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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통일
작가 : 솔거
작품등록일 : 2022.2.12

한반도의 휴전선은 남북이 아닌 미국, 구소련, 중국에 의해 정해진 선이다. 70년 전 힘없는 남과 북의 주민은 강대국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내전을 치렀다. 남은 북 때문에 내전을 치렀다고 하고 북은 남한의 친일세력이 미국을 등에 업고 치른 내전이라고 선전했다. 이제70년이 지났고 우리의 국력도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 되었다. 우리의 힘으로 휴전선 철책을 걷어 낼 때가 된 것이다. 아니 닫혔던 문을 열어야 한다.

 
4화. 형 조권 만나는 왕건 (1)
작성일 : 22-02-12 13:29     조회 : 179     추천 : 0     분량 : 15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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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건은 15일이 지나 다시 김인철을 만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호태를 오라고 해 천만 원을 주었다. 호태는 놀라 아니 왼 돈을 이렇게 많이 주세요? 왕건은 부담 갖지 말고 받아! 자네 친구 중에 한국은행에 다니는 친구 또 물리학자 친구와 친하게 지내?

  “예?”

  “그 친구들 하고 술을 두세 번 먹어, 조금 좋은데 가서 먹으라고.” 호태는 어리둥절해서 “아저씨 왜 이러세요?”

  “부담 갖지 말고 그렇게 하라니까. 이것도 사업의 일환이야.” 호태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일단 받아서 호주머니에 넣고 말했다.“이번에는 형님을 꼭 만나실 거예요?”“그럼 이번에는 꼭 만나게 될 거야.”“그럼 북엘 가시게 되겠네요.”“글쎄, 그건 가봐야 알아, 하지만 꼭 만나고 와야지.”“하여간 잘 다녀오세요.”“그래, 염려하지 마, 내가 달러 뭉치를 가지고 가니까 잘 될 거야.”

  왕건은 호태와 헤어져 다음날 북경 행 비행기에 몸을 싫고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는 정말 형님을 만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북경 공항에 내려 고속버스로 안동으로 간다. 김인철이 와 있을까? 궁금해 안동식당에 들어서니 김인철이 막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아~아 이거 미안 하외다. 버스가 조금 늦게 도착해서.” “아~니 나는 조동무가 안 오시는 줄 알고 지금 막 가려던 참인데?”

  “미안합니다. 자~아, 들어가시죠.”

  왕건이 안내를 하니 인철도 못이기는 척 먼저 점심 먹던 그 방으로 들어가 고급요리에 배갈을 곁들여 먹기 시작했다. 배갈을 두병쯤 비우고 왕건은 홍삼 한 상자, 또 디지털 카메라 하나를 선물로 내놓았다. 인철은 놀라“아~니 조 동지, 일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데 선물부터 주십니까?”“일은 일이고 나는 김 동지를 만난 것만으로 감사한 사람입니다. 일이 잘 안되어도 김 동지를 통해 북조선 관광이라도 하면 그것으로 만족한 사람입니다.”

  아~아 기래요. 고조, 조 동지는 마음이 넓은 사람입네다. 조 동지가 그렇게 마음이 넓으면 나도 그만한 대접은 해 드려야디요. 하여간 내레 조권동무네 집을 알아 놨시요. 그런데 조 동지. “네 김 동지!” 김인철은 왕건을 부르더니 한참을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것 같다가 말문을 열었다.“조 동지··· 기런데 그게 조권동무네 집을 가도 혹시 문전박대 당할지도 모릅니다.”“왜요? 동생이 몇 십 년 만에 찾아갔는데 그렇게 매몰차게야 하겠습니까?”

  아니, 그거이 조권동무래 북에서는 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입네다. 북에서는 높은 사람이라도 누구의 감시를 받든 받게 돼 있어요. 그러니 남에서 동생이 왔다고 하면 조권 동무레 많이 당황할 것이고 그러니 문전 박대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조권집 앞까지 갔는데 문전박대하면 조 동지는 흥분해서 몇 십 년 만에 만난 형 이거 너무하시는 거 아니냐고 흥분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집을 알았다는 것으로 만족하셔야 합니다. 그 후에 일은 내레 어드렇게 묘안을 짜 원만하게 처리 하겠습니다.”

  “네~에 알겠습니다.”

  김인철은 멋 적은 얼굴로 내레 달러 때문에 자본주의 간나 새끼가 다 되어 고저 남조선 사람이 보면 정말 저희들 뺨치는 까진 장사꾼이디요. 그러나 내레 이렇게 된 거이 모두 남조선 장사꾼들 때문이에요. 하여간 그런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 안동에서 주무시라요. “네레, 고급 반점을 아니까 거기 가서 주무시라요.”이들은 택시를 잡아타고 안동교외에 있는 조촐한 남한의 모텔정도 되는 곳으로가 왕건이 짐을 풀고 인철은 내일 12시까지 온다며 나갔다. 왕건은 혼자 모텔 방에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북한의 실상이란 참 복잡하고도 묘한 체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은 그렇게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늦잠이 들어 다음날 깨어보니 아침 10시다. 김인철이 온지가 꽤 된 것 같다. 왕건은 늦잠을 자 미안하다며 식당으로 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인철이 안내하는 안동 뒷골목 시장으로 갔다.

