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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Romantic Cliches
작가 : 이순정
작품등록일 : 2022.2.3

해봄은 어느 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듯 익숙한 얼굴과 마주한다. 처음 보는 얼굴이라 생각하고 넘겼던 남자는 어렸을 때 같은 아파트에 살았었던 민현이었다. 다시 재회한 후 전처럼 가까워진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고 그 가운데 민현은 해봄에게 작은 도움을 요청한다.

 
Episode 7. 바다
작성일 : 22-02-09 21:59     조회 : 195     추천 : 0     분량 : 7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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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 7. 바다

 

 

 

 

 해봄은 밤바다를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밤바다를 보러 가는 걸 좋아했다. 사실 스쿠터를 산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언제든지 가고 싶을 때 밤바다에 가려고.

 물론 한 번도 간 적 없는 상태로 스쿠터는 며칠 전 처음 구매했던 가격의 1/5로 지인에게 팔아버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민현의 지인에게. 산 지는 꽤 됐지만 탄 횟수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해 그래도 시중보다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었다. 그것도 물론 민현 덕분이었다.

 

 「너 돈도 많은데 째째하게 굴지 말고 좀 더 줘. 이거 진짜 거의 새 거나 마찬가지야.」

 

 압박이 있긴 했는데 그것보다는 민현이 올린 SNS의 영향이 컸다. 그걸 보고 자신을 민현의 여자친구라고 믿었는지 사람 좋게 웃어줬었지.

 덕분에 그 돈으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사고 싶은 것도 샀다. 그리고 남은 돈은 약 5만원. 이걸로 뭘 할까 고민하다가 해봄은 문득 가본 지 꽤 오래 된 것 같은 밤바다를 떠올렸다.

 오랜만에 기차 타고 바다나 가볼까..?

 

 “나 오면서 뭘 봤는지 알아?”

 

 강의 시작 5분 전 아슬아슬하게 강의실에 도착한 진희가 무척이나 못마땅한 얼굴로 해봄의 옆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뭘 봤는데? 핸드폰으로 기차 시간표를 보고 있던 해봄이 자리에 앉은 진희를 따라 시선을 함께 아래로 내리며 물었다.

 

 “희승오빠가 자기 차에 희주언니 태우고 가는 거.”

 “아, 차 샀나 보네.”

 “꼴 같지 않아서 진짜. 아니, 솔직히 우리 과에서 너랑 오빠랑 사귄 거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런 식으로 티 내면 안 되지 않아? 그럼 네가 뭐가 되는데. 진짜 어이 없어서.. 살 판 났다 이거지.”

 “……”

 

 그렇게 자동차, 자동차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샀구나. 취업만 하면 바로 자동차를 살 거라는 게 거의 입버릇이었지. 아직 취업 못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근데 그 오빠 차는 어떻게 샀대?”

 “부모님한테 손 빌렸겠지, 뭐. 취업도 안 했는데 무슨 돈이 있어서 샀겠어.”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 나오지. 헤어지고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그 오빠가 허세가 좀 있었거든. 그래도 허세 있는 걸 굳이 안 숨기는 게 귀여웠는데 헤어지고 나니 그게 뭐가 귀여웠나 싶다. 눈이 삐어도 단단히 삐었지.

 근데 부럽긴 부럽다. 나는 내 차 언제 가져보나. 스쿠터도 팔아서 이제는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 해봄이 들어오기 전 자판기에서 산 커피를 마시며 이제는 제 손에 없는 스쿠터를 다시금 떠올렸다.

 아, 괜히 팔았나. 뒤늦은 아쉬움이 밀려든다.

 

 “… 응?”

 

 한창 강의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엄마에게서 도착한 문자를 확인한 해봄의 눈이 커졌다. 처음에는 잘못 본 건가 했는데 잘못 본 게 아니다. 분명 권민현이다.

 

 “엄마, 뭐야? 민현이랑 같이 있어?”

