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일반/역사
귀향 (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작가 : 윤준식 YOON
작품등록일 : 2022.1.23

[연재를 시작하며] (연재는 1-44장까지 이어집니다.)

‘제 책이 빨리 출판되기를 원하는 사람 중에는 중국의 황제가 계십니다. 한 달 전쯤 일입니다. 황제께서는 친히 중국어로 편지를 쓴 후, 사신을 보내 저의 [돈키호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황제께서는 학교를 세워 스페인어를 가르치겠다고 하셨으며, [돈키호테]를 교과서로 쓰겠다는 것과 제가 그 학교의 학장이 되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돈키호테] II, ‘레모스 백작님께 올리는 헌사’ 중)

한 사람의 ​간절한 소망은 수 백년을 뛰어넘는 것일까?

세르반테스의 펜을 움직여 [돈키호테]에 남겨진 한 영혼의 흔적!

400년 넘게 기다려왔고,

너무나 애절했기에 또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한반도 남쪽의 한 마을로 이어진 무지개!

그 허구같은, 그러나 역사적 실체의 다리를 건너본다!

(본 이야기는 [돈키호테]라는 소설 속 한 귀절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작품 [돈키호테]는 물론, 당시 세계를 누볐던 스페인의 역사와 동시대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조선, 중국, 일본, 필리핀, 마카오) 등의 역사를 통합할 수 있는 문학과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내용을 구성하게 된다. 15년 간의 자료 수집을 통해 내놓는 역사 이야기이자 소설로, 몇 가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며, 특히 임진왜란 이후 전개된 1600년대 초 스페인과 조선 간의 관계를 이어줄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다.)

 
37.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 (Bartolomé Rodríguez Correa)
작성일 : 22-02-22 08:24     조회 : 180     추천 : 0     분량 : 384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37.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

 

 “여기도 있습니다.”

 

 훌리아와 열심히 글자 해독하면서 노트북에 입력하고 있는 종국 앞에 안또니오는 몇 개의 자료를 더 꺼냈다.

 

 매일매일 쓴 일기라기보다는 일종의 기록같은 것이었다. 그것도 시간 순서대로 철해있지 않았고, 그냥 순서없이 낱장으로 보관되어 있었다. 그 중 또 다른 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해석되었다.

 

 

 나오끼는 일행 중에는 나이가 가장 많았으며, 몸도 아팠지만, 마음의 병도 컸다. 무엇보다도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병으로 변한 것이다.

 

 이를 간파한 쓰네나가는 나오끼(멕시코에서 받은 세례명은 후안 아구스띤)를 세비야 출신의 아나 데 바라호나라는 여인과 맺어주었다. 세비야에 있는 동안 일행의 잡일을 도와주던 여시종이었다. 정식 결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지시나 명령과도 같은 그런 형식이었다.

 

 7월에 쓰네나가가 스페인을 떠난 후, 지난 9월 중순, 우리는 세비야에서 꼬리아 델 리오로 거주지를 옮겼다. 아나도 함께 갔다.

 

 나는 나오끼가 여기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어느 정도라도 달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덜어주기 위해, 마을의 한 아이를 양자로 소개했다.

 

 이름은 바르똘로메이고, 부모를 잃은 어린 고아였다. 나는 각별히 아이를 챙겨줬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떠나, 일본에서 홀몸으로 살았던 나 자신이 생각났다. 이곳 스페인 사람들은 나를 부를 때, 세례명으로 불렀기에 아이는 같은 이름의 나를 더욱 더 가깝게 느꼈고, 따랐다.

 

 바르똘로메는 나오끼를 아버지 같이 생각했다. 잃어버린 아버지가 생각났던 것이다. 나는 나오끼가 가족, 특히 아들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바르똘로메에게 아예 나오끼 부부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지 물어봤고, 아이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줬다.

 

 이렇게 바르똘로메는 사무라이였던 나오끼와 스페인 여인 아나의 양아들이 되었다. 나는 나오끼와 상의하여, 그의 이름에 하뽄이라는 성을 부여해주기로 했다.

 

 그의 이름은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이 되었다. 바르똘로메는 같은 이름의 나를 늘 사촌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를 사촌처럼, 그리고 조카처럼 잘 대해주었다.

