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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추이기담집
작가 : 이은성
작품등록일 : 2022.2.3

추이꾼에 대해 알고 계시오?
조선팔도 방방곡곡을 떠돌며 기이한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이들을 이르지.
세상에는 사람 이외에도 많은 삶이 사는 법이고, 우리 눈에는 뵈지 않는 삶이 역동하며 제 이야기를 하는 법이라오.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기담 모음집입니다.

rio_siena@naver.com

 
편우 : 햇살 조각
작성일 : 22-02-11 19:05     조회 : 177     추천 : 0     분량 : 9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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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발 아래 나풀대며 흩날리는 것을 어릴 적에는 무엇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아이는 작은 손을 활짝 펼쳐 죔죔 대었으나 작달만한 손가락새로 흩어져 빠져 나가는 것은 아이로서는 도통 잡을 수 없는 선녀의 깃털조각 같았다.

 “소래야, 무엇을 하고 있니.”

 어미의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돌려 제 어머니를 보았다. 그러더니 곧 까르르 웃으며 하는 말이,

 “어머니, 햇살 조각이 날아다녀요!”

 그 말이 어찌나 어여쁘던지 어미는 빨래거리를 내려놓고는 달려가 아이를 한 품에 가득 안았다. 소래야, 네 말은 어찌 단어 하나하나가 반짝이는 것이냐.

 

 

 

 편우片友

 : 햇살 조각

 

 

 

 

 나그네는 지나는 걸음에 다소 기이한 것을 보았다. 그것은 어느 마을로 들어섰을 적에 본 풍경인데 아이 하나가 까르르 웃으며 마을 어귀를 뛰노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뒤를 쫓는 것은 희멀건 인영이었는데,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 인영이라는 것이 참으로 이상한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그림자인데도 검지를 않았고 외려 하얗고 밝게 빛나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아이는 그 정체 모를 인영과 함께 소리지르며 뛰놀고 있었고,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것을 이상하다 여기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그것이 더욱 이상한 것이었다. 아이가 수상한 것과 함께 뛰노는 것을 본다면 응당 그것이 이상하여 주의를 주거나 아이를 살피기 마련이 아니던가. 허나 주변에서 그것을 이상히 여기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그것이 더욱 이상한 것이다.

 나그네는 본디 이상한 것은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성정이었다. 나그네가 추이꾼인 탓에 그러했고, 타고난 호기심이 그러했다. 여태껏 나그네가 겪어왔던 이물 가운데에서는 경험한 일이 없는 종류의 인영이었다. 물론 다른 추이꾼에게 들은 일 또한 없는 것으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이물을 새로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묘한 쾌감이 나그네의 가슴 한 켠에서 간질대며 목구멍으로 끓어올랐다. 나그네는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아이의 뒤를 쫓았다.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오후였다.

 

 

 

 

 

 뒤를 쫓아 닿은 곳은 야트막한 초가집이었다.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흔하고 익숙한 장소. 언뜻 보아서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장소에서 나그네는 아이를 보았다. 이제 겨우 걸음을 떼고 뛰어다니기 시작할 무렵으로 작은 아이. 그리고 마을 어귀에서 보았던 기이한 인영을 보았다. 그것은 분명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목구비가 보이지를 않았고, 움직이기는 하지만 살아있는 무언가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이질적이었다. 누가 보아도 이상한 존재인데 아무도 이상하다 여기지 않는 점이 나그네에게는 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추이꾼으로서 처음 보는 이물이라면 범인인 마을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낯선 이물일 터였다. 공간은 평범하나 존재는 평범하지 않은 것. 본디 더욱 이상한 일은 이렇게 평범한 장소에서 이루어지곤 하는 것이었다.

 “여기! 여기!”

 두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어눌한 발음으로 연신 인영을 부르는 아이의 얼굴이 천진했다. 나그네는 그 모양을 바라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좋을까. 풍경만으로는 참으로 평화롭기 짝이 없었다. 바람은 온화하였으며 아이는 해사하게 웃고 있었고, 인영은 그 신기한 모양새를 빼놓고는 아이를 해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거 참…….”