  컴컴한 골목으로 들어가 한참을 가니 상점이 군데군데 문을 열고 있다. 그곳에서 물건을 사서 북으로 가는 것인 것 같다. 인철은 밤이 돼야 거래가 되고 여기서 산 물건은 잘 싸놨다가 내일 밤 북조선으로 가져갑니다. 내레 어제 물건을 다 사놨으니 밤 10시에 떠날 것이요. 그러니 조 동지도 그때 나하고 같이 타고 갑시다.

  “고맙소. 김 동지.”

  그들은 그곳 암시장 구경을 하고 저녁때가 되어 저녁을 먹으려고 근처음식점으로 갔다. 인철은 조 동지! “중국 아이들이 좋아하는 오리구이 들어 보실라우?”

 “네에, 먹어보지요.”

  왕건이 인철을 따라 들어간 곳은 오리구이집이다. 거기서 한참을 기다리니 오리구이가 나오니 배갈을 곁들여 먹고 늦게까지 있다 화물창고 같은 곳으로 가니 거기 3대의 트럭에 짐이 잔뜩 실려 있다. 그 차가 북으로 가는 것이라며 왕건보고 화물차에 타라고 한다. 인철도 왕건 옆 좌석에 타 앞좌석에 3명이 타고 가게 되었다. 그리고 두 대의 트럭은 인철이 탄 차를 따라온다.

  압록강 다리를 건너는데 중국 측 검문소 겸 세관에서 검문을 한다. 세관원은 형식상 트럭 위 짐을 막대기로 쿡쿡 찌르더니 통과 시켜 압록강 다리를 건너 철의 장막 속으로 들어가니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 정말 북한이 남쪽에서 생각하는 것 같이 모두가 궁핍할까? 하는 생각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왕건은 그런 생각을 하며 압록강 다리를 건너 북한 땅에 들어서니 아-하 내가 마침내 북한 땅에 발을 드려놓았구나? 황홀함과 두려움이 앞섰다.

  밤이 되어 보이지 않지만 마음이 설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으니 인철이 눈치 채고 조 동지 그렇게 좋으십니까? 좋은 것 보다 정말 내가 북한 땅을 밟은 것인가 실감이 안나 이렇게 두리번거리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남조선에선 금기시 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오셨으니 어찌 마음이 안 설레겠습니까? 하여간 조금 지나면 신의주에 도착할 것입니다.

  차가 안동을 떠나 20분쯤 지난 것 같은데 신의주에 도착해 어느 창고로 들어갔다. 인철이 차에서 내리고 왕건 보고도 내리라고 한다. 왕건은 내려서 북한의 흙이라도 한줌 쥐어보고 싶지만 시멘트 바닥이라 어쩔 수 없이 내일 아침 만져 보리라 생각하고 인철이 인도하는 대로 차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니 또 다른 창고가 나온다. 그 앞에 지프가 한 대있다. 인철은 왕건에게 그 지프차를 타라고 하여 타니 인철도 따라 탄다.

  그 지프를 타고 어디론가 달린다. 밤중이라 밖의 집들이 희미하게 보일 뿐 모든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남한은 이 시간이면 불야성을 이룰 텐데 신의주는 조금 벗어나니 깜깜 절벽이다. 차는 한 시간쯤 달려 평양 교외 어느 주택가에 도착했다. 구획정리가 잘된 넓은 대지위에 단독주택이 반듯 반듯하게 지어졌고 정원 또한 넓다.

 인철이 그 집중의 한 집 앞에 서라고 운전사에게 말했다. 왕건은 차가 집 앞에 서니 회비가 엇갈린다. 내가 정말 형님을 만나는 것인가. 형님도 나를 알아보실까? 짧은 시간에 그런 생각 저런 생각에 정신이 혼란하다. 인철은 운전기사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대문으로 가 벨을 눌렀다. 안에서 여자가 “누구 입네까?” 하고 묻는다.

  “네에, 저 김인철입네다.”그러니 철문이 삑 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열렸다. 인철의 안내로 왕건이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넓은 정원에 고급 정원수들이 가득 차 있다. 남한 시각으로 보면 재벌 집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철의 안내로 거실로 들어섰는데 거실 옆에 응접실이 따로 있는 것 같다. 40대쯤 된 여자가 안내를 해 들어가니 60쯤 돼 보이는 남자가 금태 안경을 쓰고 앉았다가 인철을 보더니“김 동무, 이 밤중에 어쩐 일이니?”

