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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반로국왕자 비름
작가 : 코리아구삼공일
작품등록일 : 2022.2.11

대가야의 전신인 반로국에 관한 역사 판타지입니다. 조그만 반로국이 철을 이용하여 여러 나라와 해상무역으로 성장하여 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오래전 백제가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과 교류한 흔적이 있다는 기사를 접한 후 그보다 훨씬 빨리 제철기술이 뛰어났던 가야국들도 그랬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력을 가지고 이 글을 썼습니다. 가야의 여러나라들도 여러 다양한 국가들과 교류한 흔적은 있지만 역사적 자료가 극히 부족합니다. 하지만 금관가야의 왕비 허황후도 파사의 석탑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왔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오래 전 가야의 여러 나라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신 멀리, 그리고 다양한 나라들과 교류를 했을 것이라는 작가의 개인적인 추측과 상상력으로 이 글을 조심스럽게 써보았습니다.

 
이진아시의 첫사랑
작성일 : 22-02-20 12:30     조회 : 188     추천 : 1     분량 : 8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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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저녁, 강가의 버드나무 아래에 이진아시가 서 있었다. 다래가 꽃다지를 데리고 살그머니 나타났다.

 “저희, 왔어요.”

 다래는 꽃다지의 등을 떠밀고는 교활한 웃음을 지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꽃다지는 어설프게 이진아시의 앞으로 다가갔다.

 “나와주어서 고맙구나.”

 이진아시가 꽃다지에게 미소를 지었다. 꽃다지는 아이처럼 수줍게 미소짓는 이진아시를 보면서 마음이 조금 풀렸다.

 ‘내가 그동안 너무 겁을 집어먹었었나?’

 “그래,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진아시가 꽃다지를 바라보면서 말문을 열었다.

 “저....저...그게....”

 “어려워하지 말고 말해보아라.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지 도와주마.”

 이진아시는 꽃다지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제 동생이.....야철소에서 일을 배우고 싶어하는데....”

 꽃다지가 말끝을 흐리자 이진아시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다래가 야철소에서 일을 배우고 싶어한다고? 그럼 내가 다래를 야철소에 집어넣어주면 되느냐?”

 “아~. 저...그게 가능하다면요....”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형님에게 부탁하기만 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야철소에 넣어줄 수 있다.”

 이진아시가 흔쾌히 수락하자 꽃다지는 너무 고마워서 이진아시에게 연신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도련님.”

 “네 동생의 일은 끝났고, 너는 나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없느냐?”

 “네? 아! 네.”

 이진아시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나도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게 있는데....내가 낚시를 하러 가는데 함께 가다오. 배를 타고 말이다.”

 이진아시는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를 보여주면서 먼저 배 위에 올라탔다. 이진아시가 활짝 웃으면서 손을 내밀자 꽃다지는 무척 부끄러워하면서 그 손을 잡았다.

 이진아시는 배를 저어 강 한가운데로 갔다. 그들의 모습이 멀어져서 작은 점이 되었다. 멀리서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수풀 속에 숨은 다래가 그 광경을 몰래 훔쳐보면서 미소지었다.

 ‘드디어, 성공이다.’

 

 다음날 다래는 이진아시의 주선으로 야철소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니, 이런 법이 어딨어? 그 애는 내 시녀란 말이야.”

 벌노랑이는 입이 툭 튀어나온 채, 이진아시에게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녀는 다른 아이로 골라서 데려가. 이 애는 힘이 좋아서 웬만한 장정보다 나아. 우리 반로국의 야철기술이 더 발전하려면 그런 아이가 꼭 필요해.”

 이진아시는 벌노랑이를 뒤로 하고 다래를 데리고 야철소로 향했다.

 이진아시가 구슬붕이에게 다가가서 몇 마디 하자, 구슬붕이는 다래를 힐끗 노려보았다.

 이진아시가 사라지자 구슬붕이는 다래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생각보다 능력이 좋구나! 이진아시의 마음을 움직이다니. 무슨 잔꾀를 부렸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거다. 우선 산에 가서 참나무를 베어 지게 가득 지고 와라. 하루에 다섯 번 이상. 넌 당분간 나무하는 일을 맡아라. 참나무를 도끼로 쪼개어 장작으로 말리는 것도 너의 일이다.”

 구슬붕이는 묵직한 쇠도끼를 다래의 손에 쥐어주었다. 다래의 얼굴에 순간 실망스러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왜? 싫은 게냐? 싫으면 안 해도 좋다! 그 대신 여기서 나가야 한다.”

