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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드래곤 거세하기
작가 : 라떼밀르
작품등록일 : 2022.2.18

돼지 불알 까던 거세사. 공화국 최강의 드래곤 불알까기 마스터가 되다.

 
8.패트릭, 바늘의 랩소디
작성일 : 22-02-22 20:08     조회 : 246     추천 : 1     분량 : 9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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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패트릭, 바늘의 랩소디

 

 - 일러두기 -

 

 독자들은 나를 용서하기 바란다. 괴룡 에피메테우스에 맞선 궁드르디 일행의 놀라운 무용담과 기상천외한 작전의 결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성(聖) 패트릭 전설]에 대한 진상을 짚고할 지점에 이르렀다.

 

 다소 유장한 이야기나 꼭 알아야 할 전사(前事)니 양해를 구한다. 궁드르디의 모험담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성 패트릭 축일]의 유래가 된 패트릭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패트릭은 천년 전, 대륙 서쪽에 인간이 정착할 즈음 일루리사트를 개척한 전설 속 인물로 옛 뱀 [실버 서펀트]의 머리를 으깬 영웅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슈타이너가 집요하게 고대 문헌과 유물, 구술(口述)을 수집 분석한 결과, 이 사건의 전말은 꽤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품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슈타이너가 남긴 [패트릭 전설의 전말과 <옛 뱀을 위한 애가(哀歌)> 악보 분석]의 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때문에 여기서는 정사인 [역대기]를 기준으로 본기와 열전의 내용들을 조합해 좀 더 문학적인 수사를 가미했음을 일러둔다.

 

 ******************************************************************************************************

 

 [패트릭 전설, <옛 뱀을 위한 애가>의 기원 분석]

 - 안더레흐트 데 슈바르츠 슈타이너 -

 

 패트릭은 무인지경 피오르드 대협곡을 가로질렀다. 가죽신 밑창은 몇 년 째 진흙이나 얼룩 하나 없이 깨끗했다.

 

 맨땅을 밟아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인생의 절반을 노새와 나귀, 백작부인의 백마, 그리고 영주와 귀족들의 버금 수레 위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대상인의 잔칫상과 황제의 하렘, 그리고 원정 도중 죽어가던 사령관의 침실에서 보냈다.

 

 길 위의 인생이었다. 전쟁과 기근이 넘치는 시대에 태어났으되 한 켤레 가죽신에 의지해 가보지 않은 곳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도 없었다.

 

 그는 당대, 어쩌면 인간이 성대를 갖게 된 이후 최고의 음유시인이었으며 앞으로 천 년이 지나면 ‘성(聖)’이라는 거창한 수식이 붙을 실로 복된 인간이었다.

 

 「이곳이 <핑갈의 동굴>인가.」

 

 한사코 말리던 유목왕 칼레바의 권유를 뿌리치고 노래 삯으로 받은 명마 '아칼-테케'에 의지해 꼬박 두 달을 달려 서쪽 끝인 여기까지 왔다. 동굴의 모양과 규모는 시인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핑갈의 동굴은 대륙 서쪽 끝 수목 한계선 너머 산맥 깊숙한 곳에 있었다. 동굴 전체가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처럼 수백 만 개의 주상절리로 되어 있었다. 주름진 벽과 깊숙이 뚫린 동굴이 소리를 최상으로 증폭시키는 천연 울림통이었다.

 

 패트릭은 오랜만에 맨땅에 발을 디뎠다. 젖은 화산재가 신발을 더럽혔지만 상관없었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며 안장 뒤 가죽 주머니에서 칸텔레를 꺼냈다.

 

 딩. 딩. 딩.

 

 어린 숫양의 창자로 만든 현이 습기를 머금고 늘어져 있어 근음을 쳐가며 조율을 했다. 그 때마다 소리를 빨아들인 동굴의 심연은 다시 수백 배 풍성한 울림으로 음을 되돌려주었다.

 

 그는 마침내 인생 최후의 노래를 부를 곳을 찾았다 생각했다.

 

 ‘무엇을 부를 것인가.’

