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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황금에 미친 이 세상을 뿌리째 들어내겠어!
작가 : 화블루
작품등록일 : 2022.2.1

가주의 빚을 갚기 위해 상인의 신부로 팔려갔던 아멜 그린, 가문의 낮은 작위 때문에 팔려가다시피 외국으로 끌려갔던 에릭 화이트는 황금에 미쳐있는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들의 인생을 바친다. 그들이 당당한 군주가 되어 이 세상을 통째로 바꿀 수 있을 때까지!

 
11화. 왕궁에서 생긴 일
작성일 : 22-02-19 01:38     조회 : 207     추천 : 1     분량 : 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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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에트록의 안내를 따라 에믹 남작부인의 응접실에 다다른 에뮬와 에밀리는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온통 금박으로 칠갑된 응접실의 화려함에 놀라서가 아니었다. 응접실에서 그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도끼눈을 부릅뜨고 있는 세르레나 후작부인 때문이었다.

 

 에믹 남작부인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그녀들은 의외의 인물에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사나워 보이는 인상을 가진 세르레나 후작부인은 백금발의 머리를 아주 높게 올려 묶은 뒤 위로 고정되도록 땋고, 레이스 캡으로 그 말미를 장식한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사람이었다.

 

 특이한 헤어스타일로 사교계에서 유명해진 그녀는, 머리를 높게 올려 묶을 수록 자신의 품위가 함께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세르레나 후작부인은 응접실의 입구에 들어선 그들을, 정확히는 에트록 화이트를 제외한 에밀리와 에뮬을 못 볼 것이라도 본 양 흘겨보았다. 그녀의 미간에는 주름을 잔뜩 잡혀 있었다.

 

 

 "에트록 경, 수고 많았어요."

 

 "세르레나 후작 부인."

 

 

 에트록이 간단하게 목례를 하자, 세르레나 후작부인도 고개를 까딱했다.

 

 

 "저는 이만, 다시 자리를 지키러 돌아가보겠습니다."

 

 

 에트록은 얼음장 같은 세르레나 후작부인의 눈치를 살피며 재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후작부인은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녀는 차가운 무표정으로 차를 마시기만 했다.

 

 테이블의 중앙에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고 있는 찻주전자와 각설탕이 들어있는 작은 크리스탈 병이 있었고, 사람숫자에 맞는 티스푼과 찻잔도 준비되어있었지만 손님에게 차를 따라줄 하녀는 응접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에밀리와 에뮬이 쭈뼛쭈뼛 자리에 착석했지만, 후작부인은 차를 권하지도 않았다.

 

 에밀리는 자매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손님대접조차 해주지 않는 후작부인을 빤히 바라보았지만 후작부인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세르레나 후작부인, 혹시 이 서신을 에믹 남작부인께 전달해주실 수 있나요?”

 

 

 찬바람이 쌩쌩 부는 분위기를 못 견딘 에밀리가 먼저 입을 떼자, 후작부인이 눈썹 하나를 치켜 올렸다.

 

 그녀는 감히 네가 먼저 입을 뗀 것이냐는 눈초리로 에밀리를 쏘아보았다.

 

 세르레나 후작부인이 들고 있던 찻잔을 테이블 위로 세게 내려놓았다. 잔과 대리석테이블이 부딪히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잔이 깨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응접실에 들어온 뒤로 고개를 내내 숙이고 있던 에뮬은, 세르레나 후작부인의 기에 완전히 눌려서 온 몸을 떨다 못해 손 마저 바들바들 거리고 있었다.

 

 

 “저.. 부인?”

 

 

 에밀리가 대답 없는 세르레나 후작부인에게 다시 한 번 운을 띄우자, 그녀는 불쾌한 기색을 대번에 내비치며 중얼거렸다.

 

 

 “예의 없긴…”

 

 “네?”

 

 

 에밀리가 반문하자, 후작부인은 에밀리의 약간 푸른빛이 도는 에메랄드 색의 눈동자에 자신의 눈을 맞추고 똑바로 노려보았다.

 

 에밀리가 눈을 피하거나 내리깔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자 후작부인은 입꼬리 하나를 삐뚜름하게 올리며 찻잔을 들었다.

 

 

 “예의가 없다고 했어요. 초록덩굴남작가의 차녀, 에밀리 그린.”

 

 

 에밀리는 처음 독대하는 사이인 후작부인에게 대놓고 예의 없다는 지적을 받자 화가 났지만, 지체 높은 귀족인데다 에믹 남작부인의 옆에 찰싹 붙어 다니는 시녀이기도 한 그녀에게 제 성질머리 대로 행동할 수 없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에밀리는 화가 나서 붉어진 얼굴을 자신의 시원한 손을 가져다 대며 그 열기를 식히려 애썼다.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에밀리를 가소롭다는 듯 흘겨 본 세르레나 후작부인은, 에밀리의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고 조차 하지 않는 에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옆은 그 동생인 에뮬 그린이겠네요.”

