2 / 28 183 0 9100   
21 #21. 마주 본 현실 2022 / 2 / 28 170 0 5697   
20 #20. 차라리 몰랐으면 한 비밀 2022 / 2 / 28 186 0 11034   
19 #19. 위험한 재회 2022 / 2 / 27 168 0 7212   
18 #18. 나를 위해 사는 것 2022 / 2 / 27 173 0 8184   
17 #17. 애정 없는 부류 2022 / 2 / 27 187 0 5102   
16 #16. 엇갈린 시간 2022 / 2 / 27 179 0 5344   
15 #15.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 2022 / 2 / 27 177 0 5335   
14 #14. 싫지 않은 발걸음 2022 / 2 / 27 169 0 4945   
13 #13. 근거 없는 기분 2022 / 2 / 27 186 0 6873   
12 #12.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을 때 2022 / 2 / 27 183 0 7346   
11 #11. 가까워지면 안되는 2022 / 2 / 26 178 0 5593   
10 #10. 또 한 번의 이상한 만남 2022 / 2 / 26 181 0 4479   
9 #9. 동년회의 수장 2022 / 2 / 26 179 0 2828   
8 #8. 희망과 바램 그 사이 2022 / 2 / 26 192 0 5271   
7 #7. 재회의 징조 2022 / 2 / 26 192 0 3235   
6 #6. 숨이 막혀도 2022 / 2 / 25 185 0 3360   
5 #5. 공허한 사막 위를 2022 / 2 / 25 186 0 2729   
4 #4. 또 하나의 작은 진심 2022 / 2 / 24 179 0 3465   
3 #3. 두 번째 만남을 기대하며 2022 / 2 / 24 180 0 3561   
2 #2. 인연의 시작 2022 / 2 / 23 190 0 2948   
1 #1. 이야기의 시작 2022 / 2 / 23 284 0 620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