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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추이기담집
작가 : 이은성
작품등록일 : 2022.2.3

추이꾼에 대해 알고 계시오?
조선팔도 방방곡곡을 떠돌며 기이한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이들을 이르지.
세상에는 사람 이외에도 많은 삶이 사는 법이고, 우리 눈에는 뵈지 않는 삶이 역동하며 제 이야기를 하는 법이라오.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기담 모음집입니다.

rio_siena@naver.com

 
청람 : 간절히 바라는 사람
작성일 : 22-02-23 20:30     조회 : 191     추천 : 0     분량 : 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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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뙤약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날이었다. 따갑게 달아오른 지열에 현기증이 일었다. 사내는 비틀대는 걸음을 붙들고 앞을 보았다. 일렁이는 아지랑이 사이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물결쳤다. 사내는 비척대는 걸음을 이끌고 그림자를 향했다. 도통 닿을 듯 닿지 않는 모양이 신기루와 같았다. 비틀비틀 그림자를 쫓자니 손을 뻗어도 닿지를 않았고 품에 안아도 안기지를 않았다. 사내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러나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불길 속에 달려드는 부나방과도 같이.

 

 

 

 청람晴嵐

 : 간절히 바라는 사람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날입니다.”

 “그렇지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아지랑이는 때로 사람을 홀리기도 한다는군요.”

 “그렇습니까.”

 사내는 픽 웃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답하며 그림을 갈무리했다. 수려하게 새겨진 효孝자 위에 잉어 그림이 역동하였다. 거 참, 혁필화는 그대를 따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 말하는 목소리에 사내는 껄껄대며 소리내어 웃었다.

 “마음에도 없는 말씀은.”

 “허, 누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고? 그대 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줄도 모르시고 말입니다.”

 “누가 들으면 연정이라도 품은 줄을 알겠습니다.”

 “그런 말씀 마시지요.”

 그러다가 문득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아지랑이의 이야기였다.

 “홀려보신 일이 있나봅니다.”

 가만 웃어뵈는 사내의 얼굴에 상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사내가 내민 혁필화를 단단히 품에 넣었다.

 “한낱 떠도는 풍문을요.”

 “세상에 풍문만큼 믿을법한 이야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둥글게 휘는 눈매에는 오묘한 빛이 감돌아 마치 그 무언가 범인은 알지 못하는 세계라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또한 그 눈빛은 기이하게도 그것이 무어인지를 물을 수 없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여 상대는 사내가 웃는 모양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참으로 기이한 양반이었다. 무어라 말하기는 어려우니 분명히 기묘한.

 

 

 

 

 

 사내는 꿈을 꾸었다.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이었다. 어린 아들놈이 두 팔을 벌려 사내의 품에 달려들며 꺄르르 방울처럼 웃어대었다. 사내는 꿈을 꾸었다. 달디 달아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동화야.”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꿈에서 깨었다. 야속하게도 꿈은 눈을 뜨자마자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사내는 자조하듯 미소지었다. 한낱 신기루에 홀리고 말다니.

 이쯤 되고 보니 사내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사내는 장을 돌며 그림을 파는 장돌뱅이 화공이다. 특히 그 솜씨가 가장 빼어난 것은 혁필화인데, 그러한 연유로 사내가 장에 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수려한 글자가 화폭 위로 무지개를 그리고 난 뒤에는 신기하게도 화공의 손길 몇 번에 그 자리에 잉어가 꿈틀대거나 용이 똬리를 틀었다. 만개한 매화가 손 끝으로 톡 건드리면 고개를 떨굴 것처럼 생생하게 피어났고 글자 위에 나란히 올라앉은 새는 금방이라도 지저귀며 날아오를 듯 하였다.

 사내는 그림을 그리며 장을 도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제법 실력이 있는 화공이었으니 그런 사내를 기다리는 이는 열 손가락으로도 다 헤아릴 수가 없을 터였다. 허나 그 중에서도 사내를 가장 기다리는 이는 따로 있었으니,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그의 아내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조금 오래 된 이야기이다.

 사내가 그이를 만난 것은 그저 여느 때와도 같이 장을 돌던 와중이었다. 당시 그이는 어느 영감댁 사모님의 몸종 일을 하는 아이였는데, 영감의 지시로 그 유명하다는 사내의 그림을 사러 온 것이었다.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인연이라면 인연인 만남이었다. 갓 피어오르는 복숭아꽃 같은 두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둘은 처음 마주하는 바로 그 순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에게 반했고, 사내가 마을에 머무는 닷새 남짓을 함께 보냈다.

