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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얼음 속 불꽃이 되어
작가 : 비나린
작품등록일 : 2022.2.4

불을 다루는 여인과 물을 다루는 사내의 만남은 득일까 독일까. 그들은 철저하게 상극이였으며, 철저하게 닮아있었다. 동맹으로 만들어낸 인연일지 모르나 그 끝엔 운명이었음을.
(나오는 나라는 전부 허구이며,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배경입니다. 여러 어휘나 명칭들은 조선시대를 참고 했으나, 편의를 위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음을 밝힙니다.)

 
예쁘네. 짜증나게.
작성일 : 22-02-14 08:56     조회 : 191     추천 : 0     분량 : 4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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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곧 있을 내명부 모임에서 제가 운을 띄워볼 생각입니다. 어떠신지요.”

 

 “…”

 

 친절한 물음에도 세이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내어줄 자리는 아닌데. 후사가 당장 필요하다면 몰라도 아직 왕위도 물려받지 않은 세자는 딱히 급할 게 없었다.

 

 그런데 빈궁이 후궁 첩지를 직접 언급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세이였다.

 

 “혹 입궁을 원하시는 게 아니십니까.”

 

 “그, 그게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다고 답을 하지 못하는 세이를 보며 여유 있게 미소를 지었다.

 

 너의 머리로 생각하니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거겠지. 세이에게나 중요한 사랑은 내게 무쓸모한 것이었다. 하온을 사랑하지도, 애정 하지도 않는 내가 세이를 내쳐봤자 얻는 이득이 없었다.

 

 오히려 손해야. 아무래도 사람들은 같은 처지에도 눈물을 터트리는 자를 편 들어주니까.

 

 내가 여기서 세이에게 질투라도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간 분명 입에 오르내리겠지. 빈궁은 심성이 고약하다, 자리를 뺏음에도 뻔뻔하다. 그리 손가락질을 하면서.

 

 그런 쓸데없는 평가 질을 감당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세이를 후궁으로 들이는 이유는 그뿐이었다.

 

 “저하께서도 분명 좋아하실 거에요.”

 

 “…황송합니다.”

 

 “금혼령과 간택은 생략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보통은 치러져야 하나, 이미 저하의 총애를 입고 있으니까요.”

 

 내 말에 따라오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수군거림이 마음에 들었다. 이 일은 나에게 결코 나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비로운 공주이자 세자빈이라는 이미지가 머리에 박힐 테니까.

 

 “종 2품 양제를 하사받으면 되겠습니다.”

 

 “…네.”

 

 평소에는 당돌하게 할 말을 잘하더니, 그녀는 어느새 꿀 먹은 벙어리였다. 여기서 자칫 말을 잘못 했다간 단희가 당장에라도 무를 것 같아서 세이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괜히 토라도 달았다가 말을 거두면 자신이 후궁의 자리를 거절했다고 이야기가 퍼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허나, 한 가지 양해를 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대로만 간다면 조금은 바보 같겠지. 착하고 어진 성품은 적당히를 알아야 어리석어 보이지 않는다.

 

 “아시다시피 갑작스럽게 치러지는 혼례로 인해 다들 분주하다는 걸 아시지요.”

 

 “네.”

 

 “그런 와중에 후궁 책봉까지 따로 거행된다면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기는 힘들 것입니다. 하여,”

 

 아주 조금 기를 눌러 놓는 게 좋겠지.

 

 “저와 저하의 혼례가 이루어지는 날 간소하게 후궁 책봉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하루에 다 해치우면 편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씀은 제 책봉식을 생략하시겠다는,”

 

 “생략이 아닙니다. 그냥 하루에 치르자는 말이지요. 본래 후궁 책봉은 거창하게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

 

 “혼례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민영재에서 바로 진행해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세이가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이빨의 압력으로 원래도 붉었던 입술이 더욱 붉어진다. 나는 그곳에 시선을 두다 미소를 지었다.

