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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안의 그
작가 : 이작송
작품등록일 : 20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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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필름이 끊기도록 마신 다음 날,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내 앞에 나타난 이 남자는……!

 
16화 막무가내 그놈
작성일 : 22-02-23 11:47     조회 : 183     추천 : 0     분량 : 4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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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은솔은 손목을 살짝 걷고 시계를 확인했다. 앞으로 30분. 퇴근이 코앞이었다.

 은솔이 방금 커피를 막 탄 종이컵을 들고 탕비실을 빠져나왔다.

 

 ‘아.’

 

 그녀가 다시 발걸음을 돌려 탕비실로 향했다.

 새 종이컵을 꺼내 믹스커피를 탈탈 털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 두 개를 들고나온 은솔이 향하는 곳은 수현의 자리였다.

 

 “신아 씨, 이거.”

 

 수현이 고개를 들어 은솔을 바라봤다. 의아한 얼굴이었지만, 은솔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부사장님이랑 외부 업무 보러 나간다면서요.”

 

 그녀의 음성에 수현이 아, 소리를 내며 커피를 받았다.

 의자를 당겨 앉은 은솔이 안쓰러운 눈으로 수현을 바라봤다. 수현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괜찮아요?”

 

 커피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의 고개가 서서히 은솔의 쪽으로 돌아갔다. 흥미 없는 이야기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 그였다.

 

 “뭐가 말입니까?”

 

 미간이 살짝 좁아진 수현이었다.

 

 “부사장님이랑 단둘이서만 있으면요.”

 

 커피를 홀짝인 은솔이 수현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종이컵 둘레에 코랄색 립스틱이 묻었다.

 

 “그냥 그렇습니다.”

 “진짜 그게 다예요?”

 

 은솔의 얼굴이 순간 편안해졌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에 수현이 눈썹을 들썩였다.

 

 “이건 왜 묻습니까?”

 “실장님 말고, 그것도 여성분을 다른 사람을 수행비서로 둔 건 처음 봐서요.”

 

 은솔이 일한 이후, 쭉 현규만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말씀하세요.”

 

 우물쭈물하고 있는 은솔에게 수현이 먼저 말을 걸었다. 은솔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고…….”

 

 수현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이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슬쩍 그의 눈치를 살피던 그녀가 수현의 날카로운 눈빛에 당황한 나머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미안해요,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니었어요.”

 

 딱 봐도 이상한데 무슨 의미?

 호기롭게 물어본 것치곤 변명이 시시했다. 수현이 모니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듣기론 실장님 오시기 전에 한 달에 한 번씩 비서가 바뀌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것도 여자 비서들만요. 그래서 신아 씨가 걱정되기도 하고…….”

 

 은솔이 수현의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수현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허, 하고 웃었다.

 소문은 와전되기 마련이었다.

 자신의 곁을 지나쳐간 비서는 여비서뿐만 아니라 남비서도 있었으니까.

 비서가 바뀐 이유는 간단했다. 일을 수현의 기대치만큼 하지 못해서.

 

 “……혹시 부사장님이랑 일하는 거 불편하면 제가 대신 갈까요?”

 

 왜 그쪽이?

 은솔을 바라보는 수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말을 꺼낸 은솔의 볼이 살짝 붉어져있었다.

 

 “괜찮습니다. 누군가에게 일을 맡길 만큼 일이 고되지도 않고요.”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 수현이 냉랭하게 대답했다.

 

 “아, 네네. 당연하죠. 신아 씨 일 잘하시잖아요. 물론 부사장님도 일 잘하시고, 어, 뭐더라, 그 여자관계도, 제가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아니 직접 경험하면 큰일 나죠!, 아니 이런 의미가 아닌데…….”

 

 누가 봐도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한 꼴이었다. 수현이 팔목을 걷어 시계를 확인했다. 주위에선 하나둘 퇴근 준비로 부산스러웠다.

