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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스며든 너
작가 : Hee Yeon Je
작품등록일 : 2016.10.10

초시계가 뛰면, 내 심장이 뛰고,
내 심장이 뛰면, 널 향한 내 뜀박질이 시작된다.

관음증의 진혁과 이중생활 하나의 좌충우돌 사랑이야기,
극과극의 두사람, 그러나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그들.
그렇게 서로가 스며들듯 사랑에 빠지는데..

 
13. 모든 것을 잃은 남자, 모든 것을 걸을 남자.
작성일 : 16-10-31 18:58     조회 : 464     추천 : 0     분량 : 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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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회사에서 진혁은 하나를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업무상 겹치는 일도 없었고,

 하나의 출퇴근 시간과 그의 시간은 달랐으니,

 잘만 피하면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는 한동안 회사에 병가를 냈고,

 그동안 쓰지 못했던 휴가며

 연차까지 끌어다 쉬기로 했다.

 

 영상과 사진이 몽땅 지워져 있었을테니,

 그는 이미 모든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찾아오는 일도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하나는 다행이라 여겼다.

 하지만 하나는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그 가슴의 답답함의 이유를 알지 못했을 뿐이다.

 

 

 진혁은 온 몸이 달아올라서 미칠 것 같았다.

 눈 앞에서 손만 뻗으면 닿을 위치에 있던

 사냥감이 사라졌다.

 하루아침에 말이다.

 

 거기다 모든 자신의 자료까지 다 사라져버렸다.

 비싼 몰래카메라용 초소형카메라며,

 자신의 모든 컬렉션 목록까지 불타 버렸고,

 완벽하게 삭제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하나가 사라져버렸다.

 감쪽같이 말이다.

 

 결국 안내데스크에 까지 찾아 갔지만,

 하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진혁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상한 곳에서 일이 터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방심 했던 것이다.

 

 그래서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더러운 파리 하나가 꼬였다.

 그녀와 같이 일하는 혜린이다.

 하나와 진혁 사이를 이상하게 여겼던 혜린이었고,

 그녀의 호기심이 결국 둘 사이를 의심했다.

 

 우연찮게 같은 아파트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목격한 혜린이었고,

 혜린은 진혁을 찾아갔다.

 

 사실 진혁이 그녀가 아닌 하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질투가 났던 그녀였다.

 

 진혁의 모습은 뭇 여자들이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고 매력 있었다.

 

 허나 모든 신입사원들이 혜린과

 차 한번 마시려고 애썼지만,

 진혁은 한번도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에게 보내는 눈길만 달랐다.

 

 가끔씩이었지만,

 볼 일이 있어서 인포메이션에 올 때마다

 그는 하나에게만 눈길을 줬다.

 

 혜린은 알 수 있었다.

 진혁이 하나를 특별히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혜린은 모두에게 사랑 받고,

 관심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대접받았고,

 그녀를 무시하는 남자는 없어야 했다.

 모든 관심은 그녀의 차지어야 했다.

 감히 하나따위랑 비교도 안되는 자신이라 여겼다.

 

 그런데 혜린을 거들떠보지 않는 남자가

 그녀가 별볼일도 없다 생각했던 여자에게 관심을 가졌다.

 

 거기다 하필 그 둘이 함께 한 아파트에서

 나오고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니 질투가 일었다.

 그래서 진혁을 찾아가 진상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 참에 핑계 삼아 그를 꼬셔 볼 생각도 함께했다.

 하나보다 그녀가 더 매력 있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였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눈 앞에 직접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진혁은 그녀의 자신만만 했던

 자존심을 짓밟았다.

 혜린은 진혁의 좋은 먹잇감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진혁은 주목 받는 여자를 싫어했다.

 그의 어머니가 그러했었기에,

 혜린에게 바로 거부감이 일었다.

 

 본능적으로 남자를 끌어 들이길,

 좋아하는 여자를 싫어했다.

 혜린은 어머니와 많이 닮은

 허영이 가득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여자였었다.

 그랬기에 먹이감에서 바로 제외였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서

 페로몬을 풍기는 그녀가 더더욱 싫어졌다.

 

 혜린의 입에서 나온 소리조차 가당찮았다.

 

 가뜩이나 하나가 모든 것을 알아채고,

 그의 가장 소중한 파일들을 모두 지웠다.

 그 일로 심기가 몹시 불편했던 진혁이다.

