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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황금에 미친 이 세상을 뿌리째 들어내겠어!
작가 : 화블루
작품등록일 : 2022.2.1

가주의 빚을 갚기 위해 상인의 신부로 팔려갔던 아멜 그린, 가문의 낮은 작위 때문에 팔려가다시피 외국으로 끌려갔던 에릭 화이트는 황금에 미쳐있는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들의 인생을 바친다. 그들이 당당한 군주가 되어 이 세상을 통째로 바꿀 수 있을 때까지!

 
13화. 네가 대신 결혼하면 되잖니
작성일 : 22-02-22 01:09     조회 : 207     추천 : 1     분량 : 4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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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을 버리고 간 게 어미입니까!"

 -"권력을 좇아 떠나다니, 치가 떨리도록 역겹네요"

 -"그 행태가 마치 성서에서 나오는 더러운 음녀와도 같지 않습니까!"

 -"저런 작자가 어미였다는 게 정말 부끄럽습니다."

 

 

 에밀리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지금까지 에뮬 앞에서 에믹 남작부인에 대한 험담을 한 것을 필사했더라면 아마 500페이지쯤 되는 장편의 에세이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몇 년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다가 제대로 마주하게 된 그녀의 어머니는 상상 속에서 있던 악녀 내지는 창부의 모습과 너무 괴리감이 있었다.

 

 에뮬은 도와 달라는 신호를 무시하는 에밀리를 죽일 듯 노려보다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긴장한 탓에 목소리가 마치 염소처럼 떨려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에믹 남작부인.”

 

 

 어릴 때 생이별 했던 아이에게 어머니라는 호칭을 바라진 않았지만, 막상 딱딱한 호칭을 듣자니 살짝 가슴이 따끔거렸다.

 

 

 “격식은 차리지 않아도 괜찮아. 너희들은 내 딸이잖니.”

 

 

 에믹 남작부인은 미소를 띄며 에뮬의 옆자리에 착석했다. 그녀는 에뮬의 안색을 이리저리 살펴보곤, 그녀를 향해 물었다.

 

 

 “에뮬, 언제부터 아팠던 거니? 내가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는 없지만 인맥을 연결해줄 수는 있어.”

 

 

 에뮬이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살짝 무안했던 그녀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 농담 한 조를 덧 붙였다.

 

 

 “이 나라 최고의 의사가 내 오랜 팬이란다.”

 

 

 장난끼가 섞인 그녀의 농담에 그 누구도 웃지 않자, 머쓱해진 그녀는 입을 닫았다. 그리고 한동안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사실 에뮬은 건강해요.”

 

 

 그 정적을 깬 것은 에밀리였다.

 

 갑작스러운 에밀리의 고백에 에믹 남작부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에밀리가 심호흡을 내뱉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거짓말을 쳤어요. 세르레나 후작부인이 어머니한테 저희의 소식을 전해줄 것 같지가 않아서요.”

 

 

 “허.. 어쩌자고 그런 거짓말을..”

 

 

 에믹 남작부인의 인상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세르레나 후작부인은 에믹 남작부인의 시녀였지만, 말이 시녀였지 파트너와 다름 없는 대등한 관계였다.

 

 출신이 귀한 세르레나는 사교계에서 입지도 굳건했고 인맥도 마당발처럼 넓었다. 그런 그녀에게 언젠가 들킬 수 있는 거짓말을 치는 것은 장기적으로 아주 좋지 않은 처세였다.

 

 

 에믹 남작부인이 머리를 짚으며 지긋이 눈을 감자, 에밀리가 살짝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희가 오죽했으면 거짓말을 치면서 이렇게 왔겠어요?”

 

 “하… 그럼 대체 무슨 일로 온 거니?”

 

 

 에믹 남작부인이 별로 달갑지 않아하는 티를 내자 에밀리는 머릿속에 있는 이성의 끈 한 가닥이 톡 하고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거나 읽어보세요! 지금 지켜 주는 사람 하나 없는 당신의 딸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눈 똑바로 뜨고 보란 말이에요!”

