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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악녀가 흑막이 되어야 했던 사정
작가 : 이디별
작품등록일 : 2022.1.13

전생에 내가 죽여 버린 하녀로 환생해버렸다.
그래서 또다시 마주하게 된 내가 아닌 나.

이번 생에선 너도 나도 그렇게 살아선 안 돼. 내가 바로 잡겠어.

나의 고달픈 마음을 위로해 줄 화가에게 기대고 싶어도
은백색 빛의 유혹이 너무 강렬하다
전생의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소공작이 나를 구원하여주어도
나도 알 수 없는 나 자신이 그 남주들에게 흑막을 드리운다.


뺏지 않으면 빼앗기리라.

 
17화 내 손을 잡아
작성일 : 22-02-08 21:05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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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마릴라의 보습제를 보는 디아나의 눈에서 이채를 띄었다.

 이걸 샤르냐 제품처럼 대량 생산만 가능하다면 떼 돈 버는 건 시간문제이다.

 이내 눈에 들어온 홍자임을 들어 이리저리 살피고 냄새도 맡았다.

 

 “향이 되게 특이하네요.”

 “그치? 이거 향초로도 만들 수 있어. 그 향이 불면증 치료에도 좋고. 달여 먹으면 성기능 강화에도 아주 탁월해.”

 “네? 뭐요?”

 “성기능 강화. 남자들에게 아주 탁월한 정기 회복..”

 “아, 누나! 애한테 무슨 얘기를 하는 거예요?”

 

 헤이든이 약초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들이 하는 대화를 듣다가 헐레벌떡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왜? 사실인데. 스승님이 이거 얼마나 애지중지해서 달여 드시는데.

 갑자기 찾아온 너한테 무슨 재료가 있다고 그 많은 약을 만들어 줬겠니?

 본인이 드시는 약이라 매번 산만큼 쌓아서 보관해두시는데. 요즘 샬롯 아줌마하고 그렇게.”

 “누나! 아, 좀! 무슨 시집도 안간 사람이 애 앞에서 할 말 못할 말 구분도 못해요?”

 “야! 여기서 시집을 가고 안가고가 왜 나와? 그리고 17살이면 알 것 다 알지. 안 그러니, 디아나?”

 

 이미 전생에서 모든 것을 소설책으로 통달한 그녀였기에 딱히 부정할 수가 없어 디아나는 그저 헤이든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시선을 외면해야 했다.

 

 ‘내가 읽은 야설들을 보면 까무러치겠군.’

 

 무덤덤한 그녀에 비해 혼자 얼굴이 붉어진 헤이든이 디아나의 팔을 잡아끌어다가 일으켰는데 뭐가 또 혼자 부끄러워졌는지 그 잡은 팔을 탁 놓아버리고는 힘겹게 말했다.

 

 “저... 저기 무지 아저씨 호프집에서 파티하고 있다는데...”

 “파티?”

 

 전생의 사교계 여왕은 오랜만에 듣는 그 ‘파티’ 소리에 귀가 쫑긋해졌다.

 

 “뭐 별건 아니고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서 맥주 마시면서 춤추고 노는 거야.

 어제 일로 마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마을 지주가 쏜데. 너가 집에만 있으면 지루할 것 같아서... 갈래?”

 

 사교계에 유명한 카페나 클럽하우스나 살롱은 많이 가봤어도 평민들이 다니는 ‘호프집’은 처음인 그녀가 씨익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같이 가요.”

 

 디아나는 왕방울처럼 커진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마릴라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손을 휙휙 저었다.

 

 “아, 난 싫어. 가면 시집 언제 가냐고 잔소리들 할 게 뻔해. 헤레이스는? 설마 혼자 가서 또 술 먹고 있는 거 아니겠지?”

 

 마릴라가 헤이든을 노려보자 그는 디아나의 손을 덥석 잡고는 도망치듯 나왔고 뒤에서 마릴라가 당장 잡아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을 디아나가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헤레이스님 괜찮을까?”

 “아까 아버지랑 잔뜩 먹고 취해있었는데 모르겠다. 넌 아직 어리니까 술은 안 돼.”

