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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얼음 속 불꽃이 되어
작가 : 비나린
작품등록일 : 2022.2.4

불을 다루는 여인과 물을 다루는 사내의 만남은 득일까 독일까. 그들은 철저하게 상극이였으며, 철저하게 닮아있었다. 동맹으로 만들어낸 인연일지 모르나 그 끝엔 운명이었음을.
(나오는 나라는 전부 허구이며,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배경입니다. 여러 어휘나 명칭들은 조선시대를 참고 했으나, 편의를 위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음을 밝힙니다.)

 
괴물과 괴물이 만나면
작성일 : 22-02-09 12:05     조회 : 181     추천 : 0     분량 : 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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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록, 콜록.”

 

 상태가 심각해졌다. 찬 기운을 오랫동안 맞아 고뿔이 더더욱 심해졌다. 억지로 참아냈던 기침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연회가 마무리되고 원래 머물던 전각으로 돌아갔으나, 동궁에 위치한 화선당으로 처소를 옮겨야 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미 온몸이 불구덩이였다. 어지러운 탓에 치맛자락을 밟을 뻔했으나 혼미해지는 정신을 꽉 붙잡고 천천히 움직였다.

 

 “괜찮으십니까, 공주마마.”

 

 “괜찮으니 어서 가게.”

 

 얼른 들어가서 누워야겠어.

 

 내게 고뿔은 그리 가벼운 병이 아니었다. 신의 능력으로 불을 다루는 자. 그 힘은 고뿔과 만나면 손을 쓸 틈도 없이 거대해졌다. 어서 진영이 짐을 챙겨 이곳으로 와야 할 텐데.

 

 “빈궁이 되어 좋으시겠소.”

 

 “…침소에 들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어디선가 빈정거림이 들려왔다. 나는 작은 한숨을 쉬고 그를 바라보았다. 예상대로 하온이었다. 동궁에 하온이 있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굳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무슨 심보야.

 

 “어마마마께선 그대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던데, 아무래도 신의 능력이 내게 도움이 될 거라 여기는 것이겠지요.”

 

 “…”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괴물과 괴물이 만나면 도움이 되려나.”

 

 하온의 차가운 눈매가 잘 보이지 않았다. 바로 앞에 있어도 시야가 흔들거려 그가 잘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오히려 그편이 훨씬 나았다. 굳어있는 표정을 별로 구경하고 싶지 않으니까.

 

 “날이 춥습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아, 동궁이 유난히도 좀 춥습니다. 알다시피 능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말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점은 소인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제 온기가 전해져 저하의 냉기와 조화를 이룰 테니 더는 춥지 않을 것입니다.”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에도 나는 한마디도 지기 싫어 그의 말을 받아쳤다. 발음이 뭉개지지 않도록 무던히도 노력해야만 했다.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건 그 때문이오?”

 

 하온은 하얗게 질린 단희의 얼굴을 바라보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녀를 유심히 관찰했다.

 

 알게 모르게 그녀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윽고 그의 물음에 답하려던 단희는 더는 버티기 어려웠는지 그대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엇…!”

 

 하온은 재빨리 쓰러지는 단희의 몸을 감쌌다. 다행히 늦지 않게 그녀를 잡은 탓에 바닥에 고꾸라지지 않았다. 한숨 돌린 하온은 단희를 살폈으나, 역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낭패였다. 그녀를 안은 몸에서 강렬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사람의 몸에서 느낄 수 없는 온도였다.

 

 이렇게 열이 나면서 그리도 멀쩡한 척 말대꾸를 하다니 잠시 어이가 없었지만 하온은 잡생각은 치우고 옆에서 발을 동동거리던 궁인에게 물었다.

 

 “가희국 궁인은 어디 갔느냐?”

 

 “그게, 전각에서 짐을 마저 챙겨오느라 아직입니다.”

 

 “얼른 공주가 쓰러졌다고 전하거라. 상황이 심각하니.”

 

 그녀를 안아 들었던 하온은 단희를 이불에 눕히면서도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상식 밖의 열꽃이 단희를 감싸고 있었다. 그의 짐작으로 봤을 때 아무래도 그녀의 능력이 해가 되는 순간인 것 같았다.

