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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안의 그
작가 : 이작송
작품등록일 : 20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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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필름이 끊기도록 마신 다음 날,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내 앞에 나타난 이 남자는……!

 
10화 처음이거든, 이거
작성일 : 22-02-11 12:40     조회 : 187     추천 : 0     분량 : 4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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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예뻐, 다 예쁜데, 이렇게까지 살 필요는 없다는 거지. 내 말 알아들었어?”

 

 고개를 끄덕인 수현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다 사면 되겠네.”

 “하…….”

 

 도저히 말이 통하지가 않았다.

 이쯤되니 이해보다 포기가 더 쉬울 판이었다.

 

 “어차피 내가 입는 거야. 그니까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

 

 이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었다.

 체념한 듯 주위를 둘러보며 그 자리에 서 있는 신아였다.

 그녀를 본 수현이 입을 열었다.

 

 “더 필요한 거는 없고?”

 “뭐?”

 

 필요한 거 있었다.

 빨리 계산하고 나가는 거.

 쇼핑 한 번만 더 하다가는 기 빨려 죽을 지경이었다.

 

 “가방은?”

 “집에 많아.”

 “그래도 사.”

 

 수현이 걸음을 옮겨 가방이 있는 전시대로 향하고 있었다.

 

 “자, 잠깐만.”

 

 신아가 서둘러 수현의 옷깃을 붙잡았다.

 자칫하다가는 저 벽면에 걸린 가방들까지 다 포장해달라고 할 판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냥 필요한 것만 간단히 사고 가자.”

 “…….”

 

 뒤를 돌아 그녀를 응시하는 그의 눈이 꽤 진지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신아가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집어 수현에게 건넸다.

 

 “나, 나는 이거.”

 

 빨리 계산하고 나갈 생각이었지만.

 

 “이거?”

 “응, 그니까 이것만 고르고…….”

 “여기, 이거랑 잘 어울리는 가방도 함께 봐주세요.”

 

 수현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수현이 건네는 옷을 직원이 받았다.

 

 “아.”

 

 수현이 천천히 등을 돌리며 직원을 바라봤다.

 

 “신발도 같이 봐주시구요.”

 “네, 알겠습니다.”

 

 이 정도면 그는 신아의 말을 들어만 줄 뿐, 정말 백화점에 있는 모든 옷을 다 살 기세였다.

 

 “하…….”

 

 절로 기가 빨렸다.

 차라리 수현이 직접 옷을 고르는 게 더 나을 판이었다.

 어차피 지금 산 옷이며 가방이며, 신발까지.

 모두 제가 아닌 수현이 착용할 터였으니.

 

 “원수현 네가 원하는 건 없어?”

 

 그렇다면 그의 취향에 맞는 옷을 입는 게 당연하다고 신아는 생각했다.

 

 “내 취향이 뭔 줄 알고.”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안 그런 척하면서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장난하지 말고. 회사나 집에서 입을만한 옷으로 골라봐.”

 “난 언제나 진심이었어.”

 

 단호히 말한 그가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신아가 출근용으로 살 옷을 몇 벌 고르는 사이,

 

 “이건 어때?”

 

 여긴 분명 정장만 있는데.

 옷을 고르던 신아의 손이 허공에 붕 떴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등이 다 파인 새빨간 드레스를 몸에 댄 채 수현이 신아의 앞으로 다가왔다.

 

 “미쳤어?”

 

 진심인가 싶었다.

 

 “나 이런 게 취향인데.”

 “누가 회사에서 이런 옷을 입어?”

 

 어디 게시판에 글 올라오고 싶어서 환장한 것도 아니고.

 신아가 수현의 손에서 옷을 빼앗아 뒤에 있던 직원에게 건넸다.

 

 “우리 둘이 있을 때 입으면 되지.”

 

 진심인 듯, 그 옷을 다시 집는 수현을 보며 신아가 경악했다.

 

 “야, 야. 그거 내려놔!”

 “그니까 네가 원하는 거 골라. 내가 원하는 건 다 이런 거니까.”

 

 저 자식이.

 이마를 짚은 신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필요 없다고 하면 모두 다 살 게 분명했고.

 나가자고 하면 포장해서 집에 가져다 달라고 할 인간이었다.

 

 “나 진짜 제대로 고른다.”

 

 이 자식이 묘하게 오기 생기게 하네.

