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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어느 고등학생의 청춘
작가 : 신수
작품등록일 : 2016.10.15

만사에 부정적인 고등학생이, 우연히 학교 제일의 미소녀가 운영하는 학생상담실에 들어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꿈上(20)
작성일 : 16-10-31 21:34     조회 : 480     추천 : 0     분량 : 8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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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가 시험인데 시험기간에는 오지 않기로 했으니, 금요일인 오늘 뒤로 일주일 정도 서로 못 볼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소은의 주제 선정을 기다렸다.

 

 “자 그럼, 시작할게요!! 오늘의 주제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꿈과 현실 중에서 뭘 선택하는 게 좋을까 입니다!!”

 

 명랑하게 내뱉어댔다.

 

 “......”

 

 꿈과 현실?

 

 “야, 야. 주제가 너무 포괄적이잖아. 그런 건 그 사람의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니?”

 “...지금 저 무시하시는 거예요? 당연히 알죠!!”

 “아는 애가 생각한 주제가 왜 그 모양인데?”

 “우씨. 제 말은... 음... 그러니까... 일반적인 상황에서 말하는 거예요!!”

 “그 사람의 가정이 평균적이라는 가정 하에 어딜 선택하는 게 더 나을 거 같냐는 소리지 소은아?”

 “그... 그렇죠!! 역시 언니!!”

 “......”

 

 아주 쿵짝이 잘 맞으시는구만. 덤 앤 더머가 따로 없다.

 아니면 빅뱅의 지디 앤 탑이라든가,

 아니면 다비치의 강민경 앤 이해리라든가.

 

 “자!!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들?!”

 

 한여름을 쓱 보니 할 말을 정리중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먼저 말해줘야겠군.

 난 여성을 배려하는 신사니까.

 

 “음... 내 생각은 이래.”

 “어떤 생각이신가요?!”

 “...집이 은수저 이상이면 꿈을 따르고, 은수저 미만이면 현실을 따라야지.”

 “어... 은수저의 기준이 뭔데요?”

 

 ‘X수저’라는 말은 최근 인터넷에서 퍼져 유행하는 단어인데, 살기 팍팍한 세상 속에서 해학적으로 본인들의 모습을 나타내려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드는 단어다.

 참고로 내가 생각하는 은수저의 기준은 좀 산다는 애들. 명절마다 용돈 크게 받는 애들이 은수저 정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친가, 외가 싹 쓸어도 많아봐야 20만원인데, 80, 100만원씩 받았다는 애들이 있다.

 그런 애들한텐 내가 받은 용돈의 액수를 말하기 부끄러워질 정도다.

 물론 집에 돈이 많은데도 검소하게 적게 받는 애들도 있겠지만.

 

 “한...... 부동산까지 해서 빚 빼고 10억 정도? 그 정도는 돼야 은수저지. 자기가 일 안 해도 부모 돈으로 여유롭게 살 정도.”

 “와... 그 정도면 부자네요 부자. 비싼 아파트에 사는 애들 말하는 거죠? XX아파트 같은?”

 “대충...?”

 

 지가 사는 아파트를 거론해서 그런지 한여름이 움찔했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생각 정리가 끝나셨나 보다.

 

 “왜요?!”

 “꿈과 현실을 재는 데에 집이 잘 사는 정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하더니 말을 계속한다.

 “꿈을 이루는 행위는 자아실현이라고 할 수 있어. 집이 잘 살면 물론 더 좋겠지만 가난해도 진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야 한다고 봐. 현실을 택했던 사람들 중에 나중에 성공해서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

 “음...”

 

 확실히, 티비에 강연 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단골멘트가 꿈을 향해 노력하라는 말이긴 하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아니지. 남 말 주워듣고 뻘짓하다 인생 망하면 그 사람 인생은 누가 책임져?”

 “망하다니? 망할지 안 망할지 너가 어떻게 아는 건데?”

 “다 망한다는 게 아니라, 보편적으로 망할 확률이 더 높다는 거지. 전 세계적으로 봐도, 성공한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몇 천만 배는 많잖아?”

 “거기서 각 나라들 사정은 빼야지.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 꿈 실현의 잣대라는 너 말에는 동의 못해.” 이상하게 기분 좋아하는 표정을 지으며 한여름이 말을 맺었다.