 

 가장 뛰어난 음유시인도 세 가지 이상의 레퍼토리를 갖는 건 불가능하다. 가장 짧은 발라드인 [릴쟈와 유쾌한 집시들의 노래]같은 저속하고 대중친화적인 곡도 완창에 꼬박 이틀이 걸렸다. 거창한 신화인 [이그드라실 찬가]나 거인설화 [우라노스]등 동방제국 절대군주들이 선호하는 대서사시는 한 달 밤을 매일 불러야할 정도로 방대했다.

 

 왕들은 변덕스러웠다.

 

 이야기에 취해 산해진미와 미녀들을 베풀다가도 가사를 잊거나 표현력이 예전 음유시인보다 못하다 싶으면 혀를 뽑고 눈알을 지졌다. 사정이 이러니 레퍼토리를 평생 한 편도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하고 비명횡사하는 이류시인들이 차고 넘쳤다.

 

 하지만 패트릭은 신의 은총을 입은 자였다.

 

 '신이 주신 재능으로 가장 완벽한 노래를 완성하고 말리라.'

 

 하지만 수명과 체력도 고려해야 한다. 먹지도 자지도 않는다면 열흘 밤이라도 [이그드라실 찬가]나 [우라노스]를 완창할 수 있다. 하지만 추위와 배고픔으로 의식이 흐려지고 목소리가 갈라진다면 무슨 소용인가? 그것은 창조주와 자연에 대한 모독이다.

 

 그렇다면 [물레방앗간 처녀들의 노래]나 [블랙스미스에게 고함]을 부르는 건 어떨까?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고안된 플롯과 안일한 해피엔딩으로 생의 진실과 비밀을 은폐하는 통속적인 작품이 아닌가!

 

 ‘부르는 순간은 물론 나도 즐겁지.’

 

 연주 때마다 즐거웠던 작품들이다. 하지만 곡이 끝나면? 깊고 깊은 핑갈의 동굴 입구를 마주한 채 느끼게 될 마음 속 심연의 허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영웅서사는 어떤가? 황금의 시대와 은의 시대, 청동의 시대를 거치며 용맹과 정의, 질서를 수호했다는 자들의 이야기. [사냥꾼 니므롯], [두발카인의 모루], [학살자 라멕]이 있지 않은가.

 

 아니다. 그것도 왔다가 사라지는 안개요, 서리 맞아 시든 푸른 채소, 바람을 움켜쥐려는 것과 같이 허탄한 필멸자들의 넋두리일 뿐.

 

 ‘영웅의 이름은 남았으되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그 고명한 이름들이 사실 이름조차 잊힌 자들의 공을 가로채고 시체 가운데 버려진 왕의 면류관을 훔쳐 얻은 거짓 용명이라면?

 

 패트릭의 기교와 플롯이 아름다울수록 절창은 그 거짓에 비례해 우스꽝스러운 울림이 되고 왁스를 머금고 떨리는 칸텔레의 진동은 가증한 헐떡거림이 될 것이다.

 

 천년을 하루같이 짧게 여길 조물주와 억 겹의 세월을 침묵으로 응답하는 자연 앞에서 영웅찬가는 죽은 당나귀가 방귀를 뀌는 소리보다 터무니없고 하찮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위대한 천재인 패트릭은 이처럼 셀 수 없이 많은 레퍼토리를 가슴에 품고 있지만 막상 죽음을 앞두고 신 앞에 올릴 ‘완벽한 노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옛 뱀을 위한 애가(哀歌)]를 부르리라.’

 

 

 [옛 뱀을 위한 애가(哀歌)]는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전인미답의 곡조였다.수십 년간 패트릭의 가슴 속에서만 달궈졌다가 이내 목젖과 혓바닥을 맴돌며 식어버리기를 반복해온 애가.

 

 혈기왕성한 시절에는 부도덕한 사제와 음탕한 영주의 폭정에 시달리는 곳에 머물 때마다 허파 깊숙이 빨아들인 아편 연기에 힘입어 이 불온하고 위험한 미완의 탄식을 입 밖으로 내뱉으려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광장 모퉁이에 걸린 마녀사냥 희생자들과 참수된 이교도들의 굳게 다문 입술을 마주하면 패트릭의 의분은 다시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중년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동방 황제의 궁전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이 묵시(默示)를 읊으려 했었다. 그러나 황제의 식탁 아래에서 손발이 잘린 채 부스러기를 주워 먹던 점령지 왕들의 비참한 말로를 목도하자마자 패트릭의 의분은 황제가 권하는 포도주에 뒤섞였다. 분노는 비굴한 피가 되고 타협의 살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늙었다.더 이상은 미룰 수 없었다.

