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현대물
노트맨
작가 : happydwarf
작품등록일 : 2022.1.30

눈을 뜨니 이 넓은 서울에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내가 알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21
작성일 : 22-02-21 13:07     조회 : 190     추천 : 0     분량 : 817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나는 분명 괴한에게 습격을 당하고 정신을 잃고 쓰러졌었다. 그 정도 양의 피를 쏟았다면 분명 죽는다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지금 눈을 뜬 곳이 노네임이 만들었다는 그 이상한 곳의 내 방이라는 것은 이제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내 배에는 상처의 흔적도 없었고 이제 보니 이곳의 공기도 조금은 다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살았던 세상보다 잠시 있었던 이곳이 나에게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내 휴대전화 화면에는 예의 그 퍼스트라는 남자가 인터폰을 울려왔다. 나는 문을 열어주었고 그가 들어오기 전에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 간단히 세수를 했다. 나는 내친김에 샤워까지 하고 싶어졌다.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거실에서 손님이 기다리는 중인 것을 알면서도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였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퍼스트는 밖에서 나를 찾지도 않고 조용히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속옷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어서 수건을 대충 가리고 나와 다시 방에 들어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물어보지 않고 퍼스트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얼굴에 스킨을 바르고 깔끔하게 머리까지 매만지고 나서야 거실로 나가서 나를 찾아온 손님을 맞았다.

 

 "오셨군요?"

 

 "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노네임이 좀 전에 사망을 하였습니다. 저로서는 어찌 된 영문인지 알지 못하지만 당신은 그에게 모든 것을 들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궁금해도 선을 넘는 호기심은 독이 됨을 잘 알고 있지요. 저는 그저 죽은 노네임이 남기고 간 지시사항을 수행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당신은 수사망에 잡힐 거라고 하지 않았나요?"

 

 "노네임이 처리해주셔서 아무 탈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어쨌든 생각보다 빨리 돌아가셨네요? 나도 지금 죽은 상태인 거죠?"

 

 나는 알면서도 그냥 물어보고 싶었다.

 

 "네. 노네임이 세팅하신 대로 바로 인수인계를 해야 했기에 그렇게 급하게 처리가 된 것 같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그런 결말을 썼나요?"

 

 "아닙니다. 그것은 누가 썼는지 모릅니다. 다만 노네임이 당신의 마지막 노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누구에게 그것을 쓰도록 지시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가 미리 설정해 놓았을 수도 있고요. 다만 주인공이 죽어버린 결말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기에 개인적으로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른 방법도 있었을텐데 저도 조금 의아하긴 합니다."

 

 이미 죽어버린 마당에 그것을 따져서 무엇을 하겠나. 나는 충격을 받았을 지우와 가족들 생각에 마음이 미어지기도 하였지만 얼른 그들의 노트를 찾아서 행복하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 이것은 당신의 네 권의 노트가 하나로 합쳐진 것입니다. 이야기 속 인물이 죽고 나면 그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노트에 기록되었든 이렇게 하나의 노트로 합쳐집니다. 물론 그 안에 내용은 모두 빠짐없이 들어가 있죠. 다만 부피를 줄이기 위해서 이런 세팅을 해 놓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노네임이 남긴 펜과 첫 번째 노트입니다. 이 펜과 노트가 함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나는 퍼스트가 전해준 똑같이 생긴 두 권의 검은 노트에서 그것을 펼치기 전까지는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펜은 동글동글하게 생긴 검은색 만년필이었는데 잉크가 떨어지면 어쩌나하고 순간 생각했지만 뭐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계속 마르지 않는 장치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여겼다.

 

 나의 노트는 겉으로 보면 그냥 한 권의 노트였는데 펼쳐보니 계속해서 페이지가 넘겨지면서 총 부피는 변하지 않고 앞의 페이지가 어디로 숨어 들어가는 듯한 방식인 것 같았다. 나는 이어서 그와 비슷하게 보이는 첫 번째 노트를 펼쳐보았다. 첫 장에는 쓰고 지운 무수히 많은 흔적들이 보였다. 아마도 노트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사물들과 작가들을 만들고 작은 마을을 만든 후 여러 설정 값을 쓰고 수정한 것들 일 것이다. 그 뒤로도 몇 백 페이지에 걸쳐서 무수히 많은 기록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것을 다 보고 나의 생각대로 고치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 해 보였다. 노트는 넘기고 넘겨도 끝없이 이어져서 그 끝을 알 수가 없었으나 부피가 늘어나지 않는 것은 아까와 같은 방식처럼 앞에 페이지들이 어디론가 사라지며 일정량 이상 계속 쌓이지 않아서 같은 양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첫 번째 노트를 계속해서 보고 있자 퍼스트는 자신이 혼자서 조용히 탄산수를 꺼내서 얼음도 없이 그저 병 뚜껑을 열고 구석에서 마시는 모습을 보고 그제서야 그와 나의 위치가 바뀌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나의 위에서 나를 조종하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노네임처럼 나는 죽을 일도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런 자리에 내가 있어도 되는 것일까? 노네임은 정말 나에게 어떤 것을 바란 것인지 이제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나는 갑자기 퍼스트가 가여워 보였다.

