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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얼음 속 불꽃이 되어
작가 : 비나린
작품등록일 : 2022.2.4

불을 다루는 여인과 물을 다루는 사내의 만남은 득일까 독일까. 그들은 철저하게 상극이였으며, 철저하게 닮아있었다. 동맹으로 만들어낸 인연일지 모르나 그 끝엔 운명이었음을.
(나오는 나라는 전부 허구이며,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배경입니다. 여러 어휘나 명칭들은 조선시대를 참고 했으나, 편의를 위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음을 밝힙니다.)

 
고자는 사실이 아닙니다.
작성일 : 22-02-10 17:53     조회 : 192     추천 : 0     분량 : 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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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거하게 차려진 상에는 음식들이 식어가고 있었다. 둘 다 음식을 먹을 정도로 허기가 지지 않았기에 어색한 정적만 가득했다.

 

 보통은 술상이 올라왔을 테지만 향긋한 차가 놓인 것을 보아 이 또한 신의 능력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술을 마셨을 때는 이성을 통제하기 더욱 어려워지니까.

 

 그 점은 아주 아쉬웠다. 본래 온해국 술맛이 청량하고 달기로 유명했기에, 합방일에 올려진 술은 그중에서도 최상의 맛이었을 거다.

 

 “술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술을 잘 마십니까?”

 

 “잘 마시는 것은 아니나, 온해국의 술맛이 궁금했습니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고뿔은 말끔히 나았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하께서 넓은 아량을 베푸셔서 며칠 동안 안정을 취했습니다.”

 

 “다행입니다.”

 

 “…”

 

 또다시 정적이다. 방에는 향긋한 국화꽃 내음만 퍼져가고 있었다. 그가 아무 말 없이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지금이라도 술을 들여달라 청할까.

 

 어색할 때는 술이 제격인데 말이야.

 

 아, 그전에 물어볼 얘기가 있었지 참.

 

 “저하께서는 오늘 밤 일을 치르실 생각이십니까?”

 

 “크흡.”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하온은 조금 당황했는지 마시고 있던 찻잔을 황급히 내려놓았다. 그렇게 놀랄 질문인가.

 

 잠시 숨을 고르던 그가 입을 열었다.

 

 “공주께서는 저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하셨나 봅니다.”

 

 “소문이라면, 고자라는 거 말인가요?”

 

 “크흠. …엄밀히 말하면 고자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군요.”

 

 나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뭐, 딱히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감흥이 없던 것도 사실이었다.

 

 고자가 아니면 다행이라 여기는 것도 솔직히 좀 웃기잖아?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굳이 아이를 낳아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하온은 찬찬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는 민망함에 귀가 빨개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자세하게 설명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워낙 찬 몸이었으니 정말로 귀가 붉어지지는 않았을 테지만.

 

 “허나 본능이 앞서는 경우가 되면 통제를 하지 못합니다.”

 

 “신의 힘이 폭주하기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못하는 거군요.”

 

 “…못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안 하신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 아닙니까?”

 

 하온은 단희의 물음에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 이게 남녀의 첫날밤 나누는 대화가 맞는 걸까 의심도 들었다. 물론 그도 오늘 밤을 뜨겁게 보낼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단희가 저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며 좋아하니까 그건 또 그거대로 기분이 좀 별로랄까. 이럴 때는 누구보다 순수한 얼굴을 하고선.

 

 애써 씁쓸한 표정을 감추고 대답했다.

 

 “…그렇소.”

 

 “저는 다 이해합니다. 세자저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오늘 합방은 말을 맞추어 일을 정말 치른 것으로 하죠.”

 

 “…”

 

 하온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국화차를 들이부을 기세로 마셨다. 마시고, 따르고. 또 한 번 마시고, 따르고.

 

 나는 그런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목이 많이 마르셨나 봅니다.”

 

 “크흠.”