  “네~ 제가 오늘 저녁에 전해드릴 물건이 있어서 왔습니다.”“조권은 기래? 그리고 왕건을 쳐다보더니, 기런데 저 동무는 누군데 같이 왔니?”“네~에, 그게 이 동무가 위원장 동지를 꼭 만나고 싶다고 해서 같이 왔습니다.”“기래? 동무래 왜 나를 만나고 싶다는 것입니까?”

  “네~에, 저는 인철 동무의 이야기를 들으니 위원장 동무레 인민을 위해 불철주야 수고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레 중국에서 조그만 합영회사를 하는데 요즘 재미를 많이 봐서 선물을 좀 드리려고 인철 동무와 같이 왔습니다.”

  “기래요. 고고 고맙긴 한데 나한테 뭔가 부탁이 있어서 이런 것을 주는 거 아니디요?”“아~ 아닙니다. 절대 부탁 같은 거안할 테니 받아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래요. 고맙구만…” 그리고 왕건을 찬찬히 훑어본다.“하여간 차나 한잔 하고 가시라요.”“네~에 고맙습니다.”조금 있으니 50대 아주머니가 차 3잔을 쟁반에 들고 나온다.

  “자~아, 드시라요.”왕건이 차를 들고 조권을 쳐다보니 “어서 드시라요.”

  “네. 위원장동지.”

  왕건이 차를 한 모금 마셔보니 박하 향 비슷한 것이 코에 와 닿으니 너무 좋아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향이 그윽하고 감칠맛 나는 차는 처음 먹어봅니다.”오~오 기레요? 이 차레 들쭉차라고 국무 위원장 동지께서 하사하신 차야요. 우리 공화국에서 제일가는 차지요. 내레, 여러 나라 차를 먹어봤지만 우리 공화국 차만한 차를 먹어보지 못했어요.

  “예, 저도 이런 좋은 향의 차는 처음 먹어봅니다. 고맙습니다.”“고맙긴 내레 동무같이 우리 공화국을 찬양하는 동무에게는 선물을 주어야 하는데 지금은 준비한 게 없으니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있으면 그때는 나도 선물을 드리겠소. 인철동무 안기래?”

  “네~에 그렇게 하시면 저도 좋습네다. 저는 왕건 동무와 같이 오면서 많이 걱정 했습니다. 위원장 동지께서 문전 박대 하시면 어쩌나 하고요.”“인철 동무~ 내레 왜 아무나 문전 박대를 하니? 인철 동무가 그동안 우리 공화국을 위해 많은 수고를 했는데.”“위원장 동지 그렇게 알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우리가 잠 못 주무시게 너무 오래 있었나 봅니다.”

  “왜 벌써 가게?”“내레 지금가야 되지 않겠습니까?”“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조권이 시계를 보더니“기레, 손님도 잘 가시라요.”네~에. 안녕히 계십시오, 왕건도 인사를 정중히 했다.

  왕건은 가져간 선물을 슬그머니 놔두고 밖으로 나와 지프를 타고 신의주로 와서 당 간부가 쓰는 방 같은 곳으로 들어가니 인철이 멀거니 쳐다보더니 말했다.“조 동지, 당신 남조선에서 온 방해꾼 아니요? 내레 조 동지 신분이 적이 의심스럽소.”“별안간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인철 동지?”

  아니 나는 조 동지가 형님을 찾아뵌다기에 붙잡고 울고불고하면 어쩌나 했는데? 뭐 중국에 사는 동포가 기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 공화국 일에 수고하시는 것이 고마워서 선물을 드린다. 아~니, 이건 보통 수가 아니지 않소. 조 동지 혹시 남조선에서 밀파한 요원 아니요?

  이것 봐요. 김 동지! 김 동지가 저번에 뭐라고 하셨소. 조권동무가 자기는 남쪽에 친척이 없다고 딱 잡아 땠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내가 조봉안의 아들 왕건라고 하면 당장 쫓아내지 않겠소? 나는 어떻게든 들어가서 나의 배다른 형님, 그 분 얼굴을 한번 보려고 온 것이요. 우선 얼굴을 봐야 정말 형님을 찾은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 할 것 아니요?

  다른 사람인데 괜히 헛수고 하면 안 되지 않소. 김 동지! 내가 처음부터 돈을 많이 쓰니까 남조선에서 고생도 않고 돈이 하늘에서 떨어진 줄 아시는 모양인데? 내가 이 돈 모으기 위해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40년을 모아 가지고 온 돈이요. 그렇게 돈을 한푼 두푼 모아 계속 땅만 산 것이 남조선 경제가 좋아지니 많이 올랐소, 거기다가 목장을 해서 돈이 모이니 형님이나 한번 찾아본다고 온 것이오. 그러니까 우선은 내 눈으로 형님인가 아닌가를 식별하는 게 급선무라 돈을 많이 쓴 것이요.

