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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얼음 속 불꽃이 되어
작가 : 비나린
작품등록일 : 2022.2.4

불을 다루는 여인과 물을 다루는 사내의 만남은 득일까 독일까. 그들은 철저하게 상극이였으며, 철저하게 닮아있었다. 동맹으로 만들어낸 인연일지 모르나 그 끝엔 운명이었음을.
(나오는 나라는 전부 허구이며,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배경입니다. 여러 어휘나 명칭들은 조선시대를 참고 했으나, 편의를 위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음을 밝힙니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있나.
작성일 : 22-02-11 00:05     조회 : 196     추천 : 0     분량 : 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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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로움은 아주 잠깐이었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있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왔다. 펼쳐져 있는 이불은 이미 축축해진 상태였다. 지금이라도 궁인을 불러 새 이불을 달라 요청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상황이 영 좋지 않았다.

 

 “야… 제발 눈 좀 떠.”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발로 하온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나 그는 미동도 없이 얕은 숨소리만 낸다. 자신의 몸에서 얼음들이 나오는 것도 모른 채.

 

 살얼음이 점점 퍼지더니 결국 발끝까지 침범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그냥 화선당을 버리고 내가 동궁에 가 잠을 청하고 싶었다. 잠도 못 자고 이게 뭐야.

 

 술을 마시면 누구든 말이 많아지고, 평소에 안 하던 행동들을 하니까 아까는 그러려니 했다. 솔직히 나름 즐거웠기도 했고.

 

 “근데 이건 아니잖아. 이 망할 세자야.”

 

 너는 정말 술을 마시면 통제가 안 되는 구나. 다른 의미로.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라 이제 와서 통제를 하기엔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고 궁인들을 불러 상황을 크게 만들기엔 그의 입지가 또다시 좁아질 게 분명했다.

 

 이번엔 내가 널 도와줄 차례인가 보다.

 

 바닥으로 퍼져나가는 얼음들은 점점 빠른 속도로 범위가 넓어졌으나 그것보다 큰 문제는 얼음이 그의 몸까지 덮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체하다간 정말 그의 체온도 위험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서둘러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온의 손에 내 손을 포개고 다른 한 손은 그의 가슴팍에 올렸다. 그리곤 닿은 몸에 내 힘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제발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동시에 주변에 퍼져나간 얼음들을 녹이자, 순식간에 녹은 물들로 흥건해진다. 그 때문에 치맛자락이 젖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집중했다. 다행히도 냉기로 가득했던 하온의 몸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 아무것도 모르고 잠에 빠진 하온의 코를 꼬집었다. 그러자 조금 아팠는지 짧은 신음을 낸다. 그건 또 아프냐? 누구는 밤을 새우고 있는데?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아 그에게서 손을 떼자, 어김없이 냉기가 올라왔다. 또다시 주변이 얼음으로 물드는 탓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손을 원위치해야만 했다.

 

 “하아…”

 

 꼼짝없이 밤을 새야 한다 이거지.

 

 …

 

 한시진 정도 흘렀을까. 여전히 그의 손을 마주 잡고, 한 손으로는 그의 심장 소리를 느꼈다. 그러나 내 눈은 감기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쏟아지는 졸음과의 사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면서 나는 하온에 대한 욕을 읊조렸다. 바닥과 이불은 축축했고, 그는 단잠에 빠져있고, 나는…

 

 그대로 그의 가슴팍에 엎드렸다. 푹신하니 좋았다.

 

 

 …

 

 

 화살이 -핑하고 날아가더니 과녁 정중앙에 박혔다. 다섯 번 만에 나온 명중이었다. 명중이 나오고서야 차온은 활을 잠시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이상하리만큼 어수선한 마음에 아침이 밝자마자 궁 내 국궁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형님과 사냥을 가는 날이기도 했으니 미리 손을 풀면 도움이 될 거라 여긴 마음도 있었다.

 

 ‘좋은 향이 납니다.’

 

 ‘천리향이라는 향입니다. 가희국에서만 자라나는 나무죠.’

 

 ‘어쩐지. 처음 맡아본 향이었습니다.’

 

 ‘언젠가 천리향차를 대접하겠습니다.’

 

 ‘저야 영광이죠.’

 

 연회에서 단희와 주고받은 대화가 떠올랐다. 자신도 우스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한눈에 반한 게 맞았다. 안 그럼 이리 심란하지도 않았겠지.

