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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안의 그
작가 : 이작송
작품등록일 : 20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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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필름이 끊기도록 마신 다음 날,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내 앞에 나타난 이 남자는……!

 
7화 요령만 늘어서는!
작성일 : 22-02-08 18:59     조회 : 182     추천 : 0     분량 : 5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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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가 두 눈을 꼭 감은 그 순간, 제 등을 구해줄 천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 회장님!”

 “할아버지 진정하세요.”

 

 최 집사와 수현이 차례로 문수를 불렀다. 효자손을 든 문수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그러고 보니, 이 아가씨는 누구더냐?”

 “…….”

 

 화가 나 눈에 뵈는 게 없던 문수의 눈에 신아의 얼굴이 서서히 잡혔다.

 

 “수현이 니랑 만난다는 그 미담 그룹 외손녀는 아니고.”

 

 흐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싶어 수현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신아 아가씨세요, 회장님.”

 

 최 집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늘어진 문수의 눈이 순간 번쩍 뜨였다.

 

 “저 신아예요, 이신아.”

 “니, 니가 신아라고? 그 이 사장네 딸내미?”

 

 문수가 황급히 수현의 양 볼을 잡았다.

 손에서 떨어진 효자손이 탁,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할아버지.”

 

 문수가 수현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 욘석아, 어찌 니 아비고 어미고 어찌 나한테 연락 한 통 안 할 수가 있더냐.”

 “…….”

 “느그 회사 그렇게 되고 내가 을매나 걱정 했는지는 아냐, 산으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어째 느그 소식을 들을 수가 없어, 들을 수가!”

 

 문수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재빨리 효자손을 집어 구석에 몰래 숨기던 신아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했다.

 신아도 한때는 돈 걱정 없이, 넓은 집에서 뛰어다니며 지냈던 적이 있었다.

 수현을 만난 것도 그때였다.

 입맛이 까다로웠던 9살 수현이 신아네 식품 회사에서 나온 식품은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문수는 자신의 유일한 손자인 수현을 위해 신아의 아버지 회사와 교류했다.

 사교 모임에 가서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수현에게 신아란 친구를 만들어준 것도 문수였다.

 그러던 중, 신아네 회사의 신제품 레시피가 유출되었다. 그것도 인체에 해로운 성분을 함유했다는 악성 루머와 함께.

 사태를 수습해 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소문에 불을 지피는 꼴이었다.

 여러 방면에서 노력했지만, 회사는 점차 어려워졌고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느이 아부지는 잘 지내고?”

 

 신아가 씁쓸하게 웃으며 문수를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눈치챈 수현이 문수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잘 지내셨어요?”

 “내야 잘 지냈지.”

 

 문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신아를 바라보며 쯧쯧. 혀를 차며 뒷말을 이었다.

 

 “근디 저놈 자슥 때문에 내가 요새 잠을 못 자, 잠을. 내도 이제 여든이여 여든! 살날도 을마 남지 않았는디 수현이 요놈 자식이 맨 속만 썩혀서 이 할애비가 제 명에 못 살긋다, 못 살긋어.”

 “…….”

 

 이 말을 꺼내는 의도가 무엇인지 다 아는 수현이 허,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죽기 전에, 손주 한번 품에 안아보는 거, 그기 내 소원인디, 수현이 점마는 이 할애비 마음은 한 키도 몰라 주고…….”

 “여든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건강해 보이시는데요.”

 

 수현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건……. 내가 동안이라 그려, 동안이라.”

 

 아직도 골프 치러 나갈 정도로 정정하면서, 문수가 시름시름 앓는 목소리를 냈다.

 최 집사는 고개를 살짝 돌려 입을 가리고 웃었다.

 

 “뭐시 웃겨?”

 “아닙니다, 회장님. 지금쯤 식사가 준비된 것 같은데 이동하시겠습니까?”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지? 어여 밥부터 먹자 밥부터.”

 

 기대했던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문수가 수현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저, 저는요?

 아무리 이 집에 와본 적이 있다고 해도 그게 9년 전이었다, 9년.

 신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문수를 바라봤다.

 

 “수현이 니놈은 와서 밥을 먹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신아와 눈이 마주치자 문수의 인자했던 얼굴이 호랑이처럼 날카롭게 바뀌었다.

 문수가 수현의 팔을 이끌고 방을 빠져나갔다.

