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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안의 그
작가 : 이작송
작품등록일 : 20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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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필름이 끊기도록 마신 다음 날,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내 앞에 나타난 이 남자는……!

 
18화 저 이 결혼 안 해요
작성일 : 22-02-24 21:16     조회 : 178     추천 : 0     분량 : 4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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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몸 위로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놀란 신아가 눈을 번쩍 떴다.

 시선을 내리니 이불을 덮은 배 위에 핏줄 선 팔이 제 배를 끌어안고 있었다.

 

 “맞다.”

 

 나 원수현이랑 잤지. 순간 어젯밤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화르륵 타올랐다.

 신아가 수현의 손을 떼어내며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야 원수현 이제……. 어?”

 

 이상하다. 아니 이상한 건 아닌데……. 신아가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없다, 없어. 볼록 튀어나온 게 전혀 만져지지 않는다, 오히려 매끄럽기까지 한데……. 설마!

 

 신아가 황급히 이불 안을 들여다봤다.

 

 “헐!”

 

 꿈 아니야?

 휘둥그레 눈을 뜬 신아가 이불을 몇 번이나 들쳐 봤다. 그녀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저리 좀 비켜봐!”

 “……윽.”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신아가 거칠게 수현을 밀었다. 찌르르 명치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수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거울 앞에 선 신아가 이리저리 몸을 돌렸다.

 아무리 봐도.

 백번 천번, 아니 만 번을 보라고 해도.

 배 한가운데에 단단히 자리한 복근도

 하체 한가운데에 반듯하게 서 있는 중심도.

 전혀 없었다.

 말 그대로

 

 “진짜 돌아왔어…….”

 

 믿기지 않은 사실에 볼까지 꼬집어 봤지만,

 

 “아야!”

 

 아팠다. 그것도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대박……”

 

 거울을 난생처음 본 사람처럼 코를 거울에 박은 채 얼굴을 살폈다. 그녀의 입에서 흐흐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원수현!”

 

 신아가 휙, 몸을 돌렸다.

 

 “…….”

 “빨리, 빨리! 일어나 봐! 너 지금 한가하게 자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수현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명치의 통증이 사라지니 이제는 귀가 괴로웠다.

 

 “어서!”

 

 인상을 찌푸리며 수현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극심한 두통에 이마를 짚은 그가 고개를 들었다.

 

 “……뭐야.”

 

 비슷한

  거울 앞에 선 인영의 정체가 누구인지 확인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뭐야.”

 

 익숙한 상황이었다. 마치 ‘누구신데, 제 방에서 팬티만 입고 있습니까?’라는 대사를 외쳐야 할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

 

 수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대사를 하기엔 앞엔 거울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 잘 알았다. 게다가 이번엔 팬티조차 입지 않은 나체이기까지 하고.

 

 “우리 돌아왔어! 돌아왔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한 신아가 침대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래 잘됐네.”

 

 수현의 귀가 약간 붉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를 신아가 와락 안았다.

 

 “누나 말 듣기 잘했지?”

 

 잘했다. 정말 잘했는데.

 맨살에 부딪히는 신아의 살결에 수현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들었다.

 신아의 등 위로 수현의 손이 붕 떠 있었다.

 

 “왜? 뭐 불편해?”

 

 신아가 수현에게서 몸을 떼었다. 뭐지. 고개를 든 그녀가 수현을 바라봤다.

 

 “맨살.”

 “응?”

 “우리 지금 아무것도 안 입었다고.”

 

 헉!

 신아가 황급히 수현에게서 몸을 뗐다. 황급히 침대에 뛰어들어 이불을 덮었다.

 

 ***

 

 오후 3시.

 주택가 카페 입구 앞에 고급 세단 한 대가 서 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힐끗 쳐다볼 정도로 이 일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차종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수현이 신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안전벨트를 푸르던 신아의 손이 멈칫했다.

 혼자 갈 수 있다고 했지만, 굳이 태워다주겠다고 한 수현이었다.

 여기서 더 신세를 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차피 이건 자신이 정리해야 할 문제였고.