 “아닙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래는 구슬붕이에게 쇠도끼를 받아들고 지게를 지고 참나무숲으로 향했다.

 그 후, 몇 달 동안 산에서는 다래가 쇠도끼로 참나무를 찍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으휴, 힘들어라. 몇 달째 나무만 하고 있는거냐고? 구슬붕인지 구슬사발인지 눈은 쭉 찢어져가지고 성질도 더럽게 생긴 게 괜히 가르쳐주기 싫으니까. 나무 베는 일만 시키고 말이야.”

 다래는 혼자서 궁시렁궁시렁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러니까 마누라도 도망쳤겠지? 죽은 거 좋아하네. 어느 여자가 붙어서 살겠냐고. 괜히 마누라가 도망갔다고 하면 쪽팔리니까. 어이구. 이놈의 지게는 왜 이렇게 무거워?”

 하지만 다래는 야철소 근처에만 가면 아주 다소곳한 표정을 지으면서 공손하게 행동했다.

 “나무는 다 쪼개어서 널어놓았습니다. 대장님, 이제 숯을 만들깝쇼?”

 그러면 구슬붕이는 흐릿한 눈빛으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다래는 한여름에도 뜨거운 햇볕아래에서 장작에 불을 지펴 숯을 만들었다. 다래의 얼굴은 햇볕에 타고 산모기에 물려고 불에 데이기도 해서 아주 뻘거죽죽해졌다. 다래가 여자였다는 사실을 야철소의 모든 사람들이 망각해버렸다.

 

 달빛이 비치는 저녁, 이진아시는 틈만 나면 꽃다지가 있는 ‘신녀의 방’ 근처 대나무숲에 숨어있었다. 이진아시가 뻐꾹뻐꾹 뻐꾸기 울음소리를 내자 꽃다지가 머리만 쏙 내밀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대나무숲으로 잽싸게 들어왔다. 이진아시는 꽃다지를 끌어안았다.

 “그동안 왜 그렇게 안 왔어?”

 “우리 아버지랑 어딜 좀 다녀오느라고 여기에 없었거든. 미안하다.”

 꽃다지가 묻자 이진아시가 대답했다.

 “보고 싶었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대숲에 또 하나의 그림자가 그늘 속에 몸을 숨긴 채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진아시. 꽃다지.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나.’

 그림자는 귀신처럼 조용히 나무그늘이 만드는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고 사라졌다.

 구름송이의 눈앞에 이진아시와 꽃다지가 배에 앉아서 마주보고 웃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자신의 여동생 벌노랑이가 전투에서 이진아시를 위해 철퇴를 휘두르면서 뛰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벌노랑이, 모든 일은 물 흐르는 대로,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 강물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며칠 후, 비름과 은방울은 이진아시를 불렀다. 방 안에는 구름송이가 함께 있었다.

 비름과 은방울의 얼굴은 아주 심각해보였다.

 “이진아시, 너도 이제 혼례를 올릴 나이가 되었다.”

 이진아시는 활짝 웃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말인데 벌노랑이와 네가.......”

 “아버지, 저는 꽃다지가 마음에 들어요.”

 비름과 은방울의 표정이 굳었다. 구름송이가 이진아시에게 동물뼈를 태운 것을 보여주었다.

 “제가 점을 치니 여러 신부감 후보들 중에서 이진아시와 궁합이 가장 맞는 사람은 벌노랑이였습니다. 그리고 몇 날 며칠 기도를 올린 결과 반로국 수장이 될 사람은 외지인과는 혼인을 금한다는 신탁을 받았습니다. 적화국과 반로국 그리고 가시혜국 모두의 핏줄을 이은 사람이 군장의 자리를 물려받되 가장 가까운 핏줄과 혼인하라는 신의 계시입니다.”

 그러자 이진아시는 구름송이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거. 그 신탁이라는 거 믿을 수 있는거에요?”

 구름송이가 고개를 돌려 외면하자 은방울이 이진아시에게 말했다.

 “혼인이란 건 네가 좋다고 아무나 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진아시.”

 “전 지금 꽃다지를 마음에 두고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벌노랑이 누나와 혼인을 하라는 거에요?”

 “너도 예전부터 벌노랑이의 말이라면 뭐든 따랐지 않니?”

 비름이 이진아시를 타이르듯이 말했다. 이진아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 부인은 제가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비름이 이진아시의 팔을 붙잡았다.