 

 ‘저놈이 할아버지 손자 원수현인데요!’란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른 신아가 침을 꿀꺽 삼켰다.

 

 “도련님도 가셔야죠.”

 

 눈을 찡긋하는 최 집사의 뒤를 신아가 졸졸 뒤따라갔다.

 

 ***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진 산해진미를 보며 신아는 속으로 연신 감탄했다.

 

 전복삼계탕부터 전복침채, 편육, 섭산적 등. 어렸을 적에나 몇 번 먹었지, 평소 쉽게 먹지 못한 음식이 가득했다.

 

 수현이 의자를 끌어내 신아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아주 버릇을 잘못 들였구먼, 잘못 들였어.”

 

 의자에 착석한 신아를 보던 문수가 혀를 쯧쯧, 찼다.

 

 “최 집사, 어멈은 언제 나온다냐?”

 

 숟가락을 든 문수가 고개를 돌려 최 집사를 바라봤다.

 

 “서류 하나만 금방 처리하고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최 집사가 말했다.

 

 “일도 중요허지만, 가족끼리 먹는 식사 자리에 늦으면 쓰나.”

 

 크흠.

 

 목을 가다듬은 문수가 신아와 수현을 바라보며 손짓했다.

 

 “어여 먹어라.”

 “네.”

 “네.”

 

 문수가 국을 뜨자 그제야 신아와 수현이 젓가락을 들었다.

 

 챙!

 

 제 앞에 놓인 섭산적을 집으려는 신아의 젓가락을 할아버지가 세게 내려쳤다.

 

 신아가 당황한 눈으로 문수를 바라봤다.

 

 “누가 너 먹으라고 가져다 놓은 줄 아냐? 신아 먹일 거다. 신아.”

 

 문수가 수현의 앞으로 접시를 밀었다.

 

 “괜찮습니다. 할아버지도 드셔야죠.”

 

 수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힐긋 신아를 바라봤다.

 아, 억울해.

 신아가 맨밥을 입에 넣으며 수현을 찌릿 째려봤다.

 

 “어쩜 말도 이리 이쁘게 할꼬.”

 

 문수가 흐뭇하게 웃으며 수현을 바라봤다.

 그 틈을 타 수현이 접시를 신아 쪽으로 밀었다.

 

 ‘뭐야?’

 

 신아가 의아한 눈으로 수현을 쳐다봤다.

 

 그때,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국 준비해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방금까지 방에서 서류를 보고 나온 진경이 식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저도 모르게 진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진경이 ‘왜 안 하던 짓을 하냐’는 듯, 신아를 힐긋 보다 의자를 끌어 자리에 앉았다.

 

 “어멈아, 신아란다, 신아.”

 

 숟가락을 든 진경이 놀란 눈으로 수현을 바라봤다.

 

 “신아요?”

 “그, 이 사장네 딸 있지 않더냐.”

 

 수현의 눈, 코, 입을 꼼꼼하게 살피던 진경이 탄식했다.

 

 “아, 그 신아구나. 잘 지냈니?”

 

 이름만큼이나 얼굴이 익숙한 이유가 있었다.

 지나간 시간도 시간이지만.

 수줍지만 밝았던 어릴 적과 달리, 냉철한 분위기가 흐르는 탓에 한눈에 알아보지 못한 것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전히 인사성은 바르고.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서 못 알아봤다. 미안해.”

 “글쟈. 어릴 때랑은 아주 딴판이여 딴판. 나도 첨엔 누군가 싶었다니께.”

 

 문수가 허허 웃으며 국을 떴다.

 진경이 그를 바라보다가 신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근데 두 사람이 어떻게 같이 와?”

 “켁…….”

 

 밥을 먹다 사레들린 신아가 기침했다. 수현이 신아의 등을 두드려줬다.

 

 “아…….”

 “그려, 내도 궁금허다. 수현이 네가 왜 신아를 데리고 집엘 다 온 것이냐.”

 

 “그게…….”

 

 이유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몸이 바뀐 상태라 어쩔 수 없이 같이 왔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신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근데 수현이 너 어제 맞선보지 않았니? 어째 너도 그렇고, 그쪽에서도 말이 없네?”

 

 진경이 국을 한 숟가락 뜨며 물었다.

 

 “아, 그게…….”