 저것이 이물임은 어찌 보아도 분명한 일인데 아이가 너무나 천진하게 웃고 있던 탓에 나그네는 미처 다가갈 수가 없었다. 작고 귀여운 것. 나그네는 본디 아이와 연이 깊은 편이었다. 이물들은 퍽이나 아이들을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른들은 이물의 존재를 믿지 않았으며 기이한 일 또한 쉬이 납득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물들에게도 그러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찌나 천진하던지 신기한 일을 곧이 곧대로 믿어버리고 기이한 일에도 호기심을 가지곤 하였다. 이물에게는 그것이 마치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그네 또한 그러하였다. 추이꾼이라 하거든 웃어넘기지 않는 어른을 본 일이 없었다. 모두가 저 이가 미쳤구나, 하고 여기곤 하였다. 추이꾼이라는 것은 허무맹랑한 존재라고만 생각하였다. 허나 아이들은 추이꾼의 존재도 믿었다. 이상한 일들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한 치의 의심을 갖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리도 고맙고 살가운 존재였다. 그러나 나그네가 마주했던 아이 중에서도 저 아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어리고 작은 아이인지라 나그네는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을 포기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이에게 직접 다가갈 수 없다면 아이의 부모를 찾는 것이 우선이리라. 마침 여정이 길었던 탓에 발이 지쳐 머물다 갈 곳이 필요하던 차였다. 그러니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무어라도 더 기록할 것이 있다면 그쪽에 편을 잡는 것이 좋을 터였다.

 나그네는 몸을 쭉 펴고 길게 기지개를 켰다. 오랜 시간 걸음을 걸었던 허리와 다리가 비명을 지르는 듯 하였다.

 “누구세요?”

 순간 나그네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린 나그네의 등 뒤에 여인이 서 있었다.

 “……아, 지나는 길손이오.”

 “저희 소래에게 무슨 일이라도?”

 “아……저 애의 이름이 소래인가보군. 거 참으로 좋은 이름이오.”

 “소래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나그네는 거기서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능청스레 세 치 혀를 잘만 굴려대었건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보는 여인의 눈을 마주하자니 거짓말이 떠오르지도, 변명이 생각나지도 않았다. 여인은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그네를 보았다. 망했군. 나그네는 짧은 한숨을 뱉었다.

 

 

 

 

 

 “아가, 얌전히 있어야지.”

 여인은 소래를 제 품에 끌어당겨 안으며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제 곁에 자리한 인영에게 더욱 관심이 있었다. 두 손을 뻗고 몸을 기울여가며 여인의 품에서 빠져나가려 바둥거리는 모양에 나그네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바깥 어른은…….”

 “옆 마을로 일을 도우러 갔어요. 아마 나흘은 더 걸리겠지요.”

 “정말 염치 없이 여기 머물러도 괜찮겠소? 바깥 어른도 자리를 비우신 중에…….”

 “괜찮아요. 오히려 집에 남자가 있는 편이 든든한 것을요.”

 여인은 아이를 바투 끌어안았다. 아이는 다시금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인영에게 몸을 기울였다. 아이 참, 소래야. 여인은 아이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 모양을 바라보는 것이 영 괴로운 일이라 나그네는 이리저리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좋을지, 아니면 아이를 대신 안아야 하는 것인지 머릿속이 뒤엉켰다.

 “죄송해요. 소래가 영 산만하지요.”

 “괜찮소. 그 나잇대 아이들이 다 그런 것을.”

 “전엔 이렇게까지 심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부턴가 이렇게 말을 듣지를 않네요. 자꾸만 허공에 대고 누군가를 부르고…….”

 나그네의 입술이 가볍게 달싹였다. 혹시. 허나 입술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한 말은 목구멍 안에서 뱅글뱅글 맴돌았다.

