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흰매미가 내려앉은 곳 (2)
“뭐? 왜?”
“설명할 시간이 없어! 빨리!”
주아로서는 앤드류가 왜 이렇게 과민하게 반응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앤드류는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무언가 못볼 것을 본 것처럼 다급하기만 했다.
“하하하하하.”
그 순간,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막 변성기를 지났을 소년의 장난스러운 웃음소리였다.
“어디 숨었냐.”
웃음소리를 듣자마자 앤드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송곳니를 드러낸 채 한 마리의 짐승처럼 으르렁 거렸다. 방금 전 주아를 안고 내달리던 여유로운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랜만이야, 앤디.”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장 기계 옆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드를 뒤집어 쓴 고수머리의 소년이었다.
이제 막 17~18살 정도 되었을까. 하얗고 가느다란 팔 다리에서는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었다. 그는 앤드류를 보면서 장난 끼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건강해 보여서 기뻐, 앤디.”
“그 애칭으로 부를 수 있는 건 한명 뿐이다, 티토노스.”
앤드류는 소년을 보자마자 잔뜩 적대심을 드러냈다. 티토노스라고 이름을 부르는 걸 봐서는 이미 구면인 모양이었다. 얼핏 보면 삼촌과 조카로 보이는 나잇대 였지만, 소년은 앤드류에게 친근하게 말을 이었다.
“실망이야. 우리 사이에 그러기야? 너는 내 ‘동생’이 될 뻔 했잖아. 조금 친근하게 대해도 될 텐데.”
“누가 너 같은 놈의 동생이야!”
앤드류는 분노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 그리고 총알처럼 티토노스에게 달려들었다.
손톱을 세운 그의 팔은 날카롭게 벼린 흉기처럼 티토노스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그래? 난 우리가 좋은 형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아쉬운걸.”
하지만 티토노스는 훌쩍 뛰어 올라 앤드류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다.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차분한 몸짓으로 주아 앞에 내려앉았다.
“그런데 이쪽은 누구지? 그 사이에 또 여자를 만든 거야?”
티토노스는 흥미 어린 얼굴로 주아를 훑어 보았다. 주아는 즉시 그를 향해 소리쳤다.
“나,나는 연합 소속의 서주아 수사관이다! 신종 마약 유통과 관련하여…….”
“흐응, 한국에 있다는 영능력자 수사 공인집단, 맞지?”
티토노스는 푸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왜 어딜 가도 이런 것들이 있는 걸까? 일본의 특수현상조사 연맹과 중국의 이현상 해결 공안만 해도 지긋지긋했는데, 이 조그마한 나라에서도 우리를 귀찮게 하네.”
그러면서 그는 짜증 서인 얼굴로 주아를 훑어봤다.
“참, 벌레 같이.”
그리고 티토노스는 빠르게 발을 뻗어 주아의 가슴을 걷어찼다.
“윽!”
흡사 차에 치인 것과 같은 충격과 함께 주아는 뒤로 나동그라졌다. 겉보기에는 어린 소년 같았지만, 힘은 웬만한 장정보다 강했다.
“조심해. 어려 보여도 이미 몇 백 년을 산 놈이야.”
앤드류가 재빨리 경고했다.
“귀족을 뵈었으면, 천것들은 어련히 몸을 낮춰야지. 안 그래?”
티토노스는 쓰러진 주아를 보면서 키득거렸다. 그의 표정은 앤드류에게서도 읽을 수 있던, 낮은 것을 한 없이 내려다보는 고고함과 오만함이 가득했다.
거기다 입술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그의 정체를 짐작케 했다.
이 소년도 앤드류와 같은, 어쩌면 그보다 강할지 모르는 ‘귀족’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전에 없던 긴장이 주아의 몸을 휘감았다.
“그런데 의외야, 앤디. 너는 눈이 높았잖아. 셀레네의 대용품 치고는 못생겼는데?”
티토노스는 쓰러진 얼굴을 힐끗거리더니, 실컷 비아냥거렸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앤드류는 욕설을 내뱉으며 티토노스에게 달려들었다.
“개애애자아아시이이익!”
앤드류의 주먹이 쉬지 않고 티토노스의 몸을 향했다. 하지만 티토노스는 여유롭게 그의 공격을 피하며, 쉬지 않고 그를 조롱했다.
