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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추이기담집
작가 : 이은성
작품등록일 : 2022.2.3

추이꾼에 대해 알고 계시오?
조선팔도 방방곡곡을 떠돌며 기이한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이들을 이르지.
세상에는 사람 이외에도 많은 삶이 사는 법이고, 우리 눈에는 뵈지 않는 삶이 역동하며 제 이야기를 하는 법이라오.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기담 모음집입니다.

rio_siena@naver.com

 
호접 : 마음을 전하는 나비
작성일 : 22-02-17 00:15     조회 : 191     추천 : 0     분량 : 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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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나긴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는 죽은 정인을 만났는데, 그 꿈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하마터면 생시인 줄로만 착각을 하고 영영 깨어나지 않을 뻔 하였다.

 아침이 되어 눈을 떴다. 바깥은 조용하고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를 않았다. 다만 햇살이 눈을 찌를 듯이 아팠다. 잠에서 덜 깨인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묵직하게 내려앉는 듯한 육신이 여기가 현실임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호접蝴蝶

 : 마음을 전하는 나비

 

 

 

 

 길 위로 나비 한 마리가 나풀대며 흩어졌다. 그 뒤를 가만 쫓자니 저 앞에는 그리운 이의 그림자가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홀린 양 나비를 쫓아, 그림자를 쫓아 걸음을 걷는다. 그 끝이 어디로 향한 것인지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만. 일어나.”

 음성에 눈을 떴더니 익숙한 아이의 얼굴이 시야에 들었다. 뻐근하게 말라오는 눈두덩이를 두 손으로 눌렀다. 잇새에서 끙, 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일어났어?”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았네.”

 아이는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아침인사를 건넸다가 곧바로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어울리지 않게. 이 아이는 가끔 그런 표정을 짓곤 했다. 그래, 아이의 모양을 하고 있대도 그 속은 어른이라 이거지. 몸을 일으켜 아이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듯 쓸었다.

 “나비를 봤어?”

 아이가 물었다.

 “응, 봤어.”

 나는 답했다.

 “쫓아가지 마.”

 아이가 말했다.

 “안 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귀촌의 아침은 대개 평화로운 것이었다. 도깨비들은 저들 앞에 늘어선 하염없이 긴 시간 앞에서 권태에 지쳐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여유작작했다.

 “문영아.”

 아이가, 솔이 말을 붙여왔다. 나는 대청에 앉아 환도의 매무새를 다듬고 있었고, 솔은 그런 내 앞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배실배실 웃는 얼굴을 하고 나를 보았다. 왜,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수상하게 쳐다봐. 나는 보통 솔의 웃는 낯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솔이 어떤 아이인가 하면 그야말로 세간에서 말하는 도깨비의 전형과도 같은 아이로, 그 자그마한 머릿속에서는 온갖 짓궂은 장난을 할 생각으로 바글바글 끓고 있고 속내는 시커매서 아주 능구렁이 같은 놈이었다.

 “왜, 또 왜. 뭘 또 그렇게 쳐다봐. 너 안 귀여워, 인마.”

 “이잉, 진짜로? 솔이 안 귀여워?”

 “어디서 몹쓸 것만 배워가지고.”

 핀잔을 주었더니 솔은 좋다며 큭큭 웃어대었다. 오랜 시간을 막역한 지기로 지내왔으나 나는 아직도 솔의 머릿속을 조금도 알 수가 없었다. 입만 열었다 하면 상상도 못했던 말을 술술 쏟아내니, 오히려 예측하는 일이 무용이었다. 아무리 예측해봐야 허탕만 치니 포기할 만도 하지. 언제나 내 상상 이상의 것을 생각하는 녀석이다.

 “귀촌은 가을이야.”

 “그래, 바깥은 봄이고.”

 “무슨 소린지 알아?”

 “뭐, 가을이 뭐 어떻다고.”

 “나비 같은 거, 없어.”

 그러니까 너 또 꿈에서 나비 나와도 쫓아가면 안 된다? 그리 단단히 이르는 모양이 괜히 얄미워 나는 솔의 머리를 콱 쥐어박았다. 아야, 하고 과장된 소리를 내고는 또 큭큭대며 웃는 모습에 그냥 나도 웃어버렸다. 알아, 나도 알아.

 

 

 

 

 

 나비, 새하얀 나비가 눈 앞을 오갔다. 나풀대며 앞에서 흔들흔들 춤추는 모양이 퍽이나 살가워 손을 뻗자 나비는 저만치 앞서 날아가는 것이었다. 손에 닿을 것처럼 가까우면서도 닿지 않는 것은 언제나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발을 한 발, 떼었다. 앞으로 걸었다.

 “……오, 이런 곳에서 누군가를 만난 것은 또 처음이구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거기 선 것은 삐딱한 흑립을 쓰고 낡은 도포를 걸친 사내였다. 낯선 얼굴, 허나 이런 곳에 있는 이라면 평범한 사람은 아닐 터였다.

 “누구시오.”

 그리 물었더니 그이는 큭큭 웃으며 목례했다. 저거, 꼭 솔이랑 하는 양이 똑 닮았네. 그런 생각을 하며 이쪽도 목례를 했다. 그러자 그가 하는 말이 ‘화라 하오.’하는 것이었다.

 “……이름을 물은 것이 아닌데.”

 “거 참, 빡빡하시네. 화라고 하오.”

 “이쪽은 환이오.”