 

 그런 그의 눈앞에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알짱거리고 있으니 짜증이 치밀었다.

 

 그의 가면이 벗겨지고 본 모습이 드러났다.

 

 

  " 꺼져주시지요. "

  " 뭐라구? 지금 저한테 한 말이에요? "

  " 네. 제가 시간이 없어서

  더는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만, 그럼 이만. "

  " 이봐요! 강진혁씨,

  나 당신 비밀을 알고 온거야.

  
나한테 이렇게 함부로 군거 후회하게 될꺼야. "

  " 대체 뭘 알고 이렇게 내 심기를 거스르는지

  모르겠지만, 그만두는게 좋을 겁니다.

  
제가 알고 있는 당신의 비밀보다는

  심하지 않을테니까요. "

  " 뭐…뭐라고!! "

  " 상당히 남자를 밝히시더군요.

  사내에 그 동영상이 모두 퍼지길 원하지 않으면,

  
여기서 입다물고 꺼지는게 좋을 겁니다. "

  " 이..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

  " 회사라는 것을 잊으신 모양입니다.

  가뜩이나 역겨운데 일그러진 얼굴은 더 더럽군요. "

  " ! "

 

 

 그의 차갑도록 시린 비소가 혜린의 온몸을 얼려버린다.

 진혁은 머리가 비상하다 못해 치밀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의 약점을 잡는 일은 매우 쉽다.

 

 뒷골목 큰 손이기도 한

 진우 앞에서도 끄떡하지 않던 그다.

 저런 애송이 여자 하나쯤은

 아무렇지 않게 처리할 수 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혜린을 뒤로 한 채,

 진혁은 입술이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하나를 어떻게든 만나야 했다.

 

 이미 한계가 오고 있었다.

 그 영상들 뿐 아니라 사진 한 장 복구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나는 카메라들을 몽땅 다 부수어 놓았다.

 덕분에 다른 여자들도 찍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냥감보다 하나가 최고였다.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여자였었다.

 그런 그녀를 눈 앞에서 놓쳤다.

 

 실수했다.

 비밀번호를 걸었어야 했다.

 아무 의심 없이 그의 집에서

 잘 지내는 하나를 보면서 안심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마음이 열리며

 경계를 늦춘 것이 문제였다.

 그 것은 명백히 그의 실수임을 인정해야 했다.

 모든 일에 완벽하게 처리하는 그가 처음 하는 실수.

 

 어쩌면 그는 하나에게 감정적으로

 이미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다른 사냥감과 다르게 대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동질감,

 그리고 색다른 감정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그녀가 모든 것을 가지고 사라졌다.

 그 덕분에 더 혼란스럽고 복잡해졌다.

 

 진혁은 지금 하나가 필요했다.

 

 전화가 울린다.

 어머니다.

 이 번호를 잊고 산 것이 얼마나 되었을까?

 진혁의 표정은 혜린을 마주대할 때보다

 더 심하게 차가워졌다.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표정이다.

 

  

 알고 있을까?

 이렇게 두려운 밤에 홀로 고독을 곱씹는 씁쓰레함을,

 아무리 밀어내려 해도

 다시금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의 고통을,

 

 누구라도 좋으니

 내게 손 내밀어주길 바라는 간절함을,

 

 너는 알고 있냐는 말이다.

 

 실상은 가면을 겹겹이 무장 하고서

 아무렇지 않은 척,

 으스대 보지만

 결국엔 지독한 겁쟁이라는 사실은 본인만 알고 있다.

 

 그 허세가 진실인양 허언부럼이 어리석다.

 그도 속이고,

 세상도 속이는 이 거짓이 삶이니 안타깝다.

 

 이 껍데기가 뭐라고 이렇게 단단히 감싸고

 벽을 치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습관처럼 다시금 비소를 날리는

 어리석음이 또 세상을 등진다.

 이 안에서 틀은 깨져야 하는데

 밖으로부터 깨어주길 바란다.

 

 반복 또 반복..

 

 멸망의 길은 그렇게 시나브로 덮쳐오고 있었다.

 

 

 진우의 집으로 옮긴 하나는

 한동안 못 잔 잠을 몰아 자듯,

 몇 일을 미동도 없이 잠들었다.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회사에는

 병가를 내고 쉬고 있는 하나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진우는 수시로 하나의 오피스텔에

 드나들며 먹을 것등을 채워놓고,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매번 진우가 올 때마다

 힘없는 모습으로 문을 열어주고는,

 다시 잠드는 하나가 걱정되었다.

