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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아이엠 멸치 히어로
작가 : binit
작품등록일 : 2022.2.25

아무리 닭가슴살을 구겨 넣어도, 쇠질을 해도 근육이 영 크질 않는 복군. 트레이너를 꿈꾸는 복군이지만 그에게 허락된 것은 바닥을 쓸고 닦을 마대 자루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췌장암 선고를 받게 되고, 이상한 알림창 하나를 보게 되는데.

"소명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히어로님."

그 이후 일어난 알 수 없는 일들! 2호선의 괴물은 뭐고, 갑자기 나타난 이 여자는 또 뭐야?

"안녕하세요, 캡틴. 만나봬서 반갑습니다."

...뭐라고요? 캡틴?

 
1화 멸치도 밟으면 꿈틀한다
작성일 : 22-02-25 09:25     조회 : 306     추천 : 0     분량 : 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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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이, 좀 비키지?"

 

 한껏 허세가 깃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팔뚝에 진초록의 용을 한 마리 휘감고 있는 살덩이가 보인다. 덩어리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푸짐한 덩치다.

 

 "....나 말입니까?"

 

 그 앞 좌석에 얌전히 앉아 있던 복군은 고개를 들었다. 뱉어낸 말에 비해서는 아주 왜소하고 마른 체격의 소유자다. 걸쳐 입은 반팔티 사이로 앙상한 팔뚝이 드러나 있다. 반팔티 뒤에는 'HERO GYM' 이라고 쓰여 있었다. 저 덩치는 분명 이 칸에서 가장 만만한 자의 앞에 선 것이다.

 

 '지하철 좌석에 이름표라도 있나. 뭘 저렇게 자연스럽게 소유권을 주장해.'

 

 복군은 남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남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복군이 참으로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한쪽으로 비스듬히 올라간 입술의 두께가 돋보였다. 위 아래 입술에도 지방이 가득히 들어찬 듯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복군은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말했다. 그리고는 가느다란 팔을 들어 창에 표시된 글귀를 가리켜 보았다.

 

 '노약자 우선 좌석'

 

 "여기 있는 사람들 백이면 백, 다 붙잡고 물어봐. 이 좌석에 누가 더 잘 어울리는지!"

 

 복군은 목소리를 높였다. 이 소란에 칸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두 남자에게 온통 쏠렸다.

 

 "하, 이 멸치 보소? 여봐. 좋은 말로 헐 때 일어서라?"

 

 남자의 표정에서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 지하철 안의 사람들 중 누구 하나 이 무례한 인간을 말리진 못했다.

 

 이전의 복군이라면 이런 소란이 일기 전에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덩치를 피했을 것이다. 그리곤 다음 역에서 내려 버렸겠지.

 원래 내려야 했던 양 아주 자연스럽게. 왜냐면 세계최강왕멸치 왕복군에게 맞짱이란 단어는 있을 수 없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당당히 노약자석을 주장해야만 한다.

 

 "못 비켜!!!"

 

 복군은 그 자리에 그저 웅크렸다. 콩벌레가 위기에 몸을 말듯 잔뜩 웅크린 모습을 보면서 덩치는 기가 찬 듯 웃었다. 엔간히 해서는 말을 들을 놈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건 이제 자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가 됐다. 고래에게 대항하는 멸치의 등을 한껏 분질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웅크린 멸치 같은 놈에게서 옅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흑...."

 "뭐야 너 우냐?"

 "흑..."

 

 복군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울음이 터졌다.

 

 '사내새끼가 데드 치다가 우는 새끼가 어딨어? 어?'

 

 이 상황에 갑자기 관장의 목소리가 생각날 건 뭐람.

 

 '때려치워라, 때려 쳐. 3년 헬스를 했는데 3대 100도 못 치는 놈이 무슨 트레이너야, 트레이너는!'

 

 눈물이 가득 고인 복군은 자신의 얇은 발목을 바라봤다. 관장님은 늘 복군의 발목이 이쑤시개 같다고 했다. 그의 발목으로 자신의 이빨을 쑤시고 툭 하니, 부러뜨려 휑하고 버려버릴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런 보통의 일상이, 보통의 면박이 왜 지금, 이 순간 생각이 나버린 걸까. 그래서 왜 눈물이 나 버리는 걸까. 저 덩치가 자기 때문에 무서워서 운다고 생각할 게 뻔한데.