 

 불을 다루는 사람이니 열꽃이 강렬하다 이건가.

 

 “어의를 불러오거라!”

 

 “예, 세자 저하.”

 

 어의가 오려면 시간이 걸리니 그 전에 열을 내릴 수 있도록 얼음을 준비하라 이른 하온은 더운 숨을 희미하게 내쉬는 단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쓰러질 정도였다면 이미 연회 때에도 아팠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끝까지 티를 내지 않았다니 고집 불통한 여인이다.

 

 그때, 가희국의 궁인인 진영이 화들짝 놀라며 화선당으로 뛰어왔다.

 

 “세..세자 저하.”

 

 “네가 가희국 궁인이더냐.”

 

 “네, 그렇습니다. 혹여 공주마마께서 쓰러지신 것입니까?”

 

 진영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단희의 상태를 물었다. 잔기침을 하시긴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의식을 잃고 쓰러질 정도라면 열이 아주 심하다는 얘기였다. 어릴 적부터 고뿔이라도 드는 날엔 열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는 걸 진영은 잘 알았다.

 

 “상황이 이리될 때까지 몰랐단 말이냐.”

 

 “송구합니다, 세자 저하.”

 

 “가희국에서는 열이 오르면 어떻게 했느냐.”

 

 “가희국에서는 신녀님의 도움을 받아 열을 내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온해국은 신을 믿지 않지.”

 

 “송구합니다. 저하.”

 

 진영이 고개를 들지 못하며 울먹거렸다. 항상 신녀가 신의 힘이 폭주하는 걸 막았기에 지금 이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 지는 그녀도 알지 못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어의의 힘으로는 공주마마의 힘을 억제하기 힘들 겁니다.”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현재로썬 외부의 힘으로 열기를 억제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하온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이 더운 열기를 어찌 내린다는 것인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궁에 있는 얼음으로 충분할지…

 

 아, 얼음이라면.

 

 그때, 하온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방도가 떠올랐다. 귀하디귀한 얼음을 전부 꺼내어 열을 내리기보다는 영원히 녹지 않는 것을 사용하는 게 더 좋을 것이다.

 

 바로 자신의 몸.

 

 “내가 해결해볼 테니 모두 나가거라.”

 

 갑작스러운 그의 명령에 진영은 고개를 들어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종종걸음을 하며 방을 나갔다. 자신과 단희만 방 안에 있는 걸 확인한 하온은 그대로 걸쳐져 있던 푸른빛의 두루마기를 벗었다.

 

 두루마기 안에 감쳐져 있던 옷들을 한 꺼풀씩 벗자, 이윽고 단단하게 자리를 잡은 그의 상체가 드러났다.

 

 이래도 되는 걸까.

 

 하온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긴박한 상황이라지만 아무래도 단희의 당의를 벗겨내야 한다는 것이 조금 꺼려졌다. 그러나 고통스러워 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자 그는 결국 손을 움직였다.

 

 “그대를 살리고자 하는 것이니, 조금만 양해를 해주시오.”

 

 하온은 단희의 푸른색 당의를 살짝 벗겨냈다. 열기가 얼마나 센지 옷조차 뜨거웠다. 꼭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것 같은 마음에 죄책감이 들었지만, 잠시 심호흡을 하고 이불을 치우는 하온이었다.

 

 원래도 얼음장같이 차가웠던 몸을 더욱 차갑게 만든 그는 그녀의 옆에 찬찬히 자리를 잡고 누웠다.

 

 맨살을 드러내고 이부자리에 눕자 어쩐지 허전했으나, 동시에 단희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끌어안은 탓에 하온은 잠시 숨을 참아야만 했다.

 

 겨드랑이 사이로 그녀를 옮긴 뒤 조심스럽게 머릿밑으로 오른팔을 넣었다. 자연스럽게 단희를 옆구리에 안은 것 같은 자세가 완성되자, 하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자신은 절대 녹지 않는 얼음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니 단희의 열꽃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여긴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단희의 몸에 그의 능력이 긍정적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차디찬 하온의 체온이 단희의 열꽃을 식히고 있는지 그녀는 점점 하온에게 의지했다.

 

 바로 밑에 있는 단희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작은 얼굴에 티 없이 맑은 피부. 그리고 쌍꺼풀 없는 눈.

