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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저 이제 은퇴할래요
작가 : 라레
작품등록일 : 2022.2.11

가족을 위해, 백작령을 위해 몸을 망가뜨려가면서까지 소처럼 일한 프레이(feat. K-장녀).

그러나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1년 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과 가족들의 냉대, 그리고 지참금에 팔려가는 정략혼 자리뿐이었다.

여태껏 과로한 만큼, 남은 1년만이라도 푹 쉬고 싶었던 프레이는 가문과 연을 끊고 어느 시골 마을로 요양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뒤늦게 정령사로 각성하게 되는데…….

“다른 것들 따위 알 게 뭐야. 내게는 네가 가장 소중해.”

“이상해요. 자꾸 당신에게 시선이 가. 당신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당신을…… 혼자 두고 싶지 않아.”

“전 언제나 당신 곁을 지킬 겁니다. ……제 마음과는 별개로.”

대륙 유일의 정령사인 프레이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 그 속에서 더는 사람에게 상처 받고 싶지 않아 마음을 닫아거는 프레이와 그녀의 마음을 계속해서 두드리는 세 남자.

과연 프레이는 이번에야말로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한 사람을 바랐어.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아줄, 단 한 사람만을.”

#시한부 #구원서사 #가족후회 #K-장녀 #상처녀 #능력녀 #사이다녀 #걸크러시 #능글남 #인외남 #조신남 #다정남 #집착남 #소유욕 #칠★사이다급복수 #성장물

 
2. 누구 덕인지도 모르고 (5)
작성일 : 22-02-14 23:17     조회 : 204     추천 : 0     분량 : 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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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이가 들고 있던 접시를 테이블 위에 잠시 올려두고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젠 그런 일까지 네가 다 해야 하는 거야. 아니, 하셔야 하는 겁니다, 백작님.”

 “누님!”

 “그 자리가 원래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자리야. 지금의 난 아무런 힘도 없는 일개 백작 영애일 뿐이야. 그러니…….”

 “프레이!”

 이런. 피트랑 너무 오래 붙어있었나.

 프레이가 저를 찾는 돌로레스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하며 속으로 한탄했다.

 절대 자의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생각해 주시진 않겠지.

 그러나 자세를 바로 하고 마주한 돌로레스는 의외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프레이는 묘한 불길함을 느끼며 마찬가지로 입 꼬리를 살짝 올려 보였다.

 “할머님.”

 “그래. 오오, 마침 저기 오시는군. 리메인 자작, 이쪽입니다!”

 ‘리메인 자작?’

 돌로레스가 손짓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밀색 머리칼을 느슨하게 묶고 안경을 낀 남자가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프레이는 그가 제법 규모 있는 상단을 운영하고 있는 자작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기억해냈다.

 하지만 저 사람은 레지우드와는 거리가 먼, 제국 남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람인데.

 의례적으로 보낸 초대장에 정말로 와서 좀 놀라기는 했지만, 할머님과는 언제 접점이 있었던 거지?

 프레이가 의아해하는 사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리메인 자작이 돌로레스에게 화답하듯 웃음 짓고는 베네피트를 향해 예를 갖춰 인사했다.

 “리메인 자작 에이드 리메인이라고 합니다. 작위 계승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백작님. 이야, 정말이지, 인상 깊은 계승식이었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이 분이 바로…….”

 에이드가 프레이를 향해 부드럽게 눈매를 휘었다. 돌로레스는 프레이의 등을 떠밀며 티 나지 않게 그녀를 꼬집었다.

 “일전에 말씀드렸던 제 손녀, 프레이랍니다. 프레이, 자작님께 인사드리지 않고 뭐하는 거니.”

 온화하게 나무란데 반해, 돌로레스의 눈에는 한껏 노기가 서려있었다.

 프레이는 마지못해 드레스 자락을 모아 쥐고 에이드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프레이 레지우드입니다.”

 “에이드 리메인입니다. 편하게 에이드라고 불러주시지요. 그나저나 돌로레스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굉장한 미인이시군요! 제게 레이디의 손등에 키스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아…… 물론, 이죠.”

 에이드는 프레이가 내민 손등에 스칠 듯이 입을 맞추고는 그녀의 손을 자유롭게 놓아주었다.

 그러나 돌로레스는 지나치리만치 산뜻한 에이드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프레이를 에이드에게 좀 더 가깝게 몰아붙였다.

 “이런, 제가 눈치도 없이. 아무래도 이런 파티에서는 나이대가 맞는 사람끼리 어울리는 게 좋겠지요? 이 늙은이는 이만 자리를 피해드리겠습니다. 가자구나, 피트.”

