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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전생을 잊은 그대에게
작가 : 장은한
작품등록일 : 2022.2.15

1,000년을 채워야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는 선녀.
마지막 1년을 남기고 400년 전 너무나 사랑했던 능창대군<이전>의 환생을 보게 된다.

"사람인 내가 선녀인 너를 은애한다고 하였다."
사랑한 기억이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선녀와 전생의 기억이 있을리 없는 두 사람.

"당신을 사랑한다면 믿을 수 있겠어요?"
이번엔 선녀가 먼저 고백을 한다.
"스토커예요?"
이 남자, 전생에서도 잘나가더니 현생에서도 국내 가구 1위 기업인 고원의 본부장이란다. 본부장이 아니라 최현우를 사랑하고 싶지만 선녀의 사랑에는 장벽이 많다. 그 사람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6. 선녀의 인간 생활 적응기_1
작성일 : 22-02-24 20:40     조회 : 188     추천 : 0     분량 : 1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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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에 내려온 선녀는 호숫가 한쪽에 무릎을 안고 앉아 있었다. 괜시리 하늘을 쳐다보기도 미안해 호숫가에 비친 하늘만 바라봤다. 죄를 지은 마음만 들었고 나오는 건 한숨 뿐이었다. 점점 더 몸이 추워지자 호숫가에서 일어나 휴식을 취하던 나무 밑에 앉았다.

 

 “왜 이렇게 춥지?”

 선녀는 손을 모아 양팔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추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손을 모아 입에 대어 입김을 불었지만 따뜻함은 찰나였다.

 

 “아 맞다!”

 선녀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라도 생각났는지 추워서 하얗게 된 손으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서 옷을 꺼내 어깨에 주섬주섬 걸쳤다.

 

 “아, 한결 낫네. 춥다는 게 이런 거구나.”

 선녀는 추운 걸 느낄 일이 없었었다. 그래서 새벽에 땅으로 내려와도 숲에서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는데, 당연하게 느꼈던 일상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선녀는 가방에서 옥황상제가 준 봉두를 꺼냈다. 어깨에 걸친 옷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서는 만원짜리의 지폐와 처음보는 카드가 나왔다.

 

 “이게 뭐야, 주, 민등록, 증?”

 선녀는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카드가 이상하게 보였다. 이름은 신 해수 번호는 950714 – 1231234. 알 수 없는 정체의 번호에 입을 삐죽 내밀었다. 주소는 서울시 어쩌고저쩌고 쓰여 있었지만, 안중에 없었다. 카드와 함께 있던 돈에 눈이 동그래졌다.

 

 “이게 얼마야?”

 두꺼운 만 원짜리에 내적 비명을 질렀다. 지상에는 돈 없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이렇게나 많이 챙겨주다니 감격스러울 뿐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백! 백? 백만 원?”

 처음보는 큰 돈의 등장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 돈이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십만 원으로 집을 사고, 핸드폰도 오만 원이면 사겠지?”

 어린아이처럼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모르는 해수는 두가지를 사도 많이 남을 돈에 마음이 콩닥거렸다. 선녀로 지상에 내려올때마다 사람들이 계속 보고 있는 핸드폰도 신기했는데 드디어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꼭 참고 잠자리에 들려 애썼다. 하지만 설레임과 추위에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동이 트자마자 가방을 싸 산에서 내려갔다.

 

 ***

 

 “서울행 표로 어른 한 장 주세요. 한 시간 뒤로요.”

 돈을 쓰려고 봉투의 입구를 열자 침이 꼴딱 넘어갔다.

 아깝다.

 돈이 이렇게 아까운거였나?

 어렵게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만 원짜리를 하나 내밀었다. 이거면 사고도 남겠지?

 

 “4,600원 더 주셔야 해요.”

 “더 싼 건 없나요?”

 “지금 이것도 일반석이라 저렴하신 거예요. 우등석은 이만 원이 넘어요.”

 “네?”

 반응에 매표소 직원은 이상한 사람이 걸렸구나 싶어 난처했다. 빨리 손님을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럼 그걸로 주세요.”