 

 「옛 뱀에게 고하노라.」

 

 마침내 패트릭의 입술이 열렸다. 바람마저 숨죽인 채 그의 노래를 들었다. 공기의 떨림이 핑갈의 동굴 깊이 빨려 들어가 수백 배 큰 울림으로 대기 중에 거대한 해일을 만들며 퍼졌 나갔다.

 

 그것은 어둠속에 토해내는 인류 전체에 대한 고해(告解)이자 타오르는 번제(燔祭)였다. 배덕과 음란, 탐욕과 살인, 미혹과 우둔함에 대한 탄식이자 오랜 원수인 옛 뱀을 피고석에 앉힌 뒤 인류를 변호하는 장대한 웅변이었다.

 

 배심원석에 앉아 계실 창조주를 향한 열렬한 호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역사를 보는 시인의 유권해석이자 원죄(原罪)에 대한 사형선고였다. [음녀의 자궁]이라 불리는 분지에서 부르기 더없이 어울리는 유작이 아닌가!

 

 「찬란하던 너 아침 계명성아, 버금 수레를 하찮게 여기던 지혜의 화신아, 어찌하여 흙을 먹고 배로 기어가는 자가 되었는가.」

 

 패트릭은 대륙 곳곳을 떠돌며 각 민족의 옛 노래들을 수집하고 잊힌 고대의 단어들을 복구해왔다. 그리고 모든 민족과 족속들에게 펴져있는 ‘오래된 뱀’과 ‘태초의 나무’에 대한 설화를 주목했다.

 

 각 민족들은 그것을 옛 뱀, 원수, 티아마트, 사르피니, 서펀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고 태초의 나무는 세계수(世界樹). 생명나무, 신단수, 이그드라실, 이르민술 등 수많은 이름으로 변형해 불렀다.

 

 하지만 상서로운 모습이든 저주의 형상화이든 모든 이야기에 등장하는 옛 뱀이 인류에게 준 선물 한결 같았다. 필멸. 죽음이었다. 각 민족의 설화 속에서 뱀은 세계수의 뿌리와 함께 시작됐으며 철저히 인간을 농락했다.

 

 시인은 누군가가 그런 옛 뱀의 머리를 밟아 버리기를 바랐다. 똬리 튼 원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인류를 향한 뱀의 미혹과 어리석음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주기를 염원하며 노래를 읊었다.

 

 시카루트(순록이 털이 빠지는 달) 마지막 일에 시작한 패트릭의 노래는 만월이 뜨는 날이 되어서야 끝났다. 장장 보름 밤낮을 쉬지 않고 완주해낸 것이다. 가끔 헥센바인을 몇 모금씩 마시며 몽환적인 기분에 취한 탓에 피로와 배고픔을 잊은 채 대장정을 마칠 수 있었다.

 

 「다 이루었구나.」

 

 오직 신은 알고 계시리라. 역사상 가장 완벽했던 노래가, 문명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곳 북극 수목 한계선 어딘가의 동굴 앞에서 보름 밤낮에 걸쳐 울려 퍼졌다는 사실을.

 

 사흘째 밤 [울프헤딘들의 원정의 장(章)]을 부를 때 협곡 어딘가에서 마중물처럼 울부짖던 늑대들도 그의 노래를 기억해 줄 것이다.

 

 대장정을 끝낸 패트릭은 기력이 쇠해 그대로 자리에 무너져 내리듯 주저앉았다. 아끼던 칸텔레가 화산암에 떨어지면서 줄 몇 개가 끊어졌다. 오랜 시간 식음을 전폐한 탓에 괴혈병 증세가 나타났다. 잇몸을 마른 혀로 핥아 나가자 앞니 앞에서 피 맛이 났다. 숨 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옛 뱀의 머리를 밟고 인류를 구원하는 거창한 노래를 만들었으되 정작 내 몸뚱이 하나 건사 못하는 꼴이라니.’

 

 배고픔과 피로로 눈이 흐릿해졌다.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최후까지 동굴의 어둠을 응시했다. 해는 여전히 산등성이에 걸려있었지만 눈을 뜨고 있어도 시야가 어두워졌다. 줄 끊어진 칸텔레를 낙태된 자식처럼 끌어안았다. 건조하고 추웠다.