 신아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됐어. 여기까지 데려다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딸각. 벨트 풀리는 소리와 함께 신아가 차 문을 열었다.

 

 “그럼 간다. 너도 가서 일 보고.”

 

 신아가 미소를 지으며 차 문을 탁, 닫았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내 일이니까, 확실히 끝내려고 몸까지 바꾼 거니까.

 

 “후…….”

 

 신아가 가슴에 손을 올리며 심호흡을 했다.

 긴장감이 서린 얼굴을 한 신아가 카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딸랑. 종소리와 함께 카페의 내부가 드러났다.

 화이트 우드의 인테리어가 전체적으로 깔끔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선반에 있는 책과 테이블 중간중간마다 놓인 식물은 자칫 밋밋할 뻔엔 인테리어에 포인트를 줬다.

 신아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안을 살폈다. 사람이 없는 탓에 몇 번 훑지 않았지만, 한 번에 필담의 엄마인 순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페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순임은 앉아있었다.

 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그녀의 앞자리에 내려앉았다. 그녀는 메뉴판을 천천히 읽어보는 중이었다.

 순임이 신아를 발견하고 손을 살짝 들었다. 여기. 그녀의 음성이 들렸다.

 

 “안녕하세요.”

 

 신아가 의자를 끌고 앉았다. 순임이 신아를 바라봤다.

 

 “얼굴이 더 좋아졌네.”

 

 사근사근한 그녀의 말투에 신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순임이 얇은 연갈색 가디건을 여미며 물었다.

 

 “먼저 시킬까? 새아가 넌 뭐 마실래?”

 

 순임이 신아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평소보다 상냥한 그녀의 태도에 신아가 순임을 바라봤다.

 

 “나는 이미 정해서.”

 

 순임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마침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다가왔다.

 

 “아, 저는 아이스아메리카노요.”

 “아메리카노 2잔 부탁해요. 하나는 시원한 거, 다른 하나는 따뜻한 걸로.”

 

 순임이 주문을 하자마자 신아가 메뉴판을 덮어 옆에 두었다.

 직원이 사라지고 난 후, 조용한 정적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한 달 만에 보는 건가, 우리?”

 

 먼저 그 정적을 깬 건 순임이었다. 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는 통 연락을 안 해서 내가 먼저 만나자고 했어. 불편하진 않았지?”

 

 순임이 넌지시 물어봤다. 말이나 표정이나 필담과 자신이 헤어진 사실을, 순임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아 조필담. 머리가 아팠다.

 

 “아, 네. 괜찮습니다.”

 “괜찮다니, 다행이네. 걱정했는데.”

 

 신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너희 결혼 준비는 잘되어가고 있니?”

 

 이럴 줄 알았다.

 

 “필담이한테 이야기 들었다. 둘이 오해가 좀 있었다며.”

 

 이건 또 무슨 소리? 신아의 미간이 좁아졌다. 때마침 트레이를 들고 직원이 다가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직원이 순임과 신아의 앞에 각각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았다. 고마워요. 순임이 사람 좋은 척 말을 건넸다. 직원이 고개를 꾸벅이고 자리를 비켰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신아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필담이 바람피운 거 아니란다. 필담이 이야기 말 들어보니 평소에 자기가 좀 그 직원을 잘 챙겨줬던 거였다고 하던데. 네가 그 정도는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렴. 필담이 걔가 좀 착하니?”

 

 순임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잔을 들어 후후, 열을 식혔다. 조필담이 착하다고? 어이가 없어서. 아무리 고슴도치도 제 편이라곤 하지만……. 신아가 허, 하고 웃음을 지었다.

 

 “조필담이 그래요? 그냥 도와준 거라고?”

 “얘, 오죽하면 필담이 걔가 나한테 너 좀 만나서 잘 이야기 해달라고하겠니. 이쯤하고 그냥 넘어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순임이 잔을 내려놨다. 잔에 립스틱 자국이 선명히 묻었다.