 해수는 속는 기분이 들었다. 버스표 하나에 무슨 만 원짜리 하나도 넘는지 속상했다. 이래서 집을 살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매표소 직원이 건넨 버스표와 잔돈을 받아든 해수는 떨떠름한 마음으로 국밥집을 향했다.

 

 “아이고! 아가씨! 이번엔 금방 왔네?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네. 잘 계셨어요?”

 다른 때 같으면 앉자마자 주문을 했을 텐데 오늘은 돈을 주고 시켜야 해서 그런지 메뉴판에 눈이 고정됐다.

 

 ‘팔천 원?’

 왜 그동안 먹을 땐 가격표에 눈길이 한 번도 안 본 건지 당황스러웠다. 마지막 국밥 가격을 확인했던 건 한 그릇에 삼천 원 할 때였다. 해수는 애꿏은 손가락만 손톱으로 꾹꾹 눌렀다.

 

 ‘내 돈 쓰는 게 무섭구나. 얼만지도 몰랐어.’

 주문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 너무나 좋아하는 음식이었지만 여기에서도 만 원짜리 한 장을 써버리면 예산 초과였다.

 

 “오늘은 서비스로 줄게. 먹고 가.”

 주방에서 해수를 살피던 주인아주머니는 뚝배기를 꺼내 고기와 국물을 담았다.

 

 “아니에요!”

 “딸 같아서 그래. 기다려.”

 주인아주머니의 큰목소리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이런 게 사람 사는 정이겠지

 

 펄펄끓는 국밥이 해수의 앞에 놓였다. 평소보다 더 푸짐한 양에 괜시리 머쓱해졌다.

 

 “맛있게 먹고 오늘은 그냥 가. 저번부터 한 번 그냥 주고 싶었어.”

 “죄송해서.”

 “뭘 죄송해! 그런 말 말아. 우리 집 십 년 넘은 단골인데! 어떻게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예쁠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 신기하다니깐? 하하하.”

 주인아주머니의 웃음소리에 해수는 괜시리 눈물이 새어 나왔다. 들키지 않으려 국밥을 입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지상에 다니는 동안 물질적으로 신세를 졌다. 자신에게 신경 써주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미안해졌다. 빚을 갚고 다시 올라가야지. 해수는 다짐했다.

 

 ***

 

 해수는 서울에 도착해 현우가 내렸던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가야 할 곳을 생각하면 길을 알려주고 버스가 보이는 선녀의 힘이 없어지자 길을 찾는 데 한참을 애먹었다.

 

 현우의 집을 찾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찾아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주소도 모르는 그곳을 찾는 건 서울에서 김씨 찾는 것보다 더 힘들 터였다.

 

 “죄송한데 북한산 쪽으로 가려면 어떤 버스를 타야 하나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봤다. 몇몇 사람들은 핸드폰을 꺼내며 대뜸 앱을 키라고 말했다.

 

 “제가 핸드폰이 없어서요.”

 해수는 상대방이 하는 말 한 자 한 자를 볼펜으로 손바닥에 적었다.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혹시나 헷갈리지 않을까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힘들게 길을 찾아 현우가 내린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오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았다. 하지만 현우를 만났던 곳을 찾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저녁이 되고 깜깜한 새벽이 되고 술에 취한 사람들이 지나갔다. 선녀는 그 사람들이 무서웠지만, 그 자리를 꾹 지키고 있어야 했다. 이런 일에 무너지면 그를 만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할 것 같았다. 인기척도 잠잠해지자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꾸벅꾸벅 고개를 떨어뜨렸다.

 

 얼마나 잤을까? 흔들거리는 몸에 잠이 깼다.

 

 “아이고 아가씨가 이런 데서 잠을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지나가는 여자가 해수를 흔들어 깨웠다. 비틀거리는 몸과 따뜻한 타인의 손길에 아득히 멀어지던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술을 먹어도 집에서 자야지. 이런 데서 자면 큰일 나요.”

 “네. 네. 감사합니다.”

 해수는 눈을 비비고 게슴츠레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동이 튼 지 얼마 되지 않은 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하아…. 춥다.”