 

 "죄송해요. 제가 손님이 왔는데 대접도 못했네요. 얼음 정수기로 얼음을 받아서 컵에 부어드세요."

 

 나의 말에 퍼스트는 깜짝 놀라며 몸을 움찔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제 호칭을 뭐라고 불러야 할 지..."

 

 "호칭이라니, 내 이름 몰라요?"

 

 "알지만 그렇다고 이름을 계속 부르기가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회사를 다닐 때 상사의 이름을 불러본 적은 없었다. 이것은 어딜 가나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공식 명칭을 만들어야 하는데 무엇으로 해야 할 지 고민에 들어갔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는 한 가지 이름을 생각해 내었다.

 

 "노트맨."

 

 "노트맨이요?"

 

 내 말에 의아하게 생각한 퍼스트는 이내 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노트에 영향을 주는 노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노트맨이죠. 뭐 별다른 뜻은 없어요. 쉽고 편한 것이 언제나 최고거든요."

 

 "좋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이제 노트맨으로 불릴 거에요. 좀 더 쉽게 인식시키려면 첫 번째 노트에 기록해도 됩니다."

 

 "뭐하러 그래요? 소문만큼 빠른 것도 없는데요. 아마 얼마 가지 않아서 모든 작가들이 노네임대신 노트맨이 새롭게 첫 번째 노트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을 다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하하하... 맞습니다."

 

 나의 말에 퍼스트는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금방 수긍했다.

 

 "이제 내가 말하는 모든 사람들의 노트를 나에게 가지고 오도록 해요."

 

 "네? 원작자들에게 맡기지 않으시고요? 노트맨과 관련된 사람이라면 알아서 좋게 쓸 것인데요?"

 

 나는 그의 말에서 작가들에게 어떤 자존심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으나 그냥 모른 척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는 가까이 있던 내가 작가보다 더 잘 알거라고 생각해요. 별 다른 뜻은 없으니 그저 내가 시킨 대로 원작자들에게 사정을 잘 설명하고 가져오기를 바래요. 빼돌리거나 허튼 짓을 하다가는 재미없을 줄 알라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어떤 인물들의 노트를 가져와야 할 지 알려주시죠."

 

 "우선 내 아내였던 김지우, 그리고..."

 

 나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장모님과 부모님 및 누나 총 7명의 노트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퍼스트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그들의 노트를 내게 가져왔다. 나는 가족들의 노트를 보면서 해피맨을 가장한 배드맨과 새드맨이 있었음을 알았지만 그들에게 곧바로 앙갚음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이 세계에 이제 막 입성한 병아리일 뿐이니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별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아팠던 만큼 이제라도 행복해지도록 최대한 정성 들여 쓰고 싶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러서 지우는 자상하고 사랑이 가득한 좋은 남자를 만나서 우리와 나라를 예쁘게 키우며 다시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부모님도 지병이 낫고 건강하게 노후에 여행도 다니시면서 아들을 잃은 슬픔 대신 소소하게 많은 기쁨들을 채워드렸다. 아이들도 밝고 건강하게 자랐으며 미래에 자신이 원하는 일들이 잘 풀릴 수 있도록 하였다. 누나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서로 사랑하며 살고 하는 일도 잘 되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장모님께는 무엇을 해드릴까 하다가 노년이지만 피부가 의심 받지 않을 정도로 젊어지고 외롭지 않도록 멋있는 동반자를 만나게 해드렸다. 나중에 나를 보면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타박을 들을지도 몰랐지만 부족한 나의 머리로는 그것이 좋을 것이라 여겨 그렇게 하였다. 그 이후에는 오랫동안 행복하도록 수명을 모두 100세로 정해 놓고 큰 어려움이 없도록 살피면서 자유의지로서 살아가도록 하였다. 살다가 실수를 하거나 어려움에 빠지면 그때마다 내가 개입하여 도와주었다.

 

 나는 가끔 여기서 만났던 지우와 최고가 생각이 났으나 그들은 현재 이곳의 기억이 없는 상태로 해피맨의 손에서 행복하게 이야기가 쓰여 살고 있었기에 그들이 죽고 나서야 나와 있었던 일들을 공유하며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아쉽지만 기다려야 했다.