 

 병원에라도 같이 가보자고 제안했지만,

 단칼에 거절해버리는 그녀는

 지금도 그렇게 잠들어있었다.

 

 도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걸까?

 그 놈의 집에서 나온 뒤,

 하나의 표정에는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늘 그녀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관리하는 것에 탁월했던 그녀가,

 여실히 드러내는 날 것의 감정은

 지켜보는 사람입장에서는 아팠다.

 

 확연히 다른 전과의 모습과 행동,

 그리고 저렇게 먹지도 않고

 자기만 하는 그녀는 아팠다.

 

 분명 아파하고 있었지만,

 원인을 차마 짐작해보기도 어려웠다.

 

 스무 살부터 그녀는 숨기는 것에 익숙했다.

 화려한 어머니와 동생 뒤에 숨어

 그녀 본래의 모습은 숨긴 채,

 그렇게 이중생활을 해왔다.

 

 오랜 시간 그런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 왔던 진우였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그 이중생활의 균형이 깨어진 채,

 아파하고 있었다.

 

 문뜩 그 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재수없는 그 하얀 얼굴에

 떠오르는 기분 나쁜 비소가 걸렸다.

 

 혹시나 몹쓸 짓을 당한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차마 물어볼 수도 없었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는 감당할 수 없는 분노로 자신조차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두번이나 자신이 하나를 짐승의 동굴 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자책에 도무지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잠들어 있는 하나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바라보는 진우의 표정이 애틋하다.

 

 그녀의 곁에서 지켜줄 수 있다면

  끝까지 함께 하고 싶다.

 

 하나가 원치 않는다 해도

 그 것이 그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굳은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참아 삼켜내던

 그녀를 본 그 순간부터,

 진우는 그녀 하나만을 위해 살았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다만, 그녀 안에 다른 사람이 자리 잡는 일만큼은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하나의 마음 속에

 진혁이 자리 잡아가는 것 같았고,

 그런 자식 때문에 하나가 아파하고 있었다.

 

 차라리 이중생활하면서 그녀의 감정을 철저히

 속이고 있을 때가 지켜보는 것이 쉬웠다.

 

 안타깝고 안쓰러웠지만,

 그래도 잘 버텨내고 있었기에

 힘들어하면 그가 도와주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며

 휘청이고 감정에 휘둘리는 그녀는 도움을

 줄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 원인이 자신이라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자식이라니,

 죽여서라도 하나 앞에 두고 싶었다.

 

 하나의 핏기없는 얼굴과

 몇 일째 야위어버린 몸을 보니 가슴이 찢어졌다.

 

 진우는 본인의 일조차 동생들에게 맡겨둔 채,

 하나의 옆에서만 머물렀다.

 

 뭐라도 먹이고 싶건만,

 음식에는 입조차 데지 않으니 답답했다.

 

 결국 답답한 마음에 진우는 하린에게 연락했다.

 한달음에 하린은 찾아왔고,

 하나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아마도 하린도 그 날의 일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한없이 언니를 붙잡고 미안하다며,

 지켜주지 못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어서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런 하린을 되려 토닥이며 달래는 하나였다.

 그리고 하린의 고집에 못이겨 밥을 먹었다.

 하린의 조잘거리는 밝은 모습에

 하나가 웃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안심을 하며 한숨 돌리는 진우였다.

 

 역시나 하린을 부르길 잘한 모양이었다.

 물보다 진한 것이 피라고,

 아무리 상극인 자매라 하여도,

 누구보다 하나를 잘 따르고 좋아하는 하린이었고,

 하나또한 하린을 사랑하고 아끼는 언니였다.

 

 두자매의 꼭 안고 잠드는 모습을 뒤로 하고

 진우는 오피스텔을 나왔다.

 

 진우의 표정은 걱정을 덜었으나,

 아직은 어두웠다.

 

 그가 해결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진혁의 일도 일이지만,

 김회장을 만나야 할 듯 싶었다.

 강의원을 일을 모를리 없는 그가 너무 조용했다.

 

 분명 그 야욕의 가득찬 늙은이가,

 다음 수를 노리고 있을 것이었다.

 

 진우는 이번에야 말로 단판을 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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