 

 1616년 11월 15일, 조선인 宋錫喜 Bartolomé

 

 종이 상태가 좋지 않고, 글자 역시 매우 흘림체로 되어있어, 읽기가 어려웠지만, 훌리아의 일본어 해독은 처음보다 더 빨라졌다. 종국도 일본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가 안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서로 논의하여 풀어갔다.

 “이것도 읽어봅시다.” 훌리아가 말했다.

 

 

 나는 이제 전도사직을 내려놓기로 했다. 요즘은 부쩍 내가 전도사인 것에 대해 고민해봤다. 정말 깊은 신앙심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살기 위한 선택이었는 지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결국, 나는 조선인으로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길을 선택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솔직히 말하면 신앙은 일종의 방편이었다는 생각도 해봤다. 조선에서 온 동포들과 구별되는 직분으로 스스로 특권의식을 가지며, 나 자신을 지키려는 안위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 신앙의 선택으로 여기 스페인 땅에까지 오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정말로 선택을 잘 했고, 운도 좋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에서 나 같은 위선적인 사제를 비판하고 있지 않은가? 아울러 그가 시에라 모레나 산에서 행한 돈키호테를 설명하면서 강조했던 것은 진정으로 자신이 누구인 지를 깨닫는 자기 성찰의 자세며, 한 개인의 자유의지는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나의 의지에 따라, 원래의 조선인으로 돌아가고 싶다. 비록 조선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먼 이국의 땅에 와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라도 조선인으로 살고 싶다. 조선에 갈 수 없다면, 여기에 조선을 만들고 싶다. 아니, 조선의 가족을 만들고, 가난과 속박이 없는 이상적인 조선을 여기에 건설하고 싶다.

 

 1617년 2월 14일, 조선인 宋錫喜 Bartolomé

 

 전도사직을 내려놓는다는 글 뒤, 또 다른 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나오끼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스페인 여인과 결혼을 하였다. 아나 마르띤이다. 세비야 사람이다. 아나는 루이스 신부의 친척이다.

 

 아메리카를 거쳐 세비야 땅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다. 유난히 나를 따랐으며, 무엇보다도 우리는 말이 잘 통했다. 그녀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은 흔들렸지만, 우리는 결합할 수 없는 몇 가지 사유가 있었다.

 

 우선, 내가 전도사라는 사실이었다. 종교에 귀의한 입장에서, 어떤 여인도 마음에 품을 수는 없었다.

 

 거기에다 나는 언젠가 다시 스페인을 떠나야 한다. 나를 따라, 그 먼 곳으로 함께 갈 수 있는 여인도 없을뿐더러, 나를 따라온다고 해도, 그렇게 해서 고생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일본에 간다고 해도 문제고, 조선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참으로 그 고생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큰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태리를 갔다 돌아와서 아나를 다시 만났다. 아니,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다시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전도사였고, 조선으로 돌아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아나는 나의 이런 입장을 이해해줬고, 세비야에서 꼬리아 델 리오로 거쳐를 옮긴 이후에도 자주 나를 찾아왔다.

 

 내가 스스로 전도사직을 내려놓기로 한 후, 아나와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나는 조선으로 함께 갈 수 있느냐에 대한 나의 걱정에 대해, 그것은 그 때 가봐서 할 일이고, 미리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나를 달랬다.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 동하는지,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고, 내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그것이 나에게 묻는 유일한 조건이었다.

 

 아나는 편안한 자신의 생활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 세비야이던, 꼬리아 델 리오이든, 일본이든, 조선이든 말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함께 살게 되었다.

 

 나오끼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내는 집을 나갔고, 혼자 남게 된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은 결혼한 나의 집에서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한편, 나는 아들을 얻었으니, 이름을 프란시스꼬라고 지었다. 나오끼가 일본인이기에 하뽄이라는 성을 마지막에 붙인 것처럼, 이미 나의 세례명 바르똘로메 뒤에 꼬레아를 넣어 나의 국적을 표현했다.

 

 물론, 내가 일본에서 받은 세례명과 우연히도 같은 이름이었던 아오끼의 아들, 즉 첫 번째 하뽄이 된 바르똘로메가 나의 사촌이 된 이상, 그와 가족임을 나타내기 위해 그가 원래부터 지녔던 성 로드리게스를 그 중간에 넣었다.

