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흰매미가 내려앉은 곳 (1)
주아가 향한 곳은 어두운 상가 뒷골목이었다.
밤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간간히 보이는 가로들 불빛 아래로 어지럽게 얽힌 골목 그림자만 언뜻 언뜻 보일 뿐이었다.
“여긴 어디냐?”
“잔말 말고 따라와.”
앤드류의 질문을 주아는 가볍게 일축했다.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은 작은 카페에 도착했다. 주아는 익숙한 자세로 카페 창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갑자기 창백한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누구쇼.”
시체나 다름없을 정도로 빼빼 마른 사내였다. 알비노인지 머리카락 색은 색조 하나 없이 흰색이었고, 눈에는 붉은 빛이 돌았다. 주아는 그를 보자마자 알은 채를 했다.
“나다. 이세륜.”
“으아아아악! 수,수사관님!”
이세륜이라 불린 백발의 남자는 기겁해서 벌벌 떨었다.
“여기는 왜 또 오신 거예요? 저 이제 마음 고쳐먹고 잘 살고 있다고요! 약 제조나, 밀매나, 키메라 합성 같은 건 더 이상 안 해요! 그냥 무허가 연금술 공방을 운영 중인 영세업자라고요!”
“알아. 그냥 뭣 좀 물어보러 온 거야. 이게 뭔지 알겠냐?”
주아는 세륜 앞에 백야가 들어 있는 약병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세륜의 눈빛이 고요하게 반짝였다.
“들어오시죠. 안에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마치 자동문처럼 카페 문이 스르륵 열렸다. 주아는 앤드류에게 턱짓을 했다. 조용히 따라오라는 신호였다. 앤드류는 어쩐지 꺼림직 했지만 주아를 따라 얌전히 카페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페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계산대와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긴 했지만, 그 뒤로는 교묘하게 복잡한 실험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눈 여겨보지 안핬다면 그냥 지나칠만한 곳이었다.
“서 수사관님이 누군가와 함께 오시는 건 처음이군요.”
세륜이 저편으로부터 걸어왔다. 그런데 그의 움직임이 어딘가 기묘했다. 걷는다기 보다는 다리를 질질 끄는 식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어차피 알만큼 알만한 분이니 숨기지 않겠습니다.”
세륜은 이렇게 말하고서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쑥 뽑았다. 흡사 무나 당근이 뽑히는 것처럼 세륜은 머리만 덜렁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머리가 뽑혀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세륜의 몸은 잘만 움직였다. 그걸 본 앤드류는 기겁해서 물었다.
“뭐야? 너 좀비였냐?”
그 말을 들은 세륜은 짐짓 불쾌하다는 투로 대꾸했다.
“좀비라니요! 그런 하등한 것들과 비교하는 건 수치입니다. 저는 리치(Lich)! 스스로의 연구 끝에 죽음을 극복한 천재라고요!”
머리가 사라진 세륜의 몸은 혼자 알아서 잘 움직이더니, 세륜의 머리를 기묘한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 안에 풍덩 집어넣었다. 주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그를 소개했다.
“인사해. 이쪽은 연금술사 이세륜. 보다시피 대가리만 남아 있지만, 나름 똑똑한 놈이야.”
세륜은 플라스크 안에 머리만 둥둥 뜬 채 인사했다.
“흠흠. 경황이 없어서 제 소개를 못했군요. 저는 과거 서 수사관님과 인연을 맺은, 세기의 천재이자 신이 내린 재능과 두뇌의 소유자인 이세륜입니다. 평소에는 이 상태로 있으니, 이해해주시길.”
실로 장황한 자기 소개였다.
앤드류는 일부러 송곳니를 슬쩍 내보이며 간결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앤드류다. 대충 뭐하는 놈인지는 알겠지?”
“귀족 나으리셨군요.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세륜은 단숨에 그의 정체를 파악하고 공손하게 답했다. 주아는 그 분위기 그대로 세륜을 서둘러 다그쳤다.
