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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별이 지다
작가 : 올서리
작품등록일 : 2021.12.13

언제부턴가 세상에 닥친 기후의 변화, 환경파괴, 그리고 인간성의 상실 등의 현상이 우리와 가까운 어느 별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연호는 그 별의 흔적을 쫓아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한다. 초신성과 고래, 오로라, 그리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

 
#29. 바람 끝 (4)
작성일 : 22-02-25 18:43     조회 : 256     추천 : 3     분량 : 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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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연민이 퇴원하기로 예정된 휴일의 아침은 근래에 들어서 보기 드물게 맑은 날이었다. 초여름의 절기였지만, 늦가을처럼 서늘했다. 오랜만에 접하는 눈부신 햇살이 낯설 정도였고, 정원의 몇몇 꽃들은 봄에 피지 않다가 정작 6월이 되어서야 수줍게 얼굴을 드러냈다. 꽃들의 삶도 인간들처럼 엉망진창이었다. 며칠 전부터 세차를 해놓았지만, 다시 한번 먼지를 털고 나서야 집을 나서는 연호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어려 있었다.

 

  「후-」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연민을 반기듯 맑고 청아한 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했다. 어렵게 내린 결정이 혹시라도 동생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매사에 조심 또 조심했다. 다른 때보다 천천히 운전을 하며 병원에 도착한 연호는 퇴원 수속에 앞서 먼저 의사를 만났다. 평소에 지켜야 할 사항이나 응급 시에 취해야 할 행동 등, 이미 달달 외울 정도로 숙지가 되어 있었지만, 의사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연호에게 당부를 했다. 의사를 만나고 나와 원무과로 향하는 연호의 마음은 병원에 올 때보다도 더 떨렸다. 집안에 남아 있는 돈을 다 끌어 모아 퇴원수속을 마친 연호는 동생에게로 가기 전에 아버지가 있는 병실을 먼저 찾아갔다. 그곳에는 간병을 위해 연정이 아침 일찍부터 와 있었다.

 

  “수속은 잘 마쳤니? 의사는 뭐래?”

 

  “항상 똑같은 얘기지, 뭐. 조심, 또 조심. 이것저것 지켜야 할 사항들이 아주 산더미야. 내가 여기 다 기록해놨어.”

 

 연호는 초췌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아버지가 언제 봐도 낯설었다. 평생 건강했던 당신이 이런 모습으로 누워있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다. 힘겹게 항암치료를 받으며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는 상현의 병색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었다. 치료의 효과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조금씩 복수가 차올라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그저 기적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랄뿐이었다. 병문안을 온 집안 어른들이나 친지들은 이제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며, 하나같이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연호는 그런 말에 전혀 동의할 수가 없었다. 동생이 다시 일어날 거라는 믿음처럼, 아버지도 조금만 있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좀처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주무시는 거야?”

 

 연정은 아버지의 손과 팔을 계속 주무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나 먼저 연민이하고 집에 가 있을게. 이따 간병인 오면 교대하고 들어와. 윤지는 선화가 와서 공부도 시키고, 놀아주기도 하면서 잘 봐주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래, 알았어. 너 선화한테 잘해라. 요즘 그런 애가 어디 있니? 괜히 쓸데없는 소리해서 걔 맘 상하게 하지 말고. 잘 모르겠으면 나한테 물어봐, 알았어?”

 

  “아, 몰라!”

 

 연호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병실을 나섰다.

 

 

  상현의 병세는 연호의 믿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었다. 암세포는 이미 그의 몸속 곳곳에 다발성으로 퍼져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했다. 상현은 연민이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마지막 힘을 다해 병마와 싸우고 있었지만,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남매는 좀처럼 엄두가 나질 않아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어느 날, 누워있던 상현이 누가 옆에 있는지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무작정 입을 열었다.

 

  “나 이제 좀..., 집으로..., 집으로 데려다 다오.”

 

 병상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연정은 상현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갑자기 말하는 바람에 더 그랬다. 그녀는 상현의 입 가까이로 귀를 가져간 후에 다시 물었다.

 

  “아버지, 뭐라고? 다시 얘기해 봐.”

 

  “이제 그만..., 그만 집에 가자. 막내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구나.”

 

 그는 연민이가 퇴원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을 직감했는지, 막내딸이 있는 곳으로 가길 원했다. 연정은 더 이상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연민을 보고 싶어 하는 상현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래, 아버지.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연민이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윤지도 할아버지가 너무나 보고 싶대.”

 

 

  올여름엔 그나마 지난 몇 년 중에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누적된 가뭄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마치 헤어졌던 연인을 다시 만나기라도 한 듯 반가워했다. 짧은 여름이 지나고 또다시 춥고 긴 겨울의 문턱에 선 어느 날 아침, 상현은 다른 때보다 이상하리만큼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연호는 일찍 출근했고, 연정은 윤지를 등교시키기 위해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윤지는 학교에 갈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할아버지가 누워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마침 맑은 정신으로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던 상현은 그 옆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윤지와 눈이 마주쳤다. 상현은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를 짓누르는 그 어떤 고통과 병마도 이 순간만큼은 그 아이를 함께 지켜봐 주었다. 상현은 크게 윤지를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마음먹은 대로 나오지 않았다.