 나그네는 본디 말을 고르는 성정이 아니었다. 하고자 하는 말이 있거든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했고, 다른 이의 감정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여인에게는 묻기가 어려웠다. 그것이 아이의 탓인지 여인의 탓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그네는 그저 곁눈질로 흘끗, 아이의 곁에 앉아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드는 인영을 보았다. 저것이 무엇인지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사람에게 유익한 것인지, 아니면 해로운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무해한 것인지. 그것만이라도 가늠이 된다면 무어라 조언이라도 해주겠건만, 나그네는 저것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나그네의 머릿속에서, 입술 속에서 빙글빙글 도는 말은 모두가 기우였다. 할 필요가 없는 고민이었다. 계속해서 아이의 곁을 힐끗대던 나그네가 고개를 들었을 적에, 나그네는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여인이 눈을 휘어 웃으며 말했다.

 “보이세요?”

 

 

 

 

 “……그런 일이 있었지.”

 “듣기만 해도 소름이 쫘악 돋네. 여인에게도 보이고 있었다는 거 아니야, 그거. 대체 어찌 된 일인데? 여태껏 들었던 자네 이야기 중에 제일 흥미로운 이야기로군, 그래.”

 “나도 그렇게 무서운 일은 처음이었어.”

 “허, 자네가 무섭다고 할 정도면. 그래, 그래서 이 형님이 그렇게 보고싶었어?”

 “염병.”

 화공은 낄낄대며 웃었다. 그 웃는 낯이 영 탐탁치 않아, 나그네는 미간을 일그러트리고 화공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뱉었다. 아무래도 자네가 뒷얘기는 그리 궁금하지 않은 모양일세. 그리 말하며 나그네가 옷깃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하자, 화공은 다급하게 그의 소맷부리를 붙들어 끌어내렸다.

 “어허, 이 친구가 참.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더니, 내 어디 자네 무서워서 농지거리도 함부로 못 하겠네.”

 “자네는 너무 말을 함부로 해서 문제지.”

 “누가 들으면 내가 항상 실언만 하는 줄 알겠어.”

 “아닌 척 하기는.”

 나그네는 못 이기는 척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네가 좋아서 얘기해주는 건 아닐세. 그건 똑똑히 기억해두게나. 그리 엄포를 늘어두고 나그네는 말을 이어갔다.

 

 

 

 

 

 “보이다니, 무엇이 말이오.”

 “그림자 말이에요.”

 그림자. 그리 말하니 나그네는 더 이상 시치미를 뗄레야 뗄 수가 없게 되었다. 깊은 한숨을 포옥 뱉어내고는 느리게 고개를 주억거리자 여인은 쓰게 웃었다. 그 표정이 아무래도 깊은 사연을 품고 있는 듯 하여 나그네는 가만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다 입술을 떼었다.

 “무슨 사연인지 내게 알려주실 수 있겠소?”

 물론 여인이 거절하리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나그네는 여인과 만난지 하루도 채 되지를 않았고, 낯선 사내에게 대뜸 제 눈에만 보이는 기괴한 것을 설명하는 일은 제법 크나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자아, 거절하거든 어떤 말로 회유해야 좋을까. 나그네는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전개를 가늠하였다. 그러나 여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나그네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말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가 없어요. 알아채고 나니 소래가 허공에 대고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에요.”

 하여 어찌된 사연인지를 듣자니 나그네가 바라던 대로, 어쩌면 혹은 그 이상으로 신묘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전해들은 일이 없고 또한 나그네에게도 경험해본 일이 없는.

 소래는 본디 열어놓은 창이나 문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햇살을 아주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그리 일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이는 창이나 문을 열어놓으면 꼭 그 앞에만 가서 앉아있는 것이다. 허공에 대고 무어라 무어라 말을 붙이고, 저 혼자 웅얼대다가도 까르르 소리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그저 그 모양이 퍽이나 사랑스러운 것이기에 여인은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했다고 하였다. 이변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언젠가부터 소래의 곁에 검은 그림자 뭉치가 있었다. 처음에는 소래의 손바닥만치 작았던 것인데 매일 매일 몸집을 불리더니 이제는 어른 한 사람의 크기만큼 자라고 말았다. 여인은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 당신이 헛것을 본다 믿었다. 허나 정말로 큰일은 조금 더 나중에 알아채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이리 선명하게 내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말이오?”

 “예. 다른 이들은 제가 있는 줄을 눈치채지 못했어요.”

