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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선천빌라 세입자들
작가 : r라
작품등록일 : 2022.2.9

선천빌라에 사는 4명의 세입자들의 평범하고 평범한 이야기.

 
3. 그들의 만남
작성일 : 22-02-09 16:45     조회 : 166     추천 : 0     분량 : 8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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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화

 

 

 

  “미야옹-!”

 

 검은 고양이, 나비가 나대곤씨를 바라보며 상큼한 인사를 전했다. 깜찍한 표정을 짓으며 귀를 쫑긋 거리던 나비는 절도있는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다가와 나대곤씨에게 교태를 부리기 시작했다.

 

 “에잇! 아침부터 재수없게!”

 

 나대곤씨는 그런 나비의 행동을 영 달가워 하지 않았다. 예로부터 고양이는 요물이라 불려 왔다. 게다가 검은색 고양이. 불길함의 상징이다. 그는 아침부터 참 재수없다며 투덜거리곤 빌라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먀아-!”

 

 그런 나대곤씨를 놓칠세라, 나비는 종종걸음으로 그의 뒤를 쫓아갔다. 꼬리를 빳빳하게 내세우며 앙상하게 늙은 그의 두 다리를 더욱 열심히 비벼대기 시작했다. 지금껏 겪어본 적 없던 일에 당황한 나대곤씨는 뒷걸음질을 치며 소리쳤다.

 

 “어허! 썩 안꺼져!? 저리가!”

 

 거친 언행과는 달리 행동은 무척이나 소심했다. 그러던지, 말던지! 나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 자세히 보니 나비의 시선은 한군데를 열심히 응시하고 있었다. 나대곤씨가 들고 있던 검은색 봉투. 그 안에 자신이 일용할 양식이 있을 것이라 착각한 나비는 날카로운 눈빛을 봉투에 고정한 채 꼬리를 살랑거렸다.

 

 “썩 꺼지라니까!”

 

 한 발자국 더 뒷걸음질 치자, 나비의 꼬리가 나대곤씨의 발에 밟혔다. 나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대곤씨를 향해 ‘하악!’ 소리를 내지르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이내 방옥분씨가 만들어준 자신의 집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어머! 어머!”

 

 언제부터 보고 있던 것인지 방옥분씨가 온갖 호들갑을 떨며 나비에게 달려갔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받은 나비는 방옥분씨에게 마저도 하악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나비를 보며 ‘어머, 어머. 어쩜 좋아.’ 라는 말을 되뇌이던 방옥분씨가 고개를 휙 돌려 나대곤씨를 노려보며 소리 쳤다.

 

 “이 노인네가 정말 노망이 났나! 왜 동물을 학대해요!?”

 

 자신이 나비의 꼬리를 밟은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로 고의는 아니었다. 전 후 사정도 듣지 않고 소리를 버럭 지르는 방옥분씨에게 억울했던 나대곤씨도 질세라 목소리를 높였다.

 

 “학대는 얼어 죽을 학대! 그러게 왜 아침부터 재수없게 알짱거려? 가는 길 방해한 저 고양이 놈 잘못이지!”

 “어머. 어머! 저렇게 작고 귀여운 아이가 왜 재수없어요? 아니!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막 때려도 되요?”

 “글쎄, 난 안때렸다니까! 그리고 저게 왜 아이야? 고양이가 사람이야? 그 쪽 눈에만 귀엽지. 그 쪽 눈에만!”

 “참나.”

 “대체 언제까지 저것들 밥을 챙겨줄거야? 매번 고양이들이 끊이질 않잖아! 시끄럽다고 몇 번을 말해? 같이 사는 곳에서 이게 무슨 민폐야?”

 “여기가 당신 건물이야?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 안하는데, 당신만 매번 소리 지르면서 뭐라고 하는 거 알아요? 서로 공생을 해야지, 공생을! 게다가 지금 나비는 지 새끼들 키우느라 고생하고 있다고! 이제 곧 겨울인데, 어떻게 매몰차게 내쫓아?”

 

 1층에 사는 사람은 정말 말이 안통하는 여편네였다. 순간 ‘키운다.’ 라는 단어에 죄책감 비슷한 것이 몰려왔지만, 해봐야 도둑고양이가 아닌가. 쓰레기를 파헤치고, 밤마다 시끄럽게 피해를 주는.