 

 문자를 보냈는데 역시 답이 느리다. 아직 확인도 안 했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해봄이 몰래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문자는 확인을 안 하더니 전화는 바로 받는다. 이거 봐. 엄마랑 이야기를 하려면 전화를 해야 한다니까.

 

 - 응, 딸!

 

 건너편이 시끄럽다. 음악도 틀어 놓은 건지 근래 들어 엄마가 좋아하는 트로트가 배경음악처럼 깔리고 신이 나 따라 부르는 목소리가 여럿. 해봄이 잠시 핸드폰을 귀에서 떨어트렸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가는 여행 때문에 들떠 있었다. 어제는 근처 백화점에 가서 여행에 가서 입을 옷도 샀다. 민현이네가 돌아온 기념이라고 했다. 이 아파트에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계속 살아온 집들이 많아서 아주머니를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늘 아침에도 엄마는 신이 나서 손을 흔들었다.

 

 「엄마, 가서 무조건 조심해야 돼. 알았지?」

 

 여행에 들뜬 건 좋은데 세상이 워낙 험악하니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지.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는 자신의 말에도 엄마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고 다른 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권민현이 차로 기차역까지 아주머니들을 태워다 줄 거라는 말 같은 거 말이다.

 

 - 누나. 들려?

 

 전화가 뚝 끊기더니 민현에게서 따로 전화가 왔다. 이번에 받은 전화는 제법 조용했다. 물론 배경음악으로 노래소리와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이 정도면 약과지.

 해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창틀에 기대 앉았다.

 

 “뭐야? 너가 왜 거기 있어?”

 

 잘 가고 있냐고 보낸 문자에 엄마가 보낸 답장에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민현과 함께 찍은 엄마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운전을 하느라 카메라를 보지는 못한 채 웃고 있는 민현과 조수석에 앉은 엄마 그리고 뒷좌석에 신이 난 얼굴로 앉아 있는 아주머니들까지.

 

 - 엄마가 시간 되면 역까지 데려다 달라고 해서.

 “뭐야, 너 운전 할 줄 알아?”

 - 응. 가끔 운전 해.

 

 와, 말도 안 돼.

 운전면허를 따고도 아직 한번도 실전 경험을 하지 못 한 해봄은 아무렇지 않게 운전을 하며 전화까지 하는 민현이 신기하기만 하다. 아주머니가 데려다 달라고 먼저 말하시는 걸 보면 운전도 곧잘 하는 것 같고.

 어째 동생인데 저보다 훨씬 더 할 줄 아는 게 많은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어디쯤이야? 다 도착했어?”

 - 10분 정도면 도착해. 차가 안 막혀서.

 

 10분이라. 해봄이 차분하게 시간을 계산해본다. 강의가 끝나려면 아직 한 시간정도 남았고 역에서 집까지도 약 한 시간거리.

 오늘 아침부터 이러려고 바다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권민현이랑 바다에 가려고.

 

 “끝나고 약속 있어?”

 - 아니, 집으로 갈 건데 왜?

 “그럼 오늘 나랑 바다 갈래?”

 - 갑자기?

 “바다 가고 싶은데 차편이 없어. 내가 스쿠터 팔고 남은 돈으로 기름값 대줄 테니까 바다까지 태워주라.”

 

  해봄이 창틀에 걸터앉아 밖을 보여 씩 웃었다. 날씨가 화창하다 못해 눈이 부셨다.

 

 

 * * *

 

 

 “오랜만에 점심 같이 먹을래?”

 

 가방을 챙기던 해봄이 진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나 오늘 약속 있어. 핸드폰에 이미 민현에게서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차가 안 막힌다고 하더니 진짜 예상보다 더 빨리 왔다. 바다에 갈 마음에 들뜬 해봄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나 간다. 내일 봐!”

 

 권민현이 안 된다고 하면 혼자라도 갈 생각이었는데 다행이었다. 혼자가도 재미있기는 한데 그래도 누구랑 같이 가야 재미있거든.

