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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안의 그
작가 : 이작송
작품등록일 : 20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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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필름이 끊기도록 마신 다음 날,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내 앞에 나타난 이 남자는……!

 
20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도록
작성일 : 22-02-24 21:28     조회 : 176     추천 : 0     분량 : 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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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닥타닥.

 신아의 타자 소리가 경쾌하게 비서실 안에 울렸다.

 은솔이 모니터를 보고 있는 신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머리며.

 반듯하게 핀 허리며.

 구김 하나 없는 정장이며.

 흐트러짐 하나 없이 시선을 고정한 집중력이며.

 분명 신아 씨가 맞는데.

 

 “신아 씨. 혹시 연애해요?”

 

 고개를 갸우뚱한 은솔이 신아에게 말을 걸었다.

 최근 들어 분위기가 많이 바뀐 신아 씨였다.

 

 “네?”

 

 신아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자판에서 1cm 정도 떨어진 그녀의 손가락이 갈피를 잃어 그 상태로 붕 떠 있다.

 

 “요즘 분위기도 그렇고, 뭔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서요.”

 

 분위기가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잖아.

 눈을 가늘게 뜬 은솔이 신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연애요? 제가?”

 

 신아가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은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은 속여도 내 눈 못 속여요.”

 

 은솔이 씨익 웃었다. 내가 말이야. 이 구역의 연애 탐지가야. 미묘한 기류도 읽어내는 아주 초민감 센서가 내 피에 흐르고 있다고.

 

 “그래서.”

 

 의자에 등을 기대는 그녀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깜빡깜빡. 이게 다 무슨 소리가 싶은 신아가 눈만 깜빡였다.

 

 “회사 사람이에요?”

 “네?”

 

 놀라고 팔짝 뛸 판이었다. 무슨 소리예요. 이게. 신아가 억울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신아 씨 모른 척해도 소용없다고.

 

 “신아 씨 사실 저 어제 봤어요. 신아 씨.”

 “무엇을요?”

 

 일로 와 봐.

 은솔이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원래라면 이런 풍문에 별 관심이 없는 신아였지만, 그 주인공이 나라니.

 신아가 의자를 질질 끌며 은솔에게 다가갔다. 바퀴가 은솔의 구두에 살짝 부딪혔다.

 

 “어제 주차장.”

 

 몸을 굽힌 은솔이 신아만 들릴 수 있는 목소리 크기로 속삭였다. 은솔의 사원증이 달랑거렸다.

 

 “주차장이라뇨 그게…….”

 

 헐? 신아의 눈이 커졌다. 고개를 든 신아와 은솔의 눈이 마주쳤다. 맞네, 맞아. 은솔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신아 씨 보고 인사하려다가 분위기가 조금 그래서 그냥 왔거든요.”

 

 은솔이 웃으며 어제의 모습을 떠올렸다. 퇴근 후 운동 겸 집에 걸어가던 길이었지, 아마.

 익숙한 뒷모습이 보여서 반가운 마음에 인사하려던 것뿐이었는데.

 회사 멀리 떨어진 인근의 외부 주차장,

 신아 앞으로 미끄러지듯 세워진 검은 차량,

 살짝 열린 차 문에서 보인 짧은 머리.

 

 “그냥 인사해도…….”

 

 아차 싶었다. 그 운전석엔 수현이 타고 있었으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도 연애한다고 오해받는 상황에, 수현과 함께 있었다고 하면…….

 

 “아.”

 

 그건 안 되겠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으니. 신아가 질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저 진짜 만나는 사람 없어요.”

 

 손사래까지 치는 그녀를 은솔이 가늘어진 눈으로 바라봤다.

 말 안 해도 다 알아.

 꼭 그녀의 표정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정말 아닌데……”

 “신아 씨.”

 “…….”

 

 은솔은 극구 부정하는 신아가 꽤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거기가 사내 연애 커플들의 성지인 건 알고 있어요?”

 “네? 그게 무슨…….”

 “제가 한창 사내 연애할 때 많이 이용했거든요. 그리고 거기서 다른 직원들도 많이 마주치고.”

 

 신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 이제 그 주차장은 못 가겠다.

 회사 사람들 눈에 띄면 괜히 이상한 소문이 날 게 뻔했던 터라 나름 수를 쓴 거였는데.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짐 옮기는 거 도와주느라 그런 거예요.”