 

 타이밍 하나 못 맞추는 눈물 같으니라고.

 

 "쫄리면, 뒤져라 이 찌질한 새끼."

 

 덩치는 거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복군의 눈에서 눈물이 툭 하니 떨어졌다. 그리고 뜨거운 뭔가가 가슴에서 팍-하니 솟아올랐다. 그건 멸치의 심장에선 감히 솟아본 적 없던 '분노'라는 감정이었다.

 

 1시간 전 의사의 담담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췌장암 4기입니다."

 

 의사는 복군의 배를 찍어놓은 CT 사진을 보면서 이건 간이고, 이건 심장이고, 이건 쓸개라고 설명하듯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보이죠? 이게 다 암 덩어리예요. 이미 간과 신장까지 전이가 되고 있는 상황이고요."

 "...그렇군요."

 "어떻게, 항암 치료라도 받아 보시겠어요?"

 

 나 같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봤으면, 저 새하얀 암세포들이 인간을 잡아먹는 걸 얼마나 많이 봤으면.

 

 "받으면, 사나요?"

 "글쎄요...기대는 해볼 수 있겠죠."

 "어떤 기대요?"

 

 의사의 안경 뒤 눈동자에선 일말의 희망이나 기대따윈 볼 수 없었다. 그 말 또한 아주 형식적인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쫄리면 뒤져라.'

 

 안 그래도 뒤질 운명이다. 찌질한 나는 결국 두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암세포에 먹혀서 죽을 운명이다. 안팎으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인생이다.

 

 "야. 이 덩치 새끼야."

 

 복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군의 말에 다른 칸으로 옮기려던 덩치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야아? 새끼이?"

 

 서 있던 사람들이 홍해 갈라지듯 절반으로 갈라졌다. 사람들은 좌석에 더 가까이 붙어섰다. 이건 마치 버진로드 아니, 데스로드를 열어주는 것 같았다. 그 길을 따라 복군은 덩치에게 다가섰다. 어이가 없다는 듯 덩치는 제 자리에 서서 다가오는 복군을 마주하고 있었다. 아주 결연하게 걸었으나 복군의 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덩치에겐 가소로웠다.

 

 "이게 돌았나."

 

 복군은 덩치를 가까이 마주하고 섰다. 그러자마자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덩치의 두꺼운 손이 허공으로 들렸다.

 

 '아플까?'

 

 찰나의 순간, 남자의 손을 보고 복군은 생각했다. 그래도 췌장암보다 아플까.

 

 '맞고 다니지 마! 새끼야. 맞고 다닐 거면 너 그 티셔츠 벗고 맞어.'

 

 관장님은 늘 복군에게 말했다. 'HERO GYM'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날에는 맞지 말라고. 늘 그 티셔츠와 한 몸이 돼서 살아가는 복군이 어디선가 맞으면 자신의 헬스장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것이었다.

 

 복군의 등 뒤엔 고딕체로 또박또박 'HERO GYM'이라고 쓰여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히어로짐의 명예를 위해.

 

 복군은 앙상한 자신의 팔을 들어 올렸다. 맞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이 몸담아온 히어로짐의 명예를 위해서!

 

 '빠각!!'

 

 그 순간 뭔가가 세차게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

 

 그리고 놀랍게도 부러진 쪽은 복군이 아니었다. 팔뚝을 감싸안고 지하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놈은 아파죽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놈은,

 

 "으엑!!! 저 멸치 씨XX밥 새끼가!!"

 

 덩치였다.

 

 "119! 여 119!! 아 빨리 119 부르라고!!!"

 

 덩치는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복군은 믿을 수가 없어 덩치에게 다가섰다. 그러자 덩치가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오, 오지 마! 너 이 새끼 오지 마!"

 

 그 순간 아주 평화롭게 지하철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이번 역은 당산, 당산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면서 복군을 흘긋거렸다. 그 틈에 섞여 덩치도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내려버렸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쏜살같이 도망가 버린 것이다.

 

 다시 지하철은 출발했고, 고요해진 전철 안 복군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았다. 이번엔 좀 다른 시선이었다.

 

 '저 남자, 보기보다 힘이 장사인가 봐?'

 '그러게, 덩치 큰 남자가 쪽도 못 쓰는데?'