 

 참 세이와는 딴판인 여인이었다. 어느 곳 하나 틈이 보이지 않아서 고귀한 검과 같은 형태. 모두를 주목시키는 울림 있는 목소리와 영롱한 눈빛은 그녀를 꼭 한 마리의 불사조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아, 그건 신의 아이이기 때문이려나.

 

 생기가 조금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 그녀의 입술은 약간 말라 있었고, 감은 두 눈에는 기다란 속눈썹이 가지런히 내려와 있었다.

 

 하온은 다급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힘없이 꼬꾸라지는 그녀를 받았을 때 그는 문득 동질감을 느꼈다. 가시를 잔뜩 세우며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그녀는 결국 한 마리의 나비처럼 유약하게 쓰러졌다.

 

 그럼 너는 불사조가 아니라 나비인 걸까.

 

 하온은 동질감을 느끼는 자신의 마음에서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그저 괴물이라 여겨져 왔던 힘이 실은 신의 능력을 받았다 하여 가희국에서는 신의 아이라 불린다고 한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는 대뜸 세자빈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그와 더불어 자신을 군주의 자리에 서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그래. 그건 그냥 하나의 조건이자, 협박일 뿐이었다. 신의 힘을 다루지 못하여 언제라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어찌 왕이 되겠는가. 그 약점을 이용해 온해국을 자신의 편으로 두려는 가희국의 수작이었다.

 

 그런데도 하온은 그녀의 말들이 너무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꼭 앞이 보이지 않던 미래에 한 줄기 빛과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그대는 나를 그리 만들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건 이 혼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명분이 되는 걸까.

 

 세이를 생각하면 이래선 안 되는 일이었지만, 자신이 이 혼례를 막을 수 없을뿐더러 왕실을 위해선 단희가 꼭 필요했다. 그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괴물 세자와 세자빈이라…”

 

 단순한 고뿔 하나로 목숨을 위협받는 타국의 공주나, 세자라는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괴물이라 취급받는 자신이나 결코 좋은 인생은 아니지.

 

 “으음…”

 

 단희가 하온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시원한 물체를 끌어안은 채 고통에서 벗어나 점점 깊은 잠에 빠지기 시작한 그녀였다. 그녀에게서 영원할 것만 같던 불은 잠깐 사라졌다.

 

 

 …

 

 

 “아버지께서 이리 힘이 없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세자 저하께서도 막지 못한 일을 어찌 아비보고 막으라는 것이냐.”

 

 세이의 아버지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키운 막내딸인데, 오늘만큼은 자신을 책망하는 딸이 미웠다. 며칠을 울고 우는 세이를 볼 때마다 그의 가슴도 찢어졌다.

 

 “이제 저는 어찌 살아요? 세자 저하 없이 소녀는 못 삽니다.”

 

 “그럼 죽기라도 하겠느냐? 웬 공주 하나가 혼인을 제안할 줄 알았느냔 말이다.”

 

 세이는 어찌나 울어댔는지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곱디고운 딸의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이었지만 그녀의 아버지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가희국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신비한 힘을 가진 한 나라의 공주가 제 발로 온해국의 사람이 되겠다는데 자신이 왕이었어도 며느릿감으로 탐이 났을 것이다. 그뿐일까. 세자가 왕위를 물려받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마당에 단희공주는 단번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였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도 궁에 입궐할 날이 머지않았는데… 저하께서 저와 알콩달콩 살자, 그리 얘기하셨는데…”

 

 “이 아비도 속이 타 죽겠구나.”

 

 그의 말에 세이는 또다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다른 여인과 혼례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라, 세이야. 저하의 마음은 이미 네게 향해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단희 공주는 그저 꼭두각시다. 그저 대의를 위해 존재하는 꼭두각시.”

 

 “정말 그럴까요..?”

 

 “정치적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그리 깊어지겠느냐. 저하의 마음도 네게 일편단심이니 너무 상심하지 말아라.”

 

 하지만 아버지의 말에도 세이는 불안하기만 했다. 그 자리는 원래 자신의 자리였는데. 하룻밤 사이에 낯선 여인에게 뺏겨버린 마음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여인이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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