 “뭐야. 그럼 왜 데려 가는 거야?”

 “가서 술 먹을 생각을 한다는 거 자체가 글러 먹었네. 이 꼬마야.”

 

 헤이든이 그녀의 이마에 손가락으로 딱 밤을 내리 치자 꽤 아픈 디아나가 소리 질렀다.

 

 “아! 아파. 어리긴 뭐가 어려? 벌써 시집가도 되는 나이인데. 누가 들으면 넌 할아버지인 줄 알겠다.”

 “그래도 술은 안 돼. 소보에에서 심심했잖아. 가면 재밌을 걸?”

 

 약초방에서 조금은 거리가 있던 어떤 한 건물 근처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 지하로 내려가자 마을에 내려 앉아있던 음침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어 흥겨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헤이든의 뒤를 따라 입구로 들어선 디아나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사람들이 맥주와 안주를 받아가는 바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래선 발 디딜 틈이 있겠어?”

 

 그렇게 소리를 지른 그녀가 고개를 돌리니 호프 집 가운데에 열댓 명의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두 걸음 정도로 오를 수 있는 높이의 댄스 플로어이다 보니 눈에 확 띄었다.

 무도회의 클래식 음악 밖에 접한 적 없던 그녀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들의 춤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졌다.

 

 “저쪽에 헤레이스가 있어. 따라와.”

 

  헤이든은 디아나의 손을 꼭 잡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제일 안쪽 끝으로 갔더니 그를 알아본 지인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야! 헤이든. 내가 여기서 널 보는 날이 오다니! 드디어 어른이 된 거냐.”

 “왔어. 왔어. 헤이든이랑 그 분이 왔어!”

 “아. 반갑습니다. 드디어 뵙네요. 어서 와요.”

 

 다들 헤이든보다는 그 옆의 디아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헤이든은 그들을 다 무시한 채 헤레이스 옆자리에 의자를 끌어다 디아나를 앉혔다.

 그리고는 헤레이스에게 가 그가 먹던 맥주를 휙 빼앗아 귓속말로 뭐라뭐라 속삭였다.

 헤레이스는 새하얘진 얼굴로 벌떡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뛰어갔고 그 자리에 앉은 헤이든이 승자의 미소를 띄었다.

 

 “뭐라고 했기에 저러는 거야?”

 “마릴라가 기다린다는 말만 했는데.”

 

 기다린다는 소리 하나로 저렇게 귀신을 만난 것처럼 뛰쳐나갔다고?

 약초방에서 마릴라의 위상을 다시금 감탄했다.

 

 “디아나 양. 같이 춤추러 갈래요?”

 

 처음 보는 어떤 여인이 그녀에게 다정스레 묻는다.

 그녀는 양 손를 흔들며 거절했는데 그 주변 사람들이 가자며 그녀를 억지로 끌고 나간다.

 당황한 그녀가 헤이든을 구해 달라는 듯 애처롭게 바라보았지만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 다녀오라며 손짓했다.

 엄청나게 큰 음악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서 디아나는 처음엔 쭈뼛하더니 점점 흥이 돋아나며 자연스럽게 그들 속에 스며들었다.

 '왜 이래. 한 때 나와 춤추고 싶어 하던 영식들이 줄을 섰었다고.'

 무도회에서는 늘 가식을 떨며 추었던 것과는 다르게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자연스럽게 추고 있는 그녀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런 그녀에게 헤이든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헤이든? 네가 여긴 웬일이냐.”

 

 지안이 맥주가 가득 찬 컵을 양손에 들고는 자연스럽게 옆에 앉았다.

 

 

 “마릴라가 헤레이스 형 잡아먹으려 하기 전에 데리러 왔죠. 이미 먹혔을 수도 있고.”

 

 “아버지는 확실히 술에 잡혀 먹힌 거 같은데.”

 

 “아버지요?”

 

 

 헤이든이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자 저 멀리서 자신과 똑같은 붉은색 머리카락의 한 사내가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로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하, 진짜! 가족이라고 하는 인간들이 다 이 모양이야. 디아나 좀 봐줘요.”