 

 신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거짓말을 워낙 못하는 성격이라 대충 둘러댔는데도, 얼굴이 붉어졌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짐을 왜 옮겨요? 부서 이동하는 건 아닐 테고.”

 “개인적인 문제로 잠시 친구네 집에 신세 지고 있었거든요. 그게 다 해결되어서 어제 짐도 뺐어요.”

 

 은솔이 싱겁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회사 앞까지 데리러 안 오고…….”

 “아……. 그건.”

 

 신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딱히 둘러댈 말이 없었다. 업무에 관한 건 난감한 상황에서도 딱딱 말이 잘만 나오면서, 이런 데에선 유독 임기응변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

 

 띠링.

 

 구세주 같은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저 연락…….”

 “네, 네. 얼른 받으세요.”

 

 은솔아 웃으며 메시지 확인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신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를 끌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좋을 때지, 좋을 때.’

 

 은솔이 신아를 바라보며 웃었다.

 무엇보다 수현과 엮이던 그녀가 연애를 한다는 사실에 안심하는 은솔이었다.

 

 ***

 

 신아가 수현의 집에서 나온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원래대로 돌아오면 이 집을 나오겠다는 조항은 순임을 만난 다음 날 바로 지켰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쟤만 보면 자꾸만 막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단 말이야.’

 

 그날 이후부터, 신아의 심장은 수현만 보면 반응했다.

 그런 신아의 출퇴근길은 흡사 007작전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수현과 우연히 엘리베이터를 같이 탈까 봐 계단을 이용하고, 수현의 목소리가 들리면 황급히 자리를 떴다.

 물론 그런 신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지금 역시도.

 

 - 차 좀 부탁해.

 

 평소엔 은솔이 먼저 나서서 전화를 받아준 덕분에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

 하필이면 지금 은솔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신아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어떤 거로 준비해드릴까요.”

 

 - 저번처럼 차가운 건 말고, 미지근한 거로.

 

 예. 수화기를 내려놓은 신아가 탕비실로 향했다.

 컵을 꺼내고 티를 골랐다. 요즘 들어 잠을 잘못하는 것 같아 심신 안정과 불면증에 효과적인 캐모마일 티를 골랐다.

 충분히 차가 우러나올 수 있도록 신아가 티백을 들었다 놨다가를 반복했다.

 

 “얘 일부러 나한테 복수하는 거 아니야?”

 

 속마음이 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신아가 입을 가리고 주변을 살폈다.

 

 “하.”

 

 다행히 탕비실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창 너머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을 열심히 두들기고 있을 뿐.

 

 일할 땐 물도 입에 안 댄다는 양반이 허구한 날 내선전화로 물 가져다 달라, 커피를 타와 달라 주문을 했다. 그것도 나한테만!

 이거 설마 갑질?

 혹시 신종 직장 내 괴롭힘?

 티백을 젓던 신아의 손이 멈칫했다.

 수현이 그럴 사람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나 때문에 업무가 너무 많아져서 일부러 그러는 거라면 충분히 납득갔다.

 아무리 워커홀릭이라도 예정에 없던 업무들을 계속해서 처리하려면 고통스러울 테지.

 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로.

 후. 한숨을 쉰 신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인은 말이 없습니다.

 괜히 양심이 콕콕 찔렸다.

 

 “부사장님, 들어가겠습니다.”

 

 트레이에 차를 들고 부사장실 앞에 섰다.

 똑똑. 노크하자마자 안에서 “들어와”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수현이 아닌 수현의 앞엔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였다.

 

 ‘설마……. 나 보라고 저렇게 쌓아둔 건 아니겠지?’

 

 콕콕. 양심에 찔린 신아였다.

 신아가 소파에 둘러싸여져 있는 테이블에 유리잔을 내려놓으며 수현을 힐긋 바라봤다.

 

 ‘그새 얼굴이 상했네.’

 

 집을 나온 후로 같이 출퇴근하는 일이 없어졌다지만, 그의 출퇴근 소식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임원 회의와 점심 미팅으로 인해 바쁜 그였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신아가 그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수현이 이렇게까지 바쁜 이유는 몸이 바뀌었을 때 신아가 최대한 모든 일정을 미뤄둔 탓이 분명했으니까.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신아가 수현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아, 아닙니다.”

 

 신아가 굽혔던 몸을 일으켰다. 수현의 시선이 신아의 움직임을 좇았다.

 

 “차는 테이블에 올려두었습니다.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사무적인 그녀의 말투에 수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잠깐만.”