  “기레요. 기럼 조권동무를 보고 어떻게 느끼셨소?”김 동지 정말 고맙소, 내가 북에 형님이 있다고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사실은 내가 형제 친척, 아~아니 아버지 없이 자란 외 도토리 입니다. 그래서 북에 형님이 계시다는데 한번 찾아나 보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조권씨를 보고나니 정말 김 동지가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 형제 다 있는 사람은 세상을 독신으로 살았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 모르는 법이요. 나는 오늘 형님을 만나 붙들고 엉엉 울고 싶었소,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다른 애들은 싸우면 형이 있어 자기 동생이 지면 너 누구하고 싸웠어?

  “제하고요.”

  그러면 자기 때린 놈 혼내는 것을 보고 형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살았습니다. 형 믿고 까불어서 조금 때려준 것을 자기 동생 때렸다고 얻어맞을 때 얼마나 서러웠는지? 외도토리같이 혼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 모르는 법이요. 그런데 왜 울고 싶어도 안 울었느냐? 형님을 위해서요. 나 때문에 만에 하나? 당으로부터 의심 받는다면 내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피붙이를 억지로 만난 게 해가 되지 않겠소? 내 나이 57세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소. 김 동지 정말 고맙소.

  “호~호, 이거 내레 괜히 멀쩡한 조 동지를 의심했소. 미안하오, 미안해.”조권은 김인철과 동생이라는 왕건이 나간 후 그가 놓고 간 선물을 풀어보았다. 그도 인간이다. 그가 왕건을 본 순간 자기 동생이란 것을 어찌 직감하지 않았겠는가. 어떻게 저렇게 자기를 많이 닮았을까? 이 세상에 비슷한 사람도 많지만 피를 나눈 형제란 느낌만으로 아는 것 아닌가? 저놈이 나의 피붙이인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 선물은 왜 싸고 또 싼 거야?

  왕건이 홍삼이라고 주고 간 보자기를 푸러보니 고급스런 곽이 나온다. 그 곽을 푸러보고 눈이 휘둥그레 졌다. 곽에는 위에만 홍삼이고 밑에는 달러가 잔뜩 들어있었다. 그리고 편지가 한 통 보였다. 조권은 떨리는 손으로 그 편지를 꺼내 읽었다.

 형님 저는 두 번째 안동 갔을 때 김인철 동지가 형님의 사진을 갖다 주어 그 사진을 보고 아~아 내가 정말 형님을 만나는구나! 하고 얼마나 가슴 설렜는지 모릅니다. 물론 김인철씨가 내 이야기를 하니까 형님이 펄쩍 뛰었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형님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충성을 다 했겠습니까? 모든 정성 다해 얻은 자리겠지요. 그런데 왜 제가 형님께 누가 되게 하겠습니까? 저는 앞으로도 계속 연변 동포로 공화국 일을 열심히 하시는 형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찾아 뵐 것이며 보고 싶으면 인철씨를 통해 뵙겠습니다.“형님 정말 만나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 돈은 형님이 인민공화국에서 성공했듯이 저도 남조선에서 성공한 편에 속해 많이 가진 자에 속합니다. 그러니 형님이 공사 구분 잘 하셔서 공은 절대 사심을 가져선 안 된다는 것 저도 잘 압니다. 그러하오니 사적으로 돈이 필요하실까봐 드리는 것입니다. 앞으로 사적인 일로 돈이 필요하시면 제가 언제든 도와 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히 안녕히 계십시오.” 동생 왕건.

  조권은 편지를 읽고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동생이란 것이 확실치는 않지만 나를 형님으로 생각하고 자기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래 저놈이 얼마나 외롭게 살았으면 내가 형이 아니라고 해도 저는 형님이라고 깍듯이 대한단 말인가? 저놈의 가슴은 따듯하고 마음은 더욱 따듯한 것 아닌가. 내가 그동안 공산주의자가 되어 뱀같이 찬 인간으로 살았는데 말년에 동생이란 놈이 나타나 나의 심금을 울리는 구나? 하~아, 내가 이제 늙어서 마음이 약해진 것인가! 아니야, 인간의 마음이란 저 동생 과 같은 것이지? 자랄 때의 외로움이 어른 되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하기야, 저놈도 아버지 어머니 다 돌아가셨다니 내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겠는가? 조권은 그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은 관광하는 날이다. 왕건은 인철과 초대소라고 쓴 여관에서 자고 세수를 하고 나와 2만 달러를 인철에게 주며 말했다. 앞으로 내가 5일 동안 북조선을 보고 싶으니 5일 경비 쓰고 남는 돈은 인철 동지가 가지시오. 우리 형님을 만나게 해준 은혜에 보답한다면 더 드려야 하는데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이 차비 빼고 이것이 다라 적더라도 이해해주십시오.

  인철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북조선에서 만 달러면 너무 큰돈이다. 그런데 만 달러는 수고비 만 달러는 관광비로 써달라는 것이다? 인철은 그 동안 장사한지가 5년째인데 남조선에서 왔다며 큰소리친 인간 많았으나 조 동지는 잘난 체도 안하고 겸손하고 또 나에 대해서 이렇게 호의를 베푸니? 내레 어떤 때는 조 동지를 다시 보게 됩니다. 남조선도 거지가 많다던데 조 동지레 얼마나 부자면 이렇게 씀씀이가 크십니까? “그거야 차차 이야기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기레요? 기럼, 오늘은 우선 신의주 구경부터 합시다.”