 

 뭐가 뭔지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는 복군은 그저 조용히 좌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내린 덕에 노약자석 말고도 자리가 있었다. 복군은 자신이 있던 노약자 우선 좌석으로 가지 않았다. 복군 옆에 앉은 사람은 아주 티가 나게 복군의 반대 방향으로 엉덩이를 조금 들썩여 앉았다.

 

 *

 

 2호선 1702호 칸.

 

 아주 작은 벌레 한 마리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한 남자의 양복 바지 틈으로 설금설금 기어올랐다. 간지러운 듯 손잡이를 잡고 선 남자는 두 번 양복 바지를 털었다. 그때 남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운이 좋다.'

 

 이렇게 붐비는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다니. 자리에 앉아 차가운 손잡이에 머리를 기댄 남자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 사이 벌레는 부지런히 남자의 다리를 올랐고, 허벅지 중간쯤 이르러서는 살을 비집어 들어갔다. 지방층이 두툼한 곳이었다. 그리고 위쪽으로 길이라도 나 있는 듯 거침없이 남자의 몸을 뚫고 갔다.

 

 무자비한 속도로 벌레는 남자의 몸을 갉아 먹어 들어갔다.

 

 "윽...윽!!"

 

 이상한 신음을 내는 남자 곁에 앉아 있던 여자는 남자의 모습에 불쾌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남자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섰다. 남자 옆에 빈자리가 나자, 기다렸다는 듯 서 있던 중년 여성이 자리에 냉큼 앉았다.

 

 벌레는 무섭게 남자의 뇌를 파들어 갔다.

 

 "끕...끕...!"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괴로움의 신음이 남자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중년여성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

 

 복군은 자신의 팔을 들었다. 그리곤 가만-히 살펴보았다. 앙상한 팔뚝엔 기스 하나 나지 않았다. 덩치의 팔과 닿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왜 그 인간의 팔뚝이 뚝 하고 부러져 버린 거지?

 

 그때였다.

 

 [DANGER Lv. 6 감지. 파괴력 EMPOWERED]

 

 '이 창은...분명 아침에 본, 그...그 알림창이다!'

 

 *

 

 그곳은 늘 다니던 길이었다. 늘 같은 시간 그곳을 지났다. 그리고 복군은 눈을 감고도 찾아다닐 그 길 위에 쓰러졌다.

 

 '지각하면, 관장님한테 또 엄청 깨질 텐데.'

 

 천천히 아득한 어둠이 그를 잠식했다. 그렇게 정신을 잃은 복군에게 지난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유독 늘 작고 말랐던 복군은 크고 세지고 싶었다. 크고 강한 남자. 그것이 늘 복군의 꿈이었다.

 

 그것이 헬스를 시작한 이유였다. 차갑고 딱딱한 쇳덩이는 어릴 적부터 멸치, 왕갈비라고 놀림을 받던 자신이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휴식처였다.

 

 벤치에 누워 아치형으로 허리를 만들고 자신의 명치 위에 놓인 차갑고 단단한 막대를 잡노라면, 자신의 모든 근섬유들이 요동치면서 펌핑되는 기분이었다.

 

 터질 것 같은 팔뚝 근육에 근사하게 걸친 쫙 붙는 러닝 나시. 그것이 복군이 늘 꿈에 그렸던 모습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선 모든 나시티가 헐렁거렸다. 아무리 운동을 하고, 닭가슴살이며 소고기며 단백질 쉐이크며 고봉밥이며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들이부어도 몸은 언제나 멸치의 형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신을 잃은 채 눈을 감은 복군의 코에 그동안 먹어왔던 닭가슴살 비린내가 스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속이 메슥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 생에 마지막 순간, 맡게 되는 냄새가 고작 닭가슴살 비린내라니. 난 대체 뭘 위해 살아온 걸까. 평생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면서 살았다. 그리고 이렇게 죽는다.'

 

 이렇게 허무한 인생이 또 있을까. 망망대해를 떼지어 헤엄치는 멸치 떼보다 못한 인생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바다를 헤엄쳐 다녀보기라도 했지.

 

 그때, 칠흑 같은 어둠에 갇힌 그의 앞에 번쩍거리는 네모난 작은 창이 하나 떠올랐다.

 

 [소명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히어로님]

 
작가의 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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