 “...그건 그러네.”

 

 ......뭔가 마음에 안 드는데? 내가 진 기분이다. 설마 내가 할 말이 없을 거라는 치밀한 계산 하에 저딴 말을 한 건 아니겠지? 만약 그런 생각이었다면, 여기서 입다물 내가 아니지.

 

 “......그래도 남들 사는 만큼이라도 살려면 남들 하는 대로 사는 게 나아. 니 말처럼 꿈 쫓는 건 너무 리스크가 커. 안 그래?”

 “......너.”

 

 한여름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이내 입을 다물었다.

 

 “..꿈보다는 현실이라는 소리네요 선배.”

 

 말하는 안소은의 얼굴도, 평소와는 달리 어딘가 착잡해 보였다.

 

 “그렇지.”

 “너.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무슨 생각?”

 “왜 남들처럼 살아야 되는 건데?”

 “...왜냐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경제불황에 시달리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거랑 괜히 엇나가다는 쫄딱 굶을 수도 있고 또 평범하게 사는 것도 힘든데 더 가려고 하다간 인생 망할 수도 있고-”

 “아니.” 한여름이 내 말을 툭 잘랐다.

 “넌 그냥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세상의 큰 기류에 편승해서 사는 게, 그렇게 남들 다 가는 길을 가는 게 더 편한 거야. 아니, 편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무서운 거야. 한 발짝 내딛는 게.....”

 “......”

 “너 말을 잘 들어보면 유독 그러다 실패하면? 엇나가다가 평범하게 사는 거랑 멀어지면? 그렇게 인생 망하면 책임은 누가 져? 하는 게 심해. 그러다 실패하면 어쩌냐구? 다른 일 하는 거지. 엇나가다가 평범하게 사는 거랑 멀어지면 어떻게 하냐구? 왜 꼭 평범해야 하는데?”

 “......”

 “남들 가는 길을 똑같이 가야할 필요는 전혀 없어. 너가 그토록 하고 싶은 걸 찾는 데에 부정적이었던 건 아마 무서웠기 때문이었겠지. 두려웠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돼.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돼. 한 발짝 나아가서 뒤를 보면, 발걸음을 떼는 그 순간까지도 몰랐던 것들이 새롭게 보일 거라구. 그러니까-”

 “아니, 틀렸어.”

 틀린 말이다.

 

 한 걸음 나가면 그 전까지가 다르게 보일 거라고?

 전혀 그렇지 않다.

 

 “한 걸음 걷는 걸로는 티도 안 날뿐더러, 난 무서운 게 아니야. 그냥... 너희 같이 만사를 좋게만 보는 것들이 너무, 바보 같아 보여. 병신 같아 보여.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할 가능성이 만족할 가능성보다 분명 훨씬 높은데, 너넨 그걸 몰라.”

 

 내 말을 받아치는 한여름의 목소리엔, 나에겐 없는 에너지, 청춘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후회하면 뭐 어때? 이 길은 내 길이 아니었구나 하고 다른 길로 넘어가면 그만인 걸? 지금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떠들고 있는 이 순간도, 다시는 안 돌아와. 어제는 어제의 오늘이었고, 오늘은 오늘의 오늘이야. 내일은 내일의 오늘이고. 서리한.”

 

 한여름은 그 맑은 눈동자로, 그 눈동자 사이의 굳세고 곧은 의지를 드러내며, 내 이름을 불렀다.

 

 “남들처럼 살려고 죽도록 노력하고, 너가 갈 수 있는, 너에게 열려 있는 수많은 새로운 기회들을 걷어차는 건 너무 아쉽지 않니...?”

 “...”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니...?”

 “그게 아니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뭐가 그리 두려워?”

 “......”

 “...너한테 이 얘기들을 해주고 싶었어. 말해줘야만 알 거 같아서.”

 

 그 말을 끝으로 한여름은 조용히 나갔다.

 드르륵 하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

 “어, 언니. 같이 가요.”

 

 안절부절 못하던 안소은도 나갔다.

 상담실에 남은 건 나 혼자.

 처음으로, 나 혼자다.

