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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저 이제 은퇴할래요
작가 : 라레
작품등록일 : 2022.2.11

가족을 위해, 백작령을 위해 몸을 망가뜨려가면서까지 소처럼 일한 프레이(feat. K-장녀).

그러나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1년 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과 가족들의 냉대, 그리고 지참금에 팔려가는 정략혼 자리뿐이었다.

여태껏 과로한 만큼, 남은 1년만이라도 푹 쉬고 싶었던 프레이는 가문과 연을 끊고 어느 시골 마을로 요양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뒤늦게 정령사로 각성하게 되는데…….

“다른 것들 따위 알 게 뭐야. 내게는 네가 가장 소중해.”

“이상해요. 자꾸 당신에게 시선이 가. 당신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당신을…… 혼자 두고 싶지 않아.”

“전 언제나 당신 곁을 지킬 겁니다. ……제 마음과는 별개로.”

대륙 유일의 정령사인 프레이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 그 속에서 더는 사람에게 상처 받고 싶지 않아 마음을 닫아거는 프레이와 그녀의 마음을 계속해서 두드리는 세 남자.

과연 프레이는 이번에야말로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한 사람을 바랐어.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아줄, 단 한 사람만을.”

#시한부 #구원서사 #가족후회 #K-장녀 #상처녀 #능력녀 #사이다녀 #걸크러시 #능글남 #인외남 #조신남 #다정남 #집착남 #소유욕 #칠★사이다급복수 #성장물

 
2. 누구 덕인지도 모르고 (2)
작성일 : 22-02-11 23:59     조회 : 211     추천 : 0     분량 : 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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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미는 책상 위에 쓰러진 프레이를 발견하자 즉시 집무실 문부터 걸어 잠갔다. 그런 다음, 재빨리 주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허옇게 질린 얼굴로 색색거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에이미는 프레이의 이마에 손을 대 체온을 확인한 뒤, 입술을 깨물었다.

 “아가씨. 아가씨! 괜찮으세요? 제 말 들리세요? 펄만 선생님을 불러올까요?”

 혹여나 누가 들을까, 잔뜩 목소리를 낮춘 에이미가 필요한 조치를 물었다.

 흐릿해진 의식을 가까스로 부여잡은 프레이는 고개를 저어 제 하녀를 말렸다.

 “야, 약…… 약이면 돼…….”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가씨.”

 에이미는 프레이를 부축해 소파에 눕히고 담요를 덮은 뒤,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 나가 뜨거운 약차와 누가 사탕을 얹은 접시를 들고 왔다.

 에이미가 건넨 약차를 여러 번 나눠 마시는 동안, 프레이는 간간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미 오랫동안 복용해 온 약이지만 죽음을 미뤄주는 약이라 그런지 유독 맛이 썼다.

 10여분 정도 지나자 약효가 돌기 시작했는지 고통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에이미는 프레이의 안색을 살피다 자연스레 누가 사탕을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프레이는 건과일과 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누가 사탕을 입에 넣고 한결 미간을 풀었다.

 “맛있네.”

 “제리 부인에게 특별히 재료를 듬뿍 넣어 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신경 써 줘서 고마워.”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요.”

 품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꺼낸 에이미가 정성스런 손길로 프레이의 이마를 훔쳤다. 흠뻑 묻어난 땀을 본 그녀가 안쓰러운 표정을 숨기질 못했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주인이 쉬기 편하도록 쿠션의 위치를 조정한 에이미가 작게 불평했다.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소파에 누웠다.

 “얼마 안 남았어. 이제 곧이야.”

 “그래도요. 아가씨께서 이렇게 고생하시는 걸 보면 당장이라도 모시고 떠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프레이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

 말만이라도 고마웠다. 끈 떨어질 주인에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하녀가 어디 있을까.

 계승식이 확정되고 난 뒤, 영주 대리에서 물러날 프레이에게 이전만큼 예를 갖추는 사람은 드물었다. 프레이는 그저 그러려니 했다.

 인간은 정치적인 생물이다.

 프레이의 권한이 임시에 불과했다고는 하나, 어찌됐든 권력 구조가 개편됐다.

 사람들의 마음이 베네피트에게 기운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그래도 프레이 역시 사람인지라, 한 때는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딱히 백작위를 탐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쯤은, 수고했다거나 고마웠다는 마음의 잔흔이나마 얻을 수 있길 기대했다.

 더는 아니지만.

 입 안에서 녹아 사라지는 누가 사탕의 단맛에 아쉬움을 느끼며, 프레이가 에이미의 손등을 토닥였다.

