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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시간의 편지
작가 : 일희삼
작품등록일 : 2022.2.14

받는 이, 받는 시간을 쓰면 과거든 미래든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전달되는 우표를 갖게 된 소영과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1부 - 제 4화. 찬란한 (4)
작성일 : 22-02-20 00:18     조회 : 221     추천 : 1     분량 : 7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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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할게.”

 

 다음 날 아침. 재영과 소영이 함께 집에서 나왔다. 재영은 굳이 소영이 셔틀버스를 타는 데까지 데려다주겠다고 고집 부렸지만 소영은 재영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빨리 집 가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라 일렀다.

 

 “들어가기 전에 전화할게.”

 

 “아마 못 받을 거야. 그래도 해.”

 

 “간다.”

 

 소영과 재영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갔다. 소영은 괜히 뒤를 돌아 재영의 뒷모습을 봤다. 다치지 말고 몸조심하라는 형식적인 덕담이라도 할 걸 그랬나 후회했지만 어련히 잘 하겠지 생각하곤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넜다.

 

 이내 셔틀버스가 도착했다.

 

 

 

 공장에 도착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속속들이 도착한 셔틀버스에선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쏟아져 내렸다. 모두 다른 이야기, 다른 삶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곳에 모여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조금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소영은 잠시나마 공장 직원들이 자신의 피아노 연주회 객석을 가득 채운 상상을 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예전에 공장 직원이었던 걸 기억해내고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만큼 큰 박수소리가 그녀의 상상 속에서 메아리쳤다.

 

 그리고 1열 가운데 자리에는 관희가 앉아 있었다.

 

 소영은 연주를 마치고 앞으로 나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관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소영은 상상 속에서 나와 가방을 고쳐 멨다. 힘없이 걷는 관희의 뒷모습을 발견하곤 그리로 뛰어갔다.

 

 “이따 서류 작업 할 거 있죠?”

 

 소영의 관희의 어깨를 툭툭 치자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양 꽤나 놀란 모습이었다.

 

 “예? 아니요.”

 

 “도와줄 테니까 점심시간에 사무실로 와요.”

 

 “서류 작업 할 거 없는데……”

 

 “그럼 이따 봐요.”

 

 소영은 총총걸음으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관희는 그런 소영을 보며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벽시계가 12시 3분을 넘어가는 시간. 공정부서 사무실 문이 열리고 관희가 들어왔다.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던 소영은 관희를 보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컴퓨터 모니터는 까맣게 꺼져 있었다.

 

 관희는 문 앞에서 어색하게 손에 쥔 볼펜을 딱딱 거리며 그렇게 서 있었다.

 

 “서류 작업 할 게 없는데……”

 

 관희가 중얼거리자 소영이 도도하게 일어나서 관희에게 다가왔다.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요.”

 

 소영은 그렇게 말하곤 관희에게 손을 뻗었다. 관희가 놀라 몸이 경직된 순간. 소영은 관희의 뒤에 있는 문고리를 잡고 돌려 문을 열었다. 관희는 괜히 심장이 뛰는 소리가 소영에게 들리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소영이 밖으로 나가자 관희는 그녀의 뒤를 쪼르르 따를 뿐이었다.

 

 함께 배식을 받고, 구석 자리로 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소영은 말없이 밥을 먹었다. 관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관희는 소영을 힐끔 거리며 그녀의 속도에 맞춰 숟가락을 들었다 놨다.

 

 지나가던 남자 직원들이 관희를 툭툭 치며 씨익 웃었다. “야, 뭐냐?” “오~” 등 이상한 추임새를 넣는 남자들도 있었다.

 

 “서류 작업이 같이 끝나서……”

 

 관희는 그럴 때마다 구구절절 변명했다. 그가 주변 시선 때문에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하는 사이, 소영은 빠르게 밥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렸다. 관희는 밥은 그대로 남기고 그녀를 쫓아 나갔다.

 

 남자 직원들만 그들을 보고 있던 게 아니었다. 종종 사내연애를 하는 커플이 생기기도 했고 결혼에 골인해 오붓한 회사 생활을 하는 대리 커플도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어린 직원들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모두의 시선을 끌만한 일이었다.

 

 “차소영 쟤는 어제부터 우리랑 따로 밥 먹더니.”

 

 소영과 함께 입사한 다른 경리들의 눈에도 당연히 그들이 들어왔다. 반면 다인은 오로지 식판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한 톨 한 톨 밥알을 세어가며 먹는 양 젓가락을 깨작댔다.

 

 “왜요? 같이 나간 사람이랑 사귄대요?”

