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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좋아하세요...
작가 : 일희삼
작품등록일 : 2022.2.1

소개팅이 엇갈려 우연히 만난 극작가와 연극배우가 11살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사랑의 아픔을 치유하는 이야기.

 
마지막 화. 좋아하세요.
작성일 : 22-02-20 00:14     조회 : 185     추천 : 1     분량 : 8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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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극장 뒤에 있는 주차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나무가 하나 있다. 보통의 가로수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무였다. 가지가 뾰족한 가시가 나 있어 좀체 가로수로는 어울리지 않았고 잎은 어긋난 달걀모양의 긴 타원형을 가지고 있어 낙엽이나 플라타너스와는 다른 이질감을 보였다.

 

 여름이 오기 전에는 작은 흰 꽃을 피워 그나마 볼만 했지만 꽃이 지고 나서는 사람들은 아무런 눈길도 주지 않고 주차장을 이용한 사람이라도 “거기 나무가 있어?”라고 되물을 정도였다. 나무의 그림자도 주차장 반대편으로 드러누워 햇빛을 가려주지도 못했다.

 

 . . . . . .

 

 “지혜야. 내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네가 떠났을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철웅이 조심스럽게 지혜를 안으며 말했다. 지혜는 철웅의 등을 껴안지 않고 그저 차렷 자세로 있었다. 철웅은 눈치 채지 못한 듯 한참을 안고 있다 그녀를 놓아주었다.

 

 “오늘 하루 종일 표정이 안 좋네. 무슨 일 있어?”

 

 지혜의 얼굴을 살피던 철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마 오늘 내내 철웅은 지혜의 눈치를 봤을 것이다. 아무리 철웅이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재밌는 얘기를 해도 지혜는 무미건조하게 반응할 뿐이었다.

 

 “오늘 그냥 피곤해서. 하루 종일 무대 만들었어.”

 

 “그건 나도야. 나도 오늘 내내 일하다가 왔잖아. 그래도 나는 너 만나서 다 풀렸는데. 너는 아닌가 보네.”

 

 철웅이 조금은 서운한 티를 냈다. 마치 함께 캐치볼을 하지 않아 아빠에게 토라진 10살 난 아이 같았다.

 

 “그래서 내가 오늘 어렵다고 했잖아.”

 

 “내일부터 이번 주 내내 내가 밤까지 회사에 있어야 해서. 오늘 조금이라도 틈내서 만나려고 했지. 너도 내일 오프니까 늦잠 자면 되는 거고.”

 

 “오빠.”

 

 “응?”

 

 “오빠는 내가 좋아?”

 

 철웅은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좋지. 그러니까 9년이나 만났지.”

 

 “왜?”

 

 “왜냐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우리가 몇 달 전에 왜 연락도 안 할 정도로 싸웠었는지 기억나?”

 

 “옛날 얘기 꺼내서 뭐해. 지금 이렇게 좋으면 됐지.”

 

 “오빠는 나를 챙겨준다고 챙겨줘. 그런데 내가 원하는 거랑은 완전히 달라.”

 

 “지혜야. 지금 좋은 거 유지하자. 왜 갑자기 그래.”

 

 “오늘 힘들 때 만나고 내일 쉬라고? 그걸 왜 오빠가 정해주는 거야?”

 

 “내가 정해주다니. 나는 그 편이 더 좋을 거 같아서. 한 번 힘들 때 힘든 게 낫지 않아?”

 

 “나는 항상 의문이었어. 오빠가 정말 나를 좋아해서 만나는 건지. 어쩌면 그저 나를 만나고 싶어서 오빠 편의대로 나를 정해버리는 건 아닌지.”

 

 철웅은 조금은 짜증이 난 것 같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을 내려다보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빠는 나를 생각해본 적은 있어?”

 

 “나는 네가 배우가 되겠다고 얘기했을 때부터 너를 위해서 움직였어.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 네가 배우를 하는 데에 편하니까 승진하려고 그렇게 목을 맸던 거고. 나는 누구보다도 네 팬이야.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나를 깎아 먹었는지 알아?”

 

 “그걸 깎아 먹었다고 표현하는구나.”