 

 “싫으신가요? 그럼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세이양과 세자저하를 생각하는 마음에 제안한 터인데 그게 아니었나 보네요.”

 

 “…아니에요. 그리하겠습니다.”

 

 세이는 내 말에 얼른 답했다. 그래 기회를 줄 때 잡아야지.

 

 대신 후궁 책봉을 혼례와 같은 날 하자는 나의 제안이 어떤 의미를 뜻하는지 그녀가 알았으면 했다.

 

 진정한 주인공은 네가 아니라 나라는 의미를.

 

 식어버린 꽃차를 한 모금 마셨다. 목 넘김이 차가운 탓에 씁쓸함이 식도에 감돌았다. 역시 따뜻할 때 마셔야 향이 진하거늘.

 

 “중전마마와 희빈마마 드십니다.”

 

 그때, 여전히 수군대는 사람들을 가로지르고 상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이 양쪽으로 열리고 중전마마와 희빈마마가 줄지어진 다과상을 가로질렀다. 일제히 고개를 숙였고, 나 또한 천천히 고개를 내려 마마들을 맞이했다.

 

 “중전마마, 희빈마마 오셨습니까.”

 

 “자리에 앉지.”

 

 품계에 따라 앉는 자리기에 중전마마가 한가운데 다과상 앞에 앉았고, 오른쪽에는 희빈마마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중전마마의 왼쪽으로 위치해 앉았다.

 

 여전히 세이는 일어선 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왜 그리 서 있는가.”

 

 “송구합니다.”

 

 보다못해 희빈마마가 작은 꾸지람을 하자, 그제야 양쪽으로 줄지어 있는 명문가 여인들 사이로 자리를 잡고 앉는다.

 

 중앙에 있는 왕실 사람들과 일렬로 양쪽에 있는 명문가문 규수들은 그 결이 달랐다.

 

 물론 신분의 문제라기보다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같은 곳에 앉아 있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단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단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별하지 않아도 세이에게 만큼은 아주 커다란 장벽처럼 느껴질 것이다.

 

 네 분수는 거기까지.

 

 나는 세이에게 두었던 시선을 거두고 중전마마를 바라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의 중전마마는 연한 개나리색의 당의를 입었으나 오히려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색깔인 탓에 금박으로 수놓아진 둥근 보의 용은 더욱 빛나는 효과를 내었다.

 

 “빈궁은 다과가 입맛에 잘 맞는가?”

 

 “아, 네 중전마마. 온해국의 꽃차는 단연 으뜸입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다음에 화선당으로 진귀한 꽃들을 좀 보내겠네. 고운 햇살에 말려 맛이 진하고 향이 오래가지.”

 

 “감사합니다.”

 

 꽃차와 술이 대표적인 온해국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미 질리도록 마셨는걸.

 

 내게 웃으며 말을 건네는 중전마마와는 달리 희빈마마는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역시 그녀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하온이 왕위를 물려받는 것에 가장 큰 반기를 들 사람이니 내가 달갑지 않을 수밖에.

 

 그녀의 옷은 희빈이라는 품계로 인해 당의에 보는 새겨져 있지 않았지만, 오히려 누구보다 선명한 색감과 다양한 꽃문양들이 보는 눈을 즐겁게 했다.

 

 더불어 그에 걸맞은 반짝거리는 장신구들은 진하고 뚜렷한 인상의 그녀라서 소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저리 보니 저 사람에게서 어떻게 차온 같은 인물이 나왔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가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많이 빼닮았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끝까지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희빈에게서 시선을 떼고 입을 열었다.

 

 “중전마마, 한씨 가문 세이낭자를 세자저하의 후궁에 책봉하고자 합니다.”

 

 “세자의 후궁이라면 그리 급한 문제는 아닐 텐데.”

 

 “허나 그리 미룰 일도 아닌듯합니다. 본래 세이낭자는 가희국과 온해국이 동맹을 맺기 전부터 저하와 각별한 사이가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시기가 이른 듯하여 염려가 되는구나.”