 “군장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꼭 부인이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단다. 네 할아버지께서도 부인이 두 분이셨지. 그래서 이 애비도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고. 네가 꼭 꽃다지와 맺어지고 싶다면 벌노랑이와 혼인을 한 연후에 꽃다지를 첩으로 들이는 방법도 있단다.”

 “싫습니다. 저는 반로국의 군장 자리 같은 것 물려받고 싶지 않아요.”

 이진아시는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방문 밖에는 벌노랑이가 서 있다가 이진아시를 보고 멋쩍은 듯 고개를 돌렸다. 이진아시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벌노랑이는 ‘신녀의 방’에서 꽃다지와 마주 앉아있었다. 벌노랑이는 사나운 눈초리로 꽃다지를 바라보았고, 꽃다지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역시 재주가 좋아. 그 얼굴 하나로 십수 년을 함께 한 나를 밀어내다니.”

 “아씨,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여주세요.”

 꽃다지가 말하자 벌노랑이는 코웃음을 쳤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게 죽을죄까지야 되겠느냐? 내가 이진아시와 혼인을 하면 너도 첩실로 삼아서 들여 앉혀주마. 이진아시가 아직 어려서 뭘 잘 몰라서 저렇게 길길이 날뛰는데, 이진아시는 아무하고나 마음대로 혼인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것 너도 짐작은 가지?”

 꽃다지는 벌노랑이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이진아시를 만나면 잘 타이르라는 말이다. 이진아시가 혼인을 하는 것이 너에게도 득이 될 것이다. 사실 내가 이진아시의 사촌누이가 되니 이런 배려를 하는 것이지. 다른 여자들이이진아시와 정혼하면 넌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도 가시혜국이나 적화국에서 서로 딸을 주려고 난리를 치고 있는 마당인데, 거기서 시집오는 여자들이 포로로 끌려온 너 하나쯤 없애는 것은 식은 죽 먹기지. 난 우리 집안이 번성하길 바란다. 우리 집안은 손이 너무 귀해. 그래서 이진아시가 좋아하는 여자 하나쯤은 첩실로 들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내가 혼인을 하고 나면 너도 곧 혼례를 치르고 첩으로 들여 앉혀주마. 너도 어떻게 하는 것이 네 인생이 순탄한지 잘 생각해보고 행동하거라.”

 벌노랑이는 할 말을 마치고 일어서서 나가버렸다. 그러자 병풍 뒤에 숨어있던 다래가 튀어나와서 꽃다지에게 속삭였다.

 “이야. 벌노랑이아씨 화통한 구석이 있네. 언니. 첩이면 어때? 우리 처지에. 언니가 이진아시님께 잘 말해서 벌노랑이님과 혼인하고 언니는 첩실로 앉혀달라고 해. 그것만 해도 어디야? 언니는 좋아하는 사람과 살 수 있고. 정실부인은 두 사람 사이를 인정해주겠다는 거잖아.”

 그날 저녁 달빛 아래에서 이진아시와 꽃다지가 대나무 숲에 앉아있었다.

 “저는 도련님이 벌노랑이아씨와 혼인을 하셔도 좋습니다. 벌노랑이아씨는 똑똑하고 현명한 분인 것 같아요. 벌노랑이아씨께서 도련님과 혼인을 하고 나면 곧 저도 혼례를 치르고 첩으로 들여주신다고............”

 “뭐? 첩? 자기가 뭔데 그런 걸 정하는 거야? 벌노랑이누나 진짜 웃기네.”

 이진아시의 얼굴이 확 구겨지면서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도련님....흥분하지 마시고 제 말을 좀 들어......”

 “됐어. 그만해!”

 이진아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꽃다지가 이진아시를 붙잡으면서 말했다.

 “차라리 도련님이 벌노랑이님과 혼인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어차피 전 노비로 끌려온 신세 어찌 정처의 자리를 바라겠습니까? 도련님이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전 더 구박받을지도 몰라요. 벌노랑이님은 저를 첩으로 인정해주겠다고 하셨어요.”

 “듣기 싫다! 내가 너와 혼인 하겠다면 하는 거지. 자기들이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이진아시는 그대로 달려서 벌노랑이의 거처로 갔다. 이진아시는 벌노랑이의 방문을 확 열어제쳤다. 벌노랑이는 단궁을 만지고 있다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이진아시를 쳐다보았다.

