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의 장례식장. 입구부터 수많은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고, 장례식장 주차장의 공간이 부족할만큼 온통 시끌시끌하다. 일명 합정역 사건. 그 시끄러운 사건의 가해자로 보도된 김현구의 장례식장이다.
언론에는 정확히 피해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분노조절장애를 이기지 못한 한 정신이상자의 무참한 묻지마 살인극으로 알려졌다. 김현구라는 신상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공개됐고, 살아있는 가족들은 먼저 떠난 자의 죄의 모든 짐을 짊어졌다.
3호실, 초라하게 마련된 빈소. 시신도 없는 그 곳엔 남긴 자들의 슬픔과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정면을 본채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현구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상복을 입은 그녀의 아내가 모든 걸 망연자실한 듯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고, 그녀의 앞에는 현구가 어떻게 된 건지 아직 이해하지 못할 나이의 그의 아들이 미니 로봇을 손에 쥐고 놀고 있었다.
"삐-용."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너무 순수한 아이의 것이어서, 이 삭막한 장소와 더욱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빈소 앞에는 경찰 서너 명이 지키고 섰다.
"민준아, 이리와."
여자는 빈소 중앙에 앉아 있던 아이를 자신의 곁으로 불렀다. 그리고 옆에 가만히 앉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 듬었다.
"아빠는?"
아이가 물었다. 역시나 아빠가 죽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구의 아내 현주는 입술을 굳게 물었다. 강해져야 하는데, 아빠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 있게 아빠가 어떤 일을 했든 어떤 일을 겪었든 민준이를 참 사랑했었다고. 자신을 참 사랑해줬던 남편이었다고.
민주는 아직은 남편이 사람을 죽였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다. 아무리 밖에서 힘든 일을 겪고 와도, 자존심이 짓밟히고 자아가 뭉개져도 집에서는 어떻게든 웃으려고 노력했던 남자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 회사 그만둘까?"
그날, 남편은 그런 말을 했었다. 민준이 유치원을 보낼 채비를 하느라 그 말을 넘겨 들은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아마 죽어서도 남편의 그 목소리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얼마나 꾹꾹 묵혀두고, 참아보고 참아보다가 터져나와서 건넸던 말이었을까.
"응? 무슨 소리야 그게? 왜? 또 팀장한테 한 소리 들었어? 그러게, 잘 좀 하지!"
민준이의 입에 밥 한 숟갈 넣어주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그 말이. 남편이 숨겨두다가 꺼내둔 고민이었고, 마음이었는데.
"나 갔다올게."
힘 빠진 그 목소리가 마지막이었다. 민주의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리곤 아무것도 모른 채 미소지은 현구의 얼굴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나 참 못됐다."
그때였다. 밖이 더 소란스러워지더니, 눈이 퉁퉁 부운 한 여자가 나타남과 동시에 빈소 안으로 날달걀 세례가 쏟아졌다.
그 중 몇 개가 현구의 영정에 부딪혀 흘렀다. 넋을 놓고 있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남편의 영정을 가슴에 품었다.
"왜 이러세요, 진짜!"
경찰들이 흥분한 채 빈소를 밀고 오려는 이들을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왜 이래??? 왜 이래?!!!"
막 여자에게 달려들 기세로 한 중년 여성이 들이닥쳤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였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어떻게...."
여자는 분노가 끓어오르는 울음을 삼켜냈다. 경찰 두 명이 중년 여성의 팔을 붙들어 부축했다.
"꼴에 그것도 남편이라고 지키는 거야. 이 괴물아, 내 아들 살려내 내 아들 살려내!!!!!"
현구 아내의 울음과 아들을 잃은 어미의 울음이 한데 뒤엉켰다. 남은 자들이 감당하기엔 각자 너무나 큰 슬픔이자 고통이라는 것이 절절히 느껴지는 울음 소리였다.
현구의 아들도 엄마의 치마자락을 붙들고 옆에서 훌쩍거렸다. 그 모습을 본 여자는 현구 아들에게까지 손가락질을 했다.
"아비가 괴물이면, 지 새끼도 괴물 새끼지. 끔찍한 괴물들. 끔찍한 것들....으흐흑...."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도 보질 못했다.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거란 시신의 모습을 확인한 경찰의 전언이었다.
현구의 아내는 그저 영정을 안고 끅끅대면서 울었다.
평소 개미 한 마리도 휴지로 꾹 누르지 못하고, 그저 밖에다 조심히 던져 버리던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니. 그것도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 남편을 아직 보내주지 못할 것 같다.
"우리 남편 아니에요."
"뭐라고?"
입술을 한 번 꾹 문채 민주가 뱉어낸 말은 여자의 심기를 더욱 건드렸다.
"야 이 살인자야. 뭐라고? 아니라고? 증거가 차고 넘쳤는데 아니야?"
"직접적인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니잖아요. 내 남편도 죽었어요. 내 남편도!"
남편의 시신도 산산조각이 났다. 어떻게 그 사람은 세상을 떠난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장례가 늦어진 것도 남편의 시신을 한조각이라도 더 찾기 위해서였다.
"왜 내 남편만 갖고 그래. 우리 남편은 그럴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민주는 자신을 향한 혐오가 섞인 울음을 터뜨렸다.
"이....이, 미친년이...!!"
여자가 민주를 향해 달려드렀다. 그러자 민준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여자를 붙잡으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곁에 있던 경찰들이 달려들어 막았다.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도 여자를 말렸다.