 건물을 나서는 걸음이 신이 났다. 해봄이 작게 허밍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민현아. 어디야?”

 - 나 여기 인문관 쪽 카페에 있어. 커피 살 건데 누나 것도 살까?

 

 인문관 쪽이면 정문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중간에 제법 규모가 큰 카페가 있는데 그 근처에 주차를 한 모양이었다. 머리 속으로 대충 위치를 파악한 해봄이 조금 더 걸음을 빨리 했다.

 권민현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남들보다 키가 조금 컸고 남들보다 얼굴이 조금 잘생겨서 조금만 두리번거려도 금방 눈에 띄었으니까.

 편한 청바지에 흰색 셔츠, 그 위에 네이비 계열의 카디건을 걸친 민현은 카페 앞 야외 좌석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그 앞에는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커피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저건 아마 자신이 말한 카페라떼일 거다.

 해봄이 이내 장난스러운 얼굴로 민현에게 다가갔다.

 

 “혹시 여기 자리 있어요?”

 “아, 죄송한데 자리 있…”

 

 똑똑. 고개를 숙인 탓에 다가오는 해봄을 보지 못한 탓이었다. 가볍게 테이블을 노크하며 내려온 말에 민현이 평소처럼 대답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런 일은 민현에게 제법 익숙한 것이어서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터였다.

 민현이 제앞에서 웃는 얼굴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노크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해봄이었다.

 

 “뭐야, 권민현? 되게 익숙해 보인다?”

 “……”

 “이거 내 거 맞지? 잘 마실게.”

 

 참 나. 민현이 웃는 얼굴로 자리에 앉는 해봄을 눈으로 쫓았다. 기분이 꽤 좋은 지 눈꼬리가 계속 접혀 있다. 뭐, 보기 좋네.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웃음을 흘리며 민현이 가만히 커피를 다시 마셨다.

 날씨가 쌀쌀해도 햇빛이 강해서 그리 춥지 않다. 급한 거 아니니 조금 쉬었다 가자며 해봄이 커피를 홀짝였다. 오늘은 안 졸고 잘 버텼다. 근데 이 버티는 게 보통 에너지가 필요한 게 아니라 좀 지친 것 같기도 하고.

 

 “오늘 어땠어?”

 

 핸드폰을 보던 민현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두손으로 턱을 받친 해봄이 저를 보고 웃고 있다.

 

 “사진 올렸잖아. 반응 좀 있었어?”

 “아, 그게..”

 

 해봄의 질문에 민현이 오른쪽 눈썹을 비뚤게 끌어 올렸다. 그러니까 이게 반응이 왔다고 해야 하는 건가.

 그래, 오긴 왔다. 왔는데 그게 이제 목표하던 대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 게시물을 올린 후로 계속 울리는 문자 알림음에 밤에는 알람도 꺼두고 잤다. 제대한 이후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안 한 권민현이 진짜 연애하는 거냐는 호들갑은 그 다음날 학교에서도 이어졌고.

 그러고 보니 박소영 걔는 내 주변 사람들한테조차 사귄 사람으로 취급 받지 못하네. 처음에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생각하니 혀끝이 씁쓸해진다.

 

 “그 날 하루였잖아. 아직 모르지.”

 “그런가.. 근데 그 때 학교 앞에서 우리 둘이 가는 것도 봤잖아. 그 후로 또 연락 왔어?”

 “왔지.”

 “… 와, 나 좀 자존심 상하네. 나를 직접 봤는데도 계속 연락을 한다고?”

 

 진짜 자존심 상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바로 앞에서 해봄의 표정 변화를 직관하니 표정이 새삼 다채롭다. 예전부터 이랬지. 해봄은 감정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작은 키에 마른 몸 때문에 소심했던 자신은 그런 해봄을 늘 동경했었다.