 소매까지 걷어 신아가 옷들이 가득 걸린 전시대로 향했다.

 

 “자, 이거랑 이거랑 이거.”

 

 신중하게 정장을 살피던 신아가 수현에게 세 벌의 정장을 건넸다.

 딱 사무용으로 입기 좋은.

 아주 무난하고 튀지 않는.

 

 “단정한 디자인이라 고객님의 단아한 분위기랑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무난하다는 말을 직원이 애써 열심히 포장했다.

 

 “입어봐봐.”

 

 눈대중으로 보는 것과 직접 입어보는 건 차이가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피팅룸으로 안내하고자 직원이 수현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런 직원에게 수현이 손짓했다.

 

 “안내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지 말라는 소리였다.

 직원이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섰다.

 수현 혼자서 갈아입을 수 있도록 신아도 자리를 비켜줄 생각이었다.

 

 “응?”

 

 한 손으로 정장을 안고 있던 수현이 다른 한 손으로는 신아의 팔을 붙잡았다.

 신아가 의아한 듯 잡힌 팔을 내려봤다.

 

 “도와줘야지.”

 “뭘?”

 

 그녀가 고개를 들어 수현과 눈을 맞췄다.

 

 “헉!”

 

 수현이 어느새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내가 입는 거.”

 “…….”

 “처음이거든, 이거.”

 

 그가 신아만 들을 수 있도록 은밀하게 속삭였다.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그런 것치곤 신아를 바라보는 수현의 눈이 꽤 진지했다.

 

 “그러니까.”

 “…….”

 “나랑 지금 같이 들어가자고, 저길?”

 

 신아가 등 뒤에 있는 피팅룸을 바라봤다.

 문에 부착된 긴 유리가 몸이 바뀐 두 사람이 보였다.

 

 “응.”

 “이거 입는 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뒤에 지퍼 달렸던데.”

 

 수현이 턱짓으로 정장 블라우스를 가리켰다.

 하필이면 뒤에 지퍼 있는 걸 줄 게 뭐람.

 도로 제자리에 걸어놓기 위해 신아가 손을 뻗자, 그녀의 의도를 파악한 수현이 정장을 확 끌어안았다.

 

 “난 이게 마음에 드는데.”

 

 그 많은 옷 중에서도 하필 왜 이게 마음에 드는데.

 

 “원수현, 그래도 둘이 들어가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등 뒤에만 해도 직원 둘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수현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상냥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리 비켜달라고 하면 되지 않나.”

 “…….”

 “난 모르는 사람이 내 몸에 손대는 건 질색이라.”

 

 수현의 대답에 신아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순간만큼은 그냥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후.”

 

 허리에 손을 올린 신아가 고개를 숙였다.

 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도와줘야 하나.

 분명 도와주는 건데, 왜 기분이 이상한지.

 힐긋 뒤를 쳐다보면 반듯한 자세로 서 있는 직원들이 보였다.

 

 “내가 말해?”

 

 신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또 싫었다.

 뭔가 진상이 된 것 같아서.

 저 사람들한테는 원수현이 이신아로 보일 거 아닌가.

 

 ‘몸이 바뀐 게 차라리 다행인가.’

 

 신아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막상 둘이 있게 비켜달라고 하는 게, 낯부끄럽기는 하지만.

 

 “자리 좀 비켜주시겠어요?”

 

 말했다.

 결국.

 

 “네, 부사장님.”

 “필요한 게 있으시면 불러주세요.”

 

 고민한 게 무색해질 정도로 순식간에 자리를 비켜주는 직원들이었다.

 직원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을 본 신아가 수현과 눈을 맞췄다.

 

 “가자.”

 

 수현이 피팅룸으로 먼저 향했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점차 커졌다.

 수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신아가 잠시 걸음을 옮겼다.

 

 ***

 

 집에 도착하자마자 신아가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백화점뿐만 아니라, 간단히 저녁을 먹고 신아의 집까지 들렀다 오는 참이라 피곤해 죽을 것 같았다.

 

 “나 아직 방도 모르는데…….”

 

 원수현, 수현아. 원수현!

 그를 찾던 신아가 몰려오는 피곤함을 견디지 못하고 미끄러지듯 소파에 기대 누웠다.

 

 ***

 

 [말씀하신 대로 모두 채워뒀습니다, 부사장님.]

 

 휴대폰을 확인한 수현이 문을 열었다.