 “아이구, 깜짝이야. 갑자기 소리도 없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

 이진아시는 벌노랑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따졌다.

 “네가 뭔데 꽃다지에게 첩으로 들여 앉혀준다느니 뭐니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응?”

 벌노랑이는 이진아시의 말을 듣고 픽하고 웃었다.

 “뭐? 그것 때문에 이 밤중에 달려온 거야?”

 “난 너와 혼인같은 거 하지 않아. 그러니 꽃다지에게 다시는 그런 헛소리 하지 말라는 말을 하려고 온 거야.”

 벌노랑이는 냉정한 얼굴로 이진아시에게 말했다.

 “이진아시. 너 연애 마음대로 해. 난 상관 안 해. 하지만 혼인은 나도 너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네가 반로국 군장의 손자로 태어난 이상. 나도 마찬가지고.”

 벌노랑이는 이진아시의 곁으로 다가가서 이진아시의 손을 잡고 어깨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우린 힘을 합쳐서 반로국을 성장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야. 서로 가까이서 믿고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 받아야한다고. 그러니까 혼인은 나같은 사람하고 하는거야. 꽃다지랑 연애 마음껏 해. 나 너희들 사이 갈라놓을 생각 전혀 없어.”

 이진아시는 괜히 반항심이 치밀어올라서 벌노랑이의 손을 뿌리쳤다.

 “난 너와 생각이 달라. 난 내가 좋아하는 여자와 혼인하고 싶어. 마음에도 없는 혼인 하고 싶지 않아.”

 “아직 네가 어려서 뭘 잘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반로국이 건재해야 너도 있고 나도 있는 거야. 꽃다지가 무엇을 해서 널 도울 수 있니? 반로국은 아직 힘이 약해. 적화국에서 만든 철을 배로 실어나르려면 우리 외가의 도움이 꼭 필요해. 네가 반로국 군장의 손자로 태어난 이상 너도 네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모든 것이 아무 댓가없이 되는 줄 아니? 만약 반로국이 흔들리고 나라가 없어지면 너희 두 사람 사랑인들 온전할 것 같아? 그러니까 혼인은 나랑 하고 꽃다지랑은 연애를 하든 첩실로 앉히든 하라고.”

 이진아시는 벌노랑이를 노려보았다.

 “이상한 말로 날 현혹하지마. 난 너와 생각이 달라. 난 너랑 어떤 것도 할 생각이 없어. 그러니까 일찌감치 꿈 깨라고!”

 이진아시는 벌노랑이의 말을 무시하고 문을 박차고 밖으로 사라졌다. 벌노랑이는 그런 이진아시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어리고 바보같구나. 이진아시. 진짜 사랑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다음날 밤, 이진아시는 말 두 필을 대나무숲에 매어놓고 꽃다지를 기다렸다.

 말 위에는 커다란 짐이 실려 있었다.

 달빛 아래 작은 그림자가 대숲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꽃다지! 여기야.”

 꽃다지는 말을 쳐다보더니 놀란 듯 말했다.

 “도련님! 이게 다 뭐에요?”

 “마굿간에서 최고로 힘 좋은 말이야. 너와 함께 멀리 떠나려고 내가 몰래 빼돌렸어.”

 순간 꽃다지는 겁먹은 얼굴을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떠...떠난다구요?”

 “그래, 떠나자! 여길 떠나서 멀리 진국이나 바닷가쪽으로 가서 배를 타고 가면 너와 나 우리 둘이 살 곳이 없겠니?”

 이진아시가 꽃다지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꽃다지는 이진아시의 손을 뿌리쳤다.

 “싫어요!”

 이진아시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뭐? 싫어?”

 “그래요. 싫어요.”

 “아니! 왜? 왜 싫어? 너도 나 좋아하잖아.”

 이진아시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꽃다지가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좋아하기만 하면 되나요? 우리가 밤도망을 치면 여긴 난리가 날겁니다.”

 “이...일단 여길 떠났다가 우리가 아이라도 하나 낳아서 오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널 받아주실거다!”

 “그 전에 제 동생과 제 부모가 죽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도련님. 생각을 좀 해보세요. 도련님은 어찌 그리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모르십니까? 제가 여기서 도련님과 밤도망을 치면 도련님 부모님께서는 제 동생부터 잡아 족칠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도련님의 아버님께서는 다라부족에 있는 제 가족들을 벌하실 겁니다. 그런데 다짜고짜 의논 한마디 없이 밤도망을 치자니요?”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잔인한 분이 아니야!”