 그리 말을 툭 뱉었더니 그이는 환이라, 환, 하고는 제 잇새에서 말을 몇 번인가 굴렸다. 그리고 또 다시 능글맞게 웃는 얼굴로 이번에는 손을 불쑥 내미는데 어찌나 뻔뻔하던지 저 양반 솔이랑 붙여놓으면 아주 합이 잘 맞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 생각했다.

 “화와 환이라, 재미있는 만남이 아니겠어.”

 “얻다 대고 말을 놓으시오.”

 “그쪽도 말을 놓지 않았소.”

 “적어도 그쪽 보다는 몇 배나 살았으니 그러려니 하시오.”

 그러자 그이는 또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껄껄 소리내어 웃어대었다. 내민 손이 썩 무안할 법도 한데 뻔뻔하기도 하지. 하여 손을 맞잡고 가볍게 흔들어주었다. 그의 손은 붓을 잡는 이들이 으레 그렇듯 야들야들하니 보드라운 손바닥과 붓을 쥐어 생긴 끝마디의 굳은살이 선명했다. 붓을 잡는 이라. 붓을 잡는 이.

 “설마 저 나비를 쫓으려 한 것은 아니겠지.”

 “말 놓지 말라니까.”

 “요.”

 ……망할 놈.

 “저 나비가 무엇인줄이나 알고 쫓으려 하시오.”

 “그러는 자네는 저게 무엇인 줄 아는 모양이지.”

 “아무렴. 호접몽이라고 들어보셨소?”

 그제야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호접몽. 그래, 이것은 호접몽이었다. 헌데 어찌 낯선 이가 나의 꿈 속에 있지. 고개를 들어 그를 곧게 응시하자 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제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무너질 천장도 없으니 그냥 앉으시오.”

 

 

 

 

 

 “나비가 사람의 혼인 줄은 알고 계시오?”

 화는 그리 물었다. 나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주억였다. 이물의 일이라면 이물이 가장 잘 아는 법이었다. 헌데 화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을 더하는 것이 아니던가.

 “알면서 그걸 쫓아간단 말이오? 미련하기는.”

 “잘난 척은 적당히 하시는게 맞지 않을까 사료되오. 자네가 대체 무어라고.”

 그러자 화는 짙게 웃었다.

 “추이꾼이오.”

 하여 나는 답했다.

 “나는 도깨비요.”

 영 믿지 않으려는 얼굴이라 나는 흑립을 풀어내리고 돋아난 뿔을 보였다. 그제야 화는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러게 말 놓지 말라니까.

 허나 그의 말이 옳았다. 나비는 사람의 혼이었다. 호접몽은 나비가 되는 꿈이나 나비를 쫓은 꿈을 이르는 것인데, 이때 나비를 잘못 쫓았다가는 영영 돌아가지 못하고 꿈에 갇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였다.

 “……그래, 자네는 어찌 여기 있게 되었소. 자네도 나비를 쫓았으니 여기 있는 것이 아니겠소.”

 그러자 화는 눈꼬리를 휘며 웃어보였다. 달리 부정의 말은 하지 않았다. 같은 처지끼리 누가 누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심정이 어떤 심정인지를 익히 짐작하는 터라 나도 달리 그에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꽃이 흐드러진 봄날이었다. 초면의 추이꾼과 보내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화사한 봄꽃이 천지에 만발했다. 나비가 날아들었다. 손을 뻗어 나비의 날개 끝을 어루만지려 내밀자 나비는 손 끝에 스치지도 않고 저만치 날았다.

 알고 있었다. 애초에 내가 잡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은. 보내놓은 사람이 너무 많은 탓에 나의 꿈에는 언제나 나비가 지천이었다. 달큰한 분내와 흩어지는 비늘가루에 이따금은 숨통이 막혀 그대로 죽을 것만 같은 수의 나비들. 도깨비라는 것은 사람보다 오래 살아있는 탓에 언제고 이별을 먼저 각오해야 했다. 나는 흐트러지는 나비무리를 보았다. 영영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이 차올랐으나 나는 더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저만치 날아가는, 흩어지는, 사그라드는 나비의 색채를 두 눈으로 오롯이 바라볼 밖에.

 “많이도 보냈소이다.”

 화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 많이도 보냈다. 벗도 보내고, 정인도 보내고, 아꼈던 사람들, 좋아하던 사람들, 그렇게 모두를 보내왔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보냈지.

 “자네는 보내지 않았소? 자네도 보냈을 터인데.”

 그러자 화는 입매를 굳혔다.

 “보냈소. 보냈지.”

 보냈지. 다만 그 말만으로 충분했다. 더는 듣지 않아도 좋을 말이었다. 듣고싶지 않은 말이었다. 화와 나란히 앉아 나비무리를 보았다. 흐드러지게 핀 꽃무리를 보았다. 눈앞에서 색채가 온갖 색으로 뒤섞여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만 같았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형씨.”

 화의 목소리에 그저 앓는 듯이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답했다. 으응.

 “그만 일어나시오.”

 하나같이, 나를 깨우지 못해 안달들이군.

 

 

 

 

 

 사내가 눈을 떴을 적에는 햇살이 찌르도록 아픈 아침이었다. 사내는 부스스한 얼굴 위에 맨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며 몸을 일으켰다. 꿈을 꾸었다. 꽃이 사방천지에 아득하도록 만개하고 나비가 떼를 지어 이리저리 흩어지는 꿈이었다.

 “……꿈이었지.”

 사내는 꿈에서 보았던 얼굴을 떠올렸다. 도깨비를 만난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꿈에서 도깨비를 만난 것인지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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