 

 “……”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철웅의 표정이 완전히 틀어지는 게 보였다. 지혜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이미 몇 달 전에 끝냈어야 했던 일이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지혜는 마른 침을 삼켰다.

 

 “단 한 번만이라도 내 생각을 물어봐줬다면. 우리가 이렇게 멀어지지는 않았을 거야.”

 

 철웅은 단지 지혜의 말을 듣기만 했다.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차가운 침묵이 두 사람을 사이에 두고 휘몰아쳤다.

 

 

 

 “난…… 항상 네가 먼저였어. 그래서 너를 위해 살고 싶었고.”

 

 철웅이 힘겹게 말을 꺼냈다. 이제 일그러졌던 그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엔 지혜 네가 내 곁으로 돌아온 줄 알았어.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네 얼굴에 슬픔만 보이더라. 그런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 나는 너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데. 9년 동안 나는 나아진 게 하나도 없네.”

 

 철웅은 뒤를 돌았다.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그녀에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지혜를 만나고 9년 동안이나 메말라있던 눈물샘이 처음으로 터졌다.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결국 지혜의 고운 입술에서 그 말이 나왔다. 항상 그를 좋아한다고만 말하던 입이었다. 그 작고 부드러운 입술은 끝끝내 그 말을 하고야 말았다.

 

 너무나도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철웅의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몇 십 년 만에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지 몰랐다. 너무 오랜만에 눈물을 흘린 탓인지, 눈물을 그치는 법을 잊은 것만 같았다. 입술이 차갑게 떨렸다.

 

 “오빠는 나를 생각해본 적은 있어?”

 

 지혜의 그 말이 너무나도 아팠다. 철웅은 지혜를 위해서 지난 9년을 살아왔다.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 하지만 그건 철웅의 생각일 뿐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지혜를 위하고 싶었다.

 

 “그게 네가 원하는 거라면. 헤어지자.”

 

 그 말을 하는 철웅의 이가 차갑게 굳었다. 철웅은 자신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9년 간 단 한 번도. 눈물이 이를 적시면서 입 안이 시렸다.

 

 지혜를 위해서라면. 이게 진정 지혜가 원하는 거라면.

 

 철웅은 지혜를 뒤로 하고 마비된 다리를 움직였다. 나무 기둥이라도 된 양 다리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지혜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철웅은 끝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눈물에 일그러진 지혜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담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떠났다.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떠났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돌아봐야할 때 돌아보지 않고, 돌아보지 않아야 할 때 돌아봤다. 말을 해야 할 때 아무 말 않았고, 말이 필요 없을 때 말을 했다.

 

 처음으로 그의 뒤가 작아보였다. 항상 듬직하게 지혜를 안아주던 품이었다. 그의 작은 등이 미웠다.

 

 ‘어떻게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있어.’

 

 지혜는 그의 뒷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만 봤다. 이제 정말로 그가 없는 세상이었다. 거대한 공동이 생긴 듯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 . . . . .

 

 민석이 한창 배우들의 입에 맞게 대사를 수정하던 중. 찬우의 방에서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찬우는 샤워를 하고 있는 탓에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민석은 그의 벨소리가 견디기 힘들었다.

 

 괜히 투정부리면서 민석은 찬우의 방으로 가 핸드폰을 봤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전화는 민석을 놀리기라도 하는 양 민석이 오자마자 끊겼다. 민석이 다시 돌아가려 하자 같은 번호로 또 전화가 왔다.

 

 “네. 강찬우 핸드폰입니다.”

 

 “안녕하세요. 강찬우 작가님은 지금 연락이 어려운가요?”

 

 30대 정도의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찬우를 작가라고 불렀다.

 

 “30분 이내로 전화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지난주에 강찬우 작가님께서 저희 영화제작사로 시나리오 한 편을 보내셨어요. 관심이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이따 시간되실 때 꼭 전화 달라고 전해주시겠어요?”

 

 “네. 바로 전화하라고 할게요.”

 

 전화를 끊고 민석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찬우 이 녀석 드디어 일 냈구나.