"이, 이 미친년...! 두번 죽이는 년..!"
"여보...제발 그만해. 그만해....이런다고 지훈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
"지훈이...지훈이....."
여자가 아들의 이름을 되뇌면서 손에 잔뜩 들어간 힘을 풀었다.
"우리 지훈이 좀 살려줘 여보, 나 지훈이가 너무 보고 싶어....보고 싶어 죽을 거 같아..."
여자는 빈소의 바닥에 앉아 엉엉 울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 같은 마음이었다. 그리움의 형벌이었다. 민주는 엉엉 우는 민준이를 챙겨 안아들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게 죄다.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현구의 아내에겐 끝을 모를 막막함이 밀려 들었다.
그때,
빈소의 밖이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다. 기자들이 질문하는 소리와 찰칵거리는 카메라 셔터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또 커졌다.
그리고 복도에서 울리는 선명한 구두발 소리.
한 남자가 빈소 앞에 섰다. 목놓아 울던 중년 여성도 울음을 그치고 놀라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
"늦었습니다. 이정한입니다."
이정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다.
정한은 빈소 안에 있던 자신들의 국민들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 채 그저 그를 바라만 봤다.
정한은 영정사진 조차 놓이지 못한 곳에 국화꽃 한송이를 놓았다. 그리고 잠시 묵념을 했다.
살인자의 빈소에 찾아온 대통령.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여자가 성난듯 외쳤다.
"당신 미쳤어? 여기가 어딘지나 알고 머리를 숙여요?"
그녀의 외침에도 정한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 위로 셀 수 없이 카메라 셔터가 터졌다. 빈소 안이 번쩍거렸다. 시상식을 방불케했다.
정한이 돌아서서 현구의 아내에게 다가섰다.
"유감입니다."
대통령의 그 모습이 고스란이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
"뭐부터 할까요?"
포장마차를 나서는 순간부터 복군은 잔뜩 열의에 찼다.
"나 시키는 건 다 할 수 있어요, 정말!"
"아, 그렇습니까."
시아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내일부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건 어떨까요?"
"네?"
히어로가 무슨 봉사자인 줄 아는 건가.
"좀 더 착하게 살면 힘이 돌아오지 않을까요? 히어로니까요. 히어로는 착한 사람, 착한 사람은 히어로!"
시아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복군은 그새 희망에 찬 듯 자신의 계획을 줄줄 읊었다.
"시아씨가 나한테 말해준 것들 나 하나도 말안해요. 우리 강아지한테도 말 안해요. 그럼 보안유지 레벨도 올라갈 수 있잖아요!"
이미 전국민이 다 봤어, 이 사람아.
복군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나 헬스장 청소도 더 열심히 하고, 내가 관장님한테 끼친 피해 그것도 다 갚고, 길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 있으면 발벗고 도와줄 거예요. 누가 가방이라도 소매치기 하면 지구끝까지 가서 그거 되찾아올 거야 내가."
"아 네..."
이 남자에게 괜한 희망을 심어준 건 아닐까. 시아는 포장마차에서 했던 말들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생각해볼게요. 저도."
"정말요?"
복군이 환히 웃었다. 체구도 작고 말랐는데 남자에게서 가장 빛나는 걸 찾으라면 저 미소쯤은 꼽아줄 수 있겠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했다.
"시아씨가 있어서 든든하네요. 짧게 살더라도 시아씨랑 이렇게 사람들을 도와주는 히어로로 살다가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죽는다. 복군의 입에서 나오는 죽음이라는 말이 담담하면서도 아프게 다가온다. 그래서 다시 힘을 되찾게 도와주겠다는, 그런 말을 내뱉어 버린 것이다.
'나도 내 코가 석자인데.'
시아는 그 말을 끝까지 삼켜냈다. 희망과 기대에 부푼 복군을 위해서였다.
*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으십니까?"
대통령을 향해 한 기자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정한도 물러서지 않는 태도로 대답했다.
"대통령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자립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총책임자로서 하는 말입니다. 19일 합정역에서 일어난 일은 사고가 아닙니다, 사건입니다. 사고엔 가해자가 없습니다. 모두가 피해자일 뿐입니다.
대통령의 말에 민주의 다리에 힘이 쫙 빠졌다. 그녀는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말도 안돼!!"
"미친 거 아니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지금!!!"
가족을 잃은 자들의 절규 섞인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사고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기자가 다시 질문했다.
"지금 그것을 밝힐 순 없습니다만. 저는 지금껏 확신없이 행동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
그의 말에 장례식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에 경악했다. 민주는 자신의 품에 안은 남편의 영정을 바라봤다. 정한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대통령입니다. 단 한 사람도 억울하지 않게 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사고의 원인을 곧 발표하겠습니다. 약속드립니다. 이제껏 제가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는 걸 보신 분은, 아무도 없으실 겁니다."
용인 장례식장. 그 외곽의 허름하고 작은 장례식장에서 급작스럽게 열린 대통령의 담화였다.
그의 말대로 그는 약속한 것은 지키는 대통령이었다. 공약 이행률은 집권 3년차만에 90%를 넘었고, 그를 향한 국정 지지율은 87%로 역대 대통령 중 최고 수준이었다. 물론 이해관계만 따져대는 피도 눈물도 없는 대통령이란 평가는 있었지만 국민들은 피부로 느꼈다. 정한의 취임이 사람들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걸.
그러나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대통령으로서의 사활이 걸린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