 

 “젊은 애들 둘이 지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있을 수 있고, 그렇다 보면 또 오해도 생길 수 있지. 결혼 전에 괜히 서로 감정 상하지 말고, 이 기회에 서로 평소에 있던 오해 같은 것도 좀 풀면 좋고.”

 

 허. 어이가 없는 신아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속에 열불이 날 지경이어서.

 탁. 신아가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았다. 커피가 투명한 잔 안에서 출렁였다.

 

 “저 이 결혼 안 해요.”

 “뭐?”

 

 순임이 놀란 눈으로 신아를 바라봤다. 그녀의 손엔 채 입에 닿지 못한 커피잔이 있었다.

 

 “이 말씀 드리려고 나온 거예요. 조필담이 확실히 말씀 안 드렸을까 봐. 근데 역시나 제 예상이 맞았네요.”

 “새아가, 지금 이게 무슨 소리니?”

 

 놀란 순임이 신아를 바라봤다. 신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씀드린 그대로예요, 저 이 결혼 안 해요. 아니 못해요.”

 

 순임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순임이 신아의 손가락을 스윽 살폈다. 없네, 없어. 항상 네 번째 손가락에 끼우고 있던 반지가 없었다.

 

 “필담이 이 녀석을 그냥! 내가 이런 오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말 잘…….”

 “아니요, 안 그러셔도 돼요.”

 

 신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달그락. 신아의 커피잔에 있는 얼음이 살짝 녹아내렸다.

 

 “왜.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니? 어? 나한테, 나한테 다 말해봐라.”

 “…….”

 

 순임이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신아의 손을 잡았다.

 

 “신아야, 우리 지금까지 잘 지내왔잖아. 어?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안 하겠다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순임이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신아를 바라봤다.

 ‘조씨 집안의 귀한 아들내미 장가갑니다.’

 일가친척이 뭐냐. 사돈의 팔촌뿐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필담의 결혼에 대해 말해둔 상태였다.

 이 상황에 갑자기 파혼이라니. 그 난리를 다 피웠는데, 이제 와서 결혼 안 한다고 하면 그 쪽팔림은 모두 순임의 몫이 될 터였다.

 순임이 신아의 손을 쓸어내리며 어떻게든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혹시 내가 너한테 뭐 못 해준 거 있니? 솔직히 나 같은 시어머니도 없다는 거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어?”

 “없죠, 어머니 같은 시어머니.”

 “그렇지?”

 

 순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순임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나 보고 다시 한번 생각…….”

 “어머니.”

 

 신아가 잡힌 손을 슥 빼냈다. 순임이 당황한 얼굴로 손과 신아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직 결혼도 안 한 사이에 매번 연락하셔서 연락 좀 자주 해라, 네 직업이 마음에 안 드니 이직 준비해라 잔소리하시는 것도 모자라 제 SNS 염탐하시는 분은 또 처음 봤어요.”

 “염탐이라니? 그,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오해하잖아!”

 

 얼굴이 새빨개진 순임이 주위를 둘러봤다. 이제 막 들어오는 손님들이 순임의 큰 목소리에 이쪽을 바라봤다.

 

 “네, 너희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겠죠. 그리고 그 너희에는 조씨 집안 며느리는 있어도 이신아는 없었고요.”

 “그럼, 네가 우리 집사람이 되는 일인데 내가 시어머니 될 사람으로 그 정도도 못 하니?”

 

 고개를 휙, 돌린 순임이 신아를 쳐다봤다. 부글부글. 속에서 화를 참는 게 얼굴에 다 드러났다.

 

 “애초에 처음부터 제 직업이 마음에 안 드셔서 낮잡아 보셨잖아요.”

 “그럼 어떤 부모가 남 뒷바라지하는 사람을 반기겠어? 그것도 네가 부모 되어봐라!”

 “저는 그런 편견 있는 부모가 될 생각 전혀 없어요.”

 

 신아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뭐, 뭐! 그럼 내가 지금 편견 있는 부모라는 소리니?”

 

 순임이 커피잔을 잡아 들었다.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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