 

 나는 그동안 첫 번째 노트를 끝까지 다 보면서 내가 원하는 세팅 값으로 수정을 하였다. 우선 자유의지 부분은 그대로 놔두었지만 배드엔딩과 새드엔딩을 쓰는 작가들에게는 이야기를 쓰지 못하도록 하고 그저 자신이 살아갈 수만 있도록 하였다. 일부 작가들이 자유의지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라고 항의를 하기도 하였지만 직접 그 처참한 현실을 보았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다. 그러나 나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디테일하게 설정하지 않고 자유의지에만 의지하여 랜덤으로 설정한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은 꼭 불행을 자초하는 일을 벌였다. 자신을 해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이 있었고 그것은 다른 이야기 속 인물들이 겪는 어쩔 수 없는 불행이기도 하였다. 이것마저 제한하기 위해서는 아예 자유의지라는 것을 멈추어야 했는데 선과 악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의지가 사라지고 하나의 선(善)밖에는 모르는 사람이 과연 살아있는 것인지 노네임의 말이 떠올라 그 문제에 대한 결론은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다시 모든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허락한 후에 이들의 선택들을 존중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들을 억업하는 것 또한 거대한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물론 수많은 피해가 일어날 수 있겠지만 새드맨과 배드맨이 글을 쓰지 않아도 세상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일에는 자신이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함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노네임과 다른 영혼이 없는 허구적 존재이기에 더욱 그랬다.

 

 10년 후.

 

 나는 오늘도 지우와 아이들이 행복하게 노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요즘은 그것이 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지우가 있는 이야기 속으로 이렇게 가끔씩 들어와 그녀가 오늘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는 것이 좋았다. 내가 그녀에게 맺어준 남자 대신 그녀의 옆에 있는 것도 상상해보았지만 그러기엔 이미 너무 많은 강을 건너왔다. 수많은 작가들의 요청이 매일 끊임없이 날아오는데 정말 급박한 일에는 내가 도움을 주어야 했고 가족들의 행복이 나에게 중요한 것처럼 작가들도 자신의 주인공에게 어떤 사고가 생기는 것을 매우 힘들어 하였기 때문에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나면 이렇게 지우와 아이들을 보러 왔다. 그러면 한동안 힘이 나서 또 살아갈 자신이 생겼다.

 

 10년 후.

 

 나는 솔직히 많이 지쳐있는 상태다. 세팅 값을 바꾸었기에 나를 해칠 존재도 나의 건강에 문제가 생길 일도 없지만 정신적인 데미지는 세팅을 만져도 좋아지지 않았다. 영혼도 없는 허구적 존재인 주제에 정신력에 모든 것이 걸려있는지 수많은 요청에 대한 응답과 문제에 대한 해결을 하는 것만 하더라도 무척 피곤한 일이 되었다. 다행히 랜덤응답시스템을 개선시키고 나를 도와줄 만한 작가들을 곳곳에 좀 더 배치하였지만 그래도 이 자리는 너무나 외롭고 고독한 자리였다. 이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책임이 많은 만큼 그 무게도 너무 무거웠다.

 

 10년 후.

 

 나는 이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려고 한다. 나의 자리를 대신할 인물을 찾던지 아니면 내가 처음에 원했던 대로 이 세상을 모두 없애버릴지. 하지만 아직도 나의 가족들이 세상에서 여전히 살고 있었다. 그것도 웃는 모습으로... 그들을 그저 없는 무(無)의 존재로 만들기도 마음이 어려워서 나는 오랜 고민 끝에 노네임이 했던 것처럼 노트맨 후보를 뽑기 위해 인물을 살폈다. 그리고 그중에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 보이는 적당한 인물들을 몇 명 골랐다. 그렇게 나의 선택을 받은 인물들은 자신이 어떤 운명에 처해졌는지도 모르고 아무도 없는 도시에서 나처럼 눈을 떠야 했다. 총 3명이었고 모두 각기 다른 도시에서 오로지 홀로 자유의지만을 가지고 생존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안타깝게도 한 명은 너무 우울해진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여서 얼른 퍼스트를 보내서 수습을 했고 다른 두 명은 장장 일 년을 홀로 버텨내었다. 그들은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었다. 그 중 남자는 노트맨이 되기를 거부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선택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여자였는데 우선 여자는 나를 보자마자 욕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나보다 훨씬 극악한 상황에 이유도 모르고 홀로 외롭게 있었으니 그 고통이야 얼마나 심했을지 그런 행동도 이해가 갔다. 조금은 진정된 그녀를 보며 나는 차분히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된 거에요."

 

 나의 모든 설명을 들으며 그녀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자신보다 내가 더 불쌍하게 느껴졌는지도 몰랐다.