 

 “네. 무슨 말인지 이해 갔습니다.”

 “하하.”

 “퇴근 준비 안 하십니까.”

 

 수현이 고개를 들어 떨떠름한 표정으로 은솔을 바라봤다.

 

 ***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비서실 내부는 조용해졌다. 마지막으로 은솔이 나간 후, 혼자 남은 수현이 신아 대신 중요한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

 

 “다 갔어?”

 

 부사장실 문이 열렸다. 신아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주변을 살폈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수현이 뒤를 쳐다봤다.

 

 “아까 다 갔어.”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수현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후, 다행이다.”

 

 신아가 한숨을 돌렸다. 누구야 일찍 퇴근하라고 한 사람. 그제야 떠올랐다. 아! 나구나. 역시. 신아가 후후 웃음을 흘렸다. 완전 칭찬해.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

 

 어느새 야무지게 가방을 챙겨 든 수현이 집무실 문을 붙잡고 서 있었다.

 

 “악!”

 

 깜짝 놀란 신아가 넘어졌다.

 찌르르한 통증이 꼬리뼈를 타고 올라왔다. 신아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이고. 뒤늦게 곡소리가 입에서 나왔다.

 

 “괜찮아?”

 

 신아의 앞으로 여리여리한 손이 다가왔다.

 신아가 손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어. 그러다 너도 넘어져.”

 

 엉덩이를 어루만지는 신아가 수현을 째려봤다.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통증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몸 주인은 쟨데 왜 내가 아파야 해? 엉덩이를 문지르며 신아는 생각했다.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수현이 층을 뻗어 1층을 누르자 숫자 ‘1’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언제까지 내 엉덩이를 만지고 있을 거야?”

 

 신아의 손이 그대로 얼었다. 신아의 얼굴이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게 다 너, 너 때문이잖아!”

 

 한번 수현을 째려본 신아가 괜스레 고개를 들어 엘리베이터 층을 바라봤다. 11, 10, 9, 8……. 제발 이대로 아무도 타지 마라, 아무도.

 

 “이신아.”

 

 신아를 따라 엘리베이터 층을 바라보던 수현이 입을 열었다.

 

 “왜.”

 “지금 이 상태로 갈 거야?”

 “왜, 너 뭐 어디 들려야 해?”

 “그건 아니고.”

 

 일식집 말이야. 수현이 고개를 돌려 신아를 바라봤다. 여전히 시선을 층수에 고정한 신아가 잘 듣고 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하나도 빠짐없이 똑같이 하자고 그랬잖아.”

 

 그랬지.

 

 “그럼 그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신아가 눈을 크게 떴다. 휙,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수현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띵,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황급히 신아가 뛰쳐나갔다.

 

 ***

 

 일식집 앞.

 ‘진영’ 식당이란 로고 위로 보름달이 떠 있었다.

 9년 만의 슈퍼문. 그 위엄에 걸맞게 크고 밝았다.

 

 옷을 갈아입은 두 사람이 입구 앞에 서 있었다.

 검은 미니 원피스와 깔끔한 블랙 정장.

 두 사람 모두 입은 옷이 어색한 듯, 애꿎은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들어가자.”

 

 수현이 발을 떼는 순간,

 

 “자, 잠깐!”

 

 신아가 그를 불러 세웠다. 수현이 몸을 돌려 신아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말투만 보면 싸가지없다고 느끼겠지만,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나긋나긋했다.

 

 “긴장되어서.”

 

 신아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수현이 실소를 지었다.

 

 “됐다. 가자!”

 

 신아가 수현을 앞질러 입구로 향했다.

 자동문이 팔을 벌리듯 열렸다.

 

 “사람이 많은데?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야?”

 

  고급스러운 장식이 눈에 띄는 내부는 조용했지만, 사람들의 대기 줄은 꽤 길었다. 당황한 신아가 수현을 바라봤다.

 

 “그럴지도 모르겠네.”