 이틀이나 밖에서 잔 충격으로 온 몸이 아팠다. 추위도 힘들었고 계속 이렇게 밖에서 자다 버스에서처럼 변태에게 봉변을 당할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진짜 큰일 나겠어. 집을 알아봐야지.’

 해수는 힘들게 벤치에서 일어나자 다리의 뻣뻣함이 느껴졌다. 장시간 한 자세로 있었던 몸이 금방 풀어질 리가 없었다. 겨우 비틀거리며 버스정류장을 벗어났다.

 

 터덜터덜 걷기만 했다. 이곳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녀의 힘을 다 빼고 나니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해수는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이 한심했다.

 

 ***

 

 “안녕하세요. 집 좀 알아보러 왔는데요.”

 해수가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온 곳은 한 부동산이었다. 부동산 주인은 손님에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뭘 알아보러 왔어요? 월세, 전세, 아니면 매매?”

 주인은 오늘 첫 손님의 등장에 한껏 기대를 품고 물었지만, 단어의 뜻을 모르는 해수는 멀뚱히 쳐다만볼뿐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럼 예산을 알려줘요. 거기서 알아봐 줄 테니.”

 “십만 원이요.”

 “응? 일억에 십?”

 “아뇨. 그냥 십만 원이요. 아니면 오십만 원까진 괜찮아요.”

 선녀의 말에 부동산 주인은 미간이 찡그려졌다.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첫 손님부터 재수 없는 거 보니 일진이 사나웠다.

 

 “아니 사람 갖고 장난을 치는 것도 어느정도지. 십만 원 갖고 무슨 집을 구한다고!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나가요!”

 “진짜예요. 거짓말 아니에요.”

 “이것 봐요. 아가씨. 찜질방에서 한 달을 자도 십만 원이 넘어요.”

 해수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등이 떠밀려 부동산에서 나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백만 원이면 집도 사고, 핸드폰도 살 줄 알았는데 현실은 냉혹했다.

 

 주린 배를 잡고 한참을 걸어가니 부동산 주인이 말한 찜질방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찜질방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대체 뭘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아까 말로는 잠을 자는 곳이라고 했어.’

 해수는 다시 한번 크게 숨을 쉬고 찜질방을 걸어갔다. 초조한지 계속 입술을 깨물었다. 어렵사리 카운터를 찾았지만 어떤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여자 한 명?”

 카운터에 있는 직원이 먼저 말을 걸었다. 해수는 반가워 고개를 끄덕였다.

 

 “찜질할 거예요? 옷까지 하면 9,000원이에요.”

 직원의 말에 해수는 가방 안 봉투에서 만 원짜리 하나를 꺼냈다. 이틀 사이에 돈을 생각보다 많이 써 봉투를 볼 때마다 우울했다.

 

 해수는 수건과 찜질복을 받아 들고 걸어갔다. 해수가 찜질방으로 가는 길로 곧장 걸어가자 직원이 불러 세웠다.

 

 “옷 갈아입고 가야죠. 여자는 저쪽이요.”

 “아, 네. 고맙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직원이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따뜻한 물이 가득했고 여자들이 모여서 목욕하고 있었다.

 

 “우아, 이런 곳이 있다니….”

 해수는 옷을 벗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 얼마 만에 만나는 따뜻한 물인지 기분이 좋아 어깨를 떨었다. 밤새 몸 안에 가득했던 차가운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목욕을 마치고 찜질복을 입고 찜질방에 입성했다. 이곳은 해수에게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잠을 잘 수 있는 수면실도 있었고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매점도 있었다.

 

 “여기야! 여기가 살 곳이야!”

 해수는 눈이 동그래져 감탄을 했다.

 

 그렇게 해수는 한 달 동안 찜질방에서 지냈다. 찜질방에서 먹고, 마시고, 잠을 자고. 한 달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보내니 찜질방 직원들과 안면이 트여 스스럼없이 인사를 하고 지냈다.

 

 그러면서도 매일 현우를 찾아다니려 안 다녀본 곳이 없었다. 현우의 집과 비슷한 곳을 찾으면 골목 골목을 뒤져 기억과 맞는 곳을 찾으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할 뿐이었다.