 

 다른 경리도 합세해 속에서 끓어오르던 입방아를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똑같은 구조의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타인의 연애가 가장 흥미를 끄는 일인지도 몰랐다.

 

 “몰라. 남자가 따라다니는 것 같긴 한데. 알 수가 없단 말야.”

 

 그렇게 그들의 수군거림이 무르익으려 할 때. 갑자기 다인이 숟가락을 세게 내려놓았다.

 

 “아, 깜짝이야.”

 

 경리들이 숙였던 허리를 곧게 펴며 놀란 눈으로 다인을 쳐다봤다.

 

 “다 먹었으면 수다 그만 떨고 가자.”

 

 다인이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다른 경리들의 식판은 텅 비어 있었다. 다인은 밥을 먹었는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식판이 가득 차 있었다.

 

 “다인 언니는 저 두 사람 어떤 거 같아요? 퇴근버스에서도 요즘 같이 앉던데.”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 커피 타기.”

 

 다인은 동문서답하며 씨익 웃었다. 그리곤 가장 먼저 일어나 식판을 들고 가 버렸다.

 

 “뭐야. 우리가 뭐 잘못했나.”

 

 경리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 일어났다. 멀리 퇴식구에서 유일하게 노란빛을 내는 다인의 뒷머리가 오늘 따라 더 길어보였다.

 

 

 

 소영이 벤치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홀짝거렸다. 관희는 그 맞은편에서 종이컵을 손에 쥔 채 소영의 눈치만 볼 뿐이었다.

 

 소영은 오랜만에 하늘을 본다고 생각했다. 최근 모니터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느라 눈이 쑤셨다. 점심시간이라도 이렇게 나와 여유롭게 하늘을 바라본다는 게 참 좋았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1시가 가까워지자 직원들이 하나 둘 담배를 끄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영도 남은 커피를 털어놓고 일어났다.

 

 “저, 소영 씨.”

 

 관희도 소영을 뒤따라 일어나 말을 걸었다. 벤치에 온 뒤로 처음 꺼내는 말이었다.

 

 “내일도 같이 점심 먹을 수 있어요?”

 

 관희는 내내 골똘히 생각하고 용기 냈던 말을 꺼냈다. 소영은 괜히 그런 관희가 고마워서 미소 지었다.

 

 “안 돼요.”

 

 “……네.”

 

 의외로 관희는 소영의 거절을 받아들였다. 왜 인지, 왜 안 되는 지 따위는 묻지 않았다. 소영은 그런 관희를 보자 더 웃음이 나왔다.

 

 “그러지 말고 주말에 저녁 먹어요.”

 

 소영은 그렇게 말하곤 홱 돌아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관희는 터져 나오려는 미소를 참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공장까지 뛰어갔다. 기분 좋은 바람이 귀를 부드럽게 감쌌다.

 

 . . . . . .

 

 “소영 씨!”

 

 관희가 공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느새 실내는 1990년대 스타일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바뀐다. 관희는 후줄근한 작업복이 아니라 잘 다려진 검정 셔츠를 입고 있다.

 

 소영은 관희를 발견하고 웃으며 걸어 들어온다. 소영 역시 밝은 색 계열의 셔츠가 잘 어울렸다.

 

 “찾는데 오래 걸렸죠. 여기 제가 어렸을 때부터 오던 곳인데 입구가 작아서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에요. 혹시 돈가스 좋아해요? 여기가 경양식 돈가스만 하는 곳은데 경양식이 뭐냐면……”

 

 관희는 소영이 앉자마자 준비라도 했다는 양 멈추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소영은 그런 관희를 미소 띈 얼굴로 보더니 그의 말을 끊었다.

 

 “천천히 해요. 우리 오늘 식사는 한 시간이 아니라 더 기니까.”

 

 관희는 민망한 듯 소영을 보곤 씨익 웃어 보였다. 덩달아 긴장했던 소영도 관희의 미소를 보자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주문한 돈가스가 나오자 두 사람은 의외로 말없이 먹었다. 마치 오늘의 저녁 식사를 위해 지금까지 금식이라도 했다는 듯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그러다 문득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서로라는 걸 깨닫고 볼 안 가득 돈가스를 넣은 두 사람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 모두 겨울잠을 준비하는 다람쥐마냥 볼이 빵빵했다.

 

 

 

 “발 아프지는 않아요?”

 

 배부른 배를 소화시키기 위해 관희가 식당에서 나와 산책을 하자고 제안했다. 소화라는 명목을 갖고 있었지만 사실 소영과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소영 역시 이대로 헤어져 주말이 끝나고 또 작업복을 입은 서로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 좋았다.