 

 

 에밀리는 손가방을 거칠게 열어 제낀 뒤 그 안에 고이 모셔 놓았던 초록덩굴가문의 인장이 찍혀있는 서신을 테이블 위에 내팽겨쳤다.

 

 에믹 남작부인은 손을 뻗어 서신을 집은 뒤, 서신에 찍혀 있는 초록덩굴가문의 인장을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펠트로가 너희를 보냈니?”

 

 “읽어보시면 알 거 아니에요!”

 

 

 에믹 남작부인은 에밀리의 날카로운 대답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서신을 펼쳤다.

 

 에밀리와 에뮬이 긴장되는 눈빛으로 에믹 남작부인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에믹 남작부인은 의외로 무덤덤한 시선으로 서신을 읽어내려갔다. 그녀의 시선이 서신의 막바지에 다다를 때까지, 그녀의 표정은 무덤덤한 채로 유지되어 있었다.

 

 

 “이건,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에믹 남작부인이 서신을 다시 네모 지게 접으며 말했다.

 

 

 “허? 지금 도움을 못 주시겠다는 거에요? 사교계에서 명망 있는 아멜언니가 평민의 신부가 되어야 하는 것조차 말이 안되는데, 초혼도 아닌 재혼상대라니요! 이건 진짜 아니잖아요!”

 

 “그렇게 언니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네가 대신 결혼하면 되잖니 에밀리.”

 

 “어떻게 어미가 돼서 그런 말을..!!”

 

 “나는 현실을 말하는 거야. 내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대신 갈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이 문제를 두고 왈가왈부하지 말아라. 가문 일원의 혼인상대는 가주의 뜻대로 정해지는 게 옳아.”

 

 “펠트로는 돈 때문에 저러는 거라니까요! 금전적으로 지원만 좀 해주시면 되잖아요! 그럼 이 말도 안 되는 결혼도 무효가 될텐데!”

 

 “나는 돈이 많기는 하지만 내 수중에 있는 금전의 흐름은 모두 그대로 짐레트 2세에게 전달된다. 그는 너희들과 내가 다시는 얽히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어.”

 

 

 여기까지 말하고 숨을 흡 들이킨 에믹 남작부인은, 전남편이었던 페트릭 그린의 죽음의 배후에 짐레트 2세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말아라. 나를 봐. 처음에는 남작의 정부에 불과했지. 하지만 곧 남작의 정실부인자리를 꿰찼어. 그렇게 남작부인으로 살다가, 지금은 명실상부한 왕의 여자가 되었다. 아무도 내게 함부로 대하지 못해. 내가 비록 왕비는 아니지만, 왕비가 공석인 지금, 왕국의 모든 안살림은 내게 권한이 있어.“

 

 

 “지금 자랑하시는 거에요?”

 

 “아니다, 내가 어떤 흐름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 지를 보라는 거지. 음, 나도 차 한 잔만 주겠니? 목이 타는구나.”

 

 

 에믹 남작부인의 말에 에뮬이 이미 다 식어빠진 자신의 장미차를 그녀 쪽으로 밀어주었다.

 

 

 “찻잔이 없어서.. 입은 안 대서 깨끗해요..”

 

 “고맙구나. 에뮬.”

 

 

 가볍게 미소를 지은 에믹 남작부인은 다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에밀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우아하게 찻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모두 다 순수하게 내 노력으로 얻은 결과야. 아멜도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직접 자신의 손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해. 지금 당장은 상인과의 결혼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아멜의 노력 여하에 따라 미래는 충분히 바꿀 수 있어. 돈 많은 상인과의 결혼? 나라면 그 남자를 완전히 꿰어내서 그 수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내 뒷주머니에 찔러 넣고 훗날을 기약하겠어. 아멜도 똑똑하니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일 거야. 그렇지 않니?”