 

 “......”

 

 그래.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내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속삭이는 것을 위해 노력하고, 시간을 투자하고, 한 걸음 나아가려는 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겉으로는 ‘바보 같아.’ ‘시간 아까워.’ 라며 회피했지만 사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 행동을 부정함으로써, 날 내 안에 가둬버렸다는 것을.

 한 걸음 나가는 건 티가 나지 않지만, 다섯 걸음, 열 걸음 걷고 나서 뒤를 돌아본다면 내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을 거라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남들처럼 사는 게 인생의 진리가 아니라는 걸.

 물론 내가 느꼈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뭔지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난 한여름의 그 굳센 마음을 느낀 순간부터, 안소은의 그 올곧은 것을 찾기 위한 몸부림을 느낄 때, 이평범의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주변을 개의치 않고 나아가는 그 모습을 봤을 때부터, 그들이 [부럽]다는 감정을 느꼈다.

 너무 부러웠다.

 미치도록 부러웠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그토록 미친 듯 달려들 수 있다는 게.

 하지만 강한 긍정은 부정이 된다고 했던가.

 그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단단한 벽을 만들었고, 날 가둔 채 청춘의 꽃이라는 ‘꿈’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지워나갔다.

 한 걸음 나아가는 것보단 멈춰 서서 갈고닦는 게 내 남은 인생에 더 도움이 될 거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고, 꿈을 위해 정진하는 상담실의 청춘들에게 감화되는 것이 두려워 그들을 내 생각과 동화시키려고 애썼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난, ‘꿈’이라는 인간의 가장 큰 자아실현 수단을 난 내 스스로 부정해버림으로써 근 10년 동안의 내 발전을 스스로 저해한 꼴이 되었다.

 왜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았냐고?

 방금 들은 대로다.

 무서웠으니까, 두려웠으니까.

 내가 날 믿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던가.

 얼마나, 청춘을 낭비하고 있던 건가.

 시간이 너무 아깝다.

 다시는 오지 않을 내 청춘에 대한 미안함인가, 아니면 나를 향한 내 마음속의 꾸짖음인가.

 내 철옹성에,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 아주 깊고 긴 ‘깨달음’이 새겨지는 게 똑똑히 느껴졌다.

 

 

 

 시험은 순조롭게 끝났다.

 목표했던 50등 안에 들었을 뿐더러, 취약하던 영어도 올랐다.

 그리고 안소은은...

 

 “야. 미리 보고 올 것이지 왜 여기서 본답시고 가져온 거야?”

 “언니랑 선배 앞에서 봐야죠! 같이 노력 했는걸요!”

 “우리 소은이, 기특하네~”

 “고맙습니당.”

 

 꼴값을 떨고 있네.

 

 “그래서 몇 등인데.”

 “이제 볼 거예요!!”

 

 떨리는 마음이 주체가 안 되는지, 지 혼자 TV속 효과음까지 내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과연 몇 등일까요?! 선배! 긴장되죠?!”

 “아니. 전혀.”

 “단호한 척하긴!”

 “너 지금 반말했냐?”

 “아니요~”

 

 혀를 쏙 내밀어 날 약올리는 안소은.

 

 “이게 진짜-”

 

 한 마디 하려는데 한여름이 맥을 끊었다.

 

 “열심히 했으니까, 목표보다 낮아도 실망하지 말자~”

 

 이게...

 

 “그, 그럼요...”

 

 나보고 긴장했냐고 물어봐놓고선 긴장은 지가 했는지 안소은의 몸이 급격히 움츠라들었다.

 

 “뜸들이지 말고 빨리 보기나 해.”

 “...지금 딱! 보려고 했거든요?”

 

 하더니 지체 없이 종이를 펼쳤다.

 번지점프대 앞의 도전자마냥 이제 한다고 해놓고 5분은 더 끌줄 알았는데 의외다.

 “몇 등이야?”

 

 한여름도 긴장이 되는지 목소리에 살짝 초조함이 섞여있었다.

 

 “......”

 

 헌데 대답해줘야 할 안소은의 몸은 석상이 된 듯 굳어서 꼼짝 않고 있었다.

 

 “야! 자꾸 뜸 들일래? 몇 등이냐니까?”