 

 “저하도 저하지만 소인도 궁에 비슷한 또래의 말동무가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말동무라…”

 

 중전마마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쁠 것도 없지. 빈궁이 중심을 잘 잡을 거라 믿겠네.”

 

 “감사합니다. 중전마마.”

 

 

 …

 

 

 

 다과회에서 결정된 사안은 빠르게 궁을 타고 퍼져나갔다. 세이가 빠른 시일 내에 입궁한다는 소식과 첩지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궁의 모든 이들에게 전해졌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한가지는 세자빈이 될 공주의 성품이 어질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한 가지는 하온의 점수를 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나를 불쌍하다, 가식적이다, 어리석다 등으로 평가했다.

 

 그 말을 전하는 진영의 표정도 썩 밝지는 못했다.

 

 “어찌 그런 선택을 하신 겁니까?”

 

 “진영아, 차온군마마에게 세이의 심정이 어떨 것 같냐고 물었을 때 뭐라 답했는지 기억하니?”

 

 “무슨 일이든 할 것 같다고 하셨지 않았어요?”

 

 “그래. 그런 마음을 품은 이를 굳이 적으로 두어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하지만 세자저하께서 공주마마께 눈길도 주지 않으시면 어찌합니까…”

 

 “눈길은 필요 없고 좋은 동아줄만 위에서 잡아주고 있으면 돼.”

 

 “동아줄이요?”

 

 “응. 가희국을 살릴 아주 굵고 튼실한 동아줄.”

 

 하온이 그 동아줄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있으면, 나는 유유히 위로 올라갈 것이다. 차근차근 올라가다 보면 정상에는 비로소 신선하고 자유로운 공기가 있겠지.

 

 내가 원하는 그곳의 공기.

 

 “동아줄?”

 

 “뭐야, 누구야?”

 

 그때, 웬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영이 놀라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문이 드륵하고 열리곤 검은 물체가 발소리도 내지 않고 다가왔다.

 

 진영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물체에 겁이 나 뒷걸음질 치며 내게 몸을 기대었다. 나도 순간 당황스러워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시선을 고정시켰다.

 

 갑자기 무슨 상황이야. 설마 괴한이라도 든 건가?

 

 “무슨 짓이냐.”

 

 목소리를 가다듬고 묻자 그 물체는 조금 반응했다. 그는 서서히 발걸음을 멈추더니,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을 턱밑으로 내린다.

 

 가려져 있던 이목구비가 드러나자 칠흑같이 어둡고 맑은 눈동자가 진영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깜박했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 이렇게 무턱대고 들어오면 실례인가.”

 

 온몸을 검은 옷으로 두른 그의 등에는 얇고 기다란 검 하나가 메져 있었다. 그리 큰 키는 아니었지만 호리호리하고 날렵한 몸선을 보아 한눈에 보기에도 무술이나 검술에 일가견이 있는 자였다.

 

 자객이거나, 괴한이거나, 뭐 그런 게 분명한 자다.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당장 소리를 질러 호위병들을 불러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와중.

 

 “미안해. 습관이기도 하고 귀찮아서.”

 

 “다짜고짜 들어와 이 무슨 행패인 것이냐.”

 

 이 와중에 반말은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다. 명색이 왕족인 내가 격식 없는 대화를 한 적이 있기는 했던가.

 

 “궁금했거든, 네 얼굴이.”

 

 “얼굴?”

 

 살짝 가려진 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진영은 금방이라도 그자가 칼을 꺼내 들까 봐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대화를 시도하는 단희의 팔을 붙잡고 소심하게 말릴 뿐이었다.

 

 “와, 근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나를 관찰하듯 바라보던 사내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말을 이어나갔고, 나는 당장에라도 그를 공격할 수 있도록 두 손에 힘을 집중했다.

 

 이렇게 빨리 불꽃을 사용할 줄은 몰랐는데.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내는 말했다.

 

 “예쁘네. 짜증 나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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