 다시 만났을 때 하나도 변하지 않아서 그게 얼마나 좋았는지. 민현이 제 앞에서 혼자 결의를 다지는 해봄을 보며 슬쩍 웃으며 시선을 내렸다.

 

 “나 좀 불탄다? 내가 확실하게 떼어준다, 걔.”

 “……”

 “뭐야, 너 표정 왜 그래? 나 못 믿어?”

 “아냐, 누가 뭐래? 나야 누나 믿지.”

 “너 못 믿는 표정인데!”

 

 보면 은근히 애 같은 면도 많다니까.

 네 표정이 나를 믿지 못하고 있다며 투덜대는 얼굴이 즐겁다. 확실히 동기들과 있을 때와는 다른 즐거움이다. 오랜만이라서 조금은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게 신기하다. 그리고 민현은 그게 해봄 덕분인 걸 알았다.

 

 “이제 갈까?”

 “응. 뭐 먹을 거 사갈까? 차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아냐. 가서 먹자.”

 “그럴까? 나 조개구이 진짜 먹고 싶어. 근데 회도 먹고 싶고.. 너는 조개구이랑 회 중에 뭘 더 좋아해?”

 

 노닥거리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렀다. 이제 곧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이 쏟아져 나올 거다. 시간을 확인한 해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가 가까이에 주차되어 있었다. 이게 네 차야? 자연스럽게 운전석 문을 열며 민현이 고개를 저었다. 내 차는 아니고 엄마 차. 자연스럽게 권민현 차라고 생각 했었던 게 조금 머쓱하다. 얘네 집 잘 살아서 아주머니가 아예 차 사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폼 나네, 권민현.”

 

 시동을 켜고 안전벨트를 매는 폼이 익숙하다. 웃으며 놀리듯 내뱉은 해봄의 말에도 별 타격없이 민현이 천천히 악셀을 밟았다.

 

 “누나, 네비게이션 좀 찍어줘.”

 

 해봄의 예상대로 출발하자마자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민현이 아주 천천히 캠퍼스를 빠져나갔고 그 사이 해봄이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예상 시간은 1시간 30분. 도착하면 아마 딱 보기 좋게 바다가 저무는 햇살에 물들어 있을 시간일 거다. 기대감에 해봄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 * *

 

 “대-박!”

 

 바다에 도착한 해봄이 창문에 비춰지는 바다의 모습을 보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주차를 하자마자 차에서 내린 뒤 서둘러 백사장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완전 멋있어! 해봄의 환호성이 인적 드문 백사장 위로 넓게 울려 퍼졌다.

 주차를 마치고 뒤늦게 차에서 내린 민현은 차 지붕에 두 팔을 올려놓은 상태에서 몸을 기댄 채 신난 해봄을 말간히 지켜본다. 진짜 좋아하네. 안 온다고 했으면 큰일날 뻔했다.

 민현이 트렁크에 있는 돗자리를 들고 바다를 앞에 두고 서 있는 해봄의 곁으로 다가갔다.

 

 “누나, 돗자리 가져왔으니까 여기 앉자.”

 “돗자리? 샀어?”

 “아니, 트렁크에 있던 거.”

 

 안 그래도 돗자리를 살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잘됐다. 해봄이 고맙다고 말하며 냉큼 운동화를 벗고 돗자리 위로 올라갔다.

 해가 짧아진 게 하늘만 봐도 느껴진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6시여도 환했는데 이제는 조금 어두운 느낌. 평일이라 사람이 없어 파도가 백사장에 부딪쳤다가 사라지는 소리가 제법 컸다. 두 사람은 아주 잠시 아무 말 없이 바다가 일렁이는 모양새를 지켜보기만 했다.

 해봄이 두 다리를 가슴께로 모은 뒤 무릎 위에 턱을 올려 놓았다. 요 근래 생각이 많았는데 고요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바다를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 좋다.”

 

 해봄의 중얼거림에 민현 역시 바다 저 멀리 수평선으로 시선을 던졌다. 생각해보니 꽤 오랜만이다. 이렇게 사람이 없는 바다는. 생각해보니 늘 사람들이 북적거릴 때만 왔었다.