 

 ‘짐승 밥이 되기 전에 밤새 눈이라도 내린다면 좋으련만.’

 

 그럼 이 모습대로 수십, 수백 년 뒤 미이라가 되어 발견될지 모른다. 패트릭은 자신의 죽음이 앞으로 오고 가는 후대인들에게 작은 수수께끼를 던져주기를 바랐다.

 

 대체 왜 인간의 이런 오지에서 궁궐과 귀부인의 침실, 원정길에 오른 장군의 천막에서나 볼 수 있던 음유시인이 최후를 맞이했단 말인가.

 

 패트릭은 의식이 희미해져가는 중에도 최대한 미소를 지으려 애썼다. 엄습해 오는 추위에 웃음인지 근육경련인지 모를 정도로 안면이 굳어가고 있었다. 눈이 내려 덮어버린다면 후대인들의 예술혼을 자극하는 영원한 수수께끼가 완성될 것이라 굳게 믿었다.

 

 환각인가. 동굴 안에서 폭포수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귀가 고장 났나. 허긴, 죽음의 사자들조차 내 노래에 감동했을지 모르지.’

 

 그렇게 패트릭은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

 

 암흑이 패트릭을 감싸고 있었다.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평범한 어둠이 아니라 ‘안겨오는’ 어둠이었다. 숨소리에 축축하게 젖어들며 촉감으로 전이된 어둠.

 

 「나는 살아있나?」

 

 작게 내뱉은 혼잣말이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공간에 가득 찼다.

 

 ‘좁은 공간이 아니군. 아니, 오히려 광장이나 원형 경기장 만큼이나 넓은 곳이다.’

 

 하지만 어둠 덕에 어머니의 자궁처럼 푸근하고 야릇한 아늑함이 느껴졌다.

 

 깡.깡.깡.어디선가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맑고 청아했다. 이 세상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정돈된 A4 - 즉 ‘라’ - 기준음이 세 번 울려 퍼졌다. 패트릭은 귀가 아닌 척추를 타고 흐르는 전율을 느꼈다.

 

 ‘이 소리는?!’

 

 그는 방랑 연주자로 떠돌며 다양한 문명의 기준음을 귀에 새겨놓아왔다. 그러나 모두 다 어딘가 부족했다. 수학적 절대성에 닿으려는 노력은 가상했지만 이상에 닿기에는 한 없이 열화 된 모작(模作)들이었다.

 

 ‘놀랍군. 이런 이상적인 소리는 마음속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달팽이관을 두드린 그 울림은 가감 없이 완벽하고 신전기둥처럼 든든했다. ‘빛이 있으라’ 명했다던 태초의 신이 선언한 창조의 외침 같이 절대적이었다.

 

 「너, 혼돈과 질서를 잇는 탯줄아.」

 

 갑자기 단단한 피부가 패트릭의 팔에 닿았다. 그리고 억센 힘으로 보름이나 굶어 야윈 패트릭을 일으켜 세웠다.

 

 「누, 누구냐!」

 「그대 같은 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의 것으로 생각할 수 없는 감촉과 발성이었다. 패트릭은 재빨리 자신이 들어본 숱한 어족(語族)의 발음들을 떠올렸다. 수십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천재 패트릭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핀(Finn)족의 잊혀진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발음이 어눌했다. 모어(母語)가 아닌 게 확실했다.

 

 ‘혹시 나와 소통 가능할 것 같은 언어를 쥐어짜낸 게 아닐까?’

 

 패트릭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드워프다.’

 

 패트릭은 정체불명의 목소리에서 드워프 특유의 흡착폐쇄음을 포착했다. 젊은 시절 대륙의 동쪽 끝 라플란트까지 흘러 들어갔을 때 족장 집에서 젊은 드워프를 만났었다. 그 때 그에게서 단 한 번 들어본 발음이었다.

 

 흡착폐쇄음. 인간들이 보통 ‘혀 차는 소리’라고 말하는 발음이다. 드워프들은 이것을 그들의 모음으로 쓴다. 그리고 인간의 능력으로는 드워프가 내는 흡착폐쇄음간의 미묘한 발음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대의 고귀한 재능에 경의를 표한다.」

 「누구냐? 인큐버스냐? 신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그는 곧 빛이시니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물러가라.」

 

 패트릭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귀신들린 자와 간질 환자에게 수도사들이 읊조리는 기도문을 따라했다. 상대가 코웃음을 쳤다.