 “예? 할머님, 갑자기 그게 무슨…….”

 돌로레스는 저 혼자 신이 나서 호호 웃고는 베네피트의 팔에 자신의 팔을 꿰어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귀족간의 눈치 싸움까지 모두 던져놓았던 프레이는 조모의 행동을 돌이켜보다 최악의 결론을 내리고 얼굴을 굳혔다. 설마…….

 시시각각 낯빛이 어두워지는 프레이에게 에이드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제안했다.

 “이런 곳에서 ‘특정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는 마땅찮아 보이니,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떠실까요? 부디 제게 레이디를 에스코트할 기회를 주시죠.”

 “아니요. 저는 자작님과 특별히 나누고 싶은 대화가 없는데요.”

 “돌로레스 님께서 여전히 저희 둘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

 프레이가 입술을 꾹 깨물고 낮게 침음했다.

 할머님, 어떻게 제가 백작 대리 자리에서 물러나자마자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는 에이드가 내민 팔에 하는 수 없이 손을 얹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에이드는 프레이에게 순순히 협조했다. 그는 프레이의 속도에 맞춰 빠르게 홀을 가로질렀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태연함을 가장해도, 홀에 있는 사람들의 이목을 흩어놓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무수히 많은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프레이는 돌로레스가 쳐 놓은 덫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프레이는 적당한 테라스를 골라 밖으로 나오자마자 문을 닫아걸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에이드를 응시했다.

 프레이보다 한 발 앞서 테라스로 들어온 에이드가 난간에 기대선 채 타이를 풀어헤쳤다.

 그는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프레이를 향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눈치 채고 계신 듯합니다만, 돌로레스 님께서는 저와 프레이 님의 혼인을 원하십니다.”

 피차 의중을 따져 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에이드는 홀에서와는 달리 바로 용건부터 입에 올렸다.

 프레이 역시 바라던 바였으므로 돌려 말하지 않고 곧바로 거절 의사를 드러냈다.

 “그렇군요. 하지만 정말 죄송하게도, 저에게는 자작님과 혼인할 마음이 전혀 없답니다. 이번 일은 순전히 할머님께서 멋대로 진행하신 일이에요.”

 “그런 듯하군요. 사실 저 역시 딱히 아가씨와 혼인하고 싶진 않습니다. 애초에 저는 혼인에 적합한 종자가 아니거든요. 하지만…… 제 본심과는 별개로 제게는 프레이 님과 꼭 혼인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뭐죠?”

 “음, 그건 성혼 후에나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곤란한 척, 의뭉스럽기 짝이 없는 태도에 에이드의 의중을 헤아리던 프레이가 일순 몸에서 힘을 뺐다.

 어차피 1년 안에 죽을 자신이었다. 혼인이든 뭐든 저들이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릴 리가 없었다.

 “그래요. 이유 같은 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자작님께 어떤 사정이 있건, 저는 혼인을 하지 않을 텐데.”

 “하지 않고 이곳에서 버티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왜 못 버틸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이 성에 아가씨의 사람이 몇이나 되죠?”

 “…….”

 프레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헛웃음을 쳤다.

 원래 영지 내에 큰 행사가 있을 때면 외부에서 쥐가 들어오기 마련이다. 성을 개방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자신이 쥐임을 밝히다니. 대체 조모와 뭘 얼마나 주고받기로 했길래.

 “계승식에 참석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레지우드에 머물면서 이곳저곳 기웃거려봤습니다. 제가 호기심이 왕성한 편이라서.”

 “예. 그래 보이세요.”

 “이상하더군요. 생각보다 프레이 님의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아가씨 정도의 수완이면 얼마든지 당신의 사람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요.”

 하지만 프레이는 그러지 않았다.

 베네피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녀를 깎아 내려도, 당장 영주 대리에서 내쳐지지 않을 정도로만 비방의 수위를 조절했다.

 훗날 백작이 된 베네피트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분란의 싹을 남겨두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지킬 필요가 없는 아이였는데 말이지.’

 프레이가 자조 섞인 한숨을 쉬는 동안, 에이드는 제 나름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생각했죠. 아, 아가씨께서는 동생 분이 작위를 물려받으시는 대로 레지우드와 연을 끊을 작정이시구나, 하고.”

 사람을 상당히 잘 읽어내는 남자다. 프레이는 에이드를 두고 순수하게 감탄했다.

 하긴, 그러니 다 쓰러져가는 리메인 가를 일으켜 세운 거겠지.