 

 지난주에 찬우는 성현의 추천으로 영화제작사에 이번에 쓴 신작을 보냈었다. 성현이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감독으로 있는 제작사였는데 마침 새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작가를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기어코 찬우의 글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야! 강찬우! 당장 비누 씻고 나와!”

 

 화장실 문을 냅다 열어버린 민석은 이제 막 샴푸를 하던 찬우에게 소리쳤다. 찬우는 깜짝 놀라 넘어질 뻔 했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한쪽 눈에 샴푸가 들어갔는지 괴로워하며 얼굴에 물을 뿌리고는 민석을 쳐다봤다.

 

 “뭐해!”

 

 “지금 샤워가 중요한 게 아니야!”

 

 

 

 샤워를 마치고 나온 찬우는 민석이 전해주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제작사로 전화를 걸었다. 대화 내용이 순조로웠는지 찬우는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이내 흥분을 감출 수 없는 지경이 될 때쯤 전화를 끊고는 민석을 끌어안고 소리를 질렀다.

 

 “괜찮으면 내일 미팅 해보재! 조금 손만 보면 바로 제작 들어갈 수 있다고 좋은 대본 보내줘서 고맙대!”

 

 스물여섯의 두 남자는 서로를 끌어안고 그 좁은 집에서 방방 뛰었다. 밑에 집에서 시끄럽다며 천장을 쿵쿵 두드렸다. 민석과 찬우는 침대 위에 몸을 던져 심호흡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갑자기 뛰어서 그런지 천장이 빙빙 돌았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간신히 숨을 고른 찬우가 바보 같이 웃었다.

 

 “고맙다, 민석아. 다 네 덕분이야.”

 

 “내 덕은. 니가 썼지 내가 썼냐.”

 

 “글 쓰게 된 것도, 성현 선배가 제작사 알아봐 준 것도 다 니가 했잖아.”

 

 “그렇게 고마우면 수입 반 떼어 주던가.”

 

 “그건 안 되지.”

 

 “에라이!”

 

 민석이 상체를 일으켜 민석의 배를 주먹으로 세게 쳤다. 찬우는 일격을 맞으면서도 껄껄 웃었다.

 

 “이제 우리 둘 다 시작하는 거지?”

 

 민석이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찬우도 아픈 배를 붙잡고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은 그리 높지 않았다.

 

 “아, 맞아! 나 출근해야 하는데!”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찬우가 황급히 일어나 외투를 입었다. 민석은 상체를 일으켜 찬우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 보았다.

 

 “이제 매니저 일은 어떻게 하게?”

 

 민석의 물음에 찬우는 신발을 신다 말고 민석을 쳐다봤다.

 

 “가능하면 둘 다 병행하고 싶어. 나 조금은 영화관 일이 좋아지기 시작했거든.”

 

 찬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해외 영화 마케터로 일하는 예슬을 상상했다. 언젠가 예슬이 담당해 수입해 온 영화가 영화관에서 상영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크레딧에 ‘정예슬’이라는 이름이 서서히 올라오면, 그보다 신나는 일은 없을 거다.

 

 “얼른 가! 지금 뛰어도 지각이야!”

 

 민석이 손짓했다. 찬우는 남은 발 신발을 구겨 신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몸이 거의 밖으로 나갔다가 고개만 안으로 집어넣고는 민석의 이름을 불렀다.

 

 “나 초대권 줄 거지?”

 

 “어. 미리 챙겨 놓을게!”

 

 “그럼 나 두 장 챙겨줘. 보러 갈 사람 있어.”

 

 “니가 무슨 친구가 있다고!”

 

 “됐고, 두 장 챙겨!”

 

 찬우는 그렇게 말하곤 문을 닫아버렸다. 도어락이 자동으로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계단을 빠르게 뛰어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오늘 따라 왜 이리 요란스러!’ 아랫집에 사는 할머니인 듯한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다. 민석은 괜히 웃음이 났다.

 

 “대본을 마저 수정해볼까……”

 

 민석도 방으로 돌아가 노트북 앞에 앉았다. 노트북 쿨러가 세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새 계약금을 따면 노트북부터 바꿔야겠다고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깜빡이는 커서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와 동고동락했던 노트북인걸. 덕분에 좋은 글을 쓸 수 있었고. 아직 문제없는데 좀 더 쓰지 뭐.’