 

 「어둠이라고? 이곳은 빛으로 가득하다. 옹에르만(Angerman), 이 어리석은 자의 눈에 광명을 되찾아 줘라.」

 

 이윽고 누군가 패트릭의 눈가에 뭔가를 씌웠다. 수정처럼 투명하고 얇은 돌을 직사각형으로 깎아 만든 일종의 광학렌즈였다.

 

 「여기는?」

 

 옹에르만이라는 이름의 드워프가 씌워준 렌즈를 쓰자 패트릭은 동굴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창백한 푸른빛으로 사물을 밝히 보게 되었다. 렌즈에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파장의 빛을 보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렌즈를 씌워준 드워프 옆에 또 다른 드워프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는 보통 드워프들 보다 털이 두 배는 많아 얼굴에 털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드워프의 왕 즈베즈다의 궁전. 하지만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이 발음은 인간에겐 감춰진 비밀이다. 나는 그의 사자(使者)인 타루큅 이눅이다.」

 

 즈베즈다. 서쪽 동토에 사는 민족들의 고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단어로 ‘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 정확한 발음은 베일에 쌓여있다. 인간의 문자와 성대구조로는 이 음가를 정확하게 발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루구입 이노크?」

 「타루큅 이눅. 내 이름도 두루마리에 인봉하라. 인간에겐 감추어진 비밀이다.」

 

 타루큅 이눅이라는 이 괴상한 이름 역시 천 년 동안 전승되면서 각 지역과 문명마다 타나토스, 디투스, 허메 등으로 변주되었다. 때문에 천년 전 그들이 만났을 때 실제 발음했을 음가는 알 수 없다.

 

 패트릭은 렌즈를 통해 자신이 빛으로 가득한 드워프들의 거대한 회랑 가운데 누워 있음을 깨달았다. 통제강박의 극치를 보여주는 좌우대칭 열주(列柱)가 사파이어 빛을 뿜으며 웅장하게 서있었다. 천장은 거대한 돔구조로 천체의 위치를 형상화한 보석들이 박혀 있었고 오색빛을 머금은 채 영롱하게 반짝였다.

 

 ‘아까 그 청아한 음색은 저 모루를 내려친 소리였군.’

 

 제단 정중앙에는 얼음처럼 투명한 수정 모루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 비늘갑옷을 입은 털복숭이 드워프가 망치를 들고 서 있었다. 패트릭은 본능적으로 그가 즈베즈다, 즉 드워프들의 왕이라 생각했다.

 

 「너의 음악은 질서와 혼돈 사이에서 절묘하게 춤을 추고 있구나. 결코 무저갱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며 불과 얼음 사이를 줄타기하는 우주의 발걸음과 같도다.」

 

 모루 앞에 서 있는 드워프의 우두머리가 말했으나 결코 입을 벌리는 일은 없었다. 성대가 아닌 색다른 발성기관을 쓰는 듯했다. 사실 타루큅 이눅이 통역해 주지 않았다면 패트릭은 즈베즈다가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대왕께서 그대가 누구에게 악기를 배웠는지 궁금해 하신다.」

 「나는 스승이 없소. 자연을 통해 스스로 배웠소.」

 

 물론 스승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유일한 스승은 가정교사 노예들보다 실력 없는 뜨내기 집시였다.

 

 패트릭은 열두 살 때 기근으로 굶어 죽기 직전 팔려 스승의 손에 거세를 당했다. 처음엔 싸구려 술집과 부두가의 매음굴에서 웃음과 노래를 팔았다. 밤에는 스승의 더러운 욕망도 채워줘야 했다.

 

 도박판에서 진 빚 때문에 스승이 삼류 악단에 들어간 뒤로는 하루의 절반을 헥센바인에 취해있는 스승대신 류트를 배워 대타를 뛰었다. 스승이 신전에서 디튀람보스를 반음 낮춰 연주하다 손목이 잘리는 바람에 정식 연주자가 된 이후부터는 독학으로 끝없이 소리의 세계를 탐구해왔다.