 

 “결제해야지?”

 카운터 직원의 말에 해수는 가방에서 봉투를 꺼냈다. 이제 남은 돈이라곤 만원 열장 뿐이었다. 아낀다고 노력했지만 잠자고, 먹는 걸 아끼는 건 숨쉬는 공기를 아끼는 것과 비슷했다.

 

 “얼마라고 하셨죠?”

 “만팔천 원.”

 해수는 착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봉투에서 돈을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안녕히 계세요.”

 “또 올 거면서 무슨 인사를 해.”

 직원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속은 타들어 갔다. 벌써 석 달의 시간 중 한 달을 소득 없이 보내버렸고 돈도 바닥났다. 해수는 찜질방을 나와 터덜터덜 걸었다.

 

 “언니!”

 그때 밖을 나오니 해수의 귀에 쏙 들어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잘못 들었겠지. 무시했다.

 

 “언니!”

 다시 한번 아는 목소리가 들리자 해수는 멈칫했다. 아닐 거야. 아니겠지. 생각했지만 커진 기대는 뒤돌아보게 했다.

 

 “언니!”

 뒤에 있던 건 908년 선녀였다. 908년 선녀는 해수를 꼭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한참을 껴안고 있었다. 복받친 해수는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아는 사람 없이 혼자서 살아간다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너무 좋다. 만나서 너무 좋아.”

 해수는 998년 선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이렇게 반가운 일인 줄 몰랐다. 흥분한 해수는 계속 질문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내려왔어? 허락은 받은 거야? 언제 내려왔어?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만 좀 물어봐요. 대답 좀 듣고 물어봐.”

 “너무 좋아서 그렇지.”

 두 선녀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뻔히 보이는 눈물이지만 서로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말도 마. 인간이 되니깐 뭐 이렇게 애로사항이 많니. 잠도 자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해. 잠자고 밥 먹으면서 일도 하고.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몰라.”

 언니, 언니 하면서 많이 의지했는데 작아진 모습에서 908년 선녀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언니 정말 사람이 다 된 것 같아.”

 “응?”

 “지금 살아야 하는 걸 걱정하고, 사회생활을 걱정하고 있잖아요. 이게 진짜 사람이지 뭐야.”

 998년 선녀의 말에 해수는 위로를 받았다. 한 달 동안 제대로 한 건 하나도 없었다.

 

 “언니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내가 도와주려고 내려왔어.”

 “네가? 날 어떻게? 그리고 상제님 아시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허락받고 내려온거야. 걱정 마. 참! 언니 상제님이 주신 주민등록증 갖고 있지?”

 “응. 있지.”

 선녀는 가방 깊은 곳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냈다. 선녀는 지상에 내려와 이걸 쓸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자, 언니 이거 잘 봐. 여기 서울시 서대문구라고 적힌 곳.”

 “여기가 왜?”

 “어휴. 그러니깐 찜질방에서 살지. 거기가 언니 집이라고.”

 집이라는 단어에 선녀는 눈이 동그래졌다.

 

 “이 주소를 찾아갈 생각 안 했어?”

 “여기 쓰여 있는 건 가짜인 줄 알았지.”

 “그래도 그렇지 천상계에서 처리하는 일이 그렇게 맹탕 같을까요?”

 908년 선녀는 아기 같아진 언니 선녀의 모습에 속상했다. 모든 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던 언니의 모습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두 선녀는 손을 잡고 움직였다. 908년 선녀는 선녀의 힘을 빌려 집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

 

 “우아. 좋다.”

 원룸이었지만 있을 물건은 이미 다 비치되어 있었다.

 

 “이걸 받았으면 열어서 이게 뭔가요? 물어보기라도 하던가. 상제님도 웃겨. 언니가 똘똘해서 다 알 거래요=. 알긴. 알면 길바닥에서 자겠어?”

 908년 선녀의 신세 한탄에 선녀는 그런 적이 있었지 하며 회상했다.

 

 선녀와 해수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그동안 쌓인 얘기를 나눴다. 그동안 하늘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제님에게 어떤 일이 생겼었는지, 누가 왔다 갔었는지까지.

