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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안의 그
작가 : 이작송
작품등록일 : 20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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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필름이 끊기도록 마신 다음 날,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내 앞에 나타난 이 남자는……!

 
13화 옷을 벗어주시겠어요
작성일 : 22-02-17 14:28     조회 : 184     추천 : 0     분량 : 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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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요, 그럼 그땐 제가 맛있는 거 사줄게요!”

 

 은솔이 밝아진 얼굴로 말하는 순간, 부사장실이 열렸다.

 

 “다들 점심 맛있게 드세요. 이 비서님, 우리도 가시죠.”

 

 신아가 사냥한 목소리로 비서실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직원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신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 친절이었다.

 그중 여럿은 얼굴이 붉어지기까지 했다.

 

 “…….”

 

 어떠한 대답도,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는 수현이 그 뒤를 따랐다.

 신아와 수현이 모두 사라지자마자 직원들이 쑥덕거렸다.

 

 “부사장님 요새 진짜 이상하지 않아요? 사람이 한순간 바뀌면 그건 죽을 때가 되었다거나 누굴 좋아해서 둘 중 하나잖아.”

 

 그 정도로 최근 들어 부사장님의 행동이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사장님이 이신아 씨를 좋아하는 거 같아. ”

 

 일리 있는 말이었다.

 

 “아니면 비서실에 좋아하는 사람 생긴 거 아니야? 막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거 보면 그러잖아요. 주변을 막 맴돌고 일부러 주변 사람한테 더 잘해주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설마.

 설마.

 설마.

 

 그 순간, 모두 눈이 마주쳤다.

 

 “에이, 설마요~ 우리 중에 있다고요?”

 “부사장님이랑 접점도 별로 없는데…….”

 “우리도 점심이나 먹으러 갈까요?”

 

 어색하지만, 남모를 기대감이 맴도는 비서실이었다.

 

 ***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식당.

 주차하고 오겠다는 수현에 의해 신아가 먼저 식당 문을 밀고 들어갔다.

 점심시간인데도 다섯 팀밖에 없을 정도로 한산한 곳이었다.

 아담한 크기가 식당의 안락한 분위기를 더했다.

 

 “예약하셨나요?”

 “원수현 이름으로 예약했어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을 가져다주고 직원이 사라지자 신아가 다리를 쭉 폈다.

 

 딸랑.

 가게 문이 열리고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순간 잠이 들려던 신아가 인상을 찌푸린 채 눈꺼풀을 힘겹게 올렸다.

 

 “뭐라도 시켰어?”

 “너 오면 시키려고 그랬지.”

 

 수현이 신아의 앞에 앉자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간단히 주문을 마치고, 수현이 테이블에 몸을 바짝 당겼다.

 신아가 수현을 바라봤다.

 수현이 앞에 놓인 물병을 집어 또로록, 소리가 나도록 잔에 물을 따랐다.

 

 “피곤해 보이는데.”

 

 수현이 신아에게 컵을 내밀었다. 눈 앞머리를 꾹꾹 누르던 신아가 컵을 받았다. 고마워. 한 모금 마신 신아가 컵을 내려놨다.

 

 “피곤한 거 네가 더 피곤한 거 아니야?”

 “뭐, 그렇긴 하지. 누구 덕분에.”

 

 수현이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장난기 섞인 얼굴로 대답한 그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너 일부러 나 들으라고 한 거지?”

 “그렇게 들렸다면 유감이긴 한데.”

 “야, 나, 나도 열심히 하고 있거든?”

 

 부사장이 하는 일이 쉽냐고요. 얼굴이 붉어진 신아가 말꼬리를 흐렸다.

 차마 발끈할 수는 없었다.

 첫날엔 결재 서류에 잘못 서명한 탓에, 집에서 수현이 밤늦도록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바로 출근한 적도 있었다.

 

 수현이 컵을 내려놓으면 대답했다.

 

 “현규 대신 널 집무실에 데려다 놓을까.”

 “무, 뭐?”

 “내 옆에만 딱 붙어있도록.”

 

 부, 붙어있어?

 어, 어디가 붙어있어?

 하필이면 머릿속에서 이상한 장면이 재생되었다.

 눈과 눈이 마주치고.

 손과 손을 맞붙잡고.