 소래와 나란히 걸을 적에도 사람들은 여인을 못 본 체 하였다. 어디 그뿐이랴, 소래에게 혼자 어디를 가느냐고 묻기도 하였다. 그러니 분명 여인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것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리고 또 늦었다는 것을 자각한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리고 저 그림자가 제 형상을 하는 모양이더군요.”

 “……내 눈엔 그냥 그림자로 보인다오.”

 “예, 제 눈에도 그래요.”

 하지만 모두가 그림자에게 인사를 해요. 마치 제가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원래 제 자리가 거기였던 것처럼.

 “초조해지더군요. 우스운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마치 저것이 제 자리를 빼앗는 것처럼 느껴져서. 불안했어요. 마을 사람들에게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지만.”

 소래에게는 어미로 남고 싶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여인의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아, 어미란 언제고 이리도 강한 존재였다. 나그네는 여인의 눈을 가만 바라보다 고개를 주억였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겠소. 나그네는 일전에는 한 번도 겪어본 일이 없는 일을 목전에 두고 가슴이 뛰었다. 어떻게든 해결해주마 단단히 약조를 놓고는 나그네는 아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이는 그림자를 향하여 손을 뻗다가, 그림자의 한 손을 잡고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어미는 한결같았다. 자식을 진정으로 아낀다면 제 목숨도 아깝지 않아할 정도로 강한 이들이었다. 나그네의 머릿속에 얼핏 새하얀 눈밭이 흩어지나갔다. 그러고보니 무탈하려나. 시답잖은 생각을 하다가도 나그네는 눈을 들어 인영을 보았다. 인영을 없애는 방법. 인영을 없애는 방법이라.

 떠올리자면 아주 쉬운 것이었다. 본디 그림자는 응달 아래서 사라지는 법이니. 나그네는 잠시 고개를 들어 아이를 보았다. 아이의 곁에서 아이의 손을 꼭 붙잡은 인영을 보았다.

 “……혹, 아이와 그림자가 응달 아래를 거닌 적이 있소?”

 여인은 기억을 헤아리는 듯 잠시 눈을 감았다. 잠시의 정적. 나그네는 여인의 얼굴을 보았다. 여인은 곧 고개를 주억였다. 예, 있어요. 햇살 아래도, 응달 아래도요. 나그네는 여인의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이래서는 곤란한데. 미간을 쨍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어찌 그러셔요?”

 “그림자라는 것은 본디 응달 아래서 자취를 감추는 법이 아니겠소. 하여 저것이 정말로 그림자라면 응달 아래를 걷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소이다. 허나 응달 아래를 마땅히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림자가 아니라는 뜻이겠지.”

 “……그렇네.”

 “자네는 다른 건 몰라도 머리는 좋은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것도 영 아니야. 어찌 그리 눈치가 없어.”

 화공은 여전히 얄밉게도 샐샐 웃는 낯으로 나그네의 어깨를 쿡쿡 찔러대었다. 나그네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찌푸리고는 화공의 손을 쳐내었고, 화공은 무어가 그리 즐거운지 또 킬킬대며 웃는 것이었다.

 “허면 눈치 빠르고 머리가 비상한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아이, 참. 또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굳이 얘기해주면 내가 부끄럽지.”

 “그러다 상투를 거꾸로 당겨 똥구멍에 매어버리는 수가 있네.”

 그 웃기지도 않는 협박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던지 이제 화공은 거의 숨이 넘어갈 것처럼 배를 붙잡고 끅끅대기 시작했다. 나그네는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리곤 화공의 하는 양을 보다가 손을 들어 등짝을 세게 내리쳤다. 짝! 듣기만 해도 아픈 소리가 허공에 울리자 화공은 아야야, 하고 아픈 소리를 하면서도 여즉 거두지 못한 웃음기를 얼굴 가득 베어물고는 고개를 들었다.

 “생각을 반대로 하는게 옳지 않겠나, 으응?”

 “……여하간 눈치만 살아선.”

 “아무렴. 내가 누군가. 눈칫밥으로 이만치 먹고 사는 양반인데 그 정도야 딱 들으면 딱 견적이 나와야 되지 않겠어?”