“이 마약이 뭔지는 알지? 알고 있는 건 죄다 불었으면 좋겠는데.”
“다,당연하지요. 제가 아는 선에서는 죄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세륜은 말까지 더듬으며 협조적으로 나왔다, 그 모습이 사뭇 신경 쓰였던 앤드류는 넌지시 물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레 너를 보고 저렇게 벌벌 떠냐?”
“별거 아니야. 예전에 취조하던 중에 자꾸 말장난을 쳐서, 그냥 본보기로 팔 다리를 총으로 날려버렸어.”
“뭐?"
“걱정 마. 어차피 쟤는 리치라서 팔 다리 날아가는 걸로는 안 죽어.”
주아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앤듀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까 꿈과 낭만 운운 했던 게 누구였더라.
“안 그래도 암시장이 이 마약 때문에 떠들썩했습니다. 상도가 없거든요.”
세륜은 너스레를 떨며 입을 열었다. 주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암시장 놈들이 상도를 따져서 뭐하게?”
세륜은 단번에 눈을 치켜떴다.
“모르시는 말씀! 이 바닥은 이렇다 할 법적인 증명거리가 없기 때문에 신용이 없으면 장사를 못합니다. 철저하게 실득과 상도를 따지는 곳이 바로 여기예요.”
지이이잉, 하는 솔리와 함께 플라스크 아래서 기계 팔이 튀어나왔다. 세륜은 기계팔로 백야가 든 약병을 툭툭 치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마약은 갑자기 등장한데다, 효과도 너무 강해서 말이 많았습니다. 기존에 유통되던 마약의 가치가 전부 하락했거든요.”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주아는 단숨에 그의 말을 잘랐다. 세륜에게 듣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그녀는 몸을 낮추고 세륜에게 차분히 일렀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 마약이 유통한 이후부터 암시장에서 ‘갑자기 가격이 오른 무언가’가 있지 않느냐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이세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윽고 그는 주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까지 알고 오신 겁니까?”
“네가 예상 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사실 그녀가 알아낸 것은 그냥 제조 방법이 전부였지만, 지금 정보를 캐내려면 허세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
“뭐, 좋습니다. 서 수사관님에게 숨겨봤자 의미가 없겠지요.”
아니나 다를까, 세륜은 체념한 어조로 술술 불기 시작했다.
“말씀하셨던 대로 이 마약이 유통되기 시작할 때부터 갑자기 사람 시체의 가격이 훅 올랐죠. 특히 사연 있는 시체일수록 비싸졌습니다.”
그 말을 들은 주아가 날카롭게 지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한을 품고 죽은 시체, 맞지?”
“그렇습니다.”
세륜은 순순히 긍정했다. 그리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사실 제게도 몇 번인가 시체를 구할 수 있느냐는 제안이 왔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것과 딱히 연관이 없어서 거절했죠.”
그는 기계 팔로 근처에 있던 커튼을 컫었다. 그러자 커튼 너머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플라스크 수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조 안에는 사람의 팔 다리 여러 개가 덩어리 형태로 둥둥 떠 있었다. 실로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무엇보다 저는 인간의 팔 다리 정도는 배양할 기술력이 있답니다. 구태여 다른 언데드처럼 여분 신체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지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세륜은 자기도취에 빠져 자랑했다. 주아는 그런 세류를 무시한 채 재차 질문했다.
“그래서 너한테 제안을 해온 놈은 누군데?”
세륜은 떨떠름한 얼굴로 지도 한 장을 꺼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지도에 표시된 곳에 가시면 버려진 공장이 있습니다. 이 아래 지하실에서 시체 팔이 장사를 하는 놈이 있어요. 여기 가시면 좀 더 캐볼 수 있을 겁니다.”
* * * * *
“참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 줄이야.”
지도에 따라 차를 몰면서 주아는 중얼거렸다. 지리상으로 멀지 않은 곳에서 버젓이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에 수치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진정해.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라고 하잖아.”
동행한 앤드류는 그런 그녀를 달랬다. 주아는 그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그거 한국 속담인데, 잘 아네?”