 “지금까지 정말 고마웠어.”

 “자꾸 저를 송구스럽게 만드세요. 전 그저 아가씨께서 제게 해 주신 만큼 했을 뿐인데…….”

 “고향에 있는 동생에게 하듯 날 돌봐줬잖니.”

 “아가씨 덕분에 제 동생이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는걸요. 이 정도는 당연해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정말 다시없을 은혜를 입었어요.”

 에이미는 프레이의 비밀 병수발을 드는 대신 동생의 병을 치료할 돈을 얻었다. 불치병은 아니지만 약값이 비싸 치료하지 못한 병이었다.

 에이미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프레이였다.

 어린 여자애 혼자 동생의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먼 타지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어쩐지 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거기다 마침 프레이에게는 자신의 생활 전반을 돌보며 때때로 간호를 해 줄 간병인이 필요했다.

 에이미는 기꺼이 프레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자신의 소임에 충실했다.

 프레이의 병세가 심한 새벽, 그녀는 밤새도록 주인의 곁을 지켰다.

 피 묻은 손수건이나 옷을 말끔히 처리했고, 펄만과 긴밀히 공조해 프레이의 병세를 완화시키려 노력했다.

 무엇보다 프레이의 병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

 측근 하녀인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유혹과 회유, 협박이 있었을지 프레이조차 전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에이미는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그 모든 것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허망했다.

 오랜 시간을 공유한 가족보다 근 5년을 함께 한 하녀가 더 믿음직스럽다니.

 사람 일이란 참 얄궂다고, 프레이는 종종 몰래 한탄했다.

 “솔직히 아가씨께서 너무 과분하게 챙겨주셨어요. 제가 한 일에 비해 대가가 지나치게 커서 두려울 정도예요. 나중에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할지…….”

 프레이는 감사하다고 머리를 숙이는 에이미의 손을 악수하듯 맞잡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난 단순히 네 노동의 대가만 지불한 게 아니야. 그간 네가 보여준 신의의 값까지 함께 준 거야.”

 “아…….”

 “절대 과분하지 않아. 넌 네가 한 만큼 가져갔어. 그러니 갚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

 프레이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뜬 에이미가 입술을 오물거렸다.

 곧, 뺨을 붉히며 배시시 미소 지은 그녀가 양손으로 프레이의 손을 감싸 쥐었다.

 “저, 대신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남은 시간도 아가씨께서 제게 주신 신의만큼 열심히 보필할게요.”

 이번에는 프레이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설마 이런 재치 있는 답을 듣게 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프레이는 간만에 볼우물이 패이도록 진심으로 웃었다.

 

 * * *

 

 한편 길버트는 프레이의 집무실을 나오자마자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베네피트를 찾아갔다.

 마침 베네피트는 기사 하나와 대련 중이었다.

 생기 넘치는 녹안이 대련 상대를 민첩히 뒤쫓았고, 곧 그의 공격이 날카롭게 대련 상대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 죽어가는 얼굴로 억지로 업무를 보던 아가씨와는 딴판이군. 그래. 장차 레지우드의 주인이 되실 분은 응당 저래야지.’

 점점 이전에 저가 모셨던 선대 백작을 닮아가는 소년의 모습에, 길버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챙!

 짧은 공방 끝에 결국 베네피트가 기사에게서 항복 선언을 받아냈다.

 길버트는 더욱 만족스러운 얼굴로 박수를 치며 어린 주군에게 다가갔다.

 “도련님.”

 “아, 길버트.”

 소매로 땀을 훔치던 베네피트가 길버트를 향해 반색했다.

 길버트는 전대 기사단장으로서 베네피트의 성장을 칭찬하는 말로 화두를 열었다.

 “자세가 한결 좋아지셨습니다.”

 “계승식이 얼마 안 남았잖아. 레지우드의 주인으로서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마음가짐부터가 다르시군. 길버트는 역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며 내심 기뻐했다.

 그러나 앞으로 이 어린 소년에게 고해야 하는 충언의 내용이 내용인지라, 금세 기분이 가라앉았다.

 베네피트가 제 나름 프레이를 아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입이 썼다.

 허나 입에 쓴 소리를 아껴서야 어찌 레지우드 백작의 오른팔을 자처할 수 있을까.

 “주군,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지?”

 “사안이 사안인지라 독대를 했으면 합니다.”

 길버트가 독대를 청하는 일은 좀처럼 없기에, 베네피트는 순순히 인적이 드문 회랑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멀어지는 기합 소리를 곁눈질하며, 길버트를 향해 말해보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 아가씨에 대한 겁니다.”