 

 사실, 세르반테스가 말했듯이, 본질이 중요한 것이지, 이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이름이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바꿔질 수 있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송석희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고 한다. 바르똘로메라는 세례명도 부여받았다. 그리고 나 스스로 로드리게스 꼬레아를 추가했다. 비로소 나의 의지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스페인 속 조선인이 된 것이다.

 

 내 아이의 이름은 프란시스꼬 꼬레아이고, 몇 년 후 태어난 딸은 프란시스까 꼬레아가 되었다.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은 나를 사촌으로 삼았으니, 그는 자연스럽게 내 아이들의 삼촌이 되었다.

 

 1625년 4월 5일, 조선인 宋錫喜 Bartolomé Rodríguez Correa

 

 송석희는 자신이 스페인에 정착한 이야기, 그리고 아나 마르띤를 만난 계기와 결혼한 이야기, 그리고 아들과 딸을 둔 이야기 등 생활의 전반적인 내용을 비교적 길게 써내려 갔다. 특히, 여기서 달라진 것은, 그의 스페인어 이름이었다. 바르똘로메 뒤에, 로드리게스 꼬레아가 붙여졌다

 

 “아, 그렇군요!” 훌리아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손벽을 쳤다.

 

 옆에 있던 안또니오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종국과 훌리아는 안또니오가 정리해놓은 자료를 순서대로 계속 해독하였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7 37.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 (Bartolomé Ro… 2022 / 2 / 22 181 0 3845   
36 36. 고문서 (Documentos antiguos) 2022 / 2 / 21 181 0 1834   
35 35. 윤종국 (Familia YOON) 2022 / 2 / 10 184 0 4400   
34 34. 고백 (Confesión) 2022 / 2 / 10 198 0 4327   
33 33. 꼬리아 델 리오 (Coría del Río) 2022 / 2 / 2 184 0 4455   
32 32. 담배공장 (Real Fábrica de Tabacos de Sevilla) 2022 / 2 / 2 185 0 2769   
31 31. 그라나다 (Granada) 2022 / 2 / 2 186 0 3568   
30 30. 피정 (Penitencia) 2022 / 2 / 2 170 0 3102   
29 29. 객줏집 (Venta del Quijote en Puerto Lápice) 2022 / 2 / 2 179 0 5397   
28 28. 장례식 (Funeral) 2022 / 1 / 30 196 0 1575   
27 27. 헌사 (Dedicatoria al Conde Lemos) 2022 / 1 / 30 176 0 7652   
26 26. 위작 (El Quijote de Avellaneda) 2022 / 1 / 30 176 0 3951   
25 25. 안또니오 꼬레아 (Antonio Correa) 2022 / 1 / 24 181 0 7057   
24 24. 클로드 데루와 (Claude Deruet) 2022 / 1 / 24 217 0 2761   
23 23. 로마 (Roma) 2022 / 1 / 24 182 0 2418   
22 22. 바르셀로나 (Barcelona) 2022 / 1 / 24 191 0 4784   
21 21. 똘레도 (Toledo) (1) 2022 / 1 / 23 233 0 4318   
20 20. 과달끼비르 (Rio Gudalquivir) 2022 / 1 / 23 185 0 2529   
19 19. 포로 (Cautivo) 2022 / 1 / 23 171 0 3123   
18 18. 앙헬리까 (Angelica) 2022 / 1 / 23 182 0 4726   
17 17. 아나 마르띤 (Ana Martin) 2022 / 1 / 23 184 0 1786   
16 16. 자유 (Libertad) 2022 / 1 / 23 196 0 3217   
15 15. 멕시코 (México) 2022 / 1 / 23 184 0 2136   
14 14. 미션 (Misiones) 2022 / 1 / 23 191 0 4424   
13 13. 사무라이 (Samurai) 2022 / 1 / 23 193 0 3845   
12 12. 배 (Barco San Juan Bautista) 2022 / 1 / 23 193 0 7912   
11 11. 나가사키 (Nagasaki) 2022 / 1 / 23 187 0 4175   
10 10. 거북선 (Barco Tortuga) 2022 / 1 / 23 209 0 2789   
9 9. 소설 (Novela) 2022 / 1 / 23 194 0 5350   
8 8. 명심보감 (Espejo rico del claro corazón) 2022 / 1 / 23 196 0 6424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