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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얼음 속 불꽃이 되어
작가 : 비나린
작품등록일 : 2022.2.4

불을 다루는 여인과 물을 다루는 사내의 만남은 득일까 독일까. 그들은 철저하게 상극이였으며, 철저하게 닮아있었다. 동맹으로 만들어낸 인연일지 모르나 그 끝엔 운명이었음을.
(나오는 나라는 전부 허구이며,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배경입니다. 여러 어휘나 명칭들은 조선시대를 참고 했으나, 편의를 위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음을 밝힙니다.)

 
바보같이 버티지 말고.
작성일 : 22-02-09 23:26     조회 : 191     추천 : 0     분량 : 5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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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나 쓰러졌구나.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다. 방에서는 은은하게 천리향의 향기가 났다. 머리가 띵하고 속이 조금 울렁거렸지만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밤새 고열에 시달리다 진정이 된 듯했다.

 

 이곳엔 신녀가 없는데 어찌 열을 떨어트린 거지.

 

 “일어났소?”

 

 “으아, 깜짝이야!”

 

 순간 놀라서 소리를 빽 질렀다. 지르고 나니 민망해 얼굴이 빨개진다. 당연히 혼자라 여겼던 공간에 갑작스럽게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당황스러웠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니 다름 아닌 하온이었다. 이 자가 여기 왜 있지. 아, 어제 눈앞에서 내가 쓰러졌지 참.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에게 물었다.

 

 “세자 저하께서 어찌 화선당에 계십니까.”

 

 “함께 밤을 보냈습니다.”

 

 “예?”

 

 맞은편에서 꽃차를 음미하던 하온은 내 반응에 사례가 걸렸는지 잠시 캑캑대고는 찻잔을 손에서 내렸다.

 

 “그런 뜻이 아니라 옆에서 간호를 했다는 뜻입니다.”

 

 “…아.”

 

 너무 앞서나간 생각이었나. 하긴 공식적으로 부부가 될 사이인 건 맞지만 아직 밤을 함께 보내고 그러는 사이는 아니지. 하온이 잠시 나를 보더니 물었다.

 

 “혹여 이상한 상상을 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요.”

 

 “공주께서 무척이나 뜨거워 놀랐습니다.”

 

 “열이 말인가요?”

 

 “그럼 열 말고 무엇이 있습니까?”

 

 “…”

 

 하온은 단희의 물음이 퍽 웃겼다. 이 상황에 왜 시답잖은 농담이나 주고받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썩 나쁘지 않은 대화였다. 재밌기도 했고.

 

 애써 미소를 집어넣고 안부의 말을 꺼냈다.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전하께서도 오늘은 좀 쉬라고 하셨으니 안정을 취하세요.”

 

 “송구합니다.”

 

 “가희국에서는 열꽃이 심하면 신녀를 통해 열을 내린다지요.”

 

 하온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녀에 대해 아는 걸 보니 아무래도 진영에게 들은 말인 듯했다. 워낙 옛날부터 함께 하던 아이였기에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네, 아무래도 신의 능력이 해를 끼치다 보니 신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허나 온해국은 도움을 줄 신녀가 없었소.”

 

 “그렇죠. 신을 믿지 않으니까요.”

 

 몸 관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이런 꼴을 보이게 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동맹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중하다 일이 이렇게 흘러간 것이지.

 

 한숨을 쉬는 내게 하온은 묵묵히 할 말을 전했다.

 

 “하여 부득이하게 제힘을 좀 이용했습니다. 허나 알다시피 능력을 조절하기 어려워 다른 방법은 없더군요.”

 

 하온이 내 앞에 놓인 잔에 꽃차를 붓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뗀다.

 

 왜, 뭔데.

 

 “살을 좀 맞대었으니 그 점에 대해서는 공주께서 양해를 해주시오.”

 

 아. 그제야 왜 함께 밤을 보냈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 밤새 함께 누워있었구나. 내 열을 내리려 자신의 능력을 이용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얼핏 기억 속에 누군가를 끌어안고 잔 거 같기도 하고…

 

 나는 떠오르는 잔상을 얼른 지워버리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본디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도요.”