 

 

 에믹 남작부인은 아까와는 달리 반박 하나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에밀리와 얌전히 앉아 있는 에뮬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더 할 말이 없으면, 해가 지기 전에 얼른 자택으로 돌아가렴. 데뷔탕트도 치른 다 큰 숙녀들이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으면 안 되잖니.”

 

 

 에믹 남작부인은 따스하게 미소짓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만은 먼 북쪽나라인 베리아의 얼음벌판처럼 차가웠다. 당장 돌아가라는 뉘앙스를 온 몸으로 내뿜고 있었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접혀있는 서신을 집어서 응접실의 오른쪽에 있는 벽난로로 걸어가 망설임 없이 그 편지를 타오르는 불꽃 속으로 집어 던졌다.

 

 순식간에 불쏘시개가 되어 버린 서신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새까맣게 쪼그라들었다.

 

 에믹 남작부인은 새까맣게 쪼그라든 편지 쪼가리를 옆에 있던 쇠막대로 뒤적 거리며 아예 부스러지도록 만들었다.

 

 그리곤 허리를 핀 뒤, 굳게 닫혀 있던 응접실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응접실 문을 열자, 세르리나 후작부인이 아직도 에밀리의 실크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아직까지 감정이 추스러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에믹 남작부인은 에밀리의 거짓말 때문에 애먼 눈물을 쏟고 있는 후작부인의 등을 조심스럽게 다독였다.

 

 

 “이야기는 끝났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우리 먼저 나가도록 하지.”

 

 

 에믹 남작부인의 다정한 목소리에 후작부인이 고개를 끄덕이곤, 실크 손수건을 에밀리쪽으로 가지고 왔다.

 

 

 “에밀리 그린 영애, 아까는 폭언을 해서 미안했어요. 이 손수건은 곧 있을 왕실 정기 무도회에서 돌려주어도 괜찮을까요?”

 

 “예.. 예, 그럼요, 아예 가지셔도 된답니다..”

 

 

 에밀리가 그녀를 쏘아 보고있는 에믹 남작부인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이자 후작부인이 따스하게 미소 지으며 에밀리와 에뮬의 손을 번갈아가며 꼭 잡아주었다.

 

 

 “응원하고 있겠어요, 에밀리양, 에뮬양. 다음 번 무도회에서 에뮬양이 건강한 모습으로 참석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요.”

 

 

 두사람의 손을 꼭 잡고선 긍정적인 미래를 바라는 축복의 말을 한참을 읊던 후작부인이 입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에믹 남작부인쪽으로 걸어갔다.

 

 

 “에밀리, 다른 사람들 눈에 최대한 띄지 않도록 조심해서 돌아가거라. 그리고 에뮬, 곱게 잘 자라주어서 고맙구나. 반가웠다.”

 

 

 에믹 남작부인은 후작부인과는 달리 별다른 조언조차 주지 않고 쌩하니 응접실을 나가버렸다. 응접실의 문이 쿵하고 묵직하게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 집에 가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에뮬이었다. 에뮬은 주먹을 꽉 쥐고 테이블을 노려보고 있는 에밀리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하지만 에밀리는 일어나지 않았다.

 

 에밀리는 지금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다.엄마를 만나면 해야 할 원망의 언사가 수백 가지는 가슴 속에 쌓여있었는데, 죄책감을 들먹이며 에믹 남작부인이 상처 받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독대하는 그 날을 꿈꾸며 상상했던 행동 중 그 어느 것도 성공적으로 이루지 못했다.

 

 에밀리의 꽉 쥔 주먹이 부들거리는 것을 본 에뮬이 그녀의 팔을 질질 끌어서 억지로 그녀를 일으켰다.

 

 

 “언니.. 이 방법은 실패했으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에밀리는 어금니를 으득 갈며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에뮬은 고개를 돌려 그들이 앉아있었던 응접실의 전경을 보았다.

 

 온 벽이 화려한 금박칠이 되어 있는, 호화롭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따스한 느낌은 단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기도 했다.

 

 

 에뮬은 다시는 올 일 없는 이 공간을 두 눈에 똑똑히 새겨놓은 뒤, 응접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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