 

 민석은 가벼운 두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 빠른 타자로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쌀알이 떨어지는 소리 같은 부드럽고 은은한 타자소리만이 집 안을 가득 채웠다. 민석의 손가락은 그렇게 쉴 새 없이 뛰었다.

 

 . . . . . .

 

 민석의 타자 소리는 어느새 박수소리로 바뀌었다. 지혜 역의 지혜와 민석 역의 수혁이 키스하는 걸 마지막으로 ‘좋아하세요’의 첫 번째 공연이 막을 내렸다.

 

 하우스 조명이 들어오고 관객들이 전부 빠져나가자 극단 식구들은 전부 무대로 나와 고생했다며 서로를 다독였다.

 

 “민석 작가. 수정된 대본 다시 봐도 좋아. 이제 더 손 볼 건 없겠어. 이대로 계속 가자고.”

 

 연출이 와서 민석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민석은 칭찬에 괜히 부끄러워 어색하게 웃었다. 성현도 민석의 어깨를 부딪치며 잘 했다고 칭찬했다.

 

 민석이 로비에 나가보니 꽃다발이 많이 있었다. 전부 배우들, 스테프들 앞으로 온 것이었다. 하긴,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으니 민석의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오빠. 공연 잘 봤어. 고마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민석이 뒤를 돌아보니 예슬이 거기에 서 있었다. 예슬은 몇 달 전 봤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거기에 서 있었다. 변한 모습 하나 없이 민석을 향해 웃고 있었다.

 

 “온 줄 몰랐어. 어떻게 알고 왔어?”

 

 “얼마 전에 찬우 오빠 만났거든. 오빠 공연 있을 거라고 티켓 보내줬어.”

 

 민석은 며칠 전에 찬우가 초대권을 두 장 달라고 떼를 썼던 게 생각났다.

 

 ‘하나는 예슬이 주려고 했던 거구나. 귀띔이라도 해주지.’

 

 예슬이 민석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넸다. 흰색 장미였다.

 

 “빈손으로 오기는 조금 그래서.”

 

 “고마워.”

 

 민석이 예슬의 건넨 꽃을 받았다. 한 송이인데도 꽃향기가 물씬 났다.

 

 “나 프랑스로 유학 가. 내일 비행기야. 가기 전에 오빠 공연 봐서 다행이야.”

 

 민석이 꽃에서 시선을 떼 예슬을 보았다. 예슬은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예쁘게 웃고 있었다.

 

 처음 소개팅을 했던 카페에서 예슬이 민석의 이름을 불렀을 때. 창가 바로 옆 자리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재잘거리던 모습들이 생각났다.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다.

 

 “보고 싶을 거야.”

 

 민석이 말했다. 예슬은 뜻밖의 얘기를 들은 듯 어깨가 들썩였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연극 너무 잘 봤어. 너무 아름다운 얘기야. 거기엔 내가 없다는 게 조금은 이상하지만.”

 

 대본에 구태여 예슬의 얘기를 넣지는 않았다. 민석은 순수한 민석과 지혜의 얘기를 넣고 싶을 뿐이었다. 단 두 사람의 사랑. 두 사람의 이야기.

 

 “오히려 안심이 돼. 조금은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겠어.”

 

 “한국엔 언제 돌아오는 거야?”

 

 “1년 뒤에. 교환학생으로 가는 거라서 졸업식 전에는 돌아올 거야.”

 

 민석은 예슬에게 악수 손을 내밀었다. 예슬은 잠시 그 손을 내려다봤다.

 

 “오빠가 나한테 먼저 손을 내민 건 처음이네. 항상 내가 먼저 다가가곤 했잖아.”

 

 “그랬지.”

 

 “나 돌아오면 그때 손 다시 내밀어줘. 오빠도 나도 둘 다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민석은 손을 내렸다. 대답하진 않았지만 반드시 예슬이 다시 돌아오면 그때는 꼭 먼저 가서 반기리라.

 

 “넌 이미 좋은 사람이야. 내 인생에 있어서 너무 고마운 사람.”