 

 “언니가 없어서 바쁘긴 했지만 그건 그것대로 자리 잡아 가고 있어요.”

 “다행이네.”

 “섭섭하지 않아요? 언니 없이도 되는데?”

 “우리 선녀 수가 얼만데.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일에 대한 욕심은 부려선 안 돼.”

 “그래도 그게 쉽나? 나는 일을 이만큼 하고 있다. 이게 힘인데.”

 “그래서 선녀들한테 일 잘 안 시키는 거야. 그런 거로 싸움 붙을까 봐. 이제 나나 너 같은 몇 년 밖에 안 남은 애들은 싸울 일이 없으니 시키는 거고.”

 “그런가. 하여튼 분위기 뒤숭숭해요.”

 “왜?”

 “900년 이하로 애들이 똘똘 뭉친 느낌?”

 “하루 이틀이야.”

 “근데 그 분위기가 좀 그래요. 언니 없다고 더 분위기가 뭐랄까.”

 “그러지 마! 걔네라고 선녀가 되는 게 쉬웠겠어? 같은 처지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언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

 하지만 해수는 더는 대화가 듣기 싫은 듯 908년 선녀를 외면했다. 선녀끼리 서로 헐뜯는 건 해수가 제일 싫어하는 거였다. 지금은 해수가 999년 선녀로 제일 윗사람이니 통솔이 가능지만 선녀가 1년, 2년 차 시절. 위에 선녀들이 서로 헐뜯고 싸우는 걸 지켜봐야 했었다. 그때마다 선녀는 내가 저 자리에 간다면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꼭꼭 다짐했었다.

 

 “참. 돈 벌어야죠.”

 해수가 얘기를 더 하기 싫어한다는 걸 느낀 908년 선녀가 화제를 돌렸다. 지금 얘기한다고 한들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하늘나라 일에 마음만 쓰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근데 어떻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서 내가 또 하나 준비한 게 있지.”

 “아니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래.”

 “하 참! 이 언니가 이래서 언제 그 남자를 만나서 사랑을 할건데. 배부른 소리 하고 있어!”

 908년 선녀의 일침에 해수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이제 두 달 남았다. 서로 사랑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근데 일을 한다고 해서 현우씨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에휴... 속 터지는 소리. 일단 일을 해야죠. 일을! 사람이 됐으면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선녀는 말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908년 선녀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호오라. 됐네.”

 998년 선녀는 씩 웃으며 눈을 떴다. 그리고 선녀를 웃으며 쳐다봤다.

 

 “언니는 나 없었으면 어쩔 뻔?”

 말이 끝나자마자 908년 선녀는 벌떡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해수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어서 나와요. 뭐해.”

 “어딜 가려고! 너 지금 뭐 봤어?”

 “그냥 따라와요. 내가 언니를 새우잡이 배에 팔기라도 할까.”

 908년 선녀는 뭘 보고 신이 난건지 들떠 집을 나섰다.

 

 908년 선녀가 이끈 곳은 다름 아닌 한 카페였다. 카페 창문에는 “아르바이트를 뽑습니다.”라고 크게 적힌 A4용지가 붙어 있었다.

 

 “나 보고 이런 일을 하란 말이야?”

 “직업에 귀천이 있나? 해야 하면 해야지.”

 “귀천이 아니라 난 커피를 만들어 본 적이 없어.”

 해수는 당황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908년 선녀는 물러서지 않을 작정이었다.

 

 “들어가서 일단 면접이나 봐봐.”

 “어떻게 말하란 거야.”

 해수는 발을 동동 굴렀다. 막상 등 떠밀리니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이래서는 무슨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어서 들어가. 나중에 나한테 고마워서 절할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선녀는 등 떠밀려 들어가면서도 큰 소리를 냈다. 카페 문이 열리고 선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어서 오세요.”

 선녀는 조심조심 카운터로 걸어갔다.

 

 “주문하시겠어요?”

 남자 직원이 친절히 물었다. 선녀의 입은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그게….”

 

 해수의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908년 선녀의 말도 맞았다. 분명 넘어야 할 산이었다.