  “아니요. 오늘은 신의주를 떠나 평양까지 차를 타고 가면서 구경만 하고 싶습니다, 신의주는 나중에 한번 둘러봐도 될 것 같아서요?”“기레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왕건은 인철의 지프로 신의주를 벗어나 시골로 들어섰다. 북의 산하는 그 때까지 눈에 싸여있다. 그것을 보니 자기 어렸을 때 생각이 나 옛날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다. 집은 낡은 초가집 이지만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니 처마 끝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더 정겹게 보인다. 앞산에는 눈꽃이 만발했고 그 밑의 초가집이 너무 정겹게 보인다. 도로는 1번 국도쯤 되는 것 같은데 자동차가 가끔 한대씩 지나가니 온 천지가 한적하고 평화롭다. 한국에는 어딜 가나 북적거려 정신이 사나운데 남과는 모든 것이 대조적이다.

  왕건은‘하~아’ 평화로운 산하다. 나도 언젠가 이런 조용한데서 옛날식으로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신의주에서 한 시간쯤 가니 도로에서 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조금 큰 동네가 나타났는데 아이들이 스케이트 타는 아이들과 썰매 타는 아이들로 만원이다. 왕건은 인철을 보고, “김동지! 차 좀 세우시지요.” “왜요?”“저 동네 좀 보고 싶어서요, 저 아이들 노는 것을 보니 내 어릴 적 생각이 나서 그래요.”인철은 난처한 표정이다.“아~아니 관광은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이지 저런 동네를 왜 보려고 하십니까?”

  “아니~내 어릴 적 생각이 나서 그런다니까요.”인철은 머뭇머뭇 하다가 길가에 차를 세웠다. 왕건은 차에서 내려 그 동네로 들어가면서 노는 애들을 자세히 보니 삐쩍 말랐다. 나무를 깎아 철사로 날을 세운 스케이트를 타고 노는데 꼭 한국 60년대 스케이트 같다. 그 모습을 멀건이 쳐다보다가 애들이 추워 보이니 앞에 가서 물었다.“너희들 춥지 않니?”

  “안 추어요, 우리는 국무 위원장 동지가 이런 털옷을 주셔서 안 추워요.”“그런데 왜 그렇게 추워 보여?” 왕건은 안타까운 심정이다. 왕건은 아침을 짜게 먹어 물이 먹혀 어느 집으로 들어가니 마침 점심때인가 아주머니가 밥상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주춤한다. 왕건은“지나가다가 물 한 그릇 먹을까 해서 들어왔습니다.”

 아주머니는 상을 마루에 놓고 부엌으로 가 물 한 그릇 가지고 나왔다. 왕건은 그사이 상에 차려진 밥상을 힐긋 보았다. 밥상에는 강냉이밥이 네 그릇에 반찬은 동치미 한 가지뿐이다.

  왕건은 아주머니가 물 한 그릇을 주니 두어 모금 마시고 아주머니에게 주면서 얼굴을 보니 뼈만 앙상하다. 그것을 본 왕건은 비참함에 고개를 돌렸다. 왕건이 물을 먹고 나오니 얼음판에서 놀던 아이가 배고프다며 들어온다. 안에서는 아주머니가 나오며 “들어와서 밥 먹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들어가 조금 있다 나온다. 왕건은 의아해 물었다.“얘야, 벌써 점심을 다 먹고 나오니?” “예. 우리 국무 위원장 동지가 주신 밥이라 내레 맛있게 먹었어요.”왕건은 어이가 없다. 그 아이의 엄마를 볼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그의 아들에게 몇 마디 물어보곤 기가 막히고 어안이 벙벙해 그냥 차로 오고 말았다.

  다음날은 함흥시를 보기로 하고 반나절 걸려 도착하니 큰 도시라 차도 많고 사람이 북적거리는 시장도 있다. 왕건은 시장 안으로 들어가 물건과 사람들을 자세히 봤다. 그때가 점심시간이라 상인들이 먹는 음식을 보니 주로 강냉이밥을 먹는다. 함흥 사람들도 핏기 없이 빼빼마른 사람이 많다. 점심때니 왕건도 인철이 보고 점심을 먹자고 하니 인철이 기레요, 그러면서 들어간 곳이 허름한 음식점이다. 왕건이 간판을 보니 함흥 단고기 집이라고 써져있다. 그 곳으로 들어가 앉아있으니 단고기국이 나온다. 한국의 개장국이다. 어쨌거나 북한에서 개장국을 먹어보게 됐는데 개장국 맛은 옛날 맛 그대로이다. 왕건은 나오면서 일하는 아가씨와 아주머니에게 1달러씩 팁을 주었다. 그들은 받아서 주인에게 주는 것 같다. 왕건은 나오면서 인철에게 물었다.