 “해서 어차피 레지우드를 떠나실 거, 서로에게 좋은 거래를 했으면 하는 겁니다. 작위를 물려받지 않는 이상, 현재 제국에서 귀족이 홀로 살아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예. 하지만 레지우드를 떠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답니다.”

 애초에 일을 할 생각 자체가 없었지만, 프레이는 대충 둘러댔다. 이 이상 에이드와 지지부진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자작님, 제게도 나름의 계획이 있습니다. 허나 유감스럽게도 거기에 자작님께서 개입할 여지는 조금도 없을 듯싶군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요. 이건 또 새로운 국면인데.”

 입가를 쓸며 고민하는 에이드를 보고, 프레이는 여차하면 그가 뭐라고 하던 간에 테라스를 떠날 준비를 했다.

 허나 이어지는 대답은 의외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정략혼에 지나지 않는다지만, 이렇게까지 완고하신 분께 제가 뭘 더 권할 수는 없지요.”

 “……예?”

 “대신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프레이 님.”

 “아, 네. 감사​……합니다?”

 다시 타이를 묶고 프레이에게 정중히 목례한 에이드는 그녀를 남겨둔 채 유유히 테라스를 떠났다.

 프레이는 그 모습을 잠시간 지켜보다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순순히 물러나다니, 어떻게 된 일이지?

 달리 노리는 게 있는 걸까, 아니면 할머님과 의견 합치가 제대로 안 된 걸까?

 프레이는 여러 가정을 머릿속으로 나열해보다가 머리를 흔들며 마음을 바로잡았다.

 아무래도 일이 복잡해지기 전에 한시 바삐 레지우드를 떠나야겠다.

 

 * * *

 

 다사다난했던 축하연의 첫날이 지나고, 프레이는 기절하듯 침대에 몸을 뉘였다.

 이제는 모든 일로부터 해방됐으니 편해질 줄 알았는데, 설마하니 혼인을 맞닥뜨릴 줄이야.

 “어쩐지 요 근래 잠잠하다 했어.”

 프레이가 베개에 얼굴을 묻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분기마다 못해도 한 번은 문제를 일으키는 돌로레스가 웬일로 반년이나 조용했다.

 프레이는 순전히 베네피트의 작위 계승이 얼마 남지 않아 조모가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혼인이라니.

 ‘하긴, 생각해보면 할머님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일지도.’

 옆으로 돌아누운 프레이는 차분히 조모의 처신에 납득했다.

 돌로레스는 프레이를 끔찍이도 싫어했다.

 그녀는 레지우드의 것이라면 밀 한 톨이라도 프레이에게 주어지는 꼴을 견디지 못했다.

 모든 것은 응당 그녀의 손자인 베네피트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도 그 문제로 사사건건 아버지를 닦달하셨는데, 안 계신 지금은 오죽할까.’

 그러니 레지우드에서 프레이의 효용 가치가 사라진 지금. 베네피트의 몫을 파먹을 가능성이 있는 도둑고양이 같은 손녀를 어떻게든 치워버리고 싶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결혼 장사로 손녀를 팔아 한 밑천 벌 수 있다면 아주 금상첨화겠지.

 프레이는 자신의 골수까지 빼 먹으려 드는 돌로레스의 행태에 차게 조소했다.

 똑똑.

 ‘이런.’

 프레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저 노크의 주인이 누구일지, 문을 열지 않아도 손바닥 보듯 뻔했다.

 “누구지?”

 ‘엠마입니다. 아가씨, 돌로레스 님께서 급히 아가씨를 찾으십니다.’

 역시나.

 프레이는 싸늘한 눈으로 문을 노려보며 짧게 답했다.

 “잠깐 기다려.”

 ‘아가씨. 돌로레스 님께서는 오늘 하루 힘든 일정을 소화하시느라 몹시 지쳐계심에도 불구하고…….’

 “나도 알아. 그저 잠시 옷차림을 정돈하려는 것뿐이야. 흐트러진 모습으로 할머님의 심중을 어지럽혀서야 되겠어?”

 프레이는 서둘러 ‘에이미. 할머님을 뵙고 올 테니, 절대 따라 오지 말고 방에서 기다려.’라는 메모를 남겨두고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모시는 주인을 닮아 매사 불공정하고 제멋대로 굴기로 유명한 시녀, 엠마가 서 있었다.

 “앞장 서.”

 더는 백작 대리가 아니었지만, 여전히 고고한 자세로 프레이가 엠마에게 명령했다.

 이제 담판을 지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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