“언어를 익히려면 우선 그 나라의 문화부터 이해해야 하니까. 속담은 그런 의미에서 언어와 문화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지. 나한테 한국어를 가르쳐준 사람이 그랬어.”
그러고 보니 앤드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수려하게 한국어를 사용했었다.
오래 사는 이들이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닐 터였다.
주아는 새삼 앤드류의 한국어 능력이 신기했다.
“좋은 스승이네. 대체 누구한테 한국어를 배운 거야?”
“내 아내.”
여기까지 말하고서 앤드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차창 너머 풍경에 조용히 눈을 마주했다.
주아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차 안에는 어색한 공기와 엔진 소리만 맥없이 차올랐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세륜이 알려준 지점 근처에 이르렀다. 무성하게 자라난 수풀 너머로 공장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주아는 근처에 차를 멈춰 세웠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겠다.”
가까이 차를 몰고 갔다간 발각될 위험이 있었다. 주아는 반사적으로 은탄환을 쥔 채 갈대 아래로 몸을 낮췄다.
“너 지금 뭐하냐?”
그걸 본 앤드류가 코웃음을 쳤다.
“보면 몰라? 잠입하고 있잖아.”
주아의 대꾸에 앤드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온갖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무슨 잠입이야. 네가 숨어들고 있다는 건 백 미터 밖에서도 알겠다.”
“뭐?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주아에 항변에 앤드류가 다짜고짜 그녀를 들어 안았다.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주아는 놀라 말을 버벅였다.
“뭐,뭐하는 거야!”
“좀 조용히 하고 가만히 있어.”
앤드류는 마치 한 몸처럼 주아를 자신의 상체에 밀착시켰다. 그의 살갗에 서린 한기가 주아의 팔 언저리를 가만히 쓸었다.
“밤의 연회에서 소란은 곧 무례.”
그는 이 말과 함께 주아를 들어 안은 채 훌쩍 수풀 사이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의 발 아래에는 바스락거림도, 윙윙 거리는 바람 소리도, 자근거리는 흙 소리도 없었다.
그의 발걸음은 신속했으나 조잡하지 않았고, 그의 움직임은 정교했으나 차분했다.
“우리에게 있어 고요는 하나의 예법이지.”
앤드류는 흡사 형체가 없는 유령처럼, 그리고 품위 있는 귀족처럼 그 어떤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빠르게 앞을 향해 나아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앤드류의 품에 안겨 있는 동안 주아 자신이 꼭 차분하게 내려 앉은 새의 깃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자, 다 왔어. 내려.”
순식간에 그들은 공장 앞에 도착했다. 주아는 서둘러 앤드류의 품에서 내렸다.
“고,고마워.”
“어울리지 않게 감사 인사는 무슨.”
앤드류는 그답게 너스레를 떨었다.
“좋아, 일단 누가 있는지부터 보자.”
주아는 서둘러 정신을 붙들고 주위를 살폈다. 수요와 공급은 어떤 식으로든 균형을 이룬다. 시체가 그렇게 고가에 매입된다면, 분명 팔려는 사람이든, 살려는 사람이든 어떤 식으로든 있을게 분명했다.
“잠깐.”
그런데 갑자기 앤드류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왜?”
그는 몇 번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경고했다.
“피 냄새가 난다. 멀지 않은 곳이야.”
“시체 냄새야?”
“아냐. 이제 막 흘린 피 냄새야. 따라와.”
앤드류는 피 냄새를 따라 천천히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주아 역시 가만히 그의 뒤를 밟았다.
은탄환을 거머쥔 주아의 손에 땀이 흘러 내렸다.
“이런.”
얼마 가지 않아, 앤드류가 멈춰 섰다.
그의 발치에는 양 쪽 귀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남자의 시체가 있었다.
무슨 일은 겪었는지는 모르지만, 죽은 그의 얼굴에는 생생한 공포와 절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젠장.”
앤드류는 시체의 상황을 보자마자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해! 당장!”