 한가운데에 놓인 악세사리 보관함에는 커프스 링크와 부토니에르, 넥타이뿐만 아니라 여성용 귀걸이와 목걸이가 채워져 있었다.

 

 보관함을 손가락을 쓸며 수현이 주변을 둘러봤다.

 한쪽 벽면에는 남성용 와이셔츠, 재킷, 조끼 등이 종류별로 정리되어 걸려있고, 그 옆의 벽면에는 여성용 와이셔츠와 재킷, 블라우스가 걸려있었다.

 

 백화점에서 산 정장까지 정리한다면, 수현의 옷보다 신아의 옷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확인.]

 

 그 다운 간략한 답장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아침 햇살이 물결처럼 주름진 커튼 사이를 파고들었다.

 햇빛이 신아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인상을 찌푸린 신아가 몸을 뒤척였다.

 부스럭, 부스럭.

 옆으로 몸을 돌린 신아가 생경한 기분에 눈을 번쩍 떴다.

 

 “헉!”

 

 높고 높은 천장이 보였다.

 

 “아 맞다.”

 

 여기서 지내기로 했지.

 안도한 신아가 천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작으면서도 화려한 전등이 손바닥으로 가려졌다.

 

 “으어어.”

 

 기지개를 쭉 켠 신아가 손을 거두고 침대를 더듬거렸다.

 휴대폰을 집고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7시였다.

 출근이 9시기에, 충분히 여유 있는 시간이었지만.

 신아가 이불을 훅 걷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어?”

 

 잠이 덜 깼나.

 무심코 숙인 고개 아래로 무언가 보였다.

 두 개로 겹쳐 보이던 물체가 한쪽 눈을 찡그리자 초점이 서서히 맞춰졌다.

 

 “헉!”

 

 신아가 황급히 이불을 덮었다.

 이상한 상상을 한 것도 아닌데.

 야릇한 꿈을 꾼 것도 아닌데.

 마치 잘못하다 걸린 사람처럼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걸 아는데.

 오히려 건강하다는 증표라는데.

 

 “딴생각하자, 딴생각. 이신아, 여기에 신경쓰지말고 딴 생각해.”

 

 신아가 휴대폰을 집었다.

 성희와 어젯밤 나눴던 메시지가 화면에 띄워졌다.

 

 “아…….”

 

 여기도 문제였다.

 소개팅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머리가 지끈 아팠다.

 최성희라면 무조건, 어떻게든 소개팅을 성사시킬 게 뻔했고.

 

 “그러다 몸이 안 바뀌면?”

 

 신아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그 자리에 수현이 나가도 문제고 안 나가도 문제였다.

 수현과 성희.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빨리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겠어.”

 

 신아가 황급히 침대를 짚고서 일어났다.

 

 ***

 

 ‘아직 안 일어났나.’

 

 잠옷 상태인 신아가 거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수현은 보이지 않았다.

 수현의 방으로 향하던 신아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건 좀 오버긴 하지.”

 

 우리가 무슨 연인 사이도 아니고.

 게다가 출근하려면 아직 시간도 많이 남은 상태이기도 하고.

 문고리에서 손을 뗀 신아가 거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샤워를 마치고 신아가 거실로 나왔다.

 샤워 가운을 입은 채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터는 모습이 유리창에 비쳤다.

 소파로 향하던 신아가 발걸음을 돌려 거울 쪽으로 다가갔다.

 

 “진짜 훤칠하네.”

 

 절로 감탄이 나오는 외모와 피지컬이었다.

 살짝 벌어진 가운 사이에 단단히 자리한 근육이 눈에 들어왔다.

 

 “……!”

 

 신아가 황급히 샤워 가운을 여몄다.

 얼굴이 그새 붉어졌다.

 

 “출근하면 바로 배정 받겠지?”

 

 출근과 동시에 상사와 팀이 배정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성격 좋고 소통 잘 되는 상사와 동료들을 만나면 그야말로 금상천화겠지만.

 

 “그게 어디 쉽나.”

 

 허리에 손을 올린 신아가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확인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같이 일하면 좋으려나?”

 “누구랑?”

 “아 깜짝이야!”

 

 분명 거울에 비치는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몸을 들썩일 정도로 놀란 신아가 황급히 손을 내리고 몸을 돌렸다.

 

 “어,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작가의 말
 

 10화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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