 

 신아가 문고리를 잡았던 손을 멈칫했다. 드르륵. 수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제게 또 부탁하실 일 있으십……!”

 

 등을 돌린 신아가 눈이 커졌다. 어느새 수현이 거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놀란 심장이 쿵, 쿵 뜀박질했다.

 

 “이신아.”

 

 코끝에 익숙한 향이 스쳤다. 언젠가 자신에게도 났던 그 은은한 샴푸 냄새.

 신아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쿵. 부사장실 문과 구두가 부딪혔다.

 더 큰 소란이 나면 안 되는데.

 트레이를 꽉 쥔 신아가 문을 힐긋 쳐다보다가 수현과 눈을 마주했다.

 

 “……!”

 

 아니 그러려고 했다.

 그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지만 않았어도.

 그의 강렬한 눈빛을 마주하지만 않았어도.

 눈을 감은 신아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할 말이 많아.”

 “…….”

 

 눈을 감아도 묵직한 그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무게가 자꾸만 신아의 마음을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도록.

 

 “나 봐.”

 

 나지막한 그의 중저음이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

 “나 좀 봐.”

 

 그가 신아를 달래듯 말했다. 그가 신아의 손을 잡았다. 놀란 신아가 황급히 손을 빼냈다.

 

 “왜 자꾸 피하는 건데.”

 

 그의 목소리에 조금 짜증이 섞였다. 신아는 보이지 않겠지만, 그의 미간은 이미 좁아진 상태였다.

 

 “피한 적 없…….”

 “거짓말.”

 “…….”

 “너 그거 습관이라고 그랬잖아. 나한테 뭐 숨길 때.”

 

 이제는 아예 눈을 감기까지 하고. 수현이 어이가 없어 허, 하고 웃었다.

 

 “아니 진짜 피한 적 없…….”

 

 금방이라도 키스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놀란 신아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팍 숙였다.

 

 “악!”

 

 너무 가까운 탓이었다. 신아의 머리에 코를 부딪친 수현이었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신아가 고개를 들어 수현을 쳐다봤다.

 

 “피, 피!”

 

 기어코 피를 봤다. 신아의 목소리에 수현이 코밑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붉은 액체가 묻어났다.

 

 “…….”

 

 신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테이블 위에 놓인 각휴지를 발견하곤, 신아가 휴지를 여러 장 뽑아 수현에게 다가갔다.

 

 “가만히 있어 봐.”

 

 신아가 수현의 코를 휴지로 감쌌다. 신아가 지혈하기 쉽도록 수현이 살짝 몸을 굽혔다.

 

 “이거 잡고 고개 살짝만 숙이고 있어. ”

 

 침착하게 말했지만, 신아의 속은 시끄러웠다.

 가뜩이나 피로가 누적된 애가 피까지 흘리다니.

 신아가 수현을 조심스레 이끌어 소파에 앉혔다.

 수현의 코를 막고 있는 휴지가 점점 빨갛게 물들자 신아의 얼굴이 점점 창백하게 질렸다.

 

 “잠시만.”

 

 신아가 수현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졌다. 신아가 걸음을 옮겨 문으로 향하려고 했다.

 

 “어디 가.”

 

 한 손으론 코를 잡은 수현이 다른 한 손으론 신아의 팔을 붙잡았다.

 

 “응?”

 

 신아가 수현을 바라봤다. 어디 가냐니. 당연히.

 

 “나 이렇게 만들어 놓고 어디 가려고.”

 “…….”

 

 신아를 응시하는 수현의 눈빛이 강렬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자칫하단 저 맹수 가는 녀석한테 금방 잡아먹힐 정도로.

 

 “네가 가져온 차도 다 아직 안 마셨어.”

 

 수현이 테이블에 놓인 차를 눈으로 한번 슥 쳐다봤다. 어느새 차 색이 좀 더 진해져 있었다.

 

 똑똑똑.

 

 신아가 마치 놀란 토끼처럼 황급히 문을 바라봤다. 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사장님, 김 실장입니다.”

 

 타이밍하고는.

 수현이 꾹꾹 코를 누르며 낮게 읊조렸다.

 

 “들어와.”

 

 마음 같아선 들어오지 말라고, 나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오후에 있을 중요한 미팅 건으로 그럴 수도 없었다.

 수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규가 성큼성큼 부사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수현에게 보고하려는 순간,

 

 “부사장님, 서울지사……. 어?”

 

 놀란 현규가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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