 “누님? 누님이 왜?”

 “주군. 승계 후 아가씨를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어찌할 생각이냐니? 누님을 뭐 어떻게 해야 한다는 뜻인가?”

 베네피트의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계승식이 확정되고 난 후부터, 여러 사람이 그를 찾아와 비슷한 충언을 간했기 때문이다.

 프레이를 최대한 멀리 해야 하며, 가능하면 레지우드에서 그녀를 치워버려야 한다고.

 “아가씨를 이대로 레지우드에 두는 것은 추후 주군께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하. 설마 경까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어. 경은 레지우드 가에 충성하는 것 아니었나? 누님은 레지우드가 아닌가?”

 “레지우드에 충성하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는 레지우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

 “누님이 내게 그럴 리 없어! 말조심해, 자작!”

 “주군.”

 길버트가 베네피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신하로서의 예를 갖췄다.

 “주군께선 ‘그럴 리 없다’는 말씀을 하셔서는 안 됩니다.”

 “!”

 “레지우드 백작이라는 자리의 무게를, 책임을, 의무를 생각해 주십시오. 만 가지 경우를 생각하여 최선의 선택을 해 주십시오. 부디 이 불민한 신하가 당신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

 베네피트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알고 있다. 레지우드 백작위가 어떤 것인지. 하지만…….

 베네피트가 씹어뱉듯 신랄한 어조로 말했다.

 “대체 그대들의 눈에 나는 얼마나 무능한 이로 비치는 거지?”

 “주군.”

 “내가 누님을 감당할 수 없다 여기는가? 누님조차 감당하지 못할 나를 주군으로 섬기려는 건가?”

 “주군, 그런 뜻이 아닙니다. 주군께선 이미 충분히 레지우드 백작위에 걸맞은 역량을 지니고 계십니다. 허나 아가씨의 유능함은 앞으로의 레지우드에 독이 될 겁니다.”

 “앞으로의 레지우드에 누님이 끼어들 곳은 없다. 자작, 누님이 나와 비견될 수나 있을 것 같나?”

 “저희들에게 주군은 두말할 여지없이 도련님뿐이십니다. 허나 호사가들에게 아가씨의 존재는 언제나 도련님과 비교하기 좋은 먹잇감이 될 겁니다. 주군, 레지우드가 승냥이들의 주린 배를 채워줄 이유가 무엇입니까.”

 “!”

 길버트에게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열던 베네피트가 순간 말문이 막혀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안 그래도 석 달 전, 황제 폐하를 뵙고 돌아오는 길에 수도를 중심으로 쓸데없는 말이 나도는 걸 목격했었다.

 ‘솔직히 베네피트 소백작은 프레이 영애에 비해 영……. 폐하께서도 영애만큼이나 공자를 눈여겨보시는 것 같지도 않았고요.’

 ‘아카데미에서 두각을 보인 것도 프레이 영애 쪽 아니었습니까? 동생은 별 거 없었다던데.’

 ‘그쪽 가신들도 바보입니다. 프레이 영애가 지난 7년 간 해온 걸 보면 답이 딱 나오지 않습니까.’

 ‘뭐, 저희야 레지우드가 기울면 좋긴 하지만……. 그래도 레지우드 가는 명가 중의 명가인데, 이런 식으로 스러질 걸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군요.’

 ‘에이, 그런 말 마세요. 혹시 압니까? 소백작이 잘 할지.’

 ‘아무리 잘해 봐야 누이 그림자에서 벗어나진 못할 거야. 나도 정치 생활 오래했지만, 그만한 인재가 또 없었어.’

 들뜬 마음으로 수도에 갔던 베네피트는 냉소적인 귀족들의 반응에 이를 갈며 분노했다.

 아니야. 내가 더 잘할 거야. 단지 기회가 없어서 증명하지 못했을 뿐이야.

 누님은 내 대체품이야. 운이 좋아서 잘 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수도에만 붙어있는 당신들이 레지우드의 뭘 알아?

 가신들도, 친척들도, 할머님도 다 날 인정했어. 누님이 아니라 나라고!

 대체 왜 경쟁 상대조차 되지 못할 누님과 날 비교해? 왜 나더러 누님을 견제하라고 해?

 그럴 가치조차 없는 사람에게!

 ……하지만 길버트를 비롯한 가신들과 친척 어른들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만 가지의 경우.

 만약 누님이 정말로 백작위를 노리고 날 치려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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