 

 조금 민망하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나를 살리려 한 행동에 양해까지 구했으니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무사히 넘겨 다행이지만 정말 위험했다. 하온이 아니었다면 정말 죽었을지도.

 

 첫 만남 때는 매정한 모습만 보여주더니… 아픈 사람을 내버려두는 파렴치한 인간까지는 아니었나.

 

 하온이 두 번째 꽃차를 다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작은 다과상에는 형형색색의 떡들이 옹기종기 놓여있었는데, 그는 떡을 하나도 먹지 않았는지 놓인 모양새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까부터 향긋하게 올라오는 천리향의 향기는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가희국에서만 자라는 천리향을 꽃차로 둔 것을 보면 설마 이것도 일부러 준비해둔 걸까. 나를 배려해서?

 

 “떡과 함께 드세요. 이만 사냥일정이 있어 가겠습니다.”

 

 “…네.”

 

 그의 말에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인사에 답례해준 하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렸다. 그러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아, 그리고.”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생각났나 보다. 나는 조용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왜 그리 고집불통에 미련 덩어리입니까?”

 

 “…예?”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시오. 바보같이 버티지 말고.”

 

 아니 왜 다짜고짜 화를 내고 그래?

 

 멍하니 멀어져 가는 하온을 바라보던 나는 놓인 꽃차를 황급히 마시고는 코웃음을 한 번 쳤다. 챙겨주는 거야, 짜증을 내는 거야. 둘 다야?

 

 아무튼 나와 잘 맞지는 않는 것 같다.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오후였다. 온해국에서 생활을 한 지도 벌써 열흘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고뿔도 말끔히 사라졌다.

 

 “아, 날 좋다. ”

 

 나름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합방일만 빼면.

 

 화선당 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에 핀 꽃들을 구경했다. 화창한 봄 날씨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고뿔에 걸렸을 때만 해도 그렇게 싸늘하더니, 언제 이렇게 봄이 온 걸까. 시간 참 빠르다.

 

 눈을 감고 선선하게 부는 바람을 느끼던 와중, 나란히 앉아있던 진영이 씩씩대며 말했다.

 

 “공주마마께선 신경 쓰이지 않으세요?”

 

 “무엇이?”

 

 “한 씨 가문의 세이아씨 말입니다. 합방일이 떡하니 정해졌는데도 동궁을 드나들고 계시잖아요.”

 

 아무래도 세이라는 존재가 내 입장에선 골칫덩이긴 하지. 하지만 그리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철없는 어린아이를 상대할 필요는 없다는 느낌이랄까.

 

 나랑은 결 자체가 다른 사람이야.

 

 “그 아이로선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본래 연모하는 사이인데 어찌 관여하겠니. 나는 엄연히 둘에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벽 같은 존재라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정도가 지나칩니다. 바로 내일 밤이 합방 날인데, 오늘도 떡 하니 동궁에서 하하호호… 어찌 되었든 이제 두 분은 부부가 아닙니까?”

 

 “나는 어째 그보다 합방이 신경 쓰이는구나.”

 

 “뭐, 그것도 그것대로 신경 쓰이는 일이긴 하죠. 전하께서도 참 어찌 그런 조건을 내세우실 수가 있는지.”

 

 “스읍, 말을 삼가야지. 여긴 온해국이야.”

 

 “아, 송구합니다.”

 

 “아마 진짜 일을 치르지는 않을 거야. 저하도 나도 굳이 원하지 않으니까.”

 

 사실 표면적으로 합방을 치르면 그만일 문제긴 했다. 어느 누가 방문을 열고 우리가 몸을 맞댔는지 확인하겠는가. 그저 딱 새벽 동안만 한 이불에 누워있으면 되는 거지. 하온도 세이가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테고.

 

 “그런데 공주마마. 혹시 아십니까?”

 

 “어떤 것을 말이냐?”

 

 “세이아씨와 세자저하께서 서로 연모하는 사이이나, 함께 밤을 보낸 적은 없답니다. 듣기로는 엄청나게 오래된 인연인데도 불구하고요.”

 

 “…거짓말.”

 

 “진짜입니다! 그리 보지 마셔요.”