 

 말문이 막힌 나대곤씨를 보며 방옥분씨는 결정타를 날렸다.

 

 “그렇게 못되게 살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염병하네.”

 “성격이 그 모양이니, 쯧!”

 

 ‘자식한테 버림받았지.’ 라는 뒷 말은 꺼내지 않았다. 두 세입자는 꽤 긴 시간을 이웃으로 보냈다. 대충 서로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방옥분씨는 항상 혼자였고, 나대곤씨는 아들이 오긴 하지만 가뭄에 콩 나듯 횟수가 적었다. 실제로 방옥분씨가 나대곤씨의 아들을 본 건 두 번 밖에 되지 않았다.

 

 “뭐? 뭐! 그러는 그 쪽이야 말로!”

 

 “저기요! 시끄러워 죽겠어요!”

 

 그들 사이에 앙칼진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402호 세입자, 한혜미씨였다. 일터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온 한혜미씨는 그들의 말씨름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원래 그녀는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자.’ 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여자였지만, 신체적으로 우위에 있는 할아버지가 힘없는 할머니를 괴롭히고 있는 모습은 도저히 모른 체 넘어갈 수 없었다. 같은 여자로써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한 그녀는 나대곤씨에게 말했다.

 

 “듣자 하니 할아버지가 저 고양이에게 뭐 폭력을 행사한 것 같은데. 아무리 화가 나도 힘없는 동물한테 그러시면 안되죠.”

 “아가씨가 뭔데 어른들 일에 끼어 들어!?”

 

 예상은 했지만, 온화한 성품을 가지신 분은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꼬리를 내리면, 더욱 얕잡아 보일 것이라 생각한 한혜미씨는 지지 않고 똑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끼어 들만 하니까 끼어 들겠죠! 그러게 왜 시끄럽게 싸우시고 그래요?”

 “이, 이! 새파랗게 어린 것이!”

 

 한혜미씨가 제일 싫어하는 멘트였다.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누군가가 가장 많이 썼던 멘트. 그녀의 눈에 나대곤씨와 그 인물이 겹쳐보였다. 주름진 남성의 손, 주름진 노인의 얼굴, 버릇처럼 올라가는 저 삿대질, 그리고 탁한 눈동자.

 

 “어린 것이 뭐요?”

 

 그들의 감정이 극도로 달궈졌을 때, 3층에 살고 있는 이적도씨가 거칠게 창문을 열어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적당히 좀 합시다, 적당히 좀!”

 

 놀란 그들은 일제히 3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 눈에 들어온 이적도씨는 부스스한 까치머리를 한 채 반쯤 잠긴 눈으로 말을 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요? 잠 좀 잡시다! 하여간, 이 곳 소음은 진짜!”

 

 그는 신경질적이게 창문을 닫았다. 밑에 있던 세입자들은 동시에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현재 시간은 오전 10시. 이른 아침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시간이었다.

 

 “아, 참. 이럴 게 아니라 나비 좀 병원에 데려가야겠네. 어미가 아프면 큰일이니까.”

 

 방옥분씨는 나대곤씨를 노려보며 말했다.

 

 “허이고. 길고양이 주제에 병원은 무슨! 염병 육갑을 떨고 앉아 있네.”

 “병원비 보탤 거 아니면 조용히 해요!”

 “내가 왜 돈아깝게 그런 데에 돈을 보태? 그리고 아가씨. 아가씨도 어른한테 말 그따구로 하는 거 아니야! 요즘 젊은 것들은 싸가지가 없어.”

 

 나대곤씨는 끝까지 삿대질을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말이 나와서 말씀 드리는 건데요. 고양이들 좀 그만 챙겨요. 저도 불편하긴 불편하다고요.”

 “에이, 불편하긴 뭐가 불편해요?”

 

 방옥분씨는 너스레를 떨며 한혜미씨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웃이 불편하면 얼마나 불편했다고 그러냐, 라는 무언의 제스쳐였고, 자신의 편을 들어준 것을 보아 말이 통하는 아가씨라고 생각한 방옥분씨 만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방옥분씨의 예상은 멋드러지게 빗나갔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던 한혜미씨가 불쾌하다는 눈빛으로 한껏 쏘아붙이곤 말을 이어갔다.