 

 “괜찮아요.”

 

 소영은 발에 딱 맞는 구두를 괜히 내려다봤다. 아직까지는 발이 아픈 줄 몰랐다. 아마 관희와 함께 길을 걷고 있다는 게 그보다 더 컸다. 남자와 단 둘이 걷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오늘 저녁 맛있었어요.”

 

 소영이 멈춰 서서 관희를 올려다봤다. 소영은 몰랐는데 관희와 사이가 생각보다 가까웠다.

 

 “다음에 또 소영 씨랑 같이 주말 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소중한 주말 저녁 저랑 보내줘서 고마워요.”

 

 관희는 마주 잡은 두 손을 만지작거렸다. 소영은 아차 싶어 말을 덧붙였다.

 

 “여기가 집이에요.”

 

 “아. 그럼 회사에서 봐요.”

 

 관희는 소영이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소영은 뭔가 기다리는 듯 관희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다음에 또 돈가스 먹으러 가자면서요.”

 

 “네?”

 

 “약속을 잡아야 가죠.”

 

 소영은 그렇게 말하곤 털털하게 웃었다. 관희도 소영을 따라 웃었다.

 

 “저는 소영 씨가 시간되는 날이면 다 좋아요.”

 

 소영은 웃음을 멈추고 관희의 진실된 눈을 다시 마주봤다.

 

 

 

 “내가 시간 되면 알려주겠다고.”

 

 갑자기 고등학생 때 연인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다음 데이트 날짜를 정할 때마다 그가 습관적으로 하던 말이었다. 그는 항상 소영이 자신의 시간에 맞춰주길 바랬다. 친구들과 노는 게 소영보다 중요했고 개인 시간을 필요로 했다.

 

 남에게 맞춰주는 연애는 하고 싶지 않던 소영이다.

 

 그런데 관희는 먼저 소영에게 시간을 줬다. 그녀가 괜찮은 시간이면 관희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주말은 항상 시간 비어요.”

 

 소영이 대답하자 관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 . .

 

 두 사람은 어느새 벚나무 길을 걷고 있다. 나무 틈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피해 두 사람은 마주잡은 두 손을 절대로 놓지 않았다. 바닥에 깔린 벚꽃이 마치 푹신한 침대라도 되는 양 두 연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서로를 사랑하는 만큼. 앞을 보고 걷기보단 당신을 보며 걸었다. 몇 번이고 넘어질 뻔 했지만 두 사람에겐 상관없었다.

 

 그렇게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개천 옆 산책로에서 시원한 개울물 소리를 들었고 드넓은 공원에서 두 사람만 있는 양 마음껏 웃어젖혔다.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땐 고양이보다 작은 발소리로 서로에게 단단히 붙었다.

 

 공장에서 마주칠 땐 둘 만의 은밀한 신호를 보내 ‘사랑해’라고 말했다. 소영은 괜히 현장직에 보낼 서류가 있으면 팩스로 보내지 않고 직접 움직였다. 그러다 관희를 마주치면 윙크를 보내곤 했다. 관희 역시 탕비실에 들리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 전엔 탕비실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였다.

 

 컨베이어벨트 틈으로 서로의 눈을 찾았고, 서로의 발소리를 알아채 쳐다보지 않고도 내 연인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

 

 사내식당에서 함께 앉지는 않지만 고개만 들어도 서로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고 배식을 받거나 퇴식을 할 땐 우연을 가장해 함께 움직였다.

 

 주말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함께 돈가스를 먹고, 국밥집에서 뜨거운 국밥을 먹고, 분식집에서 김밥을 먹고, 전골 집에서 샤브샤브를 먹었다.

 

 소영은 그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좋았다. 왜 지금까지 이 행복함을 몰랐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관희와의 4살 차이가 무색할 만큼 두 사람은 이제껏 서로를 알았던 양 마음이 맞았다. 식습관, 생활습관, 생각 전부가 쌍둥이처럼 닮았다.

 

 ‘운명의 남자일지도 모르겠다.’

 

 관희를 만난 지 10개월. 소영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함께 있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 같고, 그와 함께 있지 않은 시간엔 무얼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소영은 차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상에 앉아 스탠드 조명을 켰다. 어두운 방을 작은 불빛이 환하게 비췄다. 마치 관희를 향한 뜨거운 심장이 온 몸을 데우듯.

 

 ‘관희 씨에게.’