 

 단희를 처음 본 건 우연히 궁을 들렀다 온해국으로 입궐하는 가희국 행렬을 본 날이었다. 잠시 사신으로 들렸다 하기에 그 인원은 상당히 많았고, 심지어 미리 공지된 국제적 행사도 아니었다.

 

 때문에 차온은 그저 어리둥절했다. 가마에서 내린 저 아름다운 꽃은 과연 무슨 말을 전하러 이리로 건너온 걸까.

 

 새하얀 피부와 칠흑같이 어두운 머리카락,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신비한 보랏빛 당의에 촘촘히 박힌 은박의 자수들은 한눈에도 과할 정도로 화려했으나, 하얀 목련을 떠올리는 순백의 치마 때문에 적당히 조화로웠다.

 

 단정히 땋은 머리에는 붉은 옆꽃이가 함께였고, 옷차림새와 화려한 장신구들을 보아 그녀가 단순한 신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보통 다른 나라에서 사신을 보낼 때 왕자나 친척들을 보내기는 했어도, 공주를 보내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 차온은 더욱 궁금해졌다.

 

 물론 미친 듯이 아름답기도 했다.

 

 다시 -핑하고 화살이 과녁에 박혔다. 화살은 중앙을 살짝 벗어났다.

 

 그렇게 고운 모습을 보이고서는 다짜고짜 온해국 세자빈이 되겠다 요구하다니, 반칙이잖아. 나는 어찌하라고.

 

 “차온군마마. 송구하오나, 세자 저하께서 오늘 사냥은 불참하신다고 하옵니다.”

 

 씁쓸한 미소를 짓던 차온에게 옆에 있던 환관 하나가 말을 전했다.

 

 “갑자기 왜? 형님에게 무슨 일이 있는가?”

 

 “그것이, 어젯밤 합궁의 여파로… 크흠.”

 

 차온이 활시위를 잡아당기다 다시 풀고는 환관을 바라보았다. 머뭇거리는 그를 재촉했다.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보아라.”

 

 “좀 더 화선당에서 주무신다고 하십니다.”

 

 “연유가 무엇이냐?”

 

 “옥체가 피곤하여 휴식이 더 필요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아직 화선당에 계신다 합니다.”

 

 차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합방이라지만 세이도 있으신 분이 뭐 이리 오랫동안 화선당에 머무는 거야. 솔직히 정말 합방을 치렀을 거라 여기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온이 세이를 연모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신하들은 없었고, 또한 그가 평범한 사람처럼 밤일을 치를 수 있는 이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옥체가 피곤하다?

 

 “옥체가 강녕하지 못하다는 말이냐.”

 

 “흠흠, 그렇다기보다는 아마도,”

 

 되물음에 환관은 말하기 껄끄러운지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자꾸만 머뭇거리는 그의 행동만으로 차온은 자신이 예상한 것이 정말 맞다는 것을 알았다.

 

 “합궁 때문이라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차온군마마.”

 

 환관은 할 말을 전하고 뒤로 물러났다. 차온이 아는 하온은 세이를 소중히 생각했다. 그런데 단희와의 합방 때문에 늦잠을 자겠다라…

 

 “하, 참.”

 

 차온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냈다. 활을 꽉 쥐었다. 사냥 갈 준비를 다 해놨는데 취소하다니 화가 나는 것이다. 그래. 그뿐이었다.

 

 

 …

 

 

 “하암…”

 

 일부러 보란 듯이 하품을 크게 했다.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으아, 피곤하다. 오늘 오후에 다과회에서 졸면 큰일인데.”

 

 혼잣말도 들으란 듯이 크게 말했다.

 

 “눈치를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닙니까?”

 

 “누구 덕분에 편히 잠을 못 자서 신경이 곤두서네요. 송구합니다.”

 

 새벽에 큰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깬 하온은 역시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배 위에서 손을 꼭 잡고 자는 나를 보곤 밀치듯 떼어낸 게 다였다.

 

 내 설명을 찬찬히 듣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술에 취했고, 밤 동안 통제되지 않는 힘을 내가 억지로 막아내느라 그런 자세로 잠이 들었다는 걸 알았다.

 

 이불은 그동안 말랐지만 바닥은 물이 흥건한 상태였기에 부랴부랴 뒷정리를 한 우리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아침상을 받았다. 누구보다 태연하게.