 입술과 입술이 포개지는…….

 

 “아, 안 돼. 그건!”

 

 얼굴이 순식간에 달궈진 신아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무슨 생각을 했길래…….”

 

 수현이 신아의 얼굴이 가만히 살폈다. 신아가 고개를 들었다. 헉!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얼굴이 그렇게 붉어진 거야.”

 “……여기 좀 덥지 않아? 나 좀 더운 것 같은데.”

 

 한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채로 신아가 수현의 눈을 피해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왜 내 눈을 피해.”

 “내, 내가 언제?”

 “그럼 지금 나 봐.”

 

 수현은 짓궂은 면이 있었다. 신아가 왜 자신의 눈을 피하는지 대강 눈치를 챘으면서도.

 수현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신아의 손을 잡았다.

 

 “!”

 

 놀란 신아가 수현을 바라봤다.

 눈과 눈이 마주쳤고,

 손과 손이 맞붙잡아졌으니

 이젠…….

 왜 입술밖에 안 보이는 건데!

 

 “현규 대신 진짜 널 데려와야겠잖아, 이러면.”

 “야, 야. 지, 진정해. 그런 장난 치면 못 써.”

 

 신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뒤늦게 손을 비틀어 빼내려고 했지만.

 

 “나 진심이야.”

 

 수현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신아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야, 아니, 그래도 그렇지, 안 그래도 지금 별별 소문이 많은데…….”

 “나 소문 같은 거 신경 안 써.”

 “…….”

 

 수현은 단호했다. 신아가 수현의 등뒤를 자꾸 힐긋힐긋 쳐다봤다. 제발, 제발, 음식이라도 좀 빨리 나와주세요.

 

 “어딜 봐.”

 “…….”

 

 신아가 시선을 돌려 수현을 바라봤다. 아니 입술을. 수현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이내 픽,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수현이 신아의 손을 놓아졌다. 어리둥절한 신아가 그를 바라봤다.

 

 “실수를 바로 수습하려면 집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게 낫지 않나.”

 “뭐?”

 

 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신아의 눈이 다시 한번 커다래졌다. 아. 그녀가 의미를 다 파악하고 나서 화를 내려는 순간,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왔다.

 수현이 주차장이 아닌 회사 앞에 차를 세우자 신아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나 잠시 볼일이 있어서. 먼저 올라가.”

 “어, 어 그래.”

 

 신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녀가 차 문을 열려는 순간, 뒤에서 수현의 음성이 들렸다.

 

 “실수하지 말고. 나랑 더 같이 있고 싶으면 하든가.”

 “야! 나 실수 이제 잘 안 하거든!”

 

 신아가 서둘러 차 문을 열었다. 쾅. 소리가 나도록 세게 닫고서 성큼성큼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수현이 신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다가 차를 출발했다.

 

 ***

 

 ‘내가 다시는 실수하나 봐라!’

 

 신아가 재킷을 벗으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한쪽 팔에 재킷을 걸어놓은 채 고개를 들어 층수를 살폈다.

 11, 10, 9, 8, 7…….

 띵.

 1층입니다.

 

 신아가 텅 빈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신아가 검지를 뻗어 부사장실이 있는 15층을 눌렀다.

 

 “점심 먹고 딱 커피 마셔야 하는데…….”

 

 신아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더듬었지만, 아쉽게도 수현이 준 카드만 손에 잡혔다.

 

 띵. 15층입니다.

 

 신아가 고민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확 이 자식 카드로 커피를 긁어버려?

 필요한 만큼 쓰라고 준 카드였지만.

 마음대로 쓰기엔 불편한 마음이 있어 주머니에 넣어놓기만 했지, 꺼낸 적이 없었다.

 근데 오늘은?

 날도 좋고, 점심도 맛있었고, 수현 덕분에 살짝 짜증도 났으니 카드 긁기 딱 좋은 날이다, 이거다!

 

 “몰라, 어차피 쓰라고 준 카드잖아!”

 

 신아가 카드를 손에 꽉 쥐고 급하게 걸음을 돌렸다.

 

 “어, 어!”

 “앗 차가!”