 

 진영의 말에 그저 웃었다. 동그래진 눈으로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가 귀엽게 느껴졌다. 하긴 자신의 사내라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을 봐선 이미 혼인을 치르고도 남았을 사이긴 했지.

 

 그런데도 아직 공식적인 혼례는 치르지 않은 상태라… 어쩌면 하온의 힘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니까.

 

 “근데 밤을 보낸 적이 없다는 게 뭐 그리 큰일인가.”

 

 “엇, 당연히 큰일이죠! 어쩌면 그리 견고한 사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니까요. 두 분 모두 혼인을 하지 못하는 어린 나이는 아니시잖아요.”

 

 “음.”

 

 “소문에 의하면 세자저하께서 그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쩌면 정말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다과상에 놓인 한과를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치자로 노랗게 물들인 한과는 초봄과 잘 어울렸다. 맛도 달콤하니.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선 다행인 소식이구나.”

 

 “에이 마마! 다행이라뇨, 구실을 못하는 건…”

 

 “스읍, 거기까지.”

 

 “…마마도 참.”

 

 호들갑을 떠는 진영과는 달리 정작 나는 여유롭게 농담을 던졌다. 하온이 정말 고자든 아니든 간에 나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애초에 그게 중요한가. 오로지 동맹과 가희국의 앞날이 중요하지.

 

 그리고 고자라면 일을 치르고 싶어도 못할 테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소문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네.

 

 아, 그건 좀 심한가.

 

 

 …

 

 

 “안 하시면 아니 됩니까?”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지 않느냐.”

 

 “그래도… 같은 방에서 주무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미 공주마마께서 고뿔에 드셨을 때도 함께 주무셨잖아요.”

 

 세이가 하온의 팔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그에 따라 군청색의 긴 소맷자락이 함께 펄럭거렸다. 그도 난처한 처지였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세이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불안하겠지. 그러나 어차피 일을 치를 생각도, 그럴 수도 없다는 걸 그녀도 알 텐데.

 

 “이리 떼를 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야. 곧 혼례가 끝나면 너를 양제로 들이겠다 약조했으니, 조금만 기다려다오.”

 

 “저하께서 그리 얘기하시니 그래도 안심은 됩니다. 저를 계속 생각해주세요. 아시겠지요?”

 

 세이가 하온을 바라보며 작은 입을 연신 움직였다.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주입해야만 마음이 편했다. 그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단희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내일 밤에도 꼭 제 생각을 해주셔야 합니다.”

 

 “…그리하마.”

 

 하지만 하온의 답을 들어도 세이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가 능력을 다룰 수 있게 되지 않는 이상 이후로도 사랑을 나눌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 컸다.

 

 그녀는 사실 몇해 전부터 하온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지만 그는 절대 세이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그녀의 목숨이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몸에서 뿜어지는 냉기는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다 하나, 흥분으로 인해 그 정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둘 다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날카로운 얼음은 멈추지 않고 자라날 것이고, 하온은 그것을 억제할 수 없다.

 

 그래서 하온은 단호했다. 자신의 무지막지한 힘으로 인해 소중한 이의 목숨을 잃게 할 순 없는 일이었다. 불행은 자신 하나로 충분했으니까.

 

 세이는 하온의 손을 꼭 잡았다. 꼭 도망가지 말라는 것처럼. 그러나 그의 손은 차갑기만 했다.

 

 

 …

 

 

 “저하, 화선당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마침내 그 날이 다가왔다. 환관이 등을 들고 하온에게 말하자 그는 대답했다. 그러다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유독 밤이 어둡다. 그런데 그 속에 피어난 달은 무척이나 밝았다. 하온은 달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화선당으로 향했다.

 

 딱 스무 걸음. 스무 걸음을 움직이니 화선당 앞이었다. 평소보다도 가깝게 느껴졌다. 이리도 가까운데 고뿔 이후로 내디딘 적 없는 곳이었다.

 

 며칠만이지. 이따금 소소한 행사를 제외하곤 사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다.

 

 “세자 저하 드십니다.”

 

 하온이 화선당 앞에 서자 문을 지키던 상궁이 입을 열어 그의 존재를 알렸다. 합방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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