 

 

 에뮬은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후작부인은 한 없이 가벼워 보이는 에밀리와 자신의 눈도 못 마주치며 쩔쩔매는 에뮬을 번갈아 보며 혀를 쯧하고 찼다.

 

 어쩜 참하고 예쁘장한 장녀인 아멜과 저리 다른지, 참 신기한 노릇이었다.

 

 에믹 남작 부인의 측근인 세르레나 후작부인은 사교계의 웬만한 티파티에는 무조건 초대 받는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사교계의 명사인 아멜 그린과는 이곳 저곳에서 자주 마주쳤고, 몇 번 대화를 나누어본 적도 있었다.

 

 매일 같이 왕족을 알현하고 지체 높은 귀부인들만 상대하는 후작부인은 다른 이의 작위에도 아주 예민하게 굴었다.

 

 준남작과 같은 단승작위를 가진 이는, 사람 취급도 안 해주는 여인이었다.

 

 게다가 왕실에서 지내며 예법에 아주 까다로워진 세르레나 후작부인은 티파티에 가서도 주변 사람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매의 눈으로 뜯어보았다.

 

 그래서 아멜 그린을 처음 무도회에서 마주했을 때도, 그녀가 남작가의 여식이라는 말에 색안경을 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남작가의 여식따위가 사교계의 명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멜에 대한 첫인상을 얼굴만 반반한 멍청이로 규정지은 그녀는 아멜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걸음걸이부터 눈꺼풀의 떨림까지 하나하나 뜯어보며 어느 하나라도 실수를 한다면 하급귀족은 역시 고위 귀족과는 급이 다르다며 그녀를 까 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멜은 남작의 여식임에도 불구하고 귀족으로서의 에티튜드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심지어 아멜의 치마를 실수로 밟은 하녀에게조차 전혀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인자한 미소로 을러 보내는 완벽한 인성까지 보여주었다.

 

 눈물이 고인하녀에게 다정히 말하는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또래 귀족들에게는 없는 기품이 흘러 넘쳤다.

 

 게다가 자신에게 춤을 추자며 들이대는 남자귀족들에게는 칼처럼 구는 행동도 보여주었다.

 

 그녀의 첫춤은, 자신의 오빠인 펠트로 그린으로 시작했고 그 다음으로 다가오는 남자 귀족들에게는 체력이 안 된다며 모두 거절했다.

 

 그녀의 마지막 춤도 그녀의 오빠인 펠트로 그린이었다.

 

 그 모습을 본 세르레나 후작부인은 지참금을 많이 들고 온다면 자신의 아들에게 시집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참 괜찮은 영애였다.

 

 

 ***

 

 

 “에밀리, 당신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데뷔탕트에 멀쩡한 장남인 펠트로 그린을 놔두고, 언니인 아멜 그린의 손을 잡고 왔었다죠?”

 

 

 후작부인이 에밀리에게 물었다. 해명할거면 해명해보라는 뉘앙스였다.

 

 데뷔탕트에 말도 안 되는 선례를 남긴 에밀리의 행적을 비꼬고 있는 후작부인에게, 에밀리는 여유로운 척하며 눈웃음을 짙게 그려주었다.

 

 하지만 머리채나 잡을 줄 알지, 이런 식의 감정소모만 하는 말싸움에는 익숙지 않은 에밀리의 그 눈가에는 약간의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네, 제가 언니랑 사이가 너무 좋아서요..”

 

 

 에밀리는 뒷 말을 길게 늘어트리며 대답했다.

 

 펠트로와 춤을 출 바에는 그냥 데뷔탕트를 치르지 않겠다는 폭탄 선언을 했다는 것을 저 꼬장꼬장한 여자에게 차마 사실 대로 말할 수 없었다.

 

 언니와 사이가 좋다는 대답에 세르레나 후작부인이 코웃음을 핑하고 쳤다. 지금 그런 걸 핑계라고 대냐는 듯 보였다.

 

 

 “이 서신을 에믹 남작 부인께 전해주실 수 없을까요?”

 

 

 더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기 싫었던 에밀리가 다시 한 번 되물었다.

 

 뚜렷한 적의를 내뿜고 있는 이에게 이렇다 할 대응을 할 수 없는 을의 입장인 에밀리는, 이 여자를 얼른 치워버리고 싶었다.