  “김 동지!” “왜요?”

  “아니 한쪽에선 강냉이밥을 먹는데 단고기는 누가 먹어서 저런 식당이 있는 것이요?”

  조 동지! 그게 시장에는 돈을 많이 번 사람이 꽤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대상들은 단고기를 먹는다고 해요. 대상들을 상대로 단고기집, 또 냉면집이 그런대로 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상인들은 가격이 저렴한 국수를 먹으니 국수집도 곧잘 된다고 합니다.”

  “네~에. 그렇군요.”

  왕건은 이틀 관광을 하고 다음날은 평양 시내 관광을 하게 되었다. 관광 코스로만 다녀서 그런가? 거리가 너무 깨끗하다. 건물들도 반듯반듯한 것이 일률 적으로 나열된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가 특색 있게 지어졌다. 가로수며 다니는 시민들도 그런대로 괜찮아 보인다. 인철은 그렇게 관광코스를 한 바퀴 돌더니 옥류관이라고 쓴 건물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왕건은 인철이 안내하는 대로 옥류관으로 들어섰다. 손님들이 꽤 많은데 그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며 냉면을 먹고 있다. 서울의 음식점과 다를 바가 없다.

  왕건이 잠간 기다리니 냉면이 나와 한입을 먹고는 적잖이 놀랐다. 자기가 상상한 냉면 맛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원하면서도 감칠맛이 입안을 맴도니 너무 신선하다. 그래 입이 즐거우면 마음까지 즐거워진다는데 지금 왕건의 마음이 그렇다. 남한 인류냉면집의 냉면보다 더 깔끔하고 깊은 맛이 나는 것이다. 왕건은 인철을 쳐다보고 말했다. 이 냉면은 정말 맛있습니다.

  인철은 빙그레 웃더니 그래서 왕건 동지를 이리로 모시고 온 것이디오. 다른 나라사람들은 몰라도 남조선 사람들은 이 옥류관 냉면 한 그릇 먹어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 많다고 들었습니다. 지난번에는 6.25때 남한으로 간 간나 새끼에게 옷을 샀는데 그 놈도 옥류관 냉면이야기는 어데서 들었나? 자기 고향이 평양인데 그래서 그 옥류관 냉면 하번 먹는 것이 소원이라며 입을 쩝쩝 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왕건이 인철의 말에 한숨을 쉬니 아니 조 동지 왜 한숨을 쉬십니까? 네 그게 남조선 정부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게 별안간 무슨 말씀이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우선 사리나 두개 더 시키세요. 인철이 흐뭇한 마음으로 사리 두개를 시키니 바로 나온다. 둘이는 각자 사리 하나씩을 더 먹고 옥류관을 나왔다.

  인철은 왕건이 너무 좋아하니 자기도 기분이 좋다. 어제까지는 왕건 표정이 안 좋았는데 오늘은 옥류관 냉면을 먹고 저렇게 얼굴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고 관광객은 다른 곳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좋은 곳 좋은 음식을 먹으면 저렇게 좋아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왕건과 차를 타고 안동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왕건이 내일은 간다는 것이다.

  “아~니. 왜 일찍 가십니까? 개성과 판문점도 보시지 않고.”“아니요. 내가 다음에 오면 이야기 하겠지만 나는 지난 며칠 동안 눈물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았는데 오늘은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그래요?”

  “내가 어제까지는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하고 둘이만 살 때 생각이 나 북한 땅에 더 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은 마음이 가벼워 졌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을 더 보면 마음이 도로 아파질 것 같아 집에 갔다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평양 이외의 북한 동포들도 따듯하게 해 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볼까 합니다. 그래서 일찍 가 연구하고 돌아오겠다는 뜻입니다. 하여간 다음에 오면 내가 김 동지를 어떻게 연락 하면 만날 수 있나 그것만 알려주십시오.”“그거요. 그거는 안동시장 있지 않습니까? 우리와 거래하는 시장.”

  “네, 거기 알지요.”“거기 밤 9시 넘어 창광상회 가서 김인철 동무 만나러 왔다고 하시오. 연변에서 왔다고, 그리고 이름을 대면 다음날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평양 이외의 인민들을 따듯하게 한다는 것입니까?”“그것은 다음에 오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안녕히 계십시오.”

 “왕건 동지도 잘 가시오.”

  왕건은 다음날 인철과 헤어져 북경을 경유해 오창으로 왔다. 오창 집에 오니 마누라 오순이 궁금한 눈빛으로 묻는다.“그래 갔던 일은 잘 돼 가요?”“그런대로 잘돼가.”

  “당신 내가 멀미를 많이 해 버스는 못 타도 기차 타고 다니면 되는데, 어째서 당신혼자 만 쏘다녀요. 나보고 한번 가자는 말도 없이.” “그래, 다음엔 당신도 같이 갑시다.”