 

  “유, 윤지야.”

 

  “어? 할아버지! 나 때문에 깼어? 이제 괜찮은 거야?”

 

 침대 옆 책상에는 아직 다 쓰지 못한 자서전의 원고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연정은 틈틈이 교정을 도왔고, 아버지가 완쾌되면 언제든지 다시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치우질 않았다. 그 옆 테이블 위에는 평생을 함께한, 너무나도 사랑하고 아꼈던 숙희의 젊은 시절 사진이 액자에 담겨있었고, 겨우 피어난 보랏빛 히아신스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윤지는 안방 문을 열고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엄마, 엄마! 빨리 와봐. 할아버지가 날 보고 웃었어!”

 

  “뭐라고?”

 

 연정은 흥분한 윤지의 말에 놀라 급히 상현의 방으로 뛰어갔다.

 

 

  그날 저녁, 오랜만에 상현을 비롯한 남은 가족이 모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밤이 되어 모두들 방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드물게 기분 좋은 밤이었다. 연호는 2층 자신의 방에 동생을 데려다 눕혀 놓았다. 좋은 음질로 하루 종일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며칠 전 1층에 있던 그녀를 옮겨놓았다. 평소에 둘 다 즐겨듣던 음악을 작게 틀어놓았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들이 끝나고 사티의 ‘짐노페디’가 이어져 흐르고 있었다. 음악은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들었고, 밤을 더욱 몽롱하게 만들었다. 연호는 문득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악몽이 이 모든 불행의 전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나지? 꼭두가 나를 선택한 건가? 그놈도 제 죽음을 함께 슬퍼해줄 누군가가 필요해서 날 찾은 건가? 나는 꼭두의 선택을 받은 꼭두각시였던가!’

 

 연호는 연민의 상태를 살피며 음악을 껐다. 완전한 침묵만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저 먼 곳으로부터 전해지는 그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죽음의 저주파 소리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대기의 속삭임 혹은 대지의 노래라고 믿었던 그 소리들은 온 천지로 모두 흩어지고 사라져 그 누구에게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상현은 잠을 자는 도중 몇 번씩이나 숨을 거칠게 내쉬다가 끝내 숨을 거뒀다. 영면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밤은 혼자였고, 오로지 침묵만이 그의 곁을 지킬뿐이었다. 그때, 연정은 무슨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지금 몇 시지?’

 

 뒤척이는 윤지를 토닥이며 다시 눈을 감았다.

 

  ‘잠깐만. 근데 왜 깼지?’

 

 생각해 보니 윤지가 뒤척인 것 때문에 깬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인지 뭔지 헷갈렸지만, 누군가 자신을 부른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들었다.

 

  ‘아버진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가려는 순간, 커튼이 드리워진 창밖으로 낯선 색깔의 빛들이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문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 시각, 연호는 익숙해진 침묵과 고요 속에서 다시 음악을 틀었다. 그 암울한 분위기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마침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티틱, 티-티틱, 티티틱」

 

 들려오는 음악 사이사이로,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연호는 벌떡 일어나 음악을 껐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귀를 기울였다. 뭔가 전기에 타들어가는 것만 같은 소리였다. 대기의 속삭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낯선, 전혀 다른 소리가 그의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틱, 티틱, 틱, 티-티틱」

 

 연호는 창 쪽으로 급히 다가갔다. 뭔지 모를 낯선 빛이 커튼 사이로 강렬하게 비치고 있었다. 서둘러 커튼을 젖혔다. 그 순간, 낯선 빛들은 더욱더 강렬하게 방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연호는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바로 극광, 오로라였다.

 

  ‘오로라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책이나 인터넷으로만 보던 광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장엄하고 신비했다. 고래와 함께 연호가 가장 보고 싶어 하던, 꿈속에서도 동경하던 오로라가 세상을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때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창백하고 앙상했지만, 연민이 멀쩡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초점도 또렷이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연호는 눈을 비비고 고개를 흔들었다. 보고 또 다시 봐도 연민은 틀림없이 자신과 눈을 마주보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소름이 돋고 심장이 떨려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빠!”

 

 연민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연호를 불렀다. 세상 어디에도,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오직 연호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1층에 있던 연정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이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 밤인데 밖이 왜 이렇게 밝아?”

 

 잠에서 깬 윤지가 반쯤 눈을 감고는 목이 잠긴 목소리로 천진하게 물었다. 연정은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저 침묵의 끝, 무한 공간의 끝자락에서 불어 닥친 바람이 태초의 빛과 함께 이 세상을 향하여 세차게 몰아쳤다. 살아있는 모든 것, 아니 형상을 지닌 모든 것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꼭두가 연출한 세상은 여기까지였다. 모든 것은 절멸이었다. 초신성이 만들어낸 바람의 끝과 그 빛은 다시 우주 저 너머 어디론가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맹렬하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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