 

 “아르바이트생 구하신다고 해서 왔습니다. 지원하려고요.”

 “아, 네. 그럼 이쪽으로 앉으세요.”

 남자 직원이 테이블 한쪽으로 안내했다.

 

 “나이가?”

 “아….”

 나이를 계산해야 하는 해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주민등록증에는 97년생으로 적혀있었으니

 

 “스물다섯이요!”

 “아 네. 카페에서 일해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뇨.”

 해수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일 한 적이 없어서 안 되나 보다. 좌절감이 들었다.

 

 “그럼 계산하는 건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뇨.”

 해수의 목소리가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그럼 손님을 안내하고 하는 건.”

 “아뇨.”

 해수는 연신 도리질을 해댔다. 아 끝이구나. 안 되겠다. 좌절이 밀려들었다.

 

 “그래도 열심히 하시려고 여기 찾아오신 거 맞죠?”

 “네! 맞아요.”

 해수는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럼 지금부터 당장 일 배우실수 있으세요?”

 “네! 가능합니다!”

 해수의 눈에선 의욕이 활활 타올랐다. 일을 할 수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다면.

 

 “그럼 좋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저는 조민영 점장이라고 합니다.”

 점장은 해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해수는 우물쭈물했다.

 

 “신해수라고 합니다. 잘 가르쳐 주세요.”

 해수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겨우 악수를 했다. 현우와도 손을 잡아봤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해수는 일어나자마자 일을 시작했다. 가게 내부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손님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알려줘서 좋았다.

 

 점장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앞치마를 두른 해수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908년 선녀를 찾았다.

 

 “이만 갈게요.”

 “벌써?”

 “응. 올라가야죠. 그리고 선물을 하나 숨겨놨으니깐 잘 봐. 눈에 보이지는 않아. 아니다 엄청 잘 보이려나?”

 908년 선녀는 장난스럽게 말하곤 카페를 나섰다. 해수는 떠나가는 908년 선녀를 보며 하염없이 손을 흔들었다. 눈물이 나오려 했지만, 안간힘을 내며 참았다.

 

 ***

 

 “그럼 주문받는 것부터 알려줄게요. 손님이 오시면 인사를 하고….”

 해수는 점장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첫날은 그야말로 공부였다.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하는 주문을 입력 당한 느낌이었다.

 

 일에 녹초가 된 해수는 겨우 집으로 들어와 몸을 뉘었다. 하루 만에 일어난 일들이 너무 많았다. 쉴 새도 없이 금방 잠이 들었다.

 

 ***

 

 “흠흠.”

 해수는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부터 매장을 청소했다. 청소라면 1년 차 선녀부터 죽도록 해온 일이어서 단련이 되어있었다. 어제 점장님은 청소는 잘 한다며 칭찬까지 해줬다. 해수는 흐뭇한 마음이 들어 윤이 나게 테이블을 닦았다.

 

 문이 열리고 짤랑짤랑하는 종소리가 들렸다. 해수는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테이블 닦기를 마무리하고 빠르게 주문받는 곳으로 갔다.

 

 “뭘 드릴까요?”

 해수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첫 손님에게 물었다. 내가 맞는 특별한 첫 번째 손님. 해수는 두고두고 기억해두고 싶었다.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 하나 주세요.”

 손님은 카드를 해수에게 건네줬다. 해수는 아메리카노 주문을 누르고 손님의 카드를 받았다. 하지만 손님은 카드를 잡고 놓지 않았다.

 

 “손님?”

 해수가 고개를 들어 손님을 바라봤다. 손님은 다름 아닌 현우였다.

 

 “너, 스위스?”

 현우의 말에 해수는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현우가 온 것도 모자라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아 119라도 불러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선물을 하나 숨겨놨으니깐 잘 봐.’

 그때 어제 908년 선녀가 얘기 한 말이 생각났다.

 

 그 선물이 현우였구나.

 

 “안녕하세요”

 해수는 당황함을 뒤로하고 부끄럽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진짜 스토커였어?”

 현우는 또다시 갑작스레 나타난 해수가 달갑지 않았다. 뿅 뿅 하고 나타나 정신없게 만드는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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