  왕건이 그렇게 말하니 오순이 좋아서 말했다.“그래요! 기차로 왔다 갔다 하면 되지 않아요.”“그래 알았어.”

  “아~아니 그런데 당신 왜 그렇게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여요. 어디 아픈 것 아니에요?”“아프긴 어디가 아파. 저녁이나 가져와요.”그러면서 TV를 켜니 화면에 휴전선 근처 논에 검정독수리들이 고기를 쪼아 먹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새’ 애호가들이 두루미에게 모이를 주는데 잡곡이 아닌 쌀을 주는 것이다. 왕건은 그 화면을 보고 분노에 찬 얼굴로 혼자 중얼 거렸다.

  “하-아 우리는 죄인이다. 어찌 한쪽에서는 쌀이 없어 아이들이 강냉이밥을 먹는데, 또 한쪽에선 쌀이 남아돌아 하얀 쌀을 새들에게 준단 말인가?” 방송국에서는 왜 저 장면을 비출까? 그것은 남한의 대다수 시청자들이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한 국민이 언제부터 잘 살았다고 저 장면을 보고 공감 한단 말인가? 남한 사회도 노년층들은 저것을 보면 뭔가 안타까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공감 하니 저런 것을 비추리라? 그래, 우리는 모두가 죄인이다. 북의 어린이는 못 먹어 피골이 상접한데, 그것을 알면서도 남는 쌀을 처치 골란 하다고 두루미는 주어도 북의 어린이에게는 줄 수 없다. 김씨 일가가 밉고 그 추종세력이 미워서 줄 수 없다. 우리는 오히려 두루미에게 주는 게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다. 두루미에게 줄망정 너희들은 굶어 죽어도 줄 수 없다. 왕건은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 북한 어린이들 생각이 나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마누라 오순은 왕건이 며칠 만에 저녁을 먹게 되니 돼지고기를 고추장에 재서 굽고 된 장 찌개를 끓여 저녁상을 내왔다. 왕건은 그 상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밥은 안 먹고 눈물만 뚝뚝 떨어뜨린다.

  “오순은 남편을 보고 놀라 아니 당신 배고프다고 해놓고 왜 밥상을 앞에 놓고 울어요?”

  오순이 물으니 왕건은 어렸을 때의 무국생각이 나 계속 눈물을 흘리며 옛날로 돌아간다. 가을이 지나 초겨울이다. 기러기 들이 북쪽 동토의 추위를 피해 ㅅ 자 형으로 남으로 내려오고 있다. 왕건은 그날도 무죽을 한 그릇 먹고 잠이 들었다. 멀건 무죽을 먹고 소변을 두어 번 누고 나니 아침이 된 것 같다. 아이들은 대개가 늦잠을 자는데 저녁을 부실하게 먹은 왕건은 너무 배가 고파 일찍 깨진 것이다. 그래서 먹을 것이 없나 생각하다가 앞의 부잣집 밭에 조선배추 뽑고 난 잔챙이 생각이 나 그거라도 뽑아 꼬리라도 한 입 먹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얇은 바지저고리를 입었다. 부잣집은 솜을 두둑하게 넣고 바지저고리를 짓는데 가난하니 솜을 조금 넣어 바지저고리가 얇다. 거기다가 조끼를 입으면 훨씬 덜 추운데 너무 가난하니 조끼를 못 입어 덜덜 떨며 낫을 들고 앞집 흥태네 밭으로 가 다 뽑고 난 잔챙이 조선배추를 뽑으니 꼬리가 달려 나온다. 그것을 낫으로 껍질을 벗기고 한입 넣으려는데 흥태가 나타났다.

  흥태는 왕건을 보더니 너 왜 우리 배추 꼬리 뽑아 먹어! 하고 악을 썼다. 왕건은 흥태가 늦잠 자는 아이라 일찍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악을 쓰니 배추 꼬리를 먹다말고 그를 쳐다봤다. 흥태는 너 누가 우리 밭에서 배추꼬리 뽑아 먹으라고 했어? 그리고 앞으로 오더니 별안간 따귀를 후려쳤다. 흥태는 동네서 놀부라고 소문난 아이다. 그런 흥태가 어제 저녁 되지 고기를 많이 먹어 설사가 나 뒷간을 가려고 일찍 나왔다가 왕건을 본 것이다.

  어린 왕건은 부잣집 아들 놀부가 따귀를 때려도 말 한마디 못하고 깎아 먹으려던 배추 꼬리를 밭에 놓고 눈물을 글썽이며 집으로 왔다. 왕건 엄마는 왕건이 눈물 흘린 것 같으니 아니 어디 갔었어, 왜 눈물을 흘려? 왕건은 엄마가 묻는 말에 대꾸도 못하고 불 때는 아궁이 옆에 앉아 불을 쪼였다. 철이 난 왕건은 엄마에게 말해야 엄마 마음만 아플 것이라는 생각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별안간 찬바람을 쏘여서 그런가봐 하고 얼버무렸다.