 

 하긴, 그런 말을 직접 해야 하니 조금 수치스러울 만도 하지. 신의 아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좋을 것이 없었다. 성욕도 마음대로 못 풀지, 잠도 제대로 못 자지. 능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그는 더욱 그럴 테다.

 

 충분히 목이 탈 만해.

 

 어느새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푹 숙인 그를 보며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확 고개를 든 하온이 나를 째려본다.

 

 “뭘 그리 고개를 끄덕입니꽈?”

 

 “예?”

 

 “아니! 왜 구렇게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냔 말입니돠!”

 

 이 자가 미쳤나.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다. 두 배는 더 커진 목소리에 발음은 다 뭉개지고, 동공은 또 언제 풀렸는지. 하온은 입을 삐죽 내민 채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대체?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꼭 술 먹은 사람처럼…

 

 잠시만.

 

 문득 든 생각에 나는 해롱거리는 하온을 제쳐놓고 상에 놓여 있던 주전자와 찻잔에 코를 대었다. 국화 향이 강하게 올라왔다. 그러나 다시 몇 번을 맡아보자 아주 미세하게 술 내음이 올라왔다.

 

 설마 이거 꽃차가 아니라 술이었나?

 

 나는 다시 한 번 하온을 관찰했다. 이번에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꼬리를 흔들어대는 강아지처럼 눈웃음이 떠나가질 않는다. 감정이 아주 휙휙 바뀌네.

 

 이렇게 해맑게 웃고 있는 하온이 처음이라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입을 삐죽거렸다. 술이었으면 진작에 마시는 건데! 자기만 기분 들떠가 지곤.

 

 “헤헤, 이게 누구야? 내가 고뿔에서 구해준 빈궁이 맞느느야?”

 

 “맞다, 그래.”

 

 “내가 궁금한 것이 있능데 말이다아. 너어, 그 말 진심인 것이냐?”

 

 “무슨 말.”

 

 뜬금없는 그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술기운에 취해 눈꼬리가 축 처진 것이 내가 아는 하온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뭐, 어찌 보면 이편이 훨 귀엽기도 하고.

 

 “너어, 그거 말이다! 내게 했던 말.”

 

 “그러니까 그 말이 뭐냐구요.”

 

 “…구꺼한 귱주가 되라고.”

 

 “뭐라는 거야.”

 

 답답함에 가슴을 두어 번 쳤다. 발음이 다 새는 게 가관이었다. 똑바로 말하라는 뜻으로 있는 힘을 다해 째려보자, 하온이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다시 한 번 말했다.

 

 “굳건한! 군주가 되라고.”

 

 “…”

 

 그의 말을 알아들은 나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원래 술에 취하는 편이 용기를 내기에는 쉬웠다. 사람은 술이라는 핑계를 대고 솔직함을 드러내니까.

 

 하온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나에게 정말로 그 말이 진심이냐고 묻고 싶었나 보다. 흔들리는 시선 속에서도 내 대답을 기다리는 그였다.

 

 결론부터 따지자면 그 말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신이 되라,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 정말… 그리될 수 있는 것이냐? 내가?”

 

 “네가 그리 안 되면 누가 돼.”

 

 나는 괜히 틱틱거리며 대답했다. 분명 내일 일어나면 오늘 대화를 기억하지 못할 터이니 반말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먼저 말을 놓은 건 내가 아니라 너니까.

 

 “나 같은 괴물이 군주라…”

 

 하온이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희미하게 사라지는 뒷말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괜스레 나까지 그의 씁쓸함이 옮는 것 같아 얼른 위로의 말을 전했다.

 

 “네가 이리 취했으니 하는 말인데, 너는 나의 동아줄이야.”

 

 “…동아쭐?”

 

 “응. 내가 너를 타고 위로 올라갈 거야. 그러려면 동아줄이 튼튼해야겠지?”

 

 “그렇지.”

 

 “그래서 너를 온해국의 왕으로 만들 거야. 그 잘난 신의 힘을 온전히 다룰 수 있게 만들어서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도록 할 거야. 내가.”