 사내는 마을을 떠났다. 다음 장이 열리는 날이면 꼭 돌아오겠노라 그이에게 단단히 약속했다. 사내는 한 점의 그림을 그이에게 선물했다. 언제나 사내가 제자리에서 슥삭 그려내던 혁필화는 아니었다. 사내는 그것을 아주 귀한 것이며, 아주 오래간 공들여 그린 것이라 이야기했다. 그이는 그 그림을 아주 소중히 건네받았고, 둘은 그렇게 다음을 기약했다. 사내는 마을을 떠난 뒤에야 그이가 제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쁨에 홀로 눈물을 삼키던 밤이 있었다. 태어난 아이가 사내애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사내는 그 길로 장을 놓아두고 마을로 돌아갔다.

 사내는 이따금 그렇게 제 아내와 아이를 보러 마을로 향하는 일이 있었다. 조급한 마음에 장이 서지 않아도 아내와 아이를 찾곤 하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만날 적마다 훌쩍 자라 있었다. 어린 아이라는 것은 어찌나 기다려주지를 않고 성큼성큼 자라나는 것인지, 사내는 그 곁에 항시 남아줄 수 없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남몰래 눈물을 삼키는 밤이 늘어갔다. 아이가 자라는 것은 어찌나 빠르던지 눈을 깜박일 적마다 성큼 자라있는 것을 따라가기가 도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 손을 제대로 잡아본 적도 없는데 아이는 성큼 자라 엎드려 기기 시작했고, 기기 시작했던 아이는 곧장 걷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 뜨면 다른 아이처럼 빠르게 자라나는 것이 내심 서운하기까지 하였다.

 사내는 그런 꿈을 꾸었다. 어느 새 훌쩍 자란 제 아이가 저를 아버지라 부르며 달려들어 품에 안기는 꿈이었다. 결단코 그럴 리가 없는 꿈이었다. 아이는 아마 아비의 얼굴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할 터였다. 그런데도 그리 간절했다. 저를 향해 달려드는 작은 두 손, 두 발, 앙증맞은 얼굴과 해사한 웃음, 그리도 간절했던 그것. 항시 눈에 담고만 싶었으나 간절히 그리워해도 찾을 수가 없는 바로 그것.

 

 

 

 

 

 “벌써 가려고?”

 “예, 이번에는 좀 이르네요.”

 “그리 바삐 갈 곳이 당췌 어디기에.”

 “집이요.”

 사내는 몹시나 기다리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얼굴 가득 만개한 웃음이 그리도 아름다웠다. 사내는 짐을 단단히 꾸려 채비를 했다. 걸음을 떼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몹시도 더운 어느 날이었다. 하늘은 청명하며 구름 한 점 없이 개었다.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날이었다. 실로 맑은 날이었다. 정신이 청명하고 맑아 무언가에 홀린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맑은 날이었다. 정신이 맑을 뿐 아니라 하늘도 맑았고 공기도 맑았다. 모든 것이 맑았다. 그러니 사내가 알아채지 못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아버지!”

 불러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더니 어린 아이가 이쪽을 향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그 모양이 지나치게 익숙한 탓에 사내는 저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렸다. 그랬더니 달려온 아이는 사내의 품에 안기는 듯 하다가 두 팔을 나풀거리며 저만치 멀어졌다. 곧 코앞에 닿을 것처럼 다가왔다가 멀어지고, 다가왔다가 또 멀어지는 모양에 사내는 애가 닳았다. 어디 애가 닳을 뿐인가, 목이 타고 가슴이 저려왔다. 아이는 그것을 아는 지 모르는 지 그저 다가왔다 멀어지고, 또 손이 닿을 만치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것이었다. 손을 뻗어도 닿지를 않았고 품에 안아도 안기지를 않았다. 그것이 허상인 줄도 모르고 쫓았다. 사내는 제 처지가 가여운 줄도 몰랐다. 동화야, 나의 동화야. 사내는 손을 뻗었다. 저 아이가 제 품에 안기기를 바랐다. 간절히 원하던 나의 아들, 나의 아이, 나의 동화야.

 그러다 문득, 어느 순간, 사내는 말간 유막과 같은 것을 찢어내는 기분을 느꼈다. 투명하여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을 뚫고, 벽을 넘어선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다. 그것이 다만 기우일 것이라 여기고 넘겼다. 그럴 뿐이었다. 사내에게 중한 것은 제 앞에서 일렁이는 아이의 그림자 뿐이었다. 저가 홀린 줄도 몰랐다. 누군가 보았더라면 사내를 뜯어 말렸을 것을, 안타깝게도 그 날은 지나는 이조차도 없는 날이었다. 사내는 막을 찢었다. 그 너머로 넘어갔다.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내도, 아이도, 지나는 그 어떤 이도.

 

 

 

 

 

 “엄마, 아버지는 언제 오셔요?”

 “열 밤만 더 자면 오시지.”

 “저번에두 그렇게 말씀 하셨는걸요.”

 여인은 가만히 웃었다.

 “오실 거란다. 우리 동화가 딱 열 밤만 더 착하게 지낸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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