 “.......등...요.”

 

 “뭐?”

 

 “9, 92...등...이요...”

 “어머.”

 

 한여름이 손을 입에 가져다댔다.

 

 “100등 안에 들었어요! 언니! 선배! 우와~”

 

 그러더니 가까이 있던 나에게 포옹이라도 하려는지 달려들었다.

 

 “뭐야?”

 

 물론 쳐냈다.

 내 거절은 개의치도 않는지, 안소은은 바로 한여름에게로 동선을 선회했다.

 

 “축하해 소은아~”

 

 한여름은 받아줬고, 난 한동안 그 둘이 껴안고 방방 뛰는 걸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헤헤헤헤. 너무 좋다!!!‘

 ”그러게~ 하니까 역시 되네~~“

 

 ...

 

 “......기쁜 건 알겠는데 이제 그만하지?”

 

 

 진정이 되자, 그제서야 내기 생각이 났는지 안소은이 나에게 손가락질을 마구 해댔다.

 

 “제가 이겼죠?!”

 “...오냐.”

 “그럼, 바로 제가 원하는 걸 말할게요! 저는...”

 

 그리고 이어진 안소은의 말은 내 예상은 저만치 벗어난 말이었다.

 

 “여기서 언니랑 선배랑 좀 더 있어보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난 한여름을 쳐다봤고 한여름은, 싱긋 웃었다.

 

 “당연하지~ 그런데 그 정도는 그냥 말했어도 됐을 텐데...”

 “...네...?”

 

 멍청하긴.

 그 뒤로 나와 한여름은, 30분도 넘게 다시 말하겠다는 안소은의 투정을 받아줘야 했다.

 

 

 

 “그래서, 두 달 동안 상담실에 있어봤는데, 어땠어?”

 

 셰퍼드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담임이 질문해왔다.

 

 “...뭐. 그냥 그저 그랬어요.”

 “생각보다 할 만했지?”

 “...그건 아닌데요.”

 “에이. 애기 들어보니까 꼬박꼬박 나오고 참여도 잘 했다던데?”

 “한여름이 그러던가요?”

 

 내가 쏘아붙이자 장난기 가득하던 담임의 말투가 조금 누그러졌다.

 

 “음... 응.”

 “뭐... 공부는 잘 되던데요.”

 “그런 거 말고, 흥미는 찾았니? 다른 사람을 상담해주는 건 어떤 거 같던?”

 “별로예요.”

 

 일부러 차갑게 말했는데, 담임의 예상범주 안에 있었는지 개의치 않고 바로 다음 질문이 들어왔다.

 

 “생각은 좀 바뀐 거 같고?”

 “......”

 “거짓말해서 좋을 거 없다~”

 “...약간이요.”

 

 역시 예상했다는 듯, 담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

 “그리고 얘기 들어보니까, 너 만사에 부정적이라며?”

 “전혀요? 누가 그러던가요?”

 “그건 알 거 없고 너, 상담실에 쭉~ 다니면서 생각교정 좀 하자.”

 “...네?”

 “사람은 쉽게 안 바뀌니까 길게 해야지. 마음 같아서는 졸업할 때까지 하라고 하고 싶지만, 3학년부턴 수능준비 해야 하니까 깔끔하게 2학년까지만 하는 걸로. 오케이?”

 “......예...?”

 

 머릿속엔 하고 싶은 말이 엄청나게 많은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런지 입만 뻐끔거리게 됐다.

 

 “워, 원래 하셨던 말씀이랑 좀 다른-”

 “너, 상담실하기 시작하고부터도 계속 지각했더라? 20점 넘었던데?”

 “......”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듯, 담임이 팔짱을 낀 채 내 말을 기다렸다.

 

 “이, 이건, 부당해요.”

 “어떤 면에서?”

 “...제, 제 동의가 없잖아요.”

 “지난번에 나랑 면담했을 때는 너 동의 받고서 상담실활동 하기로 했었고?”

 “......”

 

 할 말이 없었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게 이런 건가...

 

 “......”

 

 정신이 나간 채롤 멍하니 있는데, 담임이 지나가듯 툭 던졌다.