  왕건 엄마는 아들이 왜 밖에 나갔다가 울었는지 짐작은 하지만 먹을 것이 있어야 위로를 하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무죽이지만 아침을 일찍 해서 아들과 같이 먹고 상을 치웠다. 무죽 한 그릇을 먹은 왕건은 두 시간도 못되어 배가 고프다. 그래도 아이들과 살짝 언 논의 얼음판에서 놀다가 너무 배가 고프니 깨진 얼음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것을 본 흥태가 너 뭐 먹어? 너 우리 밭에서 배추꼬리 뽑은 것 먹지하고 또 따귀를 때렸다. 왕건은 너무 억울해 입을 벌리고 어름을 퇴 뱉으며 너 정말 너무하는 것 아니니? 하고 대드니 흥태는 어쭈 이게 대들어? 너 정말 맞아야 되겠다, 하더니 사정없이 주먹질을 해 댔다. 그 바람에 코피가 터져 피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왔다. 피투성이가 된 아들을 본 왕건 엄마는 아니 누구와 싸웠기에 코피를 흘렸어? 누구야 너를 이렇게 때린 애가?

  왕건은 머뭇거리다가 재차 물으니 흥태에게 맞았다고 대답했다. 아니 흥태가 너를 왜 때렸어? 그게 배가 고파 얼음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으니까 자기네 밭에서 배추꼬리 훔쳐 먹는 줄 알고 때렸어! 왕건 엄마는 하도 분하고 어이가 없어 흥태네로 가 흥태에게 너 왜 얼음 먹는 우리 왕건을 때렸어? 하고 말하니 흥태 엄마가 듣고는 흥태에게 너 정말이야 하고 물었다. 흥태는 그때야 나는 우리 밭에서 배추꼬리 뽑아 먹는 줄 알고 때렸지 그래서 어쩔 건데요?

  흥태 엄마는 너 어른에게 그게 무슨 말 버릇이야? 흥태는 무슨 어른? 아이들이 그러는데 왕건네는 좌익이레 엄마는 좌익이 뭔지 알아 빨갱이란 말이야. 우리나라 침략한 북한 빨갱이, 그래서 내가 미워서 더 때려주는 거야, 왕건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빨갱이 소리만 나면 말을 못했다. 동네 사람들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저 흥태가 알까? 실제로 왕건네는 연좌제에 걸려 항상 요시찰 대상이었든 것이다. 흥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아무 말 못하고 집으로 오려는데 홍태 엄마가 밥을 한 주발 주며 애들 싸움이니 잊어요. 왕건 엄마는 잊어야지 어쩌겠어요. 그리고 밥 한 사발을 들고 집으로 와 왕건에게 주며 이 밥 너 다 먹어. 그 바람에 왕건이 오랜만에 하얀 쌀밥 한 사발을 삽시간에 먹어치우고는 아니 쌀밥이 어디서 났어? 응 흥태네 가서 일해주고 받아 왔어. 그리고 부엌에 가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왕건은 나중에야 그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가 매 맞아 코피 흘린 값이 밥 한 그릇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철이 나서는 가난을 이기기 위해 억척스럽게 일을 했다. 흥태내는 반대로 가세가 기울어 땅을 내 놓게 되고 왕건은 그러면 돈이 조금 모자라도 빛을 내서 그 땅을 샀던 것이다. 그렇다고 어릴 적 흥태에게 맞은 원한으로 산 것이 아니다. 부자가 망하는 과정에 다른 사람이 내 놓는 땅 보다 조금 쌌기 때문에 흥태네 땅을 사게 됐던 것이다.

  흥태 형제들은 서울 가서 잘 산다니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왕건은 가난하게는 살았어도 망해보지 않아 인간의 회비애락에 대해 흥태 만큼 모른다. 언젠가 흥태를 만나게 되어 지난 이야기를 하니 흥태가 말했다. 사람이 굶는 것도 못 참을 일이지만 부자로 살다가 망하면 그 비참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여간 망해 어렵게 살아보니까 그때서야 네 생각이 나 어려서 너에게 한 짓은 너무 잘못한 거라는 것을 그 때야 깨 닳았다. 지금이라도 사과하니 받아주어라, 왕건은 흥태의 사과를 받고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흥태는 가난에 대해 나만큼 모를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가난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가난해보지 않은 사람이 밥 한 사발에 국 한 그릇의 고마움을 어찌 알겠는가?

  왕건내도 강냉이밥이 아니라 겨울이면 무죽을 매일 쑤어 먹었다. 그 무죽 한 그릇 먹고 자면 배가 고파 일찍 깨지게 돼 먹는 상상만 하게 된다. 사람이 배고프면 잠이 오지 않는 것이 생리현상이다. 겨울에 밥을 배불리 먹고 자면 잠을 푹 자는데 무죽을 먹고 자면 일찍 깨지는 것이다. 거기다가 부실한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면 너무나 추워 덜덜 떨며 겨울을 지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왕건을 이렇게 부자가 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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