“하하하하! 화났어? 앤디? 화났어? 하하하하!”
앤드류의 고함과 티토노스의 웃음소리가 쉬지 않고 일대에 울려퍼졌다. 뒤늦게 정신을 수습한 주아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저 짜증나는 꼬맹이는 그냥 둘 수 없다.
자신을 감히 ‘못생겼다’라고 운운 한 것 까지 포함해서.
이 일념 하에 그녀는 은탄환을 치켜 올렸다. 그리고 주문을 영창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태양을 살라먹을 나의 용이여.>”
- 탕!
총구에서 번쩍이는 불꽃이 치솟았다. 불꽃은 일직선으로 나아가 그대로 티토노스의 얼굴에 직격했다.
“큭!”
예상치 못한 기습에 티토노스는 옆으로 고꾸라졌다. 그러다 이내 귀족 답게 곧장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뺨에는 은탄환으로 인한 화상이 벌겋게 남아 있었다.
“어……?”
예상치 못한 공격 탓인지 여유롭던 티토노스의 얼굴에 당혹의 빛이 떠올랐다.
마치 자신이 공격을 당할 거라 생각을 전혀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그의 표정을 보자마자 앤드류가 깜짝 놀라더니, 주아에게 경고했다.
“떨어져! 빨리!”
아니 다를까, 티토노스는 상처 부위를 감싸 쥔 채 빽 하고 소리쳤다.
“아프잖아!”
그리고 이내 히스테릭하게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아프잖아! 아프다고! 아프잖아! 아프단 말이야! 아파! 아파! 아파! 아프다고오오오!”
마치 자신이 상처 입은 것이 대단히 일인 듯 비명에 가까운 말을 쉼 없이 내뱉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앤드류를 조롱하며 비웃은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주아를 향해 입을 벌렸다.
이윽고, 무엇이라 형용하기 힘든 굉음이 티토노스의 입에서 솟구쳤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날카로우면서도 거대하고, 고통스러우면서도 강력한 진동이 소리의 모습을 빌어 일대에 휘몰아친다.
주위에 남아 있던 유리는 일제히 쨍그랑거리며 깨졌다. 그리고 낡은 철판도 하나 둘 씩 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으그러지기 시작했다.
티토노스는 입을 힘껏 벌린 채 주위의 모든 것을 으스러트릴 소리를 쉼 없이 내질렀다.
“꺄아아아악!”
주아 역시 온 몸에 직격한 소리의 울림을 온 몸으로 고스라이 받아내야 했다. 그녀는 귀를 틀어 막은 채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막아도 살갗을 뜯어버릴 것 같은 진동은 뼈와 바닥을 타고 이어졌다. 주아는 그때서야 왜 죽은 시체가 귀에 피를 흘리고 있었는지 알아챘다.
아마 그 남자도 이 울부짖음으로 죽였으리라.
“저,정신차려!”
앤드류가 비틀거리며 주아를 부축했다. 그 역시 주아와 별 반 다를 바 없는 얼굴이었다. 아무리 귀족이라고 해도 이 소리는 온 몸으로 받아내기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네 피, 조금만 마시자.”
앤드류는 다급하게 말했다. 주아는 고민할 것 없이 목을 내밀었다.
“빠,빨리 마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앤드류는 서둘러 주아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부드러우면서도 신속하게 머리를 낮춰, 그녀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서늘한 그의 숨결과 끝없는 갈망이 주아의 피부를 타고 전신을 휘감았다.
곧 꿀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피와 생명이 빠른 속도로 앤드류에게 빨려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몇 초나 되었을 법한 찰나, 어쩌면 그보다 짧을 시간.
그 짧은 시간이 끝난 후에 앤드류는 입가의 피를 닦으며 천천히 주아에게서 몸을 뗐다.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것은 그만 멈출 때가 되지 않았나, 티토노스?”
그는 비릿하게 웃으면서 발걸음을 뗐다.
그가 움직일 때 마다 조금씩 몸에 푸르른 불꽃이 치솟았다. 앤드류의 얼굴은 방금 전에는 없었던 더할 나위 없는 충족감으로 가득했다.