 

 

 “절차를 제멋대로 무시하고, 알현신청조차 하지 않은 채 인장이 찍힌 편지만 달랑 들고 와서 하는 이야기가 그것뿐입니까? 영지만 있다 뿐이지 이렇다 할 위치도 잡지 못한 초록덩굴가문의 골칫덩어리인 에밀리 그린!”

 

 

 에밀리가 사교계에서 몇 십 년을 굴러먹은 후작부인의 앞에서 납작 엎드리기는커녕 제 할 말을 계속 꺼내려고 하자 자존심이 상한 후작부인은 크게 호통을 쳤다.

 

 깜짝 놀란 에밀리와 에뮬이 움찔하며 자세를 똑바로 고쳐 앉자 후작부인은 제 할 말을 마구 쏘아 뱉었다.

 

 어차피 보는 이도 없겠다, 이 남작가 영애들의 정신머리를 똑바로 고쳐주어야겠다는 심산이었다.

 

 에밀리를 쏘아보며 마구 호통치던 그녀는, 이제 옆에서 얌전히 테이블의 기기묘묘한 문양만 바라보고 있던 에뮬에게로 그 대상을 옮겼다.

 

 

 “그리고, 에뮬 그린?”

 

 “앗, 네..!”

 

 

 에뮬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인상을 잔뜩 찌푸린 그녀는 이제는 손가락질까지 해대며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가 일찍이 왕의 정부가 되셔서 어미의 손길 없이 자란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훌륭한 본보기인 언니가 있지 않습니까. 대체 왜 성문 앞에서 동냥하는 빈민 마냥 그렇게 어깨를 옹송그리고 있나요? 남작가의 여식이라도, 영지를 하사 받은 봉건귀족이지 않습니까. 어깨를 당당히 펴고 귀족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야지요! 데뷔탕트도 치른 영애가 어느 무도회에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성격에 하자가 있을 줄은 전혀 몰랐군요!”

 

 다다다다 쏘아 붙이는 후작부인의 말에 놀라 침을 삼키다가 사레가 들린 에뮬이 농도 짙은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에뮬이 쿨럭 대는 소리가 온 응접실에 울려 퍼졌다.

 

 

 “에뮬 괜찮아?”

 

 

 기침을 하는 에뮬의 등판을 두드려주던 에밀리에게 에뮬은 괜찮다는 손짓을 해 보였다. 후작부인은 난데 없이 기침을 해대는 에뮬을 가망 없다는 듯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믹 남작부인은 엄연한 짐레트 2세의 정부이십니다. 왕의 정부가 되는 순간부터 그녀는 엄연한 왕가의 일원. 만일 왕께서 그대들이 찾아온 걸 알게 된다면 어떤 파문이 일지 생각이나 해보셨습니까! 지난 결혼생활을 떠올리게 할만한 그 무엇도 에믹 남작부인의 눈에 띄게 하지 말라는 비공식적인 선언 마저 하신 분입니다!”

 

 

 에뮬은 쿨럭대면서도 후작부인의 말을 모두 귀담아 들었다.

 

 에뮬이 생각한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더 끔찍한 결말을 맞이할 뻔 했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기껏해야 편지를 찢어버리거나, 가주인 펠트로에게 인장을 잘 간수하라는 말을 할 줄 알았던 짐레트 2세는 그녀의 생각보다 의처증이 심한 사람인 것이 틀림 없었다.

 

 “얼마나 급한 서신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초록덩굴가문의 일을 에믹 남작 부인에게 끌어오지 마세요. 이건 경고입니다. 정말로 부인에게 전해야만 하는 내용이라면, 펠트로 남작이 직접 와서 정식 절차를 밟은 뒤 왕에게 허락을 받고 전하는 게 맞는 것 같네요!”

 

 

 세르레나 후작부인이 왕의 끄나풀이 아닌 것은 정말로 다행인 일이었다. 그녀에게 따끔한 일침 정도만 받는 정도라면, 충분히 감당할 만 했다.

 

 에밀리의 계획은 이렇게 무산되었지만, 다른 방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에뮬은 아멜을 위해서라면 별로 친하지 않은 배다른 오빠인 펠트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눈물을 쏟을 의향도 있었다.

 

 에뮬은 후작부인에게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그녀는 멈추지 않는 기침을 가다듬으려 애를 썼지만 제대로 사레에 들린 모양인지 계속해서 속에서부터 걸걸한 기침이 올라왔다.

 

 

 “아까부터 계속 기침을 하는데, 어디 옮는 병이라도 걸린 건 아니겠죠?”

 

 

 계속해서 기침을 해대는 에뮬을 벌레 보는 듯한 시선으로 보는 후작부인의 말에 에밀리의 머릿속에 기똥찬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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