 

 

 그가 벌떡 일어나 아버지 있는 쪽으로 급하게 갔고 지안은 자신 앞의 땅콩을 몇 알 집어먹었다.

 

 한참을 춤을 추다 겨우 빠져나온 디아나는 너무 열정적으로 추었는지 흥분한 마음을 추스르며 헤이든을 찾아왔다.

 

 하지만 그곳에는 지안만 앉아있는 게 아닌가.

 

 ‘저 인간이 왜 또 여기에 있는 거야?’

 

 디아나는 안개 사건 이후로 그의 얼굴 보기가 더 껄끄러워졌다.

 

 얼굴 보면 고마웠다고 말해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해서 그와 대면하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그래서 아예 밖으로 나가려 출입구 쪽을 보았지만 엄청난 인파들이 바글바글했다.

 

 디아나는 그냥 헤이든을 기다리는 게 더 빠를거라 판단하고 지안을 모르는 척 그냥 자리에 앉았다.

 

 지안 또한 특별한 인사 없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를 의식했던 디아나가 힐끔 맥주를 마시는 그를 보더니 마른 입술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매우 자연스럽게 제 앞의 맥주잔을 잡으려 하는데 커다란 손이 턱 컵 위로 내려앉았다.

 

 

 “올해로 몇 살이지?”

 

 “먹을 만큼 먹었어요.”

 

 

 새침하게 말한 그녀는 다시 힘을 주어 컵을 들려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듣기로는 아직 어린 거로 알고 있는데.”

 

 “그쪽이 신경 쓰실 일이 아니에요.”

 

 “존댓말을 잘하네. 저번에는 아.주. 친근하게 말하더니”

 

 

 디아나는 자기가 언제 그랬냐고 말하려다 책방 앞에서 그에게 소리 질렀던 것이 생각나 고개를 돌려 혀를 차고는 컵에서 손을 떼어냈다.

 

 

 “헤이든은 어디 갔어요?”

 

 “금방 올 거야.”

 

 

 그러면서 지안은 자신의 음료를 꿀꺽 꿀꺽 들이켰다.

 그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디아나가 살짝 부담스러워졌다.

 

 

 “마실래?”

 

 “네!”

 

 “그럼 질문에 대답해.”

 

 “뭔데요?”

 

 

 디아나는 너무 차가워 서리가 낀 맥주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말했다.

 

 

 “너 마법사야?”

 

 “네?”

 

 

 뜬금없는 질문에 디아나는 그제서야 지안을 바라봤다.

 

 

 “뭐라는 거, 기가 막혀. 그 쪽이 마법사지 내가 무슨. 내가 다 봤어요!”

 

 “내가?”

 

 “테스 배 위에 손 올렸을 때, 내가 쓰러졌을 때, 내 목 다쳤다고 치료해줬을 때. 그때 은백 색 빛 내가 다 봤어요. 그거 마법이잖아요.”

 

 

 너무 크게 말하는 디아나의 목소리에 당황한 지안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변이 워낙 시끄러웠고 다들 술에 취해 있던 터라 둘의 대화를 엿듣는 이는 없었다.

 

 

 “그런 이야기는 좀 프라이빗하게 해야 하지 않나?”

 

 “그게 비밀이었어요? 어머, 몰랐네요. 너무 당당하시기에 저도 모르게 그만. 근데 그건 그쪽 비밀이지, 내 비밀은 아니잖아요.”

 

 

 디아나는 자연스럽게 컵을 잡는데 또다시 지안에게 저지당했다.

 

 

 “그 빛이 네 눈에 보인다고?”

 

 “다른 사람은 안보여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넌 마법을 쓴 적 있나?”

 

 “아뇨. 마법은 소설책에서 밖에 못 봤는데요.”

 

 

 ‘그게 야설이란게 좀 문제지만.’라고 생각하며 잔을 들려하자 지안이 이번엔 아예 컵을 빼앗아 자기 앞으로 내려놓았다.

 

 

 “내 손을 잡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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