 

 소영은 두꺼운 노트에 편지를 적어나갔다. 노트는 이미 끝 페이지에 가까웠다. 관희와 소영이 서로에게 편지를 주고받는 노트였다.

 

 편지를 끝내고 나서 소영은 노트 귀퉁이에 예쁜 우표를 붙였다. 꼭 붙어 있는 연인의 뒷모습이 일러스트 된 우표였다.

 

 소영은 공장에 출근해 남들의 시선이 없을 때 울타리 밑 잡은 공간에 노트를 밀어 넣었다. 겉으로 봤을 때 노트는 완벽하게 감춰졌다.

 

 그러면 관희가 퇴근하기 전 노트를 꺼내 집으로 가져갔다. 관희는 씻고 나와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바닥에 엎드려 소영의 편지를 읽었다. 한 자 한 자 소중하게 담긴 글씨를 몇 번이고 읽었다.

 

 머리가 빳빳하게 마를 때까지 편지를 몇 번이고 읽은 관희는 가장 예쁜 볼펜을 꺼내와 편지를 썼다. 못생긴 글씨체 때문에 한 자 한 자 정성으로 눌러 담았다.

 

 “소영 씨에게.”

 

 관희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마무리한 후에 귀퉁이에 우표를 붙였다. 우표를 붙인 귀퉁이들이 여러 장 겹치면서 노트는 아코디언처럼 부풀어 올랐다. 관희는 그 부분을 매만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관희는 아침에 출근해서 울타리 밑 작은 공간에 노트를 밀어 넣었다. 울타리 주변엔 어느새 뽀얀 눈이 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봄에 만난 두 사람은 벌써 세 번째 계절을 맞이했다.

 

 . . . . . .

 

 “소영아.”

 

 “응?”

 

 “우리 만난 지 오늘로 딱 10개월째야.”

 

 벗은 옷가지들로 엉망인 소영의 집. 어깨선까지 이불을 덮고 있는 관희는 이불 속에서 소영의 체온을 느끼며 말했다. 소영은 눈을 꾹 감은 채로 관희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관희가 이제 소영의 집에 살다시피 한지 어느덧 한 달 째. 관희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영에게 키스했고 소영은 주먹을 꽉 쥔 채 침대 위로 넘어졌다. 그는 연인의 위로 누워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소영은 관희의 뜨거운 체온이 좋았다. 그를 안고 있으면 세상 모든 걱정이 날아가는 듯했다. 그의 입술은 쉬폰 케잌처럼 부드러웠다.

 

 “벌써 그렇게 됐어? 하긴. 벌써 겨울이니까. 좀 있으면 한 살 더 먹겠네.”

 

 “있잖아. 소영아.”

 

 “응?”

 

 침대 옆에 있는 작은 책꽂이에는 아코디언처럼 부푼 노트가 3권이나 됐다. 두 사람은 그 노트를 어찌나 읽었는지 10년이 넘은 듯 노트는 꼬질꼬질했다.

 

 “우리 결혼할래?”

 

 관희는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소영은 그제야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관희를 쳐다봤다. 그의 눈에는 진실의 구슬이 서려있었다.

 

 “진심이야?”

 

 “응.”

 

 “……그래.”

 

 소영은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어차피 정해져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어? 그래, 라고 했다! 지금!”

 

 “했다, 했어.”

 

 관희는 질문하기도 전에 겁을 먹었었는지 소영의 대답을 듣자마자 어쩔 줄 몰라서 몸부림쳤다. 소영은 놀라서 이불을 꽉 붙잡았다.

 

 “가만히 좀 있어봐.”

 

 소영이 관희에게 꿀밤을 먹이곤 조금 밑으로 내려가 그의 가슴에 귀를 갖다 댔다.

 

 “지금 오빠 심장 소리 듣는 중이잖아. 진짜인가, 거짓말인가.”

 

 관희는 괜히 숨을 참았다. 심장소리는 귀에 갖다 대지 않아도 충분히 크게 들렸다.

 

 “빨리 뛰는 거 보니까 거짓말은 아닌 거 같네.”

 

 소영은 관희의 가슴에서 얼굴을 떼고 그와 입을 맞추었다.

 

 “나도 오빠랑 결혼하고 싶어.”

 

 관희는 좋은 표정을 숨길 수 없는 한편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관희도 놀란 듯 손으로 눈을 비볐다. 소영은 관희의 손을 붙잡고 다시 한 번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은 그렇게 오랬동안 키스했다.

 

 그 시간이 영원한 것처럼. 단 한 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안 될 것처럼. 두 사람은 어두운 방 안에서 환하게 빛나는 은하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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