 

 "그 음악을 들려주세요. 듣고 싶어요."

 

 그녀는 엉뚱하게 노네임이 좋아했다는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틀어달라고 하였다.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해주기로 하였다. 음악을 틀기에 앞서서 나는 노네임이 음악을 들었던 검은 장소로 배경을 변경했다. 그리고 그곳에 놓인 검은색 소파에 그녀와 마주 앉아 꼭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도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음악을 들려주었다. 나는 노네임과 이 공간에서 그 음악을 들은 후로 생각이 나면 그것을 찾아서 들을 때가 있었다. 원래 라벨이 피아노곡으로 작곡을 했다가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을 했다는데 피아노 버전도 좋았지만 역시 노네임이 좋아했던 오케스트라 버전이 가장 좋았다. 호른의 은은한 소리로 시작된 꿈결 같은 6분 36초의 시간이 또 한번 찾아왔다.

 

 "흑흑흑."

 

 그녀는 조용히 숨을 죽이며 울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도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왜 울죠?"

 

 "아름다워서... 너무 아름다워서요."

 

 내가 느꼈던 그것을 그녀도 느낀 것일까? 어쨌든 나는 더 이상 감상에 젖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일을 해야만 했다.

 

 "이제 꿈에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에요. 당신은 첫 번째 노트의 주인이 될 것인가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잠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 이윽고 대답을 하였다.

 

 "네. 제가 그 노트의 주인이 되겠어요."

 

 "다행이군요. 당신이라면 나도 이제 안심하고 쉴 수 있겠어요. 그럼 당신에게 얼마나 시간을 드리면 될까요?"

 

 "시간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요?"

 

 "아니요. 오늘 밤 바로 죽게 해주세요."

 

 나는 그녀의 반응에 놀랐다. 하지만 오히려 너무 슬퍼서 그런 선택을 하였다고 생각하고는 그녀의 결정을 존중해주기로 하였다.

 

 "그래요. 그럼 오늘 밤 당신은 자고 일어나서 다시 나를 만나게 될 거에요. 그때 노트를 넘겨주도록 할게요."

 

 "네. 알겠어요."

 

 그녀는 이어서 내가 알려준 방법을 통해 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그녀는 본인의 침대에 누워 잠이 들고서 자신이 살고 있던 이야기 속 세상에서는 죽고 다시 내가 있는 세상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가족들을 배려해서 자연사로 그녀의 마지막 이야기를 써주었다. 그녀의 가족들이 많이 슬퍼했지만 이제 그 슬픔은 그녀가 해결할 문제였다.

 

 나는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고 그녀는 슬픈 미소를 띠고 문을 열어주며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그토록 무거웠던 짐을 무책임하게 떠넘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녀의 집에서 나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 집을 나선 지 오래되지 않았다. 아마 십 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여기저기 조각조각으로 흩어지며 사라지는 것과 같은 현상을 보았다. 또한 건물이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리기도 하였다. 설마 했는데 그녀는 모든 것의 소멸을 선택한 것 같았다. 이런 결말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내가 하지 못했던 일을 그녀가 해주어서 고맙기도 하였다. 나는 결국에 내 몸마저 흩어지는 것을 느끼며 내가 보는 마지막 세상에서 갑자기 어제 그녀와 들었던 라벨의 음악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허공에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다.

 

 "아..."

 

 나의 작은 신음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존재했던 세상과 함께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작가의 말
 

 완결입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1 21 2022 / 2 / 21 191 0 8175   
20 20 2022 / 2 / 20 193 0 7315   
19 19 2022 / 2 / 20 171 0 7522   
18 18 2022 / 2 / 20 182 0 7440   
17 17 2022 / 2 / 20 170 0 7298   
16 16 2022 / 2 / 18 174 0 7556   
15 15 2022 / 2 / 17 183 0 5285   
14 14 2022 / 2 / 16 187 0 4981   
13 13 2022 / 2 / 12 173 0 6188   
12 12 2022 / 2 / 8 181 0 7011   
11 11 2022 / 1 / 30 194 0 3392   
10 10 2022 / 1 / 30 186 0 2422   
9 9 2022 / 1 / 30 177 0 3874   
8 8 2022 / 1 / 30 172 0 4076   
7 7 2022 / 1 / 30 181 0 2166   
6 6 2022 / 1 / 30 183 0 2794   
5 5 2022 / 1 / 30 180 0 3766   
4 4 2022 / 1 / 30 189 0 4396   
3 3 2022 / 1 / 30 184 0 2484   
2 2 2022 / 1 / 30 187 0 3958   
1 1 2022 / 1 / 30 314 0 5188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