 

 예슬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듯 보였지만 민석을 향해 밝게 웃어 보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지하극장을 떠나 세상 밖 계단으로 향하는 예슬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밝았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게 예슬의 마지막 모습일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찬우를 통해서 소식은 계속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민석과 예슬 사이에 가장 합당한 방법이었다. 소리 없이 서로를 응원하며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작가님!”

 

 잠시 로비에 서 있던 민석에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고 있어도 사무쳤던 그 사람. 평생 함께하고 싶은 그 사람. 민석의 글이 되고 노래가 되고 시가 된 그 사람.

 

 뒤를 돌아보자 이제 막 사복으로 갈아입고 분장실에서 나온 지혜가 민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민석은 지혜에게 다가가 그녀를 세게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너무 좋은 연기였어요.”

 

 “제가 말했잖아요. 작가님 연극에 꼭 나오고 싶다고. 최선을 다했어요.”

 

 지혜도 민석의 등에 손을 올리고 세게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잠시 둘만의 세계에 빠졌다.

 

 . . . . . .

 

 “여기에 나무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어요.”

 

 무대 정리가 마무리 된 후 따듯한 캔커피를 가지고 주차장에 온 지혜가 말했다. 민석은 지혜와 나란히 걸으며 캔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렇게 덩그라니 혼자 서 있는 나무는 처음보네요.”

 

 지혜는 괜히 나무 아래로 가 나무를 면밀히 관찰했다. 민석은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바람이 나무를 간질이는 소리를 들었다. 간지럼에 약한 나무는 깔깔대며 몸을 마구 흔들었다.

 

 “무슨 나무인지 알아요?”

 

 민석이 지혜의 옆에 서자 그녀가 물어왔다. 민석은 잠시 고개를 들어 나무와 눈을 마주쳤다. 나무는 바람이 불지 않는 데도 수줍은 지 잎사귀를 부딪치며 소리 냈다.

 

 “저기 보면 열매 매달린 거 보이죠?”

 

 민석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기 사이사이 누런빛이 도는 둥근 열매가 팔을 번쩍 들어 나무의 양분을 먹고 있었다.

 

 “유자나무인 것 같아요. 유자열매는 겨울에 열리거든요.”

 

 “이게 유자나무구나. 맨날 유자차만 먹었지 유자를 보기는 처음이에요.”

 

 두 사람은 잠시 나무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차지 않아 캔커피를 쥔 손이 여전히 따듯했다.

 

 

 

 “좋아해요.”

 

 바람 소리가 잦아들자 민석이 말했다. 지혜는 조심스럽게 민석을 돌아보았다.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바람 소리에 날아온 다른 목소리는 아니었는지. 민석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많이 좋아해요.”

 

 민석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지혜는 괜히 눈 주변이 뜨거워지면서 가슴이 북받쳤다. 그리고 조용히 민석의 손을 잡았다. 민석의 손은 따듯했다.

 

 지혜의 손은 따듯했다. 캔커피를 잡고 있던 탓인지, 민석의 말에 대신 대답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민석은 나무 밑둥 아래에 떨어져 나란히 앉아 있는 두 개의 유자를 보았다. 민석과 지혜가 잡은 두 손의 그림자가 유자를 부드럽게 감쌌다.

 

 “저도 좋아해요.”

 

 지혜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말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지혜의 마음이 민석에게 통했으리라.

 

 지혜도 두 개의 유자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유자차 마시러 갈까요?”

 

 지혜가 제안했다.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제가 살게요. 너무 뜨겁지 않은 유자차로.”

 

 두 사람은 손을 놓지 않고 걸었다. 같은 보폭으로, 같은 속도로.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앞으로 걸었다.

 

 

 

 설레는 고백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면. 특히 그토록 바라던 연인과 함께 걷는다면. 흔히들 햇살이 포근하다거나 더 눈부셨다거나 하는 진부한 말들을 사용하곤 한다. 책에서, 연극에서, 영화에서.

 

 그런데 그게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사용하는 말이 아니란 걸. 그날 알았다.

 
작가의 말
 

 완결까지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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