 “아주 얄미워 죽겠군.”

 “그렇다고 죽지는 마시게.”

 슬슬 능글대며 웃는 투에 나그네는 길게 한숨을 뱉었다. 그리 한숨 쉬지 마시게. 빨리 늙는다는 말이 있어. 옆에서 쉬지도 않고 촐랑대는 화공의 말을 애써 모르는 체 하며, 나그네는 느릿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소래? 그래, 퍽 귀여운 아이일세.”

 나그네는 마을로 나섰다. 이리저리 떠돌며 말을 묻는 것은 나그네에게 진저리 쳐질 정도로 익숙한 일이었다. 나그네는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하는 지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마을에서 아이의 평판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하기는 생김도 귀엽고 하는 모양도 살가우니 세상 천지 그 누가 아이를 싫어할 수가 있을까. 헌데 여인에 대해 물었더니 나그네는 꽤나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애 어미라면 그애 곁에서 한시도 떨어질 줄을 모르지. 헌데 이런 것은 왜 묻고 그러나?”

 나그네는 가만 웃었다.

 “하도 모자사이가 보기 좋아 질투가 나서 그렇습니다. 제 어머니는 그리 다정한 분이 아니셨거든요.”

 “하하. 하긴, 아주 이상적인 모자지간이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나그네는 여기서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나그네가 마당에 들어섰을 때, 여인은 마당 한 켠에 서서 비질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방 안에서 인영과 함께 재잘대고 있었고, 언뜻 보아서는 그저 평화롭고 대수로울 것이 없는 풍경이었다.

 “어딜 다녀오셨어요?”

 “마실을 다녀왔소.”

 헌데, 마을에서 퍽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단 말이지. 그 말에 여인은 비질을 멈추고 나그네를 곧게 바라보았다. 어떤 이야기인데요? 다정하게 물어오는 음성에 나그네는 낮게 웃었다.

 “왜 그대는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소?”

 “그리 생각한 적 없어요. 그저 누구라도 저를 볼 수 있는 사람이 하소연을 들어주었으면 하여…….”

 “왜 그대는 응달 아래 서지 않소?”

 여인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나그네는 느리게 발을 떼었다. 여인은 나그네의 움직이는 모양을 그 자리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나그네는 마루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은 채로 느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허구는 그대이기 때문이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대는 보자마자 내가 추이꾼임을 알아챈 것이 아니오. 허나 그것을 내게 표내서는 아니되었소. 보통은 내 입으로 직접 내가 추이꾼이올시다, 하여도 믿지 않거든.”

 여인은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그대가 어찌 태어나고 어찌 예 있는지가 내게는 아주 궁금한 일이라오. 그러니 나와 거래를 하는 것이 어떻겠소.”

 “……무슨.”

 내 자네를 응달 아래로 떠밀지 않을 터이니, 그대의 정체가 무엇이고 어찌 여기에 있게 되었는지를 순순히 고하는 것이 좋을거라는 말이오. 목소리는 은근하게 다정한 데가 있었으나 그 내용은 살벌하기가 짝이 없었다. 여인은 떨리는 눈동자로 나그네를 바라보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얻어낸 것이 이 정보라 이거지.”

 나그네는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댔다. 화공은 나그네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나그네의 추이록을 쥐었다. 팔락팔락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화공의 손이 곧 멈추었다.

 “……거, 자네 좀 너무한 일을 했군.”

 “그렇다고 사람을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나.”

 “자네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이나 썼다고.”

 추이록에 적힌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편우. 햇살 사이로 빛나는 먼지와 비슷한 씨앗을 가지고 있다. 씨앗에게 반복하여 말을 걸고 애정을 쏟으면 씨앗은 점차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사람의 모습을 갖는다. 그리고 사람의 모습을 갖게 된 편우는 제게 애정을 쏟은 이의 가장 각별한 사람의 모습을 빌어 그의 존재를 점진적으로 제게 옮겨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편우는 점차 사람에 가까워지고, 나중에는 본디 형상을 가진 사람이 온전히 사라지고 편우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응달 아래에서 편우는 다시 씨앗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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