그걸 본 티토노스는 당황해서 물었다.
“설마 저 여자 마녀야?”
“그래.”
앤드류는 티토노스에게 힘껏 몸을 던졌다. 그의 몸에서 새파란 불꽃이 치솟아 갑옷처럼 겹겹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 말인즉슨, 내가 너를 태워죽일 힘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다는 거지.”
티토노스는 재빨리 앤드류를 향해 입을 벌렸다. 그리고 아까와 똑같이 날카로운 굉음을 내뱉었다.
“끼에에에에에엑!”
“크아아아아아악!”
앤드류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푸른 고함을 지르며 티토노스와 맞섰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치솟은 불꽃은 쉼 없이 일렁거리며 당장이라도 티토노스를 태워죽일 것처럼 솟구쳤다.
“칫!”
결국 안 되겠다 싶었는지, 티토노스는 옆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는 공장 비상구 쪽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말했다.
“어차피 오늘은 귀찮은 증거를 치워버리려고 온 거니까, 그만 갈게. 인사는 이 정도면 됐겠지. 앤디?”
평정을 되찾은 티토노스는 아까와 같이 장난 기 어린 웃음만 지어보였다.
“여기까지 우리를 쫓아 온 건 칭찬해줄게. 나는 너처럼 강한 남자가 내 동생으로 들어오는 건 언제나 환영이야. 우리 여주인은 관대하니까 기회가 있을 때 언제나 우리에게 들어와.”
이어서 그는 앤드류가 아닌, 주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녀.”
말을 잇는 티토노스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너는 내가 언젠가 토막 내 씹어 먹을 거야. 기다리고 있어.”
그의 입가에 있던 송곳니가 어두컴컴한 그늘 속에서도 번뜩였다. 티토노스는 이 말만 남기고 빠른 속도로 비상구 저편으로 사라졌다.
* * * * *
“……그렇게 범인은 도주했습니다. 현재 시신은 부검을 해봐야 하겠지만, 아마 증거 인멸 목적으로 살해당한 걸로 보입니다.”
주아는 왼쪽 귀에 붕대를 감은 채 브리핑을 이어갔다. 그녀의 뒤로는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고, 수사관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미연은 주아에게 재차 질문했다.
“범인은 흡혈종인가?”
“네. 외형이나, 특징을 봤을 때 흡혈종이 분명합니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인간의 것으로 볼 수 없는 체력. 그리고 굉음을 내지르는 능력까지.
모든 게 귀족이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다.
“티토노스, 그 자식의 이름이다.”
조용히 있던 앤드류가 끼어들었다. 그는 나지막이 설명을 이었다.
“18살 정도로 보이지만, 400년을 넘게 산 괴물이야. 합스부르크 가문이 오스트리아를 지배했을 때부터 살아왔어. 잔인하고 치밀하기로 유명한 놈이지.”
“밀입국자가 있었는지부터 조사해야겠군 그래.”
앤드류의 설명을 들은 미연은 차분히 정리했다. 18살 정도의 외국인이 한국을 돌아다닌다면 어떤 식으로든 눈에 띌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들 사이로 낯선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아예 제조부터 유통까지 한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나 보네요. 이런 경우는 드문데.”
동시에 그들 사이에 있던 공기가 사뭇 달라졌다. 주아는 갑자기 끼어든 그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규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 앞에 있었다.
예상치 못한 등장에 주아는 깜작 놀라 물었다.
“서,선배? 여기는 무슨 일이예요?”
“몸은 좀 어때?”
규호는 주아의 안부부터 물었다. 주아는 서둘러 고개를 피한 채 대꾸했다.
“고막이 조금 찢어진 것 말고는 괜찮아요.”
사실 그것 말고도 다친 부위기 많았지만, 규호 앞에서 아픈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앤드류는 갑자기 나타난 규호를 힐끗 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뭐야, 이 자식은 왜 왔어?”
“몰랐나?”
미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설명했다.
“오늘부터 이번 사건에 정규호 수사관도 함께 하게 됐다. 아무래도 서주아 수사관과 외부인 둘로만은 힘들 것 같아 내린 특단의 조치야.”
규호는 어안이 벙벙한 두 사람 앞에서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니 앞으로 잘 부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