 

 “미안하다니까요. 정말 술인지 몰랐습니다.”

 

 “알아요. 누가 뭐라 했습니까?”

 

 “…정말.”

 

 하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 잠을 제대로 못 잔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았다. 원래도 잠이 많은 편은 아니라서.

 

 다만 그를 놀려대는 게 어느 정도 즐거움을 주어서인지 나는 아침을 먹으면서도 연신 입을 열었다. 그럼 하온은 입을 살짝 삐죽거리곤 별말 없이 밥을 먹었다.

 

 “어제 일이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나십니까?”

 

 “…그렇소.”

 

 “다행이네요. 기억이 안 나서.”

 

 “왜 다행입니까?”

 

 “그냥요.”

 

 하온은 물을 마시는 단희를 빤히 쳐다봤다. 그녀가 곁에 없었으면 신의 힘이 어디까지 퍼져나갔을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주변을 전부 잠식하고, 어쩌면 자신까지 잡아먹었을 테지.

 

 태연한 척 밥을 먹었지만 역시 어젯밤 그녀가 곁에 없다는 상상만 해도 앞이 까마득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듯 장난을 치는 단희에게 고마운 감정이 드는 하온이었으나, 한편으론 그녀에게 점점 의지하는 자신이 두려웠다.

 

 

 …

 

 

 오후에 있는 다과회에 참석하기 전 오랜만에 몸도 풀 겸 활을 쏘며 잡생각을 날려버릴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무리해서 내기를 할 줄이야.

 

 개나리색 천이 감긴 화살이 과녁 중앙에 팍하고 박혔다. 저 멀리 과녁 옆에 서 있던 진영이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명중입니다!”

 

 “이제 차온군마마 차례입니다.”

 

 진영의 소리침에 활짝 웃으며 답해준 뒤, 그를 보며 말했다.

 

 “아니, 가희국에서 활만 쏘다 오셨습니까? 무슨 쏘는 족족 명중입니다.”

 

 차온이 툴툴거리며 불평했다. 물론 자신의 성적도 절대 나쁘진 않았다. 단희보다는 나쁜 게 문제였지.

 

 그녀와 내기를 하게 된 건 정말이지 우연이었다.

 

 활을 쏘고 싶었던 단희가 궁 안에 있는 훈련장으로 올지 차온이 알 리 없었다. 그는 그저 석궁장에서 오묘한 마음을 달래보려 활을 쏘고, 또 쏘았을 뿐.

 

 이번엔 초록색 천이 감긴 화살이 과녁에 박혔고, 역시나 명중이었다. 진영이 또 한 번 소리쳤다.

 

 “이번에도 명중입니다!”

 

 뜻하지 않게 시작한 내기였으나, 도망가면 도망갈수록 좁혀오는 차온의 점수에 한껏 흥이 올랐다. 또한 적당한 긴장감이 집중력을 높여 주었다.

 

 이런 날이 얼마 만인지.

 

 “이번이 마지막 화살입니다. 제가 여기서 5점 이상을 맞추면 끝이라는 걸 아시죠?”

 

 “압니다, 알아요.”

 

 차온을 말로 놀리곤 활시위를 길고 단단하게 당겼다. 그대로 숨을 멈춘 채 과녁을 바라보는 순간,

 

 “왁!!!”

 

 “앗! 깜짝이야.”

 

 화살이 날아가지 못하고 발 앞에 -툭 떨어졌다. 차온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놀라 활시위를 놓친 것이다.

 

 “이를 어찌합니까. 마지막 화살이 그만 빵점이네요.”

 

 차온이 자신의 배를 부여잡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너무 웃어서 눈에는 눈물이 맺힐 지경이었다.

 

 “아잇, 이건 반칙이잖아요. 소리를 지르는 게 어딨습니까? 사람 놀라게.”

 

 “하하, 애초에 그런 규정.. 하하하… 없었잖습니까.”

 

 “…숨넘어가겠어요.”

 

 “하하하.”

 

 차온은 말이 끊길 정도로 해맑은 눈웃음을 가득 머금었다. 그는 자신이 친 장난에 심히 즐거워했다. 그가 너무 웃어대자 나도 결국 같이 픽하고 웃어버렸다.

 

 그리곤 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내기는 그럼 제가 졌다 치고, 소원이 무엇입니까?”

 

 차온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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