 

 신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눈칫밥을 먹는 건지, 쌀밥을 먹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못난 놈. 또 마음에 안 든다카고는 금세 나왔겠지. 저놈 저 자식이 그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문수가 언짢은 듯 신아를 보며 혀를 찼다. 신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수현을 째려봤다. 눈이 마주치자 신아가 고개를 휙, 돌리곤 숟가락으로 밥을 푹 펐다.

 

 “그래도 상대 쪽에서 별 이야기 없는 거 보면 이번 맞선은 또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아버님”

 

 안 그러니 수현아?

 진경이 신아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르냐? 원수혀이?”

 

 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놈 자식이 이렇게 순순히 대답할 녀석이 아닌디.’

 

 물을 마시며, 그 모습을 유심히 살피는 문수의 눈이 가늘었다.

 옆얼굴이 따가운 신아가 식탁 아래로 손을 내려 수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야, 야.

 어떻게 네가 좀 대화 화제 좀 돌려봐.

 물론 수현이 들릴 리는 없겠지만.

 신아가 간절하게 외치고 또 외쳤다.

 

 “저…….”

 

 정말 텔레파시라는 게 있나?

 수현을 바라보는 신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신아야 뭐 더 필요한 거 있니?”

 “그랴그랴. 말만 혀라.”

 

 진경과 문수의 시선이 모두 수현에게 집중되었다.

 

 “두 분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여기에 오기, 수현이 한 말이 머릿속에 번쩍 튀어나왔다.

 뭐야, 뭔데.

 너 설마, 이상한 말 할 거 아니지?

 수현을 바라보는 신아의 눈동자가 덜덜 떨렸다.

 

 “저희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쨍그랑.

 문수의 손에서 빠져나온 숟가락이 바닥에 부딪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신아가 허리를 굽혀 떨어뜨린 숟가락을 주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니?”

 “…….”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저희 만나고 있습니다.”

 

 모두가 황당한 이 상황 속, 수현만이 평온했다.

 

 “원수현이.”

 

 정신이 번쩍 든 문수가 신아를 바라봤다.

 

 “네?”

 

 아무런 표정도 없는 문수의 표정을 마주한 신아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깃들었다.

 

 “네 일인데 어째 남의 일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여!”

 “……!”

 

 갑작스러운 호통에 신아가 몸을 움찔했다.

 

 “신아 니는 정녕 이런 놈이 좋더냐?”

 

 문수가 손가락으로 신아를 가리켰다. 진짜로, 진짜로 말이다.

 신아를 흘깃 바라본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이고야. 원수혀이 니는!”

 

 문수가 목 뒤를 부여잡았다.

 

 “아, 아버님!”

 “하, 할아버지!”

 

 문수가 신아의 손을 탁, 쳐냈다.

 당황한 신아가 알싸한 통증이 나는 손과 문수를 멍한 얼굴로 번갈아 쳐다봤다.

 

 “치아라! 내가 네를 그렇게 가르쳤더냐!”

 “……예?”

 “아, 아버님. 진정하세요.”

 

 진경이 흥분한 문수를 붙잡았다.

 문수가 턱짓으로 신아를 가리켰다.

 

 “힉!”

 

 안면근육이 단단하게 굳은 신아가 진경과 눈을 마주쳤다.

 

 “원수현이 지금 진심인 기냐?”

 “…….”

 

 그럴 리가요. 저 어제 이별했어요.

 신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호랑이 같은 눈매에 기가 죽은 신아가 손을 덜덜 떨었다.

 

 “네 진심도 아닌데 맞선 보기 싫어서 이러는 기지?”

 “…….”

 “내가 내 손주도 모를 것 같드냐? 어디서 요놈이 요령만 늘어서는!”

 

 문수가 식탁을 주먹으로 쾅, 내려쳤다.

 반동에 유리잔에 담긴 물이 흔들렸다.

 

 “수현이 너 진짜 그런 거니?”

 

 미소를 짓고 있던 진경도 어느새 무표정으로 신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아는 그냥 이 자리에서 혀 깨물고 죽고 싶었다.

 아 왜 하필.

 하필 몸이 바뀌어도 원수현이랑.

 원수현만 아니었어도, 이런 난처한 상황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신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차피 이 상태면 원수현 대신 맞선 보러 나가야 하는 것도 나니까.

 시원하게 질러버리자고.

 신아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작가의 말
 

 7화 내용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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