 

 “무슨 말씀이세요? 엄청 불편해요! 맨날 쓰레기통 뒤지고, 가끔 계단으로 올라와 사람 놀라게 만들고. 가뜨기나 여기 길도 후져서 가로등도 없는데, 밤마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얼마나 소름끼치는지 아세요?”

 “아이고, 그럼 집에 일찍 일찍 다니면 되지!”

 

 이 쪽도 말이 안통하는 건 똑같군. 한혜미씨는 체념했다. 괜히 입씨름만 할 것이 뻔히 보였다.

 

 “참. 우리 나비 새끼 낳았는데, 아가씨가 데려가 키울 생각 없어요? 엄청 예쁘게 태어났는데.”

 

 기가 막히는 말이었다. 1초 전에 했던 대화를 뭐라고 생각하신걸까.

 

 한혜미씨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였더라면 챙기지 말라느니, 밤마다 소름끼친다느니 하는 소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 고양이 질색이라서요.”

 “에잉, 안키워봐서 그래. 키우면 얼마나 예쁜데. 내 새끼 키우는 것처럼 키우게 된다니까? 게다가 고양이는 손도 많이 안가요. 밥이랑 물만 주면 알아서 커. 한 번 저 쪽 가서 보기라도 해봐.”

 “그렇게 예쁘시면 할머니가 키우시면 되겠네요. 차라리 그러세요. 그럼 서로한테 좋을 거 같은데.”

 “나도 그러고는 싶지. 하지만 안돼. 우리 집엔 새끼 개가 세 마리나 있어서. 아들 집에도 다섯마리 유기견도 데리고 있고.... 지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인걸.”

 

 아, 어쩐지. 가끔씩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랬다. 떠돌이 개들이 지나가면서 내는 소리인줄 알았더니, 범인은 1층 할머니였던 것이다. 본인 자택엔 2마리, 아들 자택엔 5마리. 완전 개판이 따로 없었다.

 

 순간 2층 괴팍한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화를 내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전부 떠돌이 아이들이야. 구정물을 마시고, 쓰레기를 주워 먹는 게 너무 딱해서 데려왔어.”

 

 방옥분씨는 묻지도 않은 자신의 상황과 본인이 가지고 있는 정의감, 그리고 한국에 있는 유기견, 유기묘에 대한 실태를 털어 놓기 시작했다. 자신이 없었더라면 그 아이들은 보호소로 끌려가 안락사를 당했을 거라는 둥, 개 중 한 마리가 다리가 부려져 자신의 적금 통장을 깨서 고쳐놨다는 둥, 우리나라는 아직 유기견, 유기묘에 대한 인식이 썩었다는 둥.

 

 “나라에서 연금이 쥐꼬리만큼 나오는데, 그 돈을 전부 아이들에게 써요. 난 굶어도 이 불쌍한 것들은 도저히 굶길 수 없겠더라고. 참 불쌍한 것들이야. 나 같은 사람이라도 있어야 저것들이 살아가지. 안그래요?”

 

 방옥분씨는 마치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개들 산책은 시키세요?”

 

 그러나 한혜미씨는 쉽사리 누군가를 인정해주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산책? 얌전한 아이들이라 그런 거 안해도 돼. 그리고 내가 허리 디스크가 있어서 오래는 못걸어요.”

 “예방 접종은 잘 하시고요?”

 “다 컸는데, 무슨 예방 접종까지 해요. 집에만 있는 아이들인데. 아가씨, 저 애들 예방 접종하려면 얼마가 드는지 알아요?”

 

 한혜미씨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 집에 이사 오고 가장 후회하는 점을 꼽자면, 이웃들을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3층은 담배에 찌들어 사는 사회부적응자 히키코모리.

 2층은 툭하면 소리를 빽빽 지르는 꼰대 할아버지.

 1층은 자기 만족을 도덕이라고 착각하는 애니멀 호더.

 

 어쩜 이렇게 상종하기 싫은 류의 사람들만 골고루 이웃이 된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럼 전 바빠서….”

 

 한혜미씨는 말을 아꼈다. 마음같아선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곱절로 나이를 드신 분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순 없었다. 게다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지각할 것이 틀림없었다. 요즘 불경기가 심한 탓에 수강생들이 눈에 띄게 줄고 있는 형국에 지각이라도 한다면, 원장 눈에 곱게 보일 리 없다. 비정규직의 현실은 가혹한 법이기에 그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는 가벼운 목례를 건네곤 서둘러 선천빌라의 골목길을 벗어났다.