 이진아시가 변명하듯이 말했지만 꽃다지는 그런 이진아시에게 냉소를 흘렸다.

 “잔인한 분이 아니라서 우리 다라부족을 처참하게 짓밟았군요. 반로국이 쳐들어왔을 때, 우린 사촌 오라비 둘과 삼촌을 모두 잃었어요.”

 “그건...그건 나라의 세력을 키우다보면 불가피한 싸움이었어. 이제와서 왜 지난 일을 들추어내는거야? 지금 중요한 건 너와 나의 마음이야.”

 꽃다지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이진아시를 쳐다보았다.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내가 널 아무 계산없이 좋아했다고 생각해? 포로로 끌려온 내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아?”

 “무슨 소리야? 도대체?”

 “늙어 죽을 때까지 이곳에 노비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나에게 관심을 보여줘서 썩은 진흙탕에서 좀 벗어날까 한 가닥 희망을 가졌던거야. 그런데 네가 이렇게 무모한 줄은 미처 몰랐어. 제멋대로인 건 짐작했지만.”

 꽃다지가 홱 돌아섰다.

 “그러니까 넌 너희 식구들 걱정 때문에 나랑 못 떠난다는 말이야. 아니면 애초에 날 좋아한 게 진심이 아니었다는 말이야? 뭐야? 똑바로 말해!”

 이진아시가 꽃다지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소리쳤다.

 “머리가 나쁜 건 아닌 것 같은데, 제멋대로 자라서 그런 건지. 정말 한심하다. 둘 다야! 난 너랑 도망가서 지지리 고생할 생각도 없고, 내 부모형제에게 피해를 줄 생각도 없어. 넌 그냥 벌노랑이아씨랑 혼인해. 그러고 나서 날 첩실로 앉혀주면 네 덕이나 좀 보면서 편안하게 살게. 내가 바라는 게 그거야. 아직도 상황판단이 안되니?”

 꽃다지는 냉정하고 차갑게 말했다.

 “너...너 지금 그..그 말 진심이야?”

 이진아시가 꽃다지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내가 간악한 여자같아? 너 지금 상처받은 척하는 거야? 겨우 이딴 걸로? 우리 부족 사람들은 네가 끌고 온 반로국 군사들의 칼에 남편과 자식을 잃었어. 그런데 너, 겨우 내 마음이 순수한건지 계산적인건지 지금 그딴게 중요한 거야? 너, 정말 배가 불렀구나. 네가 내 입장이었다면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 같아? 포로로 끌려와서 노비가 된 마당에?”

 이진아시의 머릿속은 누군가에게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해졌다.

 “나 빨리 들어가봐야 돼. 여기 있다가 우리 둘이 도망치려고 했다는 걸 누가 보면 난 죽은 목숨이야. 날 갖고 싶으면 앞으로 생각 좀 많이 하고 행동해.”

 꽃다지는 이진아시의 손을 뿌리치고 뛰어갔다.

 이진아시는 멀어져가는 꽃다지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한참동안 대숲에 멍하니 서 있었다.

 말 두 마리를 끌고 마굿간으로 돌아오던 이진아시에게 벌노랑이가 가만히 다가와 어깨를 쓸어주었다.

 “대단한 사랑을 하는 줄 알았는데, 벌써 차인 거니? 네가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것의 실체가 뭔지 이제야 알았어? 사랑이란 것도 서로 형편이 엇비슷해야 하는 거지. 꽃다지 말 틀린 것 하나도 없다. 넌 항상 네 마음만 중요했지, 꽃다지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잖아. 네가 하려는 짓은 그 애에겐 죽자고 불구덩이에 뛰어들자는 소린데. 왜 그걸 몰라?”

 이진아시는 벌노랑이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내 앞에서 사라져! 다시는 내 앞에서 개똥철학 나불대지 마! 그런다고 내가 널 선택할 것 같아?”

 분노한 이진아시는 말 위에 얹힌 짐을 들어서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벌노랑이는 깜짝 놀라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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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불행의 씨앗 2022 / 2 / 15 198 1 6940   
4 하늘이 내려준 배필 (2) 2022 / 2 / 11 224 1 7059   
3 새로운 인연들 2022 / 2 / 11 189 1 3283   
2 시련 2022 / 2 / 11 189 1 3460   
1 탄생 (1) 2022 / 2 / 11 311 1 3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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