 

 주위를 둘러본 수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다. 예약하지 않은 우리의 탓이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리만 정확히 알았어도 예약했을 텐데, 그렇지?”

 

 자리의 위치. 기억나는 건 그게 전부였다. 전화상 설명하기에는 애매했다. 게다가 신아는 함께 마셨던 룸의 위치를 알콜과 함께 날려버렸으니.

 

 수현의 얼굴을 알아본 매니저가 신아의 곁으로 다가왔다.

 

 “부, 부사장님! 연락도 없이 어쩐 일로.”

 “어, 어 그게…….”

 

 신아가 힐긋 수현을 바라봤다.

 

 “아, 알겠습니다.”

 

 무엇을 알았다는 거죠?

 매니저는 그 눈짓을 ‘애인과 함께 식사하러 왔습니다.’라고 이해한 듯싶었다. 수현을 힐끗 바라본 매니저가 신아와 수현 이끌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잠시만.”

 

 수현의 말에 매니저와 그를 따라가던 신아의 발걸음이 멈췄다.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돌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네 개의 눈동자가 모두 수현을 향했다. 수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방은 우리가 직접 선택하고 싶은데 말입니다.”

 

 정중하지만 단호했다. 그의 말에 매니저가 난처한 듯 신아를 슬쩍 바라봤다.

 

 “현재 VIP석도 거의 만석이어서……. 혹시 원하시는 룸 번호가 있으십니까?”

 “그건…….”

 “일단 좀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뭐? 어딜? 신아가 경악하며 수현을 바라봤다. 설마 식사하는 손님들의 방문을 열어 직접 확인하겠다는 뜻은 아니겠지?

 

 “네? 어디를 둘러보시겠다는 건지…….”

 

 매니저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매니저도 신아와 같은 생각인 듯싶었다.

 

 “자리 말입니다, 자리.”

 수현이 매니저의 어깨너머를 기웃거렸다. 발걸음을 뗀 그의 움직임을 좇는 매니저가 다급해졌다.

 

 “그건……. 곤란합니다. 다른 손님들의 식사를 방해할 수는 없, 습니다.”

 

 매니저가 수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수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 눈빛이 너무 날카로워 매니저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게 왜 방해입니까?”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수현이 말했다.

 

 이 자식이 지금 누굴 진상손님으로 만들려고!

 수현을 한번 째려본 신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리 신이라도 이건 알겠지만.

 

 “하하하, 언제쯤 자리가 날 수 있는지 알 수 있나요?”

 

 신아가 지금 상황에서 꺼낼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질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손님들의 식사 시간까지는 저희가…….”

 

 매니저 님 잘못 아니에요. 사과 안 하셔도 돼요. 그건 당연한 거죠.

 

 “하하, 그럼 다른 자리라도.”

 

 신아가 입꼬리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입주변으로 잘게 경련이 일어났다.

 

 “꼭 그곳에서 먹어야 한다며.”

 “으, 즈용흐 흐.”

 

 신아가 팔꿈치로 툭툭, 수현의 팔을 쳤다. 그건 맞지만! 지금 상황이……!

 놀라 뒤집어지는 신아의 속도 모르고 수현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굳이 이 옷을 입고, 이 시간에, 이 장소로 왔잖아.”

 

 그가 힘주어 ‘이 옷’, ‘이 시간’, ‘이 장소’를 강조해 말했다. 매니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래도 지금 자리가 없다는데…….”

 

 신아가 힐긋 매니저를 바라봤다. 그의 동공이 경련을 일으킨 듯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수현이 신아의 옆을 스윽, 지나간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눈앞에서 물건을 도둑맞은 사람처럼 신아와 매니저가 멍한 얼굴로 수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복도를 걷는 그가 순식간에 코너를 돌았다. 눈에 담기는 건 새하얀 벽면이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는 순간, 어안이 벙벙한 매니저의 얼굴이 보이고…….

 

 “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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