 

 

 사건의 시작은 평화롭던 선천빌라의 주말 아침이었다. 선선한 가을 아침은 상쾌한 바람을 휘날리고 있었다.

 

 “꺄아악!!!!”

 

 예사롭지 않은 비명소리가 세입자들의 단잠을 깨웠다. 왠일로 그들을 깨운 것은 나비의 울음 소리가 아니었다.

 

 “뭐야?”

 

 어찌나 크고 절절한 목소리인지,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창문을 열어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보았다. 처음 비명소리를 들었을 땐, 그 비명의 주인공이 방옥분씨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아직 이른 아침 7시. 세 명의 세입자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이윽고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입구 쪽에 있는 화단 앞에서 몸을 웅크린 채 흐느끼고 있는 방옥분씨였다.

 

 “왜 또! 아침부터 대체 뭔 난리요?”

 

 나대곤씨가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고개를 올린 방옥분씨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나비 새끼가… 나비 새끼가 죽었어요.”

 

 

 스트로폼 박스에 담요를 올려 놓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던 나비의 집은 오늘따라 유달리 더 초라해 보였다.

 

 안락한 집 앞엔 손바닥만큼 작은 고양이가 강력한 무언가에 눌린 듯이 종이 쪼가리처럼 납작하게 눌려있었다. 그 작은 몸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장기들은 사방에 튀어나와 있었고, 파리와 구더기들은 새끼 고양이를 잠식하고 있었다.

 

 온 몸이 하얀 털로 이루어진 고양이였던지라, 형태가 더욱 선명하게 보여졌다.

 

 그리고 나비는 제 새끼의 죽음을 부정하고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새끼의 몸을 구석구석 핥으며 애절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윽.”

 

 한혜미씨는 절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싸늘하게 죽은 새끼고양이의 모습은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로 처참하고, 징그러웠다. 특히 사체의 썩은 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역했다.

 

 “세상에…”

 

 이적도씨의 한숨이 이어졌다.

 

 살면서 고양이 시체는 꽤 많이 보았지만, 안면이 있던 고양이여서 그런걸까. 아니면 너무 어린 고양이라 그런걸까. 그들은 그저 ‘가엾다.’ 라는 단순한 감정이 아닌 더 깊고 오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나비야…. 아이고… 우리 나비 불쌍해서 어쩌니.”

 

 그 중 가장 슬퍼하는 인물은 단연 방옥분씨였으리라. 나비는 그들의 동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새끼의 몸을 그루밍했다.

 

 “뭐에 눌린거야? 자, 자동차?”

 

 나대곤씨가 고양이 사체를 자세히 바라보며 혼잣말로 물었다.

 

 “근데 여기 차 있는 사람 없잖아요? 차량이 돌아다닐 도로도 마땅치 않은 위치인데.”

 

 이적도씨의 지적에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맞다, 이 곳은 후미진 달동네. 인도와 골목은 있어도 차가 다닐만한 길은 아니었다. 선천빌라 세입자 중 차를 가지고 있는 세입자도 없었다. 게다가 워낙에 비좁은 통로인지라 택배시가들도 이 곳에 배송을 올 때면 온갖 미간을 찌푸리며 저 멀리 차를 대놓고 택배를 나르곤 했다.

 

 “그리고 이건 누가 봐도 커다란거에 짓눌린 형태인데…. 혹시 누가 차로 밟아 죽여 놓고 여기에 둔 건 아닐까요? 아니면 다른데서 밟혀 죽었는데, 어미 고양이가 이 곳에 데려온걸 수도 있고요.”

 

 한혜미씨가 말했다.

 

 꽤 그럴싸한 전개였다. 밖으로 놀러 나간 새끼 고양이가 재수없게 차에 밟혀 죽었고, 그것을 어미고양이가 물어다 집 앞에 둔 것이라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사실 그것 외엔 이렇다 할 전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 하지만 그런 것 치곤 새끼고양이의 장기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흐, 흩어져 있지 않아요? 자세히 봐봐요. 핏자국도 딱 여기서 무언가로 누른 것 처럼 튀어 있잖아요. 튀어나온 눈알도 바로 옆에 있네. 핏자국도 그렇고…. 어, 어미 고양이가 이런 것 까지 하나 하나 다 물어왔다고 하기엔 좀 부자연스러운데요.”