 

 「너의 소리는 태고의 질서와 혼돈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자신의 소리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자를 만난다는 것은 연주자에게 있어 최고의 행운이다. [옛 뱀에 대한 애가]를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세상의 끝에서 지음(知音)을 만나다니. 패트릭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렇다면 드워프의 왕이여, 기억해 주겠는가? 내가 죽은 뒤에도 [옛 뱀에 대한 애가]를 후대에 남길 수 있도록 너희들의 문자로 악보를 만들어 다오.」

 

 즈베즈다는 가만히 고갤 저었다.

 

 「한 지점에서 만난 두 직선은 다시 만날 수 없다. 그대의 연주는 지금 이 시대, 이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다.」

 

 패트릭은 실망했다. 드워프들의 놀라운 기술력에 잠시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었다.

 

 ‘제자를 길르지 못한 게 한이다.’

 

 패트릭은 한 달 밤을 내내 불러야 끝날 서사시 몇 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줄줄 욀 정도로 암기력이 좋았지만 문맹이고 악보를 볼 줄도 몰랐다. 체계적인 전수가 곤란했다. 변변한 스승에게서 사사받은 적이 없어 체계적인 교수법을 알지 못했다. 화성학이나 대위법 등이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기보법도 형편없었다.

 

 ‘이들의 문명이면 분명 내 노래를 후대에 남길 수 있을 텐데.’

 

 「왜 안 된다는 것이오? 그대들은 악보나 문자가 없습니까?」

 「기록은 진리를 부식시킨다. 그리고 해석은 진실의 사생아를 낳는다.」

 

 동굴 속 드워프들은 문자를 증오했다. 문자로 전달되는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들이 진리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를 깨닫게 해줄 뿐이라는 게 그들 지론이었다. 게다가 드워프의 왕은 패트릭의 연주와 달리 그의 목소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태초의 울림을 간직한 네 연주와 달리 목소리의 떨림은 너무나도 추하고 조잡했다. 그 목소리를 얻기 위해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이냐? 실로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소리다. 네 목소리만으로도 네가 얼마나 더러운 것들을 마시고 음란한 것들을 말하고 부정한 것들을 삼키며 살아왔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패트릭은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에 수치심을 느꼈다.

 

 원해서 카스트라토가 된 게 아니다. 가난 때문에 강제로 거세당했지만 좋은 원석을 연마하듯 자신의 목소리를 부단히 다듬어 왔다. 어느 왕국, 어느 문명권에서도 한결같이 그의 목소리를 칭송했기에 약간의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드워프들의 왕은 그의 마음 속 아물지 않은 상처를 꿰뚫어 보았다.

 

 그의 목소리를 ‘인위적, 작위적, 음란, 조잡함’으로 정의함으로써 패트릭의 내면 깊이 숨겨진 자격지심을 벌거벗겨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원하는 게 무엇이냐?」

 

 캉! 즈베즈다가 다시 모루를 내리친 뒤 입을 열었다. 그가 내린 주문은 참으로 기묘하고도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너는 우주가 태어날 때 내던 태초의 소리를 만들어라. 그리고 그것으로 옛 뱀을 죽여라.」

 

 

 
작가의 말
 

 삽화식 에피소드지만 이후 전개에 꼭 필요해 부득이 길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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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예언 2022 / 2 / 27 235 0 6431   
12 12.두 괴물 2022 / 2 / 26 239 1 5874   
11 11.불가능한 레퀴엠 2022 / 2 / 26 240 0 5783   
10 10.여섯 번째 손가락 2022 / 2 / 26 267 1 5080   
9 9.열두 현의 칸텔레 2022 / 2 / 26 256 0 5417   
8 8.패트릭, 바늘의 랩소디 2022 / 2 / 22 247 1 9694   
7 7.기상천외한 작전 2022 / 2 / 21 243 1 5070   
6 6.죽음의 사자, 에피메테우스 2022 / 2 / 21 233 1 4707   
5 5.붉은 수수밭의 게이세리크 2022 / 2 / 20 241 1 5605   
4 4.거세 테스트 (1) 2022 / 2 / 19 289 1 5797   
3 3.후계자, 기습 청혼 2022 / 2 / 19 246 1 6696   
2 2.영웅의 몰락 (1) 2022 / 2 / 18 306 1 5680   
1 1.돼지 거세사 2022 / 2 / 18 374 1 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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