 

 “정말이냐?”

 

 “그래. 나만 믿어.”

 

 나를 믿으라는 의미로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하온이 따라 고개를 끄덕인다. 어린아이처럼. 위로가 되었나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그의 환한 미소를 보니 그럭저럭 되었나 보다.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왕이 될 수 없다는 이들의 말에 많은 상처를 받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괴물 같은 힘을 다룰 수 없어 여전히 두려워하는, 그의 마음이 보였다.

 

 그래. 그럼 나는 너를 마음껏 이용해도 되겠다. 너도 나를 이용하는 것이니 우리는 서로 쌤쌤이야.

 

 “있잖아. 난 말이다.”

 

 “또 뭐.”

 

 “네가 참으로…”

 

 그의 눈동자에 입술을 깨무는 내가 보였다. 어쩌다 이렇게 가까워진 걸까. 그가 자꾸 이야기하면서 내게 다가온 탓이었다. 낯간지러운 상황에 잠시 그를 밀쳐낼까 고민도 했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

 

 움직이면 그의 말이 사라질 것 같아서.

 

 “어렵다.”

 

 아. 내가 참으로 어렵구나. 눈만 껌뻑거렸다. 내가 어렵다는 말을 그리도 뜸 들여 하는 연유를 내일 꼭 물어야겠다. 어쩐지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뭐, 나 무슨 기대라도 한 것처럼 왜 이래.

 

 “근데 고마워.”

 

 “왜. 고맙긴 또 뭐가 고마울까.”

 

 이 자식이 병 주고 약 주나.

 

 “나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아 줘서.”

 

 하아, 오늘 밤은 진실을 고백하는 시간인 걸까. 뜻하지 않게 하온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그리고 그의 한마디에 왔다 갔다 하는 내 기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렵다는 말에 실망은 왜 하며, 고맙다는 말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건 뭔데.

 

 나는 그래서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하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넌 내게 고마움을 느끼면 안 돼.”

 

 내 입가에 걸린 희미한 미소가 하온에게는 어떻게 비칠까. 세이가 느끼는 것처럼 욕망 가득한 미소로 보일까. 아니면 그가 말했던 것처럼 구원자의 미소처럼 보일까.

 

 나는 그다음 말을 내뱉으면서 생각했다. 이왕이면 둘 다 이기를. 하온이 내 계획을 완벽히 이해해 주기를 바랐기에.

 

 “왜 안 되느냐?”

 

 “궁금해?”

 

 “…궁금하다.”

 

 “네가 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결국 너를 집어삼켜야 하거든.”

 

 하온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술 때문에 발그레해진 두 볼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동안 그의 볼을 쳐다봤다.

 

 내가 뒷말을 하지 않자 하온은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그러나 곧이어 한계에 다다랐는지 고개를 꾸벅거렸다. 결국, 스르르 눈이 감기기 시작한 그다.

 

 나는 조는 하온의 모습이 웃겨서 소리를 내 웃었다. 어쩌면 일부러 뒷말을 삼킨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너무 이르다 여겼기 때문일까.

 

 “궁금하다고 했으니 말은 해줄게. 분명 기억하지 못할 테니 괜찮아.”

 

 “으음…”

 

 툭 하고 하온의 머리가 내 어깨에 닿았다. 몸이 버티지 못하고 내게로 기대어진 것이었다. 귓가에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런 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하온의 머리칼은 부드러웠다. 첫날밤이 이렇게 될지는 몰랐는데.

 

 “나는…”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면 도착한 그곳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동아줄은 오직 나만 타고 올라갈 수 있기에.

 

 내 계획의 끝은 거기 있다.

 

 “왕이 될 거니까.”

 

 가희국의 위대한 군주가 되는 것.

 

 하온은 내게 기댄 채 깊은 잠에 빠졌다. 술 때문인지 한동안 깨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를 베개 위로 눕혔다. 잠든 그의 얼굴은 방금까지 입을 나불거리던 인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밤하늘이 어두워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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