 따로 올 생각은 한번도 안 해봤는데 이렇게 오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예상보다 좋을지도.

 

 “완전 낭만적이지 않아?”

 “뭐가?”

 “그냥. 지금 이 순간 자체가?”

 “……”

 “낭만이 뭐 별거 있나 싶어. 이렇게 평화로운 광경을 보는 것도 낭만인데.”

 “……”

 

 올 때 마다 느껴지는 바다의 경이로움은 늘 새로워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럴 때 마다 해봄은 생각한다. 낭만이 별거냐고. 이렇게 가슴을 뛰게 하는 지금 이 순간이 낭만인거지.

 시원한 바다 바람에 머리가 흩날린다. 해봄이 핸드백을 뒤적여 머리끈을 꺼냈다. 바다에 오면 좋은데 이런 건 싫다. 바람을 오래 맞으면 머리가 떡 지는 거. 묶을 수밖에 없다니까. 안 그러면 나중에 머리 빗을 때 호되게 고생한다고.

 돗자리가 작아 가까이 앉은 덕에 움직일 때 마다 어깨가 가볍게 부딪쳤다. 곁눈질로 힐끗 곁의 민현을 바라본 해봄이 다시금 시선을 앞의 바다로 돌렸다. 체온이 닿을 때 마다 일렁이는 파도만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게 민현때문인지, 바다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봄은 일단 지금의 두근거림을 그냥 즐기기로 했다.

 

 "바다에 한 번 들어가볼래?”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해봄이 대뜸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민현이 시선이 일어나는 해봄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들어가자고? 진심인가 싶어 다시 한번 되묻자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응, 진심인데.”

 “……”

 “안 들어가면 나 혼자 가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다. 굳이 억지로 같이 하자고 할 생각 같은 건 없으니까.

 주저하는 민현을 뒤로 하고 해봄이 혼자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아예 들어가자는 건 아니고 발만 담가볼 생각이다. 지금이 아니면 이제는 추워져서 내년 여름까지 못 담글 것 같거든.

 당황스러움에 굳었던 민현이 결국 웃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간이 늦어 바람이 꽤 차추울 텐데 걸어가는 해봄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다.

 

 “들어갈 거야?”

 “아니. 그냥 여기 있을래.”

 “그럼 내 운동화 좀 봐주라.”’

 

 해봄은 신이 났다. 바다에 들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느라 바쁘다. 가지런히 벗어 놓은 해봄의 운동화 옆에 쭈그리고 앉은 민현이 혼자 분주한 해봄을 부지런하게 눈으로 쫓았다.

 평화롭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민현이 중얼거렸다. 감정이 메말라서 그런 건지 해봄과 같은 감정을 느끼기는 힘들지만 뭐, 즐겁다니 됐다.

 

 “……”

 

 서서히 지는 해가 예뻤고 노을을 받아 주홍빛으로 물드는 바다는 신비로웠다. 조금 어둑해진 하늘을 나는 새들이 바다 위를 맴돌다 이내 사라지고 그 자리 위로 해봄의 그림자가 생겨났다.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해봄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웃는 얼굴이 내리쬐는 노을을 받아 불그스름하게 빛났다.

 

 “……”

 

 가만히 해봄을 바라보던 민현이 순간 기가 찬 웃음을 터뜨렸다.

 알아버렸거든. 지금 자신의 눈에 비친 류해봄이 누구보다 예뻐 보인다는 것. 사람이 누군가에게 반할 때는 고작 1초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는다는 것.

 그저 눈에 담기는 그 순간의 찰나에 사람은 누군가에게 온전히 마음을 뺏길 수도 있다는 걸.

 기가 찬 민현이 헛웃음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자신은 아주 어렸을 적 첫사랑에게 지금 이 순간 다시 마음을 뺏겨 버린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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