 

 이적도씨가 한혜미씨의 추리에 반박했다.

 

 평소 추리물을 좋아하던 그는 작은 단서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죽은 새끼 고양이의 주변까지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했다. 한혜미씨는 그런 이적도씨의 모습을 보며 ‘꼴깞 떠네. 지가 뭐라고?’ 라며 속으로 욕지거릴 내뱉었다. 마음같아선 입 밖으로 뱉어내고 싶었지만, 이적도씨의 말은 틀린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 누가 여기까지 와서 가만히 있는 새끼 고양이를 일부러 죽였다는 거야, 뭐야?”

 

 나대곤씨가 이적도씨에게 물었다.

 

 “저, 정확한 건 저도 모르겠지만, 봐… 봤을 때 그렇다는거죠.”

 “그래서? 누가 그랬다는 건데?”

 “그건 저, 저도 잘….”

 “근데 댁은 왜 이렇게 말을 더듬어?”

 

 이적도씨의 말투가 거슬렸는지, 나대곤씨는 위 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나대곤씨의 지적에 이적도씨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말을 더듬는 버릇이 생겨버린 것이다.

 

 “에이! 별 것도 아닌 걸로 시끄럽게 유난떨지 말고 집에들 가요! 주말 아침부터 이게 뭐야?”

 

 나대곤씨는 그렇게 호통을 치며 집 안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갔다. 나대곤씨가 사라지자 방옥분씨는 온갖 욕을 퍼부었다.

 

 “정말이지. 저 노인네는 인간도 아니야. 인간의 탈을 쓴 악마야.”

 

 방옥분씨는 더욱 더 큰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한 손으론 죽은 새끼를 보듬고 있었다. 그런 방옥분씨의 모습을 보며 한혜미씨와 이적도씨는 ‘아무리 그래도 구더기가 들끓고 있는 시체를 손으로 보듬다니, 비위도 좋네.’ 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불쌍하다고 해도 그들은 죽은 동물을 보듬을 순 없었다.

 

 “근데, 그거… 묻을거예요? 어디에?”

 

 한혜미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나비 집 옆에 묻어줄거야. 어차피 화단에 키우고 있는 꽃도 없으니까. 나비도 그게 좋을테지….”

 “저기, 죄송한데… 그거 불법 투기… 인데요.”

 

 한혜미씨는 말 끝을 흐리며 눈치를 살폈다. 그녀 또한 새끼고양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불쌍하긴 했지만, 자신이 사는 빌라 화단에 시체라니. 지나갈 때 마다 속이 거북할 것 같았다. 방옥분씨와 이적도씨는 벙찐 얼굴로 한혜미씨를 바라보았다.

 

 “… 아니, 법으로도 금지되어 있는 사항이고…”

 “내가 알아서 할테니 신경 꺼요. 다들 일봐요, 아침부터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요.”

 

 방옥분씨는 눈가를 훔치곤 새끼고양이를 고이 들어 집으로 들어갔다. 나비는 방옥분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더욱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내 아기를 어디로 데려 가는 거야?’ 라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조용하던 다른 새끼 고양이들도 엄마를 따라 울기 시작했다. 색과 무늬가 다른 3마리의 작은 고양이들이 다닥다닥 붙은 채 어미 고양이를 보며 울고 있는 모습이 더욱 짠하게 느껴졌다.

 

 “사, 사람이 참….”

 

 이적도씨는 한혜미씨를 훑어 보며 말했다.

 

 “제가 뭘요? 맞는 말이잖아요. 시체를 함부로 땅에 묻으면 안된다고요! 들개들이 화단을 막 파헤칠수도 있고-.”

 “아, 예. 예.”

 

 이적도씨는 귀찮다는 듯 손짓을 하곤 집으로 들어갔다.

 

 “뭐야, 진짜. 재수 없는 놈.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한혜미씨는 투덜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매정한 말을 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담배 매너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저런 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불쾌했다. 그녀는 올라오는 복도에 보이는 301호의 대문 앞에 멈춰서서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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