 

 “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좋게 생각해~ 예쁜 애랑 같이 일도 하고 얼마나 좋아?”

 “네...?”

 “내가 너 상황이었으면 자진해서 한다고 했을걸. 난 참 운 좋은 사람이야~ 하면서.”

 “... 걔가 예쁘긴 하죠.”

 “...뭐?”

 ...?

 “예쁘기만 해? 공부도 잘하지, 착하지, 어른스럽지, 얼마나 완벽한데?”

 “...지금 누구 말씀하시는 건지...?”

 “누구긴 누구야. 우리 여름이지.”

 

 자부심이 가득 느껴지는지, 담임이 어깨를 힘차게 으쓱했다.

 

 “...한여름이랑 친하신가 봐요?”

 “당연한 거 아냐? 남매잖아.”

 “...네?”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 담임.

 

 “얘기 못 들었니...?”

 “...네.”

 “아, 아하하... 못 들은 걸로는... 안되려나....?”

 “그건 안 되겠는데요.”

 

 남매라...

 그러고 보니 한주석, 한여름. 둘 다 한씨잖아.

 ‘아하하.’ 하는 웃음도 똑같고. 생긴 것도 닮았고. 말투도 비슷하고.

 .......

 이렇게 닮은 점 투성인데 왜 몰랐지...?

 리모컨 찾아 집안을 샅샅이 뒤지다가 찾지 못하고 지쳐 주저앉은 순간 내 손의 리모컨을 발견한 기분이다.

 

 “어... 아무튼... 그게...”

 

 담임은 당황했는지 횡성수설해대고 있다.

 항상 여유 넘치던 모습만 보다가 이런 모습을 보니 신선하긴 하네.

 가, 감히 숨겨? 하는 배신감은 들지만.

 

 “그럴 수도 있죠 뭐...”

 “그, 그렇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러더니 땀이 나는지 손등으로 이마를 쓸어내렸다.

 

 “-휴. 순간적으로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기분이어서 놀랐네. 아하하.”

 “...아, 네.”

 

 그렇게 의미없는 헛소리를 몇 마디 더 하더니 답지 않게 종이뭉치를 탁탁 정리하고, 헛기침을 몇 번 하는 등 상담을 마무리하려는 기색을 보였다.

 어지간히 당황했나보다.

 나야 좋지만.

 

 “그, 그동안 힘들었지? 상담은 여기까지 하자. 공부 열심히 하고..”

 

 “넵.”

 

 하고 교무실을 나가려는데 날 부르는 담임 목소리가 들렸다.

 

 “참! 진로상담서 꼭 내고!”

 

 뉘예뉘예.

 

 

 

 “야. 진로상담서 냈냐?”

 “지금 내려고.”

 “뭐라고 적을 건데? 하... 난 지난번에 담임이 회사 어디 갈지 자세히 알아오라고 해서 마음에도 없는 화학연구원까지 알아봤다...”

 “멍청하긴. 그래서 냈어?”

 “어.”

 “나도 지금 내고 와야겠다.”

 

 투덜거리는 전재호를 뒤로 하고, 가방에서 진로상담서를 꺼냈다.

 몇 걸음 교탁까지 천천히 걸어가며, 생각한다.

 사람의 내면은 단기간에 바뀌지 않는다.

 실제로 난 내가 틀린 생각을 가진 게 아니라는 걸 안다.

 틀리진 않더라도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와 다른 의견을 무작정 부정하고 무시하는 것보다는, 누구의 생각이 맞는 건지 한 번쯤은, 길게 봐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넌 틀렸어.’ 라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한 줄기 관용을 베풀어 쉼표를 살포시 적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고작 이 정도 생각.

 바뀐 듯 바뀌지 않은 듯.

 하지만 마음속 무언가를 바꾸려는 시도는, 바뀌는 건지 아닌지 잘 보이지도 않는 내면보다는 훨씬 알기 쉽다고 생각한다.

 ...라는 생각을 하며, 빈칸이 아닌 ‘찾는 중’ 세 글자가 또박또박 적힌 진로상담서를 교탁에 올려놓았다.

 나 스스로를 바꾸려는 새로 들어온 파도는 과연, 내 마음속 철옹성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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