 

 가슴에 느껴지는 축축하고 차가운 느낌에 신아가 고개를 숙였다. 한 발자국 물러난 바닥에는 커피와 얼음이 쏟아져 있었고, 그 옆에는 텅 빈 테이크아웃 잔이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갈색 물이 든 와이셔츠를 손으로 탈탈 터는 신아의 앞에 누군가 허리를 굽혔다.

 신아는 제 앞에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

 은솔이었다.

 

 “아, 괜찮습니다.”

 

 몸을 일으킨 주희가 흠뻑 젖은 와이셔츠를 발견하곤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부, 부사장님, 와, 와이셔츠가……. 정말 죄송합니다.”

 

 은솔이 무의식적으로 옷 소매를 끌어당겨 젖은 부분을 닦았다.

 

 “저, 정말 괜찮아요. ”

 

 신아가 젖은 옷을 한 번 손으로 탈탈 털었다. 미쳤다 이신아. 실수하지 말자고 다짐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렇지만…….”

 

 은솔이 말꼬리를 흐리며 허리를 굽혔다.

 이러다 나 짤리는 거 아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싸가지 없는 부사장인데.

 이 상황을 피하고 싶은 은솔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은솔 씨.”

 

 은솔이 갑작스레 불리는 제 이름에 놀라 몸을 들썩였다.

 

 “예, 예?”

 

 신아가 몸을 일으킨 은솔과 눈이 마주쳤다. 덜덜덜 흔들리는 눈동자며.

 사색이 된 얼굴.

 긴장감에 경직된 자세하며.

 딱 봐도 지금 당황한 게 눈에 보였다.

 신아는 은솔이 누군지 얼추 알고 있었다. 원래는 자신의 사수인 사람. 항상 수현의 곁에 있어서 얼굴도 이름도 익히고 있었다.

 이 상황이 얼마나 아찔할까.

 은솔의 심정이 이해되는 신아가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예, 예? 지금 뭐라고 하셨…….”

 

 은솔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재차 물었다.

 

 “저랑 좀 심하게 부딪히신 것 같은데…….”

 “…….”

 

 은솔의 시선이 신아를 따라 커피 얼룩이 진 신발로 내려갔다.

 

 “신발이 젖었네……. 미안해요.”

 

 신아가 고개를 들었다. 딱 은솔과 눈이 마주쳤다. 어, 어…….

 그 상태로 굳어버린 은솔이 말을 더듬었다.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살벌한 냉기가 흐르던 과거와 달리, 부드럽고 따뜻한 눈빛.

 은솔이 넋이 나간 얼굴로 신아를 바라봤다.

 이런 눈빛 처음이야…….

 상냥함이 더해진 얼굴은 더 잘생겨 보였다.

 

 “아니면 비서실에 좋아하는 사람 생긴 거 아니야? 막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거 보면 그러잖아요. 주변을 막 맴돌고 일부러 주변 사람한테 더 잘해주고.”

 

 뭐지, 뭐야?

 하필이면 이 순간에 직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은솔의 얼굴이 화륵 불타올랐다.

 

 “제가 정신을 딴 데 두고 있어서 미처 앞을 못 봤어요. 미안해요.”

 

 이 남자, 심지어 말투까지 부드러웠다.

 “오, 옷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한 주희가 검지로 콕, 커피에 젖은 셔츠를 가리켰다.

 신아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왼쪽 가슴이 전부 젖어 셔츠는 볼품없었다.

 

 “아, 옷.”

 “세탁, 세탁해서 드릴게요! 옷을 벗어주시겠어요?”

 “어……. 지금이요?”

 

 신아가 난처한 듯 물었다. 뒤늦게 제가 무슨 말을 꺼냈는지 인식한 은솔이 깜짝 놀라 제 입을 찰싹찰싹 때렸다.

 

 “아, 죄, 죄송합니다. 금방 가서 새 걸로 사올 게요. 그……. 젖은 옷은 저한테 주세요. 진짜 세탁해서 드릴게요.”

 

 어차피 커피를 사러 나갈 길이었고…….

 신아가 잠시 턱을 쓸며 고민했다. 은솔이 침을 꿀꺽 삼키며 신아의 얼굴을 살폈다.

 

 “저랑 같이 가죠. 어차피 